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10대 뉴스 종합]
△노무현 대통령 당선
12월19일 실시된 제16대 대통령선거에서 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총 유효투표수(2456만1916표)의 48.9%인 1201만4227표를 얻어 당선됐다. 노 당선자는 3, 4월의 민주당 국민경선과 11월25일 국민통합21 정몽준 대표와의 후보단일화를 통해 대권을 잡는 데 성공했다. 노 후보의 당선은 ‘3김 시대’의 종언과 인터넷 시대의 도래, 그리고 20, 30대 젊은 세대의 적극적 투표참여라는 변화도 이끌어냈다. 노 당선자는 당면한 북한 핵문제를 비롯해 국민화합 경제안정 정치개혁 등의 과제를 안게 됐다.
△한국축구대표팀 월드컵 4강 진출 및 히딩크 신드롬
6월 ‘2002 한일 월드컵축구대회’에서 우리 축구대표팀이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 등 세계 축구 강호들을 침몰시키며 4강에 오르는 대이변을 연출, 세계를 놀라게 했다. 2000년 12월 한국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은 지 1년6개월여 만에 4강 신화를 창조한 네덜란드 출신의 거스 히딩크 감독은 전 국민의 영웅으로 떠오르며 ‘히딩크 신드롬’을 일으켰다. 홍명보, 송종국, 안정환, 박지성, 설기현 등의 선수들도 국민적 영웅으로 떠올랐다.
△북한 핵 개발 시인 및 핵시설 전면 재가동 선언
10월 초 제임스 켈리 미국 대통령특사의 방북 당시 북한은 우라늄 농축 핵개발 프로그램을 시인했다. 이후 미국의 거듭된 핵 포기 종용을 북한이 거절하자 한국 미국 등으로 구성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는 11월14일 북한에 대한 중유 공급 중단을 선언했다. 북한은 이에 12월12일 동결된 핵시설 재가동을 선언한 뒤 8000여개의 폐연료봉 저장시설 봉인 제거, 영변 방사화학실험실의 봉인 제거 등으로 핵무기 개발에 급속히 접근하고 있다.
△반미운동 확산
6월13일 경기 양주군에서 친구의 생일파티에 가던 신효순 심미선양(14·중 2년)이 주한미군의 장갑차에 깔려 숨진 사건은 덕수궁터 미국대사관 신축 문제와 미군기지 환경오염 문제 등으로 형성돼 있던 반미감정에 불을 지피는 계기가 됐다. 11월22일 미군 피의자 2명에게 무죄 평결이 내려지면서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에 대한 요구와 ‘촛불 추모’라는 새로운 형태의 시위가 전국적으로 번져갔다.
△권력형 비리 봇물, 대통령 두 아들 구속
권력형 비리 사건이 꼬리를 물었다. 김대중 대통령의 차남 홍업씨(왼쪽)가 기업체에서 이권 청탁과 함께 거액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또 김 대통령의 3남 홍걸씨(오른쪽)도 ‘체육복표 사업자 선정 비리’ 사건에 연루돼 구속됐다.
‘이용호 게이트’를 수사한 특검팀은 이수동 전 아태평화재단 상임이사와 김 대통령의 처조카인 이형택 전 예금보험공사 전무를 알선수재 혐의로 각각 구속했다.
△도청공포 확산
도청 공포증이 세상을 휩쓸었다. 9월 한나라당이 금감원장과 현직 검사의 개인적인 통화 내용을 공개하자 그 전부터 시민들 사이에 나돌고 있던 도청 공포감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국가기관에 의한 도청 의혹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주요 인사들의 통화 내용이 추가로 공개되고 휴대전화 도청이 가능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정치 사회적인 핫이슈로 떠올랐다. 대선에서 쟁점이 되면서 이를 둘러싼 정치적 공방도 가열됐으나 결국 진실은 밝혀지지 못했다.
△북, 서해도발
월드컵 폐막 전날인 6월29일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한 북한경비정 1척이 우리 해군 고속정을 기습 공격해 장병 6명이 숨지고 18명이 부상했다.
이 사건으로 남북관계는 급랭했고, 우리 해군은 경고방송 없이 사격을 할 수 있도록 교전수칙을 개정했다. 북한 감청부대장이었던 한철용(韓哲鏞) 소장이 김동신(金東信) 전 국방장관의 도발 정보 묵살 의혹을 제기해 파문이 일었다.
△부동산값 폭등과 신용불량자 양산
가계대출과 신용대출이 폭증하면서 260만명 가까이 되는 신용불량자가 양산됐다. 이 같은 과소비 풍조는 부동산 시장에까지 영향을 미쳐 서울 아파트값 상승률이 1990년 이후 12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는 부동산 시장 과열을 가져왔다.
