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부터 신문에 나오던 선박왕에 관한 이야기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전에는 그의 자산규모가 한국에서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라는 말도 들렸다. 과연 그의 주장처럼 비거주자로 인정 받아 탈세 혐의에 대해 무죄가 성립될지 자못 궁금해진다.
아래는 조선일보 김영철 기자의 글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krs.co.kr%2Fkor%2Fhtml%2Fwebzine%2Fsub%2Fphoto%2F30NO8sido2.jpg)
<2007년 3월20일, 권혁회장(왼쪽)에게 감사패를 전달하는 한국선급 오공균 회장. 한국선급은 당시 "최대 고객선사인 일본의 시도해운에서 발주한 선박의 명명식에 참석---시도해운과 한국선급의 협력관계를 다짐 했다"고 홈피에 공지했다.한국선급은 해상안전 및 재산보호, 해양 및 해상기술 진흥을 목적으로 하는 비영리법인.>
'세금 4100억원 추징 당하는 한국의 선박왕'?
권혁(61)회장.
전혀 듣도 보도 못하던 인물이 갑자기 '한국의 선박왕'으로 등장했다.
평범한 샐러리맨에서 선박투자로 대박을 터트려 해운왕국을 구축했다고 한다.
1991년 단돈 1억원으로 시작해, 1993년 일본 도쿄에 해운회사 시도(時圖)상선을 설립하고, 2005년엔 법인을 홍콩으로 옮겼다. 자본금은 1억원이지만, 자산은 현재 5조원에 달한다고.
샐러리맨으로 조단위 재산을 일군 사람은, 꽤 오래전 차용규라는 삼성물산의 샐러리맨이 카자흐스탄의 구리광산을 런던 주식시장에 상장시키면서 조대 자산가로 올라섰다고 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이후 처음 들어보는 샐러리맨 신화다. 한국인 최고 부자, 차용규
벤처기업을 성공시켜 1조대 부자로 올라선 엔씨소프트의 김택진 대표 같은 경우는 이해가 간다. 왜? 벤처니까!
그런데 샐러리맨으로 출발해 일반인에게는 생소한 선박물류회사를 차려, 조단위의 자산을 축적했다니 놀랍다.
국세청은 차장이 나서, "국내 비(非)거주자, 외국 법인으로 위장한 사례는 대한민국의 과세권을 원천적으로 벗어나는 것은 물론 세계 어느 국가에도 세금을 납부하지 않으려는 대담한 탈세 시도”라며, "조세정의에 대한 도전이자 공정한 경쟁질서를 훼손하는 중대하고 심각한 사안”이라고 강조하며, 검찰에 고발조치도 취했다.
이에대해 시도측은 "2006년 3월까지는 일본에 거주, 일본 국세청에서 과세했고, 이후엔 홍콩에 거주 홍콩 당국에 세금을 납부해왔다"며, "한국에서 한 푼도 해외로 가져가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아울러 “국세청이 조세 포탈로 검찰에 고발하겠다고 해서 그렇게 하라고 했다. 법정에서 시시비비를 가리겠다”고 했다.
국세청이 국세청 역사에 남을 '희대의 세금도둑'을 잡아낸 것인지, 아니면 국세청의 과잉의욕이 빚은 '헛발질'인지는 검찰과 법원을 거치면서 밝혀질 것이다.
결과야 어쨌건, 샐러리맨으로 출발해 조(兆)단위 부를 일궈낸 인물이 근 20여년 가까이 드러나지 않고 있었다니 놀랍다.
그런데 권회장은 사실 지난 2009년 국내에 알려진 인물이다.
대구 경북고와 연세대 상대를 나온 권회장은 동문 일부 인사들에게 정확한 규모는 모르지만 어쨌든 '큰 돈 번 부자'로 알려져 있다. 또 현대 자동차의 수송과장 등을 지냈고, 현대차가 물류기업 글로비스를 만들려고 할 때 지분참여를 타진한 바 있어, 권회장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더러 있었다.
그러나 국내에 권회장의 존재가 제대로 알려진 것은 2009년 9월, 한 권의 책을 통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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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 있는 선박 중개회사 카스마리타임(CASS Maritime) 김상록 대표(49)가 지은 '현명한 부자는 선박에 투자한다' 였다. 카스마리타임은 신조 선박, 중고 선박의 매매중개, 용선중개, 선박금융 업무 등을 취급하는 회사로, 김 대표는 해양대를 나와, 런던 카스비즈니스 스쿨에서 선박금융을 전공한 뒤 세계적인 선박브로킹 네트워크를 구축, 한국인 최초로 런던시장에서 유럽 브로커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선박브로커가 된 인물.
2001년 한 때 3000원짜리 대우조선해양 주식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 10월 6만5000원까지 뛰었다. 금융위기로 다시 1만원이하로 떨어지긴 했지만, 지금도 4만원가까이 간다.
