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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브로콜리 같은 여름 나무들>
이즈음의 나무는 어떤 계절보다 아름답다.
꽃이나 단풍보다 더 아름답다.
그렇게 느껴지는 것은
신록에서 묻어나는 젊음과 패기, 그것들이 주는 희망 덕분이리라.
연초록으로 몽글몽글 자라나는 나무들은
멀리서 보면 흡사 대형 브로콜리 같다.
저 브로콜리는 누구를 위한 것일까.
자연을 만들어낸 신도 어쩌면 이즈음엔 푸르른 비타민을 자연에서 얻고 싶었던 게지.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나무를 보면서도 군침이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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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정책적으로 가꾼 삼나무 숲>
일본을 여행하다 보면 자주 보는 풍경이 쭉쭉 뻗은 삼나무 숲이다.
2차대전 후 일본은 삼나무를 곳곳에 심었다.
화산 피해에 대비하고 가구를 자급자족하자는 의미였다.
그랬던 것이 오늘날 군락을 이루게 된 삼나무 숲은 골칫덩이가 되고 있다.
중국에서 제조한 가구를 수입하는 것이
일본의 삼나무를 잘라서 만드는 것보다 가격면에서 현저히 싸기 때문이다.
중국산 가구는 가격에 비해 품질도 그다지 처지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쓰임새라곤 숲의 용도뿐인 채 넘쳐나는 삼나무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자연을 이용한 정책도 주먹구구는 풀기 힘든 숙제가 된다는 교훈을 남기는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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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무덤-고메즈카(米塚)>
아소산을 오르다 보면 왼편으로 보이는 작은 분화구다.
화산 폭발 때 용암이 흘러내린 선이 멀리서도 뚜렷이 보인다.
용암이 흘렀던 길은 지금도 열기가 남아 있어서
겨울에 눈이 내려도 쌓이지 않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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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황연기가 오르는 아소산>
"유황연기의 방향이 오른쪽으로 기울었네요."
가이드의 목소리에 낭패감이 담겨 있었다.
바람의 방향에 따라 아소산은 오르지 못하는 날이 많다는 것이다.
우리가 갔던 날이 그랬다.
유황연기의 독성은 건강한 사람도 쓰러지게 할 정도다.
그 때문에 주차장에 닿았지만 우리는 화구를 볼 수가 없었다.
화구로 오르는 길은 차단되어 있었다. 발길을 돌려야 했다.
그렇지만 관광객의 안전을 최선으로 여기는 일본 정부의 방침을 배려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아쉬웠다.
버스로 4시간 20여분을 달렸던 목적이 무엇이었던가.
무모한 모험을 해서는 안 되지만 활화산의 분화구를 볼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유황가스에 섞여 날아가버린 것은 내내 아쉬움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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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소산 아래 쪽에 자리한 저수지>
아소산을 오르는 오른 쪽에 자리한 저수지는 어떤 가뭄에도 마르는 일이 없다고 한다.
주변은 온통 푸른 풀밭이었다.
꽤 넓게 자리한 저수지가 충분한 물을 공급하기 때문이리라.
아소산을 오르지 못한 아쉬움은 주변의 풍경들을 사진에 담는 것으로 달래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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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오는 길에 찍은 쌀무덤-고메즈카(米塚)>
쌀무덤에는 설화가 전해진다.
움푹한 분화구는 가난한 일본 백성들을 위해 신이 쌀을 내려준 곳이다.
백성들은 저마다 쌀무덤으로 올라가 쌀을 퍼왔는데
들고 내려오기가 버거워서 쌀포대를 깔고 미끄럼을 타며 내려왔다.
용암이 흘러내린 길은 쌀을 가지고 미끄럼을 타고 내려온 길이라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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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오는 길에 찍은 쌀무덤-고메즈카(米塚)>
밥사발을 엎어놓은 듯한 쌀무덤의 형상이 경주의 왕릉을 연상케 했다.
일본인들이 작은 분화구가 있는 언덕을
쌀무덤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들이 스스로 하늘의 선택을 받은 민족이라는 우월감의 표시인지도 모르겠다.
누군가가 자신을 돕고 있다는 생각은 매우 긍정적인 신앙이다.
아무리 굶주림의 재앙이 닥쳐도 신이 도와준다는 생각.
그것만으로도 그들은 어떤 고난도 헤쳐나갈 수 있는 힘을 얻을 것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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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차안에서 찍은 삼나무 숲>
전망대에 내려서 단체사진을 찍었다.