정부도 뛰어오르는 부동산 가격을 잡기 위해 올해 6차례나 긴급대책을 발표해야 했다. 10월 이후 집값이 안정 기미를 보이고 있지만 당분간 추이를 지켜봐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태풍루사 강타
8월31일과 9월1일 이틀간 전국을 강타한 제15호 태풍 ‘루사’는 사망 실종 246명, 재산손실 5조1479억원 등 건국 이래 최대의 수해를 냈다. 특히 강원 영동지방은 짧은 시간에 집중폭우가 쏟아져 피해가 컸다. 정부는 피해를 본 전국 16개 시도 203개 시군구의 1917개 읍면동을 특별재해지역으로 선정해 금융 및 세제상의 특별 지원을 했다. 그러나 복구작업이 어려워 수재민들은 컨테이너박스에서 추운 겨울을 지내는 등 오랫동안 어려움을 겪었다.
△장상(張裳) 장대환(張大煥) 국무총리 지명자 인준 잇따라 부결
두 총리지명자에 대한 인준안이 국회에서 잇따라 부결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7월31일 장상 총리지명자(왼쪽)에 대한 임명 동의안은 ‘찬성 100표, 반대 142표, 기권과 무효 각 1표’로, 8월28일 장대환 총리지명자에 대한 동의안은 ‘찬성 112표, 반대 151표, 기권 3표’로 각각 부결됐다. 이 때문에 총리 공백이 3개월이나 계속됐다. 아울러 고위 공직에 취임하기 위해서는 자녀 병역 미필, 부동산 투기 등의 흠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기도 했다.
[2001 10대뉴스/국내]說…리스트…'게이트 공화국' 外
▼ 說…리스트…'게이트 공화국' ▼
이용호 정현준 진승현 게이트 재수사로 권력과 부정 부패의 유착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특별검사제가 도입됐고 신광옥 전 법무차관, 김은성 전 국정원 2차장 등이 구속됐다. 온 나라가 ‘게이트’로 떠들썩했다.(사진 왼쪽부터 이용호 진승현 윤태식씨)
▼ 사상최대 규모 언론 세무조사 ▼
올해는 권력과 언론의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한 해였다. 언론사에 사상 최대의 조사인원이 투입돼 5056억원의 세금이 추징됐고 정부에 비판적인 유력 신문사 대주주 3명이 구속됐다. 세무조사는 권력의 ‘언론 옥죄기’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 남북관계 냉각…장관회담 진통 ▼
북한이 우리 정부의 대테러 비상경계조치를 이유로 11월 6차 남북장관급회담을 결렬시킴으로써 남북관계가 경색국면에 돌입했다. 평양 ‘8·15 축전’에서 일부 인사들이 친북적 발언을 해 심각한 보혁 갈등을 유발했다.
▼ 김대통령 민주당 총재직 사퇴 ▼
김대중 대통령은 민주당 소장파 의원들의 쇄신 요구에 대해 11월 8일 총재직 사퇴로 응답했다. 현직 대통령이 임기 15개월을 남기고 당 총재직을 버린 것은 처음 있는 일. 9월 임동원 통일부장관 해임을 둘러싼 갈등으로 DJP 공조도 막을 내렸다.
▼ 건보 파탄-공교육 파행…개혁 실종 ▼
공교육이 실종됐다는 원성이 어느 때보다 높았다. 교원정년 문제로 여야간에 한바탕 힘 겨루기가 벌어지기도 했다. 통합 건강보험의 재정 파탄으로 국민의 불신이 높아만 갔다. 현 정권의 각종 개혁 정책이 실종되거나 혼선을 빚었다.
▼ '친구 신드롬' 한국영화 대박행진 ▼
한국 영화 ‘친구’가 820만명의 관객을 동원해 신기록을 세웠다. 이어 ‘신라의 달밤’ ‘엽기적인 그녀’ ‘조폭마누라’ 등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맞선 데 힘입어 한국 영화의 점유율이 46%까지 올랐다.
▼ 수지김 살해은폐 14년만에 드러나 ▼
진실과 인권의 승리. 검찰 수사로 ‘수지 김 살해 은폐 조작’의 진상이 14년 만에 밝혀졌다. 최종길 전 서울대 교수의 의문사 사건도 어느 정도 진상이 드러났다. 국가인권위원회의 발족으로 인권의 수준과 인식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마련됐다.
▼ 정주영씨 타계…현대그룹 해체 ▼
왕회장으로 불렸던 현대그룹 창업주 정주영(鄭周永)씨가 3월 21일 타계했다. 1915년 강원 통천군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숱한 신화를 창조하며 한국 최고의 기업을 일궜다. 그의 사후 현대그룹은 아들들에 의해 몇 개의 소그룹으로 나뉘어 해체됐다.