선박 투자는 타이밍을 잘 맞추면 조선주(株)처럼 대박나는 상품으로 인식되면서 선박펀드 등에 일반인도 관심을 갖던 때 나온, 우리나라 최초의 선박투자 지침서였다. 때문에 경제지를 비롯한 많은 매체가 이 책을 소개했다.
김대표는 '현명한 부자는 선박에 투자한다'는 책 본문 첫 페이지를 권혁 회장 스토리로 시작하고 있다.
5장으로 구성된 제1장 '선박투자로 성공한 사람들'에서 첫 사례로 '한국의 숨은 선박왕 권혁'을 소개한 것이다.
우리가 익히 아는 오나시스나, '해운업계의 큰 별' 존 프레드릭센도 뒤쪽으로 밀렸다.
지금까지 전혀 알려진 인물이 아니지만, 저자는 "선박투자로 당신도 권혁처럼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을 것이다.
당시 교보문고의 서평 일부를 옮기면 다음과 같다.
"‘극동의 선박왕’이라 불리는 권혁은 1991년 단돈 1억 원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이후 17년이 흐른 2008년, 권혁은 1,000억 원이 훌쩍 넘는 선박 290여 척을 거느린 세계적 선박왕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지금도 권혁이 이끄는 회사의 자본금은 여전히 1억 원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어떻게 그 짧은 기간에 그토록 빠른 성장을 할 수 있었을까?"
본문의 일부를 보자.
"시도상선 권혁 회장이 1991년 일본 도쿄에 설립한 해운회사로, 처음에는 자동차운반선 전문회사로 출발했다. 이후 벌크선·탱커 등으로 사세를 확장해 2009년 4월 현재 납입자본금 1,000만 엔(약 1억 원)에 신조 발주선 포함 280척의 선대를 보유하고 있다. 개인 소유 회사로는 세계 최대의 선복량이다.
그런 세계적 선박왕이 한국 사람이라는 데 일반인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할 것이다. 더욱이 권혁 회장이 회사 창립 당시 갖고 있던 자본금은 단 1억 원이었다. 그것이 불과 십수 년 만에 세계적 규모의 해운회사로 탈바꿈한 것이다."
김상록 사장은 당시 자기 회사의 최대 고객의 하나인 권혁 시도상선 회장의 선박투자를 통한 성공을 목격하고, 이를 한국독자들에게 소개한 것이다.
이후 해운 관계자들이나 선박금융 관계자들 사이에선 업계의 '신화적 인물'로 권혁이란 이름이 심심치 않게 회자됐다.
그래서 2010년 4월 29일 부산에서 열린 '2010 세계해양포럼 공동의장 초청 강연회'에서도 권회장이 언급됐다.
연사로 나선 홍승용 녹색성장해양포럼회장 및 2010 세계해양포럼 공동의장이 거론한 것.
그는 "극동의 선박왕 권혁사장을 소개합니다. 일본의 (주)'시도(時圖)’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지난 91년 1억원으로 사업을 시작했는데 2009년 290척 대선단의 오너가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이 3천척 쯤 된다는데 어마어마하지요. 지난해엔 10척이나 한국에 선박 발주를 내기도 했어요. 아마 이곳 조선사에도 오더가 왔을 거예요. 우리 디엔이이가 선박투자 등에도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라고 말했다.
권 회장이 현장에 있어 소개한 게 아니라, 우리나라가 해양강국으로 나가기 위해선 "국적 해운선대를 글로벌 빅5로 키우고, 부산에 '글로벌 선박거래소'를 설립하라"는 주문을 하기위한 성공사례로 거론한 것이다.
'극동의 선박왕' '자본금 1억으로 선박왕에 오르다' 등이 권혁 회장에게 붙은 수식어였다. 그러나 사실, 해운 관계자나 해운 관련 전문 투자가가들 사이에나 알려진 것일 뿐이다.
일반인들에게 권혁회장은 여전히 베일에 가린 인물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국세청의 추징과 고발로 그 모습을 일부 드러냈다.
국세청의 추징과 검찰 고발에 대해 시도관계자는, “한국에서 국적(國籍)선사로 등록해 본격적인 영업을 하려고 준비하던 차에 해외 탈세를 했다고 모욕을 주는 것은 억울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래서 어째 위에 언급한 강연회에서 홍 의장이 "국적해운선대를 글로벌 빅5로 키우라"라는 말이 걸린다.
전직 국세청장에게 대기업에서 돈 걷어 건네주는 수준의 우리 국세청이, 글로벌 선박회사의 운영 실태를 제대로 알고 '일'을 벌인 것일까 조금은 걱정되기 때문이다. 진짜 '자문료'라고 하더라도, 현직 국세청 직원들이 기업으로부터 돈을 받아 건네는 일은 몰상식이다. 그런데 그런일이 벌어지는 현실을 보면, 이번 일이 어째 걱정되지 않을까? 그래서 제발 나의 '기우'로 끝나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