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풍경 1 : 1981년 10월. 우리나라 가을 산이 아름답지 않은 곳이 어디 있으랴 마는...그해 가을 주왕산 병풍바위는 유난히 원색의 단풍에 쌓여있고, 3,2,1폭포를 지나 학소대를 휘돌아 흐르는 맑은 계곡 물 위로 29살의 노총각(당시로는)과 23살의 꽃 처녀의 얼굴이, 뒤로 구름과 자연을 배경으로 비추어질 때 요동치는 가슴이 마치 신선의 마을에 와 있는 것 같은 환상과 함께 세상이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았다.
때 묻지 않은 선량한 양심(?)을 담보로 한 긴 설득의 작업을 거쳐 지금의 아내(철수친구)와 그렇게 주왕산을 처음가게 되었다. 당시는 교통이 불편하여 하루 만에 돌아오기가 힘들의 어쩔 수 없이 민박집에서 뜬 눈으로 1박을 하였는데 이날이 우리가 만나 첫 동침(?)이 되었다. 이후 많은 산을 등산 하였지만, 주왕산은 아내의 추억과 함께 언제나 나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곳이다.
다음해 1982.4월 우리는 24살의 신부와 30살의 신랑으로 부부가 되는 혼례를 올렸다.
# 풍경2 : 1982. 10월. 당시 근무하던 대구대학교의 총학생회 학생 간부들과 지도교수 및 보직 교수님들과 함께 1박 2일 간부수련회 장소를 논의하던 중 주왕산의 추억이 생각나 나의 강력한 주장으로 주왕산으로 학생 간부 수련회를 갔다. 언제나 그렇듯 자연의 진한 감동은 변함이 없었다. 지난해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나에게는 특히나...우리 일행이 1, 2폭포를 지나 3폭포에 도착하니 폭포를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는 20대 남녀가 있었는데 처녀가 카메라를 들고 폭포를 배경으로 하여 총각의 사진을 찍기 위하여 구도를 맞추고 있었다. 우리도 기념 사진을 촬영 할 요량으로 차례를 기다리며 청춘남녀의 모습을 보고 있는데, 총각이 발을 헛디뎌 순간적으로 물속에 빠졌다. 그리고 몇 분이 지나도 물속에서 나오지 않았다. 사고를 직감하고 학생들이 인간 띠를 형성하여 구조에 나섰지만 당시에는 수심이 깊어 구조가 불가능하였다.
인간이 이렇게 쉽게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 확인한 순간이었다. 우리 일행은 민박촌 주변에 있는 넓고 깨끗한 모텔에서 숙식을 하였지만, 그날 술에 취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늦은 밤 대구에서 도착하여 심장마비로 죽은 젊은 아들의 시신을 인도하여 떠나는 홀어머니(다음 날 소문에 망자의 아버지는 지난해에 병사하였다고 전해 들었음)의 애절한 통곡소리가 사하촌 (寺下村) 가을 밤에 긴 여운으로 남아 그날 밤 아픈 가슴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 풍경 3 : 1983. 10월 신임 총학생회 회장으로 당선된 학생의 고향이 청송군 진보면이라고 하였다. 간부수련회를 고향이 있는 주왕산을 가자고 주장하여 교수 일행은 지난해의 좋지 못한 추억으로 모두 반대하였으나, 학생회장의 부친이 달기 약수 삼계탕을 대접하겠다고 간곡히 초청하여 이번에도 주왕산으로 수련회를 갔다. 당시에도 달기 약수터 주변에는 약수 물을 뜨기 위하여 외지에서 온 할머니들이 줄을 서고 있었는데 그날 낮부터 술에 취한 육군 일병 한명이 줄을 서지 않고 할머니들을 밀치며 새치기를 하는 일이 일어났다. 우리 학생 중에 제대한지 얼마 되지 않은 복학생이 술 취한 일병에게 훈계를 하며 얼차려를 시킨 후 돌려보냈다. 그리고 20여분 후 군용트럭에서 조금 전 술 취한 일병을 동행하고 완전 무장을 한 군인 20여명이 하차하여 소대장의 지시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젊은 학생들을 개머리판으로 찍고 워커발로 차고...젊은 학생들이 대항해 보았지만 중과부적이었다. 나도 얼굴이 동안(?)인 탓에 학생으로 오인 받아 똑 같은 수모를 당했다.