▼ IMF졸업…초저금리 시대 개막 ▼
한국은 8월 23일 국제통화기금(IMF)에서 빌린 돈을 모두 갚아 3년8개월 만에 IMF 관리체제를 졸업했다. 외환보유액은 1000억달러를 넘어서 세계 5위. 정기예금금리가 4%로 떨어지는 초저금리 시대가 맞아 돈이 부동산과 주식으로 옮겨갔다.
▼ "동북아 허브로" 인천공항 개항 ▼
‘단군 이래 최대의 국책사업’이었던 인천국제공항이 착공 8년4개월 만인 3월 29일 문을 열었다. 규모 면에서는 세계 정상급으로 꼽히고 있으나 운영시스템 불안정으로 ‘반쪽 공항’이란 비판도 있었으나 전면 자동화는 아직
[2000년10대뉴스/국내]총선연대 ‘바꿔’ 열풍 外
▼ 총선연대 ‘바꿔’ 열풍 ▼
4.13총선에서 총선시민연대가 ‘바꿔’ 열풍을 일으켰다. 낙천 낙선운동은 대상자 86명 중 59명(68.6%)에게 고배를 안겨 줘 유권자의 ‘힘’을 보여줬으나 네거티브 캠페인으로 정치불신을 깊게 했다는 비판도 받았다
▼ 반세기 분단의 벽 깬 남북정상회담 ▼
김대중(金大中)―김정일(金正日) 남북 정상회담이 분단 반세기 만에 평양에서 열려 한반도 평화와 협력, 통일을 지향하는 6.15공동선언이 발표됐다. 이산가족 상봉, 장관급회담, 경의선 복원공사 등으로 화해무드가 이어졌다.
▼ 의약분업 갈등 의료계 길고 긴 파업 ▼
의료계가 정부의 의약분업안에 반대하며 여의도 집회(2월), 동네의원 휴진(4월)에 이어 6월부터 11월까지 총파업을 되풀이했다. 그 와중에 귀중한 생명을 잃는 경우도 생겼다. 의료환경이 개선되는 계기로 작용할지 미지수다.
▼ SOFA마찰등 악재 속출 반미감정 증폭 ▼
노근리 민간인 사살 사건, 매향리사격장 이전 문제, 주한미군의 독극물 한강방류 사건 등 악재가 잇따르면서 반미감정이 어느 해보다 거셌다. 반미감정의 한 요인인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협상도 타결되지 못했다.
▼ 현대그룹 ‘왕자의 난’ 경제위기 심화 ▼
노근리 민간인 사살 사건, 매향리사격장 이전 문제, 주한미군의 독극물 한강방류 사건 등 악재가 잇따르면서 반미감정이 어느 해보다 거셌다. 반미감정의 한 요인인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협상도 타결되지 못했다.
▼ 편파수사 시비 검찰수뇌부 탄핵공방 ▼
선거사범 편파수사 시비가 11월 박순용(朴舜用)검찰총장과 차기총장 후보 신승남(愼承男)대검차장에 대한 탄핵공방으로 비화됐다. 야당의 탄핵안은 여당 의원들의 투표 거부로 폐기됐지만 검찰은 또 한번 깊은 상처를 입었다.
▼ 정현준―진승현게이트 금융시장 강타 ▼
10∼12월 정현준(왼쪽) 진승현씨 등 젊은 벤처기업인들의 잇따른 금융사고가 벤처업계와 금융시장을 뒤흔들었다. 광범위한 정관계 로비의혹이 제기됐지만 검찰은 뚜렷한 혐의를 찾지 못한 채 수사를 끝내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겼다.
▼ 金大中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 ▼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민주화와 인권신장에 기여하고 남북화해 협력의 물꼬를 튼 공로로 12월10일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한국인으로서 노벨상 수상에 첫 테이프를 끊은 것이고 평화상 분야에선 세계 81번째다.
▼ 러브호텔… 원조교제… 섹스비디오… ▼
작년 ‘O양 비디오’에 이어 11월 ‘B양 비디오’가 관음증 사회의 추한 단면을 보여줬다. 성의 문란은 지도층과 주부의 원조교제에서도 드러났다. 우후죽순처럼 늘어만 가는 러브호텔에 신도시 주민들이 ‘궐기’하기도 했다.
▼ 고득점 인플레 수능 변별력 논란 ▼
수능시험에서 응시자들의 평균 점수가 지난해보다 27.6점이나 오르는 ‘고득점 인플레’ 현상이 나타나 변별력 시비를 낳았다. 만점자나 390점 이상 고득점자들도 특차모집에서 떨어질 정도로 대학입시에 큰 혼선을 빚었다.
