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군 서도면 볼음도리 산186에 위치한 볼음도 은행나무는 높이 24m, 가슴높이의 둘레는 8.96m이다. 바닷가 북동향 언덕에서 자라는 정자목(亭子木)이며 앞에 좋은 경관이 펼쳐진다. 마을을 지켜주는 신령스런 나무로 여겨지고 있다. 약 800년 전 큰 홍수 때 바다로 떠내려 온 나무를 건져 심은 것이라고 한다. 이 나무의 가지를 태우면 신이 노하여 재앙을 내린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마을 사람들이 해마다 정월 그믐날에 모여 마을의 평안과 풍어를 비는 풍어제를 지냈다고 한다. 볼음도 은행나무는 오랜 세월 동안 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 속에서 살아온 나무로 민속적·식물학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이 은행나무로 인해 마을 이름을 ‘은행제이’, ‘은행촌’으로도 부른다.
볼음도 은행나무를 뒤로 볼음도저수지 둑방길을 따라 걷는다. 을씨년스럽던 겨울과 달리 야생화의 천국이다. 어느새 타래붓꽃이 바람에 살랑거리고 있어 아름답다.
뒤돌아보니 서도면의 또 하나의 섬 말도가 손에 잡힐 듯하다. 말도는 섬의 위치가 강화 해역의 끝에 있다고 하여 끝섬 또는 말도라는 지명이 부여되었다고 전한다. 섬 안에 남신당 터가 남아 있는데 이곳은 조선 시대 임경업 장군의 사당이 있었다고 한다.
볼음도저수지 여수로를 지나 봉화산 길로 접어든다. 높이 82m의 봉화산은 높이에 비해 참 힘든 발걸음이 이어진다. 봉화산에서의 조우 강화나들길 코스를 관리하는 분이다. 강화나들길이 개통되면서부터 코스를 관리하다보니 코스마다 100여 차례 걸었다고 한다.
봉화산은 당아래 북쪽에 있는 산으로 조선시대에 봉수대가 있어 봉화산이라 부른다고 했다. 급경사의 내리막길에는 봉화대가 있었던 흔적들이 남아 있다.
한차례 들녘 길을 걷다 보면 죽하촌을 만나게 된다. 죽하촌(竹下村)은 조선시대 볼음도에 요망장과 군사 10명이 있었으며, 망대가 있던 마을로 대아래라고도 부른다. 대(臺)를 죽(竹)로 바꾸어서 죽하촌이라 부른다고 한다.
볼음교회다. 볼음도의 한가운데에 위치한 볼음교회는 창립일이 1903년 3월 10일 이라고 하니 어느새 121주년이 된 교회다. 이 고장 역사의 산실이다. 기독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역사와 함께 시작된 이곳은 복음의 역사가 오랜 만큼 많은 목회자와 신도를 많이 배출한 곳이다. 교회가 이 고장의 발전과 함께 하며 현재의 성전도 1990년에 세워졌다고 한다.
당아래마을을 통과한다. 당하촌, 당하촌(堂下村)은 신당이 있던 당산 아래에 있는 마을이라 당하촌이라 칭하며 당아래라고도 부른다.
추억의 “황해여인숙”은 간데온데없어 조금은 허전하다. 딱 걸렸네, 길동무들이 추억거리를 만들던 곳인데, 나들길식당민박집에서 허기를 채운다.
부고개를 넘는다. 부고재라고 부르며 당하 선창에서 당아래로 넘어가는 고개로 당하촌 마을이 부유한 마을이 되도록 지켜주는 고개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제 마지막 발걸음으로 볼음도 선착장으로 향한다. 13코스 볼음도길에서 또 하나의 추억거리를 남기며 페리호에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