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츠 카프카의 ’변신‘
작가 ; 프란츠 카프카(
초판 ; 1915
카프카의 중편 소설이다. 주인공인 남성이 어느날 아침에 눈을 뜨니, 거대한 벌레로 변해있었다. 그를 둘러싼 가족들의 전말을 묘사한 소설이다. 카프카의 작품 중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1912년에 집필하여, 월간지의 1915년 10월호에 게재하고, 같은 해 12월 쿠르트 볼프 사(社)가 출판하였다.
*등장인물을 통하여 읽기를 해보자.
1. 그레고르 잠자
이 소설의 주인공. 여동생과 가족들을 먹여살리기 위해 영업 사원으로 일한다. 어느 날 거대한 벌레로 변한 채 아침을 맞이한다. 변신 이후, 일을 할 수 없게 된다. 이로 말미삼아 그의 아버지는 다시 일을 하게 된다.
(현대를 살고 있는 나 자신으로 생각하지만, 나 개인 생각으로는 그레고르 잠자가 살던 시대와 오늘은 너무 많이 달라졌으므로, 주인공을 오늘을 사는 젊은이로 설정해야 될지 모르겠습니다. 오늘의 젊은이가 자신의 존재를 죽여가면서까지 가족을 위해서 희생해야 한다는 생각을 할까요?)
2. 그레테 잠자(Grete Samsa)
그레고르의 여동생으로, 그레고르가 변신한 뒤로 그를 돌보는 역할을 맡는다.(돈을 못 버는 오빠에게 용돈 정도를 준다는 뜻이 아닐까요?) 처음에는 그레테와 그레고르 사이에 긴밀한 관계가 있었지만 둘의 사이는 곧 멀어진다. 초기에 그레테는 먹이를 주고 방 청소를 해주는 등의 봉사를 하나, 그 부담에 점점 짜증을 내게 되고, 그레고르의 방이 더러워지는 데도 불구하고 봉사를 그만둔다.
그레고르가 성사시키려 했던 꿈은 그레테를 바이올린 연주로 음악 학교에 입학시키려는 것이다. 그레고르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이같은 구상을 발표하기로 계획했다. 그레고르의 변신 이후 그레테는 점원으로 일하는 가족에게 생계비를 보태게 되었다.
(그라테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
3. 잠자 씨(Mr. Samsa)
그레고르의 아버지, 그레고르의 상사에게 큰 빚을 지고 있기 때문에 그레고르로 하여금 내키지 않는 직장에서 일하게 할 수 밖에 없는 처지에 있다. 그레고르가 벌레로 변한 후 잠자부인을 기절시켰을 때, 그는 그레고르에게 사과를 여러개 던져 그레고르로 하여금 큰 상처를 입게 하였다. 그리고, 여기서 그는 쓸모가 없어진 그레고르를 냉혈히 대하는 것으로 보아, 그레고르가 가족들에게 돈을 벌어오는 사람으로 여겨진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레고르가 해충이 되기전에 그는 나이 들고 게으른 노인이었으나 이제는 자신이 노동을 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아부지요. 아부지도 스스로 돈 벌어서 살아보세요, 라는 아들내미의 속 마음이 아닐까 싶지만, 이건 순전히 나의 읽기일 따름입니다.)
4. 잠자 부인(Mrs. Samsa)
잠자 부인은 그레테와 그레고르의 어머니이다. 처음에는 그레고르의 변신에 충격 받지만 그레고르의 방 안에 들어가고 싶어한다. 이는 그레고르 어머니로 하여금 모성애적 충동, 그레고르에 대한 동정과 벌레로 변해버린 그레고르의 모습에 대한 공포감, 극도의 혐오감 사이의 갈등을 일으키게 하여, 그녀 인격의 많은 부분을 드러낸다.
(40이 다 되도록 빈대붙어 사는 아들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마음이 아닐까요?)
벌레에 대해서 (About Bug)
벌레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독자들이 곤충의 형태를 자유롭게 상상하도록, 오직 글로만 표현한 것이 이 작가의 의도라고 할 수 있다.
<변신의 읽기>
*변신의 의미
영업사원인 그레고르가 처한 상황에서 변신한 이유를 찾아볼 수 있다. 그레고르는 벌레가 되어버린 직후 자신이 너무 피곤해서 환각을 경험하는 것이라며 생각에 잠긴다. “아아, 세상에! 나는 어쩌다 이런 고달픈 직업을 택했단 말인가. 허구한 날 여행만 다녀야 하다니. 회사에 앉아 실제의 업무를 보는 일보다 스트레스가 휠씬 더 심하다. 게다가 여행할 때의 이런저런 피곤한 일들이 마음을 더 무겁게 한다. 기차를 제대로 갈아타기 위해 늘 신경 써야 하는 일, 불규칙하고 형편없는 식사, 상대가 바뀌어 결코 오래갈 수 없는 만남과 결코 진실하게 이루어질 수 없는 인간적 교류 등등. 악마여, 제발 이 모든 것들을 다 가져가다오” 그레고르는 일의 압박으로 지쳐있었다. 사회로부터 도피하려는 잠재욕망이 그를 벌레로 변신하게 했을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자신을 벌레라고 생각하고, 환각에 빠진 것이 아닐까 싶다. 자기 자신을 혐오한다는 뜻으로, 자기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살고 있는 자신을 벌레처럼 흉측하게 생각한다는 -----, 이런 식으로 읽기를 하면 -----)
자아정체성 상실도 변신의 근거로 내세울 수 있다. 그레고르는 자신의 삶보다 가족의 안위를 우선시했다. 가족들은 돈을 받아쓰는 것을 당연히 여겼고 소비에 심취했다. 그레고르는 ‘경제력을 지닌 가장’이라는 역할에 묶여 살았던 것이다. 아버지가 숨겨 놓은 돈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 실존하는 존재로서 자아 획득에 실패한 그레고르는 벌레로 전락할 수 밖에 없었던 셈이다.