1999년 10대뉴스/동아일보 선정]
▼영화史 다시 쓴 강제규감독 '쉬리'▼
2월13일 개봉된 강제규 감독의 영화 ‘쉬리’가 전국에서 597만 관객을 끌어 국내 흥행 신기록을 세웠다. ‘쉬리’는 11월 홍콩에서 개봉 첫날 흥행 1위에 올랐고 내년 1월 일본의 여러 극장에서 개봉이 확정되는 등 한국영화의 해외진출에도 기여했다
▼씨랜드-호프집 불 어린넋 하늘로▼
꽃다운 어린 생명들이 불길 속에 쓰러져 갔다. 6월30일 경기 화성군 씨랜드청소년수련원 화재로 유치원생 19명 등 23명이 숨졌고 10월30일 인천 호프집 화재로 중고교생 등 56명이 목숨을 잃었다. 어른들의 안전불감증이 빚은 참극이었다.
▼이승엽 홈런 54개 야구 새章열어▼
이승엽(23·삼성)이 프로야구의 ‘큰별’로 떠올랐다. 8월2일 43호 홈런을 날려 한시즌 최다홈런기록을 세운 뒤 신기록행진을 거듭했다. 시즌 통산 54개. 64년 왕정치의 아시아기록(55개)을 깨진 못했지만 아시아의 최고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홍석현회장 구속 언론탄압 공방▼
홍석현중앙일보회장이 조세포탈 등의 혐의로 구속되자 그 배경을 둘러싸고 ‘언론 탄압’과 ‘언론 개혁’ 공방이 한동안 치열하게 벌어졌다. 그후 정형근한나라당의원이 ‘언론대책 문건’을 폭로하면서 이 문건의 실현여부가 쟁점이 됐다.
▼옷로비-특검도입 검찰위상 흔들▼
대전 법조비리, 심재륜 항명, 소장검사 집단서명, 옷로비 의혹 사건과 파업유도 발언 등 대형 사건이 이어졌고 특별검사가 처음으로 도입됐다. 옷로비 사건은 거짓말 사건으로 비화돼 법무부장관과 대통령법무비서관의 사퇴 및 구속으로 이어졌다.
▼한국전이후 남북해군 첫 서해교전▼
서해 북방한계선을 침범한 북한측이 6월15일 우리 함정에 선제사격을 가하며 6·25전쟁 이후 첫 남북해군간 교전이 벌어졌다. 북측은 어뢰정 1척이 침몰되고 4척이 파손되는 등 큰 피해를 보았다. 이를 계기로 한때 햇볕정책이 논란거리가 됐다.
▼탈옥수 신창원 908일만에 붙잡혀▼
탈옥수 신창원(申昌源)이 부산교도소 탈옥 908일만인 7월16일 검거됐다. 신창원은 탈옥기간중 7차례나 경찰과 마주쳤으나 번번이 검거망을 벗어나 그의 행적 자체가 큰 관심을 모았다. 검거 뒤 일각에서는 ‘신창원 동정론’이 일기도 했다.
▼검경 불법감청에 불신풍조 만연▼
경찰 검찰 등 국가기관에 의한 불법 감청과 E메일 열람, 통신회사의 마구잡이 정보제공 등 통신기본권 침해를 둘러싼 의혹이 가을 정국을 휩쓸었다. 사회에는 ‘감청 공포증’이 일면서 가입자의 신원을 확인하지 않는 ‘묻지마 폰’까지 등장했다
▼대우 김우중회장 30년신화 무너지다▼
99년초 자산기준 재계 서열 2위였던 대우그룹이 해체됐다. 김우중회장이 30여년 동안 일궈온 샐러리맨 성공신화도 종막을 고했다. 대우와 김회장의 몰락은 개발경제 시절의 경영 패러다임을 IMF 이후 재벌개혁기에도 고수한 결과로 해석된다.
▼코스닥 폭발상승 금융시장 돌풍▼
올해 코스닥은 폭발적 상승세를 보이며 금융시장에 돌풍을 일으켰다. 코스닥지수는 연초 76포인트에서 300포인트를 목전에 두고 있으며 시가총액은 7조원대에서 100조원을 바라보게 됐다. 그러나 객장 안팎에선 ‘거품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1998년 올해의 10대뉴스/국내]
◇ 金大中정부 개혁돛 달고 출범
50년 헌정사상 처음으로 투표에 의해 여야 정권교체를 이룬 김대중(金大中)정부가 2월25일 출범했다. 새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체제를 극복하기 위한 구조조정과 경제개혁정책을 폈으며 야당의원 영입을 통해 정국구도를 여소야대에서 여대야소로 개편했다.