그뿐이었다.
아소산의 날씨는 10분 간격으로도 바뀌어서 갑자기 출입통제가 해제될 수도 있다지만 우리는 그럴 수가 없었다.
산을 오르는 로프웨이가 4시 40분까지만 운행되기 때문이다.
이미 늦어버린 시각에 대한 아쉬움으로 산 정상을 올려다 보았지만
유황연기는 여전히 약간 오른쪽으로 기운 채 피어오르고 있었다.
어차피 기후 때문에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시간은 되는데 못보는 것보다는 위안이 되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내려오는 길.
일본은 곤욕을 치르고 있다는 삼나무 숲이 보는 이들에게는 건강한 아름다움을 선사하기에 충분했다.
짙푸른 옷을 입은 건강한 병사들이
길 양쪽에서 우리를 호위하는 것 같아 마음 든든한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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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먹은 식당>
저녁은 기린 맥주에서 운영하는 식당에서 해결했다.
예전에는 이곳이 카미카제( (神風)특공대의 군사훈련장이었다고 한다.
태평양 전쟁 종전을 앞두고 편성된 카미카제 특공대는 아주 유명한 자살 특공대였다.
당시 일본 군대의 무기가 부족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다만 일본은 항공기 조종력이 뛰어난 조종사를 많이 잃은 상태였다.
카미카제 특공대는 이를 보완하기 위한 일본의 최후 전략부대였다.
실력이 다소 떨어지는 조종사들에게 담력훈련을 시켜서
기름과 폭탄을 가득 채운 전투기를 몰고 연합군의 항공모함에 돌진하는 특공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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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내부에서 팔고 있는 여러 가지 물건들>
카미카제 특공대가 자살 테러 훈련을 받던 곳에
지금은 음식점과 맥주공장이 자리하다니 묘한 느낌이었다.
전쟁 도중 죽어간 젊은이들은 어떤 마음으로 혹독한 훈련을 받았을까,
오늘날 먹고 마시고 즐기는 곳이 될 걸 그들은 알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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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저녁>
저녁은 불고기였다.
각각의 접시마다 숙주, 피망, 가지, 방울토마토, 양파, 버섯을 곁들인 쇠고기였다.
우리는 당황했다.
6명이 한 테이블에 앉았는데 고작 한 접시라니,
아무리 물가가 비싼 일본이라고 해도 요기도 되지 않을 분량에 은근히 부아가 치밀었다.
부아가 난 마음을 드러낼 수는 없었다.
"세상에...이걸 가지고 6명이 어떻게 먹으라는 거야?"
"정말 너무하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해서 저마다 불평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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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먹고 나니 주위가 깜깜한데 식당 이름만 불빛을 받아 선명하다>
불평들을 알아들었을 리는 없었을 텐데 이어서 다섯 접시가 더 나왔다.
한 접시가 1인분이었던 것이다.
성질 급한 한국인의 특성을 드러낸 것만 같아 투덜거렸던 것이 민망했다.
양념이 되지 않은 고기를 각종 야채들과 함께 구운 것을 소스에 찍어서
밥과 함께 먹는 식이었다.
우리의 입맛에는 좀 느끼했다. 뭔가 칼칼하거나 매콤한 것이 그리웠다.
일본어가 유창한 동행 박명옥씨가 김치를 좀 달라고 했다.
식당 이름과 걸맞은 기린(Kirin) 맥주도 시켰다. 흑맥주였다. 맛이 부드러우면서도 쌉싸래했다.
맥주는 결코 좋아하지 않는 내 입맛도 만족시킬 만한 맛이었다.
"반찬도 좀 주세요."
밥을 먹기 위해 반찬을 시키려고 하자 들고 온 것은 장아찌였다. 한 접시에 100엔(円)이라고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멋모르고 시켰던 김치까지도 100엔(円)이었다.
일본에서는 기본으로 시킨 것 외에 추가되는 것은 뭐든지 따로 돈을 내야 했다.
푸짐해서 몇 번이라도 리필이 가능한 우리네 식당문화를 감안하면 여간 야박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니었다. 이런 우리의 문화가 얼마나 많은 음식물을 쓰레기로 버리고 있는가.
생각하자니 일본의 식당 문화는 꽤나 합리적이고 경제적이었다.
음식물 쓰레기가 저절로 줄어들고, 근검 절약하는 생활이 몸에 밸 테니까 말이다.
우리도 차츰 배워나가야 할 문화라는 생각을 하니
다소 느끼한 저녁 식사였지만 흡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