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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스님들이 가장 닮고 싶어하는 스님은 누굴까? 정답은 원효 스님.
조계종 불학연구소가 ‘오직 스님들만을 대상으로 한’ 흥미로운 조사를 했다. 조계종 불학연구소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스님들이 가장 닮고 싶어하는 스님 1위는 원효 스님이었고, 2위가 성철 스님, 3위가 은사스님이었다. 그 뒤를 이어 달라이라마가 4위를 차지했으며, 5위 경허, 6위 법정, 7위 청화, 8위 한암, 9위 전강, 10위 일타 스님이었다. 10위 안에 달라이라마와 법정스님을 빼고는 생존자가 전혀 없는 것이 특징이다. 그 뒤를 이어 경봉, 수월, 숭산, 종범, 청하, 법륜, 지눌, 서옹, 송담, 틱낫한, 효봉 스님이 꼽혔다. 순위만 봐도 스님과 재가자 모두를 대상으로 한 조사결과와는 미묘한 차이가 엿보인다. 중앙승가대 총장을 지낸 종범 스님과 정토회를 이끌며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법륜 스님,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 최고의 선사 송담 스님이 꼽혔지만, 선사보다 학승과 활동가 스님이 앞선 결과는 의미심장하다. 이번 설문은 나타난 결과로 볼 때 스님들의 존경하는 기준에 큰 변화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 가운데 선사들의 급격한 퇴조와 학승 및 활동가 스님에 대한 평가가 두드러진 것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특히 종범 스님이 국내 생존하는 스님들 가운데 가장 존경하는 스님으로 급부상한 것은 많은 점을 시사해준다. 전통적으로 선사들이 존경받는 스님들을 독식해왔다는 점에서 이번에 조계종의 대표적인 학승 종범 스님이 현재 교계 안에서 활동하는 스님들중 1위로 꼽힌 것은 주목할 만한 변화가 아닐 수 없다. 또한 조계종 승적을 갖고 있지 않은 법륜 스님이 조계종 스님들의 존경하는 스님에, 그것도 생존자 중 두 번째로 선택된 것도 눈길을 끈다. 현실적으로 가장 왕성하게, 그것도 사회적 영향력과 존경을 받으면서 활동하는 모습이 조계종 소속이냐 아니냐, 승적이 있느냐 없느냐는 지엽적 문제보다 먼저 고려될 기준이라는 점을 드러낸 것이다. 법정 스님이 6위에 꼽힌 것은 예상된 결과이긴 하지만, 스님의 활동분야가 교단안의 보편적 대중생활과는 유리돼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반감되는 아쉬움이 있다. 학승으로 살며 오직 학문과 후학양성에 전념해온 종범 스님의 급부상이 더욱 눈길을 끄는 이유다. 생존하는 선사 중에서는 송담 스님만이 가까스로 이름을 올렸다는 것은 조계종 스님들 사이에서 선사들의 위상이 예전 같지 않음을 보여준 상징적인 결과로 풀이할 수 있다. 이는 최근 강하게 제기되고 있는 간화선 위기론과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또한 최근 한국을 대표하는 선사들로 부상하고 있는 60대 선사들의 위상이 아직은 전체 스님들의 존경을 받기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조계종의 법통을 상징하는 역대 종정들 가운데, 성철 스님과 서옹 스님 두 분만이 존경하는 스님에 오른 것 또한 많은 것을 생각해 하는 부분이다. 이는 종정추대가 법을 최우선으로 기준했다기보다는 정치적 부분이 작용했음을 반증하는 대목으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원효, 성철 스님에 이어 은사(불가에서 부모에 해당하는 스승)가 3위를 차지한 것은 존경할만한 스님이 뚜렷하지 않거나 자신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스님을 선택한 경향이 강해진 결과로 분석할 수 있다. 한편 존경하는 타종교 지도자로는 김수환 추기경이 독보적인 1위를 차지했으며, 2위가 테레사 수녀, 3위가 문익환 목사, 4위가 이해인 수녀와 간디, 오웅진 신부(공동), 5위가 예수, 조용기, 함석헌으로 꼽혔다. 이 결과에서도 조계종 스님들의 인식의 변화를 읽을 수 있다. 존경하는 타종교 지도자들의 공통점이 사회적 활동이나 봉사, 희생의 삶을 살아온 이들이라는 점은 존경하는 스님들을 선택한 기준에서 나타난 흐름이 그대로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조계종 스님들이 존경하는 스님의 기준은 기존의 전설적 수행이력을 가진 선승들보다는 원효와 같이 사회적 실천력을 갖추고 교학적 실력을 겸비했으며 봉사와 희생을 통해 중생들에게 기여한 스님 쪽으로 옮겨가고 있음을 이번 조사는 보여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