◇ 금강산 南손님에 베일 벗다
분단이후 첫 금강산 관광이 성사돼 남북민간 교류사에 새 장을 열었다. 11월18일 유람선 첫 출항 이후 매주 남한관광객이 금강산을 드나들고 있다. 정주영현대명예회장의 집념과 햇볕정책의 합작품인 금강산관광이 향후 북한개방의 촉매제역할을 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 망하는 은행… 무너지는 재벌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이후 강도높은 구조조정으로 동화 대동 동남 충청 경기 등 5개 은행이 퇴출됐다. 상업―한일 국민―장기신용 하나―보람 조흥―강원은행―현대종금이 합병 절차를 밟고 있다. 5대 그룹을 포함한 재벌도 사실상 해체 작업이 진행중이다.
◇ 총풍… 세풍… 한나라에 삭풍
지난해 대선 직전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후보를 위해 한성기(韓成基)씨 등 3명이 북한측에 총격을 요청한 사실이 밝혀졌다. 임채주(林采柱)전국세청장 등이 기업인들을 협박, 한나라당에 대선자금을 조달해준 사실도 드러났으며 두사건의 배후수사가 계속되고 있다.
◇ 『일하고 싶다』 150만의 한숨
경기침체에다 정리해고제 도입, 기업 구조조정의 여파로 한해 동안 실업자가 1백만명이나 늘어 실업자가 연중 1백50만명을 넘는 대량실업사태가 계속됐다. 정리해고를 둘러싸고 현대자동차 노사가 격렬한 분규를 겪었으며 금융권 구조조정도 진통을 거듭했다.
◇ 北 「햇볕」 뚫고 잇단 침투
정부의 대북 햇볕정책에도 불구하고 대포동 미사일 발사와 동서남해안의 반잠수정과 간첩선 침투 등 북한의 도발이 잇따랐다. 강성대국을 구호로 내건 북한은 금창리 일대의 지하시설 투명성을 둘러싸고 미국과 줄다리기를 계속했고 햇볕정책을 둘러싼 논란도 뜨거웠다.
◇ 희망 심어준 세리-찬호 쾌거
‘골프여왕’박세리(21·아스트라)와‘코리안특급’박찬호(25·LA다저스).이들의 잇따른 승전보는 올 한해 IMF한파로 얼어붙었던 국민에게 용기와 희망을 심어줬다. 박세리는 다승공동1위(4승)를 차지하며 미국LPGA신인왕으로 선발됐고 박찬호는 메이저리그 진출 5년만에 처음으로15승고지에 등정했다.
◇ 日대중문화 해방후 첫 입성
정부는 10월20일 일본 대중문화 개방을 선언했다. 칸 베니스 베를린영화제와 아카데미상 수상작, 일본만화와 잡지가 1단계 개방 대상. 이에 따라 ‘하나비’ ‘카게무샤’가 8·15해방후 처음 공식상영됐으나 이들 일본영화에 대한 반응은 예상보다 낮은 편이었다.
◇ 그린벨트 27년만에 대수술
71년 도입 이후 27년동안 성역(聖域)에 가깝게 보호를 받았던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가 전면 재조정이라는 대수술을 앞두고 있다. 헌법재판소도 그린벨트로 지정된 지역에 대해 정부가 아무런 보상없이 재산권 행사를 제한하는 것은 헌법불합치라고 결정했다.
◇ 숨가쁜 교육개혁… 교단 동요
대학입시 무시험전형, 교원정년 단축, 교원노조 법제화, 교수 계약제 채용, 새 학교문화 창조…. 교육의 틀과 방식, 내용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각종 교육개혁 조치가 쏟아져 나왔다. 이 때문에 반발도 만만치 않았을 뿐만 아니라 교육계 안팎의 동요가 계속됐다.
동아일보 선정 1997년 국내 10대뉴스]
▼ 한보 특혜대출 비리사건
한보특혜대출 비리사건은 정경유착 부정부패 등 사회의 온갖 병폐를 드러낸 사건이었다. 이 사건으로 한보그룹 정태수(鄭泰守)총회장 부자와 정총회장에게서 뇌물을 받은 홍인길(洪仁吉)의원 등 정치인 5명, 전현직 은행장 3명이 구속되고 전현직 의원 등 정치인 8명이 불구속기소됐다.
▼ 北 황장엽씨 한국 망명
주체사상을 체계화한 황장엽(黃長燁)전북한 노동당비서가 2월12일 중국 베이징(北京)주재 한국대사관에 망명을 요청, 4월20일 서울에 왔다. 그의 망명에 이어 발생한 장승길 전이집트주재 북한대사 형제의 미국망명(8월)은 탈북이 북한 상층부로까지 확산되고 있음을 확인시켰다.
▼ 대통령 차남 현철씨 구속
인사개입과 국정농단으로 지탄을 받아온 현직 대통령의 차남 현철(賢哲)씨가 5월 구속됐다. 동문 기업인들에게서 60여억원을 받고 세무조사 중단 등을 부탁해 알선수재와 조세포탈 혐의로 구속된 현철씨는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은 뒤 2심 재판부의 보석결정으로 풀려났다.