(오늘의 가족 개념은 부모, 자매 형제가 아닌, 아내, 자녀들이 아닐까. 그들을 먹여 살리고, 공부도 시켜야 하고 ---- 중년의 한국 남자가 흔히 생각하는 것이 ‘나는 돈 버는 기계이가.’라고 하니)
사실 그레고르는 인간이었을 때도 존재에 대한 불안감을 느꼈다. 출장 영업 사원으로 승진했을 때만 해도 일에 성공하면 즉시 현금을 손에 쥘 수 있었다.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돈을 내놓으면 모두들 함박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그 효과는 오래가지 않았다. “식구들이나 그레고르나 다들 익숙해져서 이젠 당연한 일”이 된 탓이다. “식구들은 그레고르가 벌어다 준 돈을 감사하게 받았고 그는 그 돈을 기꺼이 내놓았지만 애틋한 정 같은 것은 이제 더 이상 오가지 않았다.”
자본주의와 가족관계의 변화
자본주의도 <변신>을 읽는 하나의 코드다. <변신>은 세계 1차 대전(1914~1918)이 발발한 지 1년 뒤인 1915년에 출간됐지만 집필을 완성한 시기는 1912년이다. 카프카가 이 소설을 쓸 당시는 식민지를 약탈하는 자본주의가 극에 달하던 시대였고, 시장을 둘러싼 제국주의 열강들이 무력으로 충돌(세계대전)하기 직전이었다. 빈부의 격차가 심화해 노동자-자본가의 계급 갈등도 격화했고, 특히 노동자들은 생계의 위협 속에 살아남기 위한 살인적 노동강도에 시달려야 했다. 노동의 진정한 가치는 사라졌고 인간은 돈의 노예로 전락했다.
지금으로 치면 산재보험공단 공무원 신분이었던 카프카도, 경제적 여건은 다소 나았지만,본질적인 상황은 일반 근로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산재 노동자들의 아픈 사정을 현장에서 체험하고 그들을 옹호하면서 당시의 자본주의적 모순을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다. 그는 퇴근하면 매제의 공장 일도 도왔고, 틈틈이 창작에 매진했다. 사회주의 청년 서클 믈라디히 클럽(젊은이의 클럽이라는 뜻)에 가입해서 활동하기도 했다.
카프카는 시대적 상황과 자신이 처한 현실을 바탕으로 <변신>을 통해 자본에 휘둘리는 가족관계에 대해 고찰한다.
엄밀히 말하면 벌레=돈 못 버는 무능력자가 된 탓이다. 그레고르가 경제활동을 했을 때 가족 구성원은 어느 누구도 돈을 벌려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벌써 오 년 째 아무 일도 하지 않았고, 매사에 자신감이” 없었으며, “천식을 앓고 있는 어머니는 집 안을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몹시 힘들어” 했고, 17살인 여동생은 “무엇보다 바이올린이나 켜는 것이 전부”였다. 벌레로의 변신은 가족이 개무시하는 이유이다.
그레고르의 변신은 가족들의 변신으로 이어졌다. 아버지는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서 있는데다 은행의 사환들이나 입을 것 같은 금색 단추가 달린 뻣뻣한 푸른색 제복(은행 안내원)”을 입게 되고, 어머니는 “양장점에 넘길 고급 내의를 바느질”하게 됐으며, “점원으로 취직한 여동생은 장차 더 나은 일자리를 얻기 위해 저녁마다 속기와 불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경제력을 갖춘 가족들은 돈을 벌지 못하는 그레고르를 돈을 축내는 괴물 같은 존재로 치부한다. 심지어 여동생은 “우리는 이제 벗어나야 해요”라며 노골적으로 그의 존재 자체를 배제시키려 한다.
<변신>에서 찾는 부조리
부조리는 실존주의 용어이다. 실존주의가 사상사에서 제 자리를 잡는 것은 1차대전 이후이고, 문학·예술의 영역으로 확산되는 것은 2차대전 이후 즉 카프카가 죽고도 한참 뒤의 일이다. 하지만 사르트르나 까뮈 등 훗날 실존주의 문학의 주역들은 카프카를 자신들의 계보의 맨 앞쪽에 모시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카프카의 작품 곳곳에 도사린 ‘부조리’와 ‘불안한 인간 존재’라는 문제의식이 바로 실존주의이기 때문이다.
카프카는 존재 이유를 인간의 불안한 내면세계를 갑충으로 변신한 그레고르의 독백 형식으로 표현한다.
소설은 시작부터 부조리한 상황을 언급한다. 그레고르는 갑충으로 변해 인간이 아니지만 자신을 인간으로 인식한다. 그러나 벌레로서의 삶을 거부하는 것이 파멸에 이르게 한다는 것을 소설 곳곳에서 말한다.
첫댓글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 을 바르게 알게해 주셔서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