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이원형 집사님을 추모하며
이 원형 집사님
참으로 귀에 익은 이름이다
오늘 성도들과 함께
한성도 가정의 친모께서 돌아가셔서
문상을 가던중
영락교회의 비보를 들었다.
누가 죽었다는 말도 있고
건물이 무너졌다는 말도있고
그래서 옆에 있던 남편에게
그 건물 지을 때 우리도 건축헌금했는데
하고
그랬나보다
누가 그렇게 고귀한 죽음을 죽었을까
생각했지만
우리도 문상을 가던 중이 었고
또 다른 이야기가 주제가 되어
영락교회의 이야기는 그냥 그렇게 지나쳤다.
문상을 다녀온 후
나는 집으로 오고
남편은 교회로 향했는데
저녁 때
집에 돌아온 남편이
설명할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당신, 영락교회 있을 때
이원형 집사님 알아?
그럼 알죠.
이원형 집사님을 왜 몰라요?
학교 선생님이었지? 아마
그 분이 돌아가셨어.
어제 영락교회에서
학생들을 구하고 돌아가신 분이
바로 이원형 집사님이었어.
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나의 기억은 저만치
14년 전으로 달려갔다.
남편이 영락교회 유년부와 도봉구 전임을 사역하던 시절로
80여명이나 되는 많은 교사들 중에서
유난히 기억이 나는 교사가 몇있는데
이원형 집사님이 그 중 한 분이다.
남편이 유년부 사역하던 시절
나는 매주 마다 설교 시각자료를 만들어 주었다.
남편이 교사들에게 보냈던 생일카드도
모두 내 손으로 그린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다른 때 보다
교사들하고 좀 더 가까울 수 있었다.
그래서 이 원형 집사님도 알게 되었다.
남편이 유년부를 사역하는 동안
매 주 아침마다
남편의 아침을 챙겨주신던 분
그 분이 바로 이원형 집사님이시다.
남편은 이야기한다
이 집사님 생각하면
찹살모찌가 생각이 난댄다
매 주 아침마다 영락교회 지하 매점에서
계란과 모찌 커피 그리고 빵을 먹으면서
같이 아침을 때우셨댄다
이 집사님은 우리집에도
몇 번 오셨었었다.
작은 애 낳고 이사했을 때
그리고 전임전도사 사택으로 이사했을 때
교회를 옮긴 후
그 후로도
물론 목사 안수식에도 축의금을 보내오셨다.
남편의 성격상
지난 교회 찾아가고
연락하고 그런 성격이 못되고
각자의 삶을 열심히 살아나가는 것이
서로를 축복해주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그 뒤로는 만날 기회가 없었다.
숱한 목회자가 지나가는 영락교회
그냥 그렇게 지나칠 수 있었을 텐데도
먼 아래 동생같은 어린 전도사에게
매 주 아침마다 사랑을 베풀어 주셨던
이 원형집사님.
남편이 유년부를 마치고
교구를 맡게 되었을 때
당신이 속해있는 교구로 오게 되셨다고
더욱 기뻐해 주시던 분
어쩌다 교회 마당에서 마주치면
어렸던 내 아들과 딸을 꼭 안아주시던 분
그분이 순교를 하셨다.
하나님께서 이 집사님을 무척이나 사랑하셨나보다
순교를 허락하셨으니 말이다
또한 한국 교회를 사랑하시나보다.
그 분만이 맞이 할 수 있었을
그 장렬한 죽음을 우리에게 보여주심으로
또 한번 그리스도의 사랑을
느끼게 하셨으니...
거의 잊고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울컥 그 분이 그리워진다.
인생의 한 장을 사랑이란 이름으로
따뜻한 정으로 채워주셨던
그 집사님의 영정에
감사란 마음을 드려본다.
이 담에 천국에서 다시 만날날을 소망하며
주님 남아있는 유족들을 위로하소서
하늘 소망으로 채우소서
한나
![](http://www.youngnak.net/bethlehem/notice/0203/leewh-c.jpg)
영락교회 이원형씨 하늘나라로 (국민일보 3.11)
주일 아침 서울 영락교회에서 일어난 천장 붕괴사고
당시 온몸을 던진 한 주일학교 교사의 희생으로 많은
교인이 사고를 피했다.
그는 ‘이웃을 위한 삶’이 무엇인지를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새기고 떠났다.
10일 오전 10시15분쯤 서울 저동 영락교회 베다니홀
지하 1층 천장의 석고보드가 무너져내려 이곳에서
예배드리던 이원형 주일학교 교사(58·서라벌고 교사)가
숨지고 교인과 고교생 등 19명이 다쳤다.
사고 당시 이교사는 베다니홀 지하 1층에서
다른 주일학교 교사,고등부학생 200여명과
함께 성경공부를 마친 뒤 예배드리던 중이었고
바로 아래 같은 공간인 지하 2층에서도
교인 500여명이 예배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대형 인명사고로 이어질 위기상황이었다.
한 참석자는 “
교인 대부분이 기도하기 위해 고개를 숙이고
있는 순간 지하 1층 천장에서 갑자기 ‘뿌지직’
소리와 함께 마감재인 석고보드가 엄청난 먼지를
뿌리면서 내려앉았다”고
사고당시를 전했다.
이 소리에 놀란 이교사는 그 순간
“얘들아,모두 엎드려”라고 외쳤고 학생들은 이 교사의
다급한 외침에 모두 의자 밑으로 몸을 피했다.
하지만 순식간에 머리 위로 떨어져내린
가로 3m,세로 20m의 대형 석고보드는
이교사를 덮친 후 경사를 따라 아래층으로
미끄러져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미 피범벅이 된 이교사는 혼신의 힘을 다해
옆에 있던 김영채 장로(60)의 도움을
받으면서 석고보드가 아래층으로 미끄러져
내려가지 않도록 가슴으로 막으며 버텼다.
아래층에서 사고순간을 목격한 이춘우 집사(46)는
“석고보드가 너무 무거워 이교사가
몸을 기대고 있던 철재 난간이 휘어질 정도였다”면서
“하지만 그는 가슴과 손으로
석고보드를 막고서 한참을 버텼다”
고 증언했다.
다행히 석고보드는 난간에 걸쳐져 잠시 멈춰섰고
이때 지하 2층 교인들이 모두 피해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
그러나 이교사는 1t 가까운 석고보드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떠밀리면서 5m 높이의
아래층으로 굴러떨어졌다.
이교사는 곧바로 인근 서울 백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뇌출혈과 갈비뼈 골절 등 부상이
너무 심해 6시간만에 숨졌다.
이교사는 35년간 서라벌고에서 지리를 가르쳐왔으며
영락교회에서 19년 동안
주일학교 교사를 맡아 학생전도에 힘써왔다.
더구나 다음달 부모의 은혼식에다
5월에 장남의 결혼식을 앞두고 있던 터라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했다.
찰과상을 입은 김준하군(17·D고2)은
“집사님이 석고보드를 막지 않았으면 아래층을
덮쳐 사고가 더 컸을 것”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성순 집사(47)는
“2년전 여름수련회때 여학생이 밤늦게 오는 바람에
길을 못찾자 이선생님이 혼자 찾아 나서서 데려올
정도로 학생들에게 애정이 각별했다“며
“이교사의 희생이 바로 기독교의 정신”이라고 말했다. |
천국에서 만나보자 293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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