▼ KAL機 괌추락 229명 희생
8월 6일 괌 니미츠힐에서 대한항공 801편이 추락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탑승자 2백54명중 2백29명이 숨지고 25명이 부상했다. 신원이 확인된 사망자는 1백27명. 사고원인을 놓고 여러가지 엇갈리는 분석이 나왔으나 공식 조사결과는 내년 3월에나 나올 예정이다.
▼ KEDO, 北경수로 착공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가 북한에 제공할 경수로 부지 정지공사가 8월19일 함경남도 금호지구에서 착공됐다. 이와 함께 총공사비가 51억7천8백50만 달러로 확정됐으나 비용 분담비율을 둘러싼 한미일 협상은 미국이 한푼도 못내겠다고 하는 바람에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 월드컵 본선 4회연속 진출
한국축구가 98프랑스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B조에서 6승1무1패를 기록, 조 1위로 월드컵본선 진출권을 획득했다. 54년 스위스월드컵에 첫 출전했던 한국은 86, 90, 94년 대회에 이어 아시아국가로는 최초로 통산 5회 출전, 연속 4회진출의 쾌거를 이룩했다.
▼ IMF 「경제 신탁통치」 시대
1월 한보 부도로 시작된 경제대란이 전례없는 기업부도와 금융위기 끝에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신청, 즉 사실상의 국가부도로 이어지고 말았다. 종합주가지수는 3백선까지 떨어졌고 환율은 달러당 2천원대를 돌파하기까지 했다. 아시아의 용이 지렁이로 변했다. 위기는 끝나지 않았다.
▼ 김대중후보 당선 정권교체
국민회의 김대중(金大中)후보가 12월18일 치러진 대선에서 유효표의 40.3%를 얻어 제15대 대통령에 당선했다. 이로써 50년 헌정사상 처음으로 정권교체가 이뤄졌다.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후보는 38.7%의 지지로 석패했고 국민신당 이인제(李仁濟)후보의 득표율은 19.2%였다.
▼ 전-노 前대통령 사면석방
「12.12」와 「5.18」사건, 비자금사건으로 2년여동안 구속수감 중이던 전두환(全斗煥), 노태우(盧泰愚) 두 전직대통령이 12월22일 특별사면으로 석방됐다. 이는 김영삼(金泳三)대통령과 김대중(金大中)당선자가 만난 자리에서 김대통령이 먼저 사면의사를 밝히고 김당선자가 동의해 이뤄졌다.
▼ 실명제 4년만에 없던 일로
문민개혁의 최대 치적으로까지 선전됐던 금융실명제가 시행 4년여만에 사실상 부도났다. 무기명 장기채의 비실명거래와 금융종합과세의 유보 등이 실명제 대체입법에 포함되기 때문. 「투명한 경제」를 표방했던 실명제는 경제비상사태로 인해 퇴색하고 오히려 경제난의 주범으로 몰리고 말았다.
[동아일보선정 1996년 10대뉴스/국내]
<사건발생順>
▼ 4.11총선 서울 첫 與大 기록
4월11일 제15대 총선에서 △신한국당 1백39 △국민회의 79 △자민련 50 △민주당 15 △무소속 16석을 얻었다. 신한국당은 과반수(1백50석)에 이르지 못했으나 사상최초로 서울에서 여대(與大)를 이뤘으며 총선후 야권의원을 영입, 과반수를 만들어 냈다.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공조에 나섰다.
▼ 2002월드컵 한일공동개최
5월31일 스위스 취리히에서 열린 국제축구연맹(FIFA)집행위원회는 2002년 월드컵축구대회를 한국과 일본이 공동개최키로 결정했다.
이어 11월7일 FIFA실무위원회는 대회공식명칭을 「FIFA월드컵 2002 KOREA―JAPAN」으로 하고 개회식은 한국에서, 결승전은 일본에서 갖기로 확정했다.
▼ 한총련 연대점거 과격시위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소속 대학생들은 8월13일 연세대에서 통일대축전행사를 치르려다 이를 저지하는 경찰에 맞서 과학관 등을 점거하고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경찰은 8월20일 대학생 5천8백48명을 연행, 이중 4백62명을 구속했다. 해산작전중 金鍾熙(김종희·20)이경이 학생들이 던진 벽돌에 맞아 숨졌다.
▼ 북한 잠수함-무장간첩 침투
9월18일 강릉해안에서 좌초한채 발견된 북한잠수함으로 무장간첩 26명이 침투했다. 군은 49일간의 소탕작전에서 1명을 생포, 13명을 사살했고 11명은 피살체로 발견됐으나 1명은 미확인으로 끝났다. 작전에서 아군장병 11명 등 16명이 희생됐다. 군의 대처가 비판받았으며 남북관계는 더욱 경색됐다.
