[이도형저 '日本 다시보고 생각한다' 제2부] "각개약진과 집단관리"
※ 이 기사내용은 약 40년전의 이야기인 것을 감안해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열 손가락이 닳고닳아 몽뚱해진 촌로들이 한 쪽 어깨에 가방을 짊어지고 떼지어 국제공항에 몰려든다. 일본 농부들의 해외여행 풍경이다. 이들의 별명은 노교 (農協)다. 일본에서 해외여행을 가장 많이 즐기며 팔자가 좋은 게 농민들이라는 부러움과 약간의 시샘에서 도시인들이 붙인 이름이다. 도시 사람들은 돈과 시간이 없어 해외여행을 맘대로 즐길 수 없는 형편이다.
우리나 일본이나 다같은 농경민족이지만 공업화와 고도성장으로 인구는 도시로 집중하고 있다. 따라서 전체 인구에 차지하는 농민의 비율은 우리가 약 25퍼센트, 일본이 20퍼센트 남짓밖에 안된다. 그래도 두 나라는 의연 농민을 중시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정부의 주곡구매 (主穀收買), 이중곡가제 (二重穀價制), 농산물의 수출입 통제 등 한. 일 양국은 소수 농민을 보호하는 중노 (重農)정책을 쓰고 있다.
그런데 일본의 농부들은 떼지어 해외여행을 즐기고 우리 농민은 빚에 몰려 허덕인다. 일본의 농부들은 농민기를 제외하고는 번돈을 쓰기가 바쁜데 우리농가는 해마다 쌀값, 양파값, 밤값이 떨어지거나 소값이 급전 직하아하는 바람에 늘 울상을 짓는다. 결론부터 말하면 일본의 노정 (農政)은 정부나 농협의 공동출자, 공동작업으로 생샨한 것을 공동판매, 공동분배로 농민의 힘을 덜어주는 데 비해 우리는 농민 각자가 비싼 농기구나 사료를 사 쓰다가 각기 빚을 안고 넘어진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것이다.
일본의 도시 소비자는 한 근에 1만여 엔 (3~4만원)이나 하는 쇠고기를 사멱어야 하는데도 축산 당국은 막무간내로 일정량 이상의 쇠고기 수입을 허용치않는다. 그나마 높은 관세로 얻어지는 수익은 축산진흥기금으로 전용한다. 우리는 소비자를 위해 마구 수입하다간 농민들이 홧김에 소를 때려잡게 만든다.
한국 사회의 '각자 해결'방식은 도시민들 사이에 더욱 심하게 전개되고 있다. 주택, 교통, 교육의 운영에 정책도 행정도 엉망이니 모두들 각자 해결하는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엄동설한에도 새벽이면 두세 번씩 연탄을 갈아넣어야 하는 한국의 주부들은 중앙난방식 아파트를 찾아 해맨다. 정부는 나라와 일반 대중의 형편에 알맞는 주택견설에 정성을 다하지 않으며, 건축회사들은 앞다투어 호화 아파트를 지어 가난한 사람들의 허영심만 돋우는게 우리의 현실이다. 정택과 행정 부재에 투기업자들만 판을 치니 비싼 프리미엄을 붙여 굴리는 복부인이 탄생하게 마련이다. 각개약진하여 적자 (適者)만 생존하니 부익부, 빈익빈의 틈은 확대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목마른 사람이 먼저 우물을 판다는 속담대로 모든 문제를 개별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일본에서는 공동우물을 파주는 정책 과 행정의 배려가 지극하다. 일본의 정치가와 관료는 패전 직후부터 농촌 재생과 도시 근로자를 위한 주택건설에 주력했다. 그후 5년 만에 만들어진 공영주택 건설법을 근거로 일본 정부는 (1)자력으로 집을 지을 수 없는 사람 (2)병자 (3)근로자 등의 우선순위로 집을 지어주었다. 대체로 방 2~3개의 12~18평짜리가 주류였다.
81년부터 87년 말까지의 제4기 주택건설 5개년 계획으로 세워지고있는 770여만 호의 주택들도 그 규모를 벗어나지 않는다. 최근에는 건설. 통산 양성이 개발연구비 지원을 조건으로, 싸고 좋은 주택건설을 도모한 결과 3개 건축회사가 100평방미터의 견고한 주택을 500만엔으로 구입할 수 있도록 대량건설 중이다. 주택뿐인가. 교통지옥에 시달리다 못한 우리 월급장이들은 빚을 내서라도 자가용을 장만한다.
편하고 쾌적한 대중교통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동경 특파원 시절 이웃에 사는 미쓰비시 (三菱) 은행 중역 고바야시 (小林) 씨는 자가용이 없었다. 2~3분 거리에 전철이 있기 때문이다. 신문사의 주필, 편집국장들, 고급 공무원, 국회의원들도 출퇴근 시간에 지하철이나 전철에서 자주 만난다. 서울과 인구가 비슷한 동경의 지하철은 10개 노선애 200킬로미터, 고속전철망이 2천 킬로미터나 된다.
동경도가 운영하는 120개 버스노선은 거미줄처럼 얽힌 지하철. 전철망의 보조역할을 할 뿐이다. 시간표대로 움직이는 대중교통 수단들은 정해진 시간보다 수십 초만 늦어도 못 타게 마련이다. 따라서 모두들 미리 예정한 시간대로 움직일 수가 있다. 우리는 각개약진 끝에 '적자 (適者)'만이 살아남게 마련이다. 일본의 정치와 행정은 각기 눈을 부릅뜨고 뛰지 않아도 될 만큼 골고루 보살펴준다. 똑같은 대중사회지만 각개약진 사회는 무질서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