광주사태 이후 전두환 정권 초기에 연일 계속되는 대학생들의 데모 진압으로 지친 젊은 군인들이 대학생들에 대한 반감이 극에 달하여 생긴 충돌이었다.
83년 말 서울 본가의 가정 사정으로 4년 동안의 대구 생활을 마감하고 84년부터 서울에서 고교교사 생활이 시작되었다.
아들이 태어났다...또 아들이 태어났다...유치원을 입학하고, 초등학교를 졸업하고....중학교를 입학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대학을 입학하고, 군 입대를 하고, 제대하고.....그렇게 주왕산은 나의 기억속에 희미해져갔다.
# 풍경 4 : 2010.7.10일 주초부터 장맛비가 내릴 것이라는 기상청의 일기예고 때문에 다소 걱정은 되었으나, 의외로 날씨가 좋았다. 아내는 29년 만에 가는 주왕산 산행에 기대감으로 몇 일전부터 잠도 설치는 듯하였다.
옛 시인의 표현처럼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없네...” 30여 년 만에 다시 찾은 주왕산의 풍광은 옛 그대로 인데... 20대의 청춘은 어디 가고 머리에 서리 앉은 50대의 중년이 되어 아내와 같이 다시 찾아오니 감회가 새롭다. 그때 그 추억의 민박집은 다른 곳으로 옮겨 갔는지, 찾기가 어렵고, 때까치 대장님께서 학소대를 배경으로 자하교에서 기념촬영을 해주었다. 지금도 간직하고 있는 앨범 속 사진에는, 29년 전 그 자리에 23세의 꽃띠처녀의 수줍은 미소가 남아있다.
옛 추억을 회상하다가 뒤쳐지어 일행를 놓쳐 A코스(후리매기 --> 가메봉)를 포기하고 B코스(후리매기 --> 주왕산 정상)로 접어 들어 13:30분경 주왕산 정상에 도착하였다. 미소가 아름다운 폭탄님, 귀가 잘 들리지 않지만 본인은 전혀 불편함이 없으시다는 기원원장님(근데 휴대전화 통화 하실 때는 잘 알아 들으 시는 것 같은데...), 스마일(김영자A)님과 일행 2명 등 7명이 조졸한 정상식(?)을 하였다.
주왕산은 설악산, 월출산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암산(巖山)이라고 하는데, 정상에서 바라보는 장군봉, 기암, 연화봉, 병풍바위, 급수대의 풍광이 중국 장가계에 못지 않는 장엄한 모습이다.
경험적으로, 여행은 누구와 동행하느냐에 따라 느끼는 감정이 매우 다르다. 우리 영우회의 좋은 분들을 만나서 좋은 곳으로 등산하고 오니 3일이 지난 지금도 좋은 감정의 여운이 가슴에 남아있어 이따금 혼자 미소를 짓는다.
이번에 주왕산을 추천해 주신 회원님께 감사드리고, 거액의 사비를 들여 귀한 달기약수에 옻닭과 삼계탕을 맛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신 회장님께 깊이 감사드리며, 진~한 산수유(?) 사업도 번창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영우산악회도 영원하기를....
첫댓글 선사님옛추억을생각하시면서 후기열심히올려주신데감사드리고 두본이
영우산악회 꼭참석해주신데 다시한번고맙다는말씀올립니다
두분이 옛 추억을 상기하며 오랫만에 걸어 본 산행이 정말 좋았을 것 같습니다. 긴 작문법에 감탄하며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두분께서도 가끔 추억의 장소를 여행을 해 보세요. 세월의 무상함도 느끼지만, 젊었을 때 그 장소에서 나누었던 대화와 감정들이 새롭답니다....
3막 4장 스토리 모두가 가슴에 와 닿는군요..
너무나 큰 추억을 간직한 산이군요
기념일때 시간 날때 자주 다녀 오세요
부럽군요
산을 좋아했던 분들이라,산에 대한 추억이...멋저부러~~~ (저희는 주님을 좋아해서인지,주막에 얽힌 추억들이 많지용~~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