▼ 불황속 명퇴바람…외채 증가
본격화한 경기침체, 1천억달러를 돌파한 외채, 예상의 2배(2백20억달러)를 훌쩍 넘어버린 국제수지 적자 등 올해 우리 경제의 성적표는 낙제점이하다. 기업들의 감량경영으로 「명예퇴직」이란 말이 보통명사가 됐다. 경제부총리와 경제수석까지 바꿔 경제회생에 힘을 쏟았으나 역부족. 90년대들어 가장 우울한 한해였다.
▼ 舊총독부 건물 완전철거
11월13일 커다란 굉음과 함께 건물의 북벽 잔재가 무너지면서 일제가 한반도에 남긴 가장 큰 「정신적 말뚝」이었던 구조선총독부 건물이 완전 철거됐다. 일제가 한반도의 영구지배를 위해 건물을 세운지 꼭 80년만의 일이었다. 잔해조차 완전히 치워진 역사의 현장 너머로 광화문과 서울 시내 중심부가 한눈에 들어온다.
▼ 김경호씨 일가등 17명 탈북
김경호 최현실씨(57) 일가족 등 17명이 탈북, 44일만인 12월9일 서울에 안착, 자유의 품에 안겼다. 이들은 10월26일 두만강을 건너 용정 심양 북경 심천을 거쳐 홍콩으로 밀입국한 뒤 한국망명을 신청, 꿈을 이뤘다. 이들의 탈북은 미국에 사는 최씨의 부모 등 가족의 치밀한 계획과 지원에 따른 성공사례였다.
▼ 선진국 관문 OECD 가입
선진국 진입의 관문격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문턱을 드디어 넘어섰다. 국회동의를 거쳐 12월12일 프랑스 외무부에 가입서를 기탁함으로써 29번째 회원국으로 등록 절차를 마쳤다. 가입의 이점 못지않게 시장개방의 부담이 커졌다. 경제규모에 맞춰 하위권에 처져있는 보건 교육 등 삶의 질 향상이 향후 과제.
▼ 두 前대통령 「세기의 재판」
全斗煥(전두환) 盧泰愚(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은 12월16일 12.12 및 5.18사건 항소심에서 각각 무기징역과 징역 17년을 선고받았다. 3월11일 1심이 시작된지 9개월5일 만이었다. 전, 노씨는 상고를 포기했으나 검찰이 상고해 형이 확정되지는 않았다. 1심에서는 전, 노씨에게 사형과 징역 22년6월이 선고됐었다.
▼ 노동법 개정안 기습 처리
노동관계법 개정안이 12월26일 국회에서 기습 처리됐다. 4월23일 金泳三(김영삼)대통령의 노사개혁 선언과 함께 노사관계개혁위가 발족, 노사간 협상을 벌였으나 단일안 마련에 실패했다. 결국 정부가 개정안을 만들어 국회에 상정했고 신한국당은 정부안중 정리해고제 복수노조에 관한 일부 조항을 손질해 통과시켰다.
국내 동아일보 1995년 10대 뉴스
▼ 국내뉴스
◎ CATV 多체널시대 개막
케이블TV와 4대 도시 지역민방이 출범,다매체 다채널 시대의 문을 열었다. 케이블TV는 3월1일이후 잇따라개국했으며 27개 채널이 방송되고 있다. 그러나 케이블TV는 전송망설치미비로 금년말까지 50만가구가 가입, 예상보다 가입률이 낮았으며방송 첫해 3천억원대의 적자를 냈다.
◎은퇴 김대중씨 정계복귀
92년 12월18일 14대 대통령선거 패배직후 정계에서 은퇴했던 김대중씨가 2년7개월만인 7월18일 정계에 복귀했다. 이에 따라 은퇴번복의시비가 일었다. 그러나 김씨는 9월5일 추종의원 65명으로 제1야당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 총재에 취임했다. 이로써 정계의 「후3김시대」가 공식화됐다.
◎획기적인 교육개혁안 발표
교육개혁위원회가 5월31일 발표한 교육개혁안은 해방이후 10여차례 단행된 교육개혁중 가장획기적이라는 평가를 받고있다. 5·31교육개혁으로 국공립대 입시에서본고사가 없어지고 사립대의 자율권이 큰폭으로 확대됐다. 또 초중고에종합생활기록부제를 도입하고 교육재정을 GNP 5%수준으로 끌어 올렸다.
◎유조선 좌초 남해 기름오염
시프린스호(7월23일)를 시작으로제1유일호(9월22일) 호남사파이어호(11월17일)등 대형유조선이 잇따라 남해안에서 좌초 침몰해 원유를 대량 유출시켰다. 이로 인해 어패류가 집단폐사하고 해양생태계가 파괴돼 남해안어장이 중증을 앓고 있다.특히 맹독성 적조까지 겹쳐 어민들이 큰 피해를 보았다.
◎북 식량난… 쌀 15만t 지원
정부는 북한의 식량난을 돕기 위해 6월25일부터 10월10일까지 15만t의 쌀을 북한에 주었다. 남북한은 6월 북경에서 인도주의차원의 식량제공에 합의했다. 남한쌀의 북한반입은 분단이후 처음이었다. 그러나 쌀수송선의 인공기 게양과 억류사건으로 남북관계개선에 큰 도움을 주지는 못했다.
◎광복 50돌… 구총독부 철거
광복 50주년 기념일인 8월15일 일제 식민통치의 상징인 구 조선총독부 건물 해체가 시작됐다. 이날 광복절 기념식에서 5만여 시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높이 4.5m의 건물 중앙 돔 첨탑이 철거된 것이다. 내년말이면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사용돼온 일제의 상징 건축물은 영원히 사라지게 된다.
◎지방자치시대 본격 개막
6월27일 4대 지방선거(광역및 기초자치단체장과 광역 및 기초의회의원 선거)가 헌정사상 처음으로동시실시됐다. 광역 및 기초단체장 직선은 61년에 중단된 이래 34년만의 일이었다. 지방자치시대의 본격부활이었다. 선거결과 김영삼 대통령의 민자당이 참패, 15개 시도지사 가운데 5개만 차지했다.
◎유엔안보리이사국 진출
한국은 11월9일 임기 2년의 유엔안전보장이사회비상임이사국으로 선출돼 안보리에 진출했다. 91년 9월 남북한 유엔동시가입 이후 4년2개월만의 일로 한국외교의 신기원이었다. 이에따라한국은 아시아지역을 대표해 주요 국제현안에 대한 발언권을 행사할 수있게 됐다. 국제사회에서의 위상도 그만큼 높아졌다.
◎대구 지하철삼풍 대참사
4월28일 대구 달서구 상인동 지하철공사장에 가스폭발사고가 발생, 등교하던 초 중학생을 포함해 1백1명이 숨지고 1백17명이부상했다. 이어 6월29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삼풍백화점 건물이 통째로 무너져 내려 5백2명이 사망하고 9백37명이 부상한 것으로 최종집계됐다.
◎전노씨 구속 「과거청산」
노태우 전대통령이 11월16일 거액 수뢰혐의로, 12월3일에는 전두환 전대통령이 12·12와 5·17군사반란 주도혐의로 구속수감됐다. 김영삼 대통령은 이를 「역사바로세우기」로 규정했다. 국회는 12월19일 신한국당 국민회의 민주당의 3당합의로 「5·18특별법」을 제정, 처벌근거를 마련했다.
국내,동아일보 1994년 10대뉴스
분단49년동안 북한에서 신처럼 군림했던 절대권력자 김일성이 7월8일 사망했다. 6·25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으로 냉전과 분단의 상징이던 그의 사망은 남북한은 물론 동북아전체에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의 후계자 김정일은 아직까지도 권력승계를 공식화하지 않은채 근황이 베일에 싸여있다.
◎박홍총장 주사파발언 파문
박홍서강대총장이 7월18일 청와대주최 대학총장 오찬모임에서 『주사파뒤에 사노맹이 있고 그 뒤에 북한의 사노청과 김정일이 있다』고 발언, 주사파논쟁에 불을 붙였다. 「소신발언」 「신매카시즘」이란 극단적 평가가 엇갈리면서 수십년만의 무더운 여름이 때아닌 사상논쟁으로 더욱 뜨겁게 달아올랐다.
◎사상최고 찜통더위 39.4도
「대구밀양39·4도,서울38·4도」. 1904년기상관측이래 처음이라는 사상최고의 무더위가 7월초부터 8월말까지 전국을 찜통가마솥 속처럼 달궜다. 가뭄까지 겹쳐 여름강우량은 지난52년이래 가장 적었고 영호남지방은겨울가뭄이 계속되고 있다. 부족한 강물에 1월엔 낙동강, 4월엔 영산강에서 식수오염사고가 발생했다.
◎인천·부천세도전국 확산
인천북구청과 부천시에서 대규모의 조직적인 세무비리사건이 터져 세무공무원등 모두 78명이 구속되고 인천북구청 사건의 주범 안영휘피고인은 1심에서징역22년6월에 벌금40억원을 선고받았다. 이 사건으로 감사원과 내무부가 특별감사를 편결과 전국 2백59개 시군구중 3, 4곳을 제외한전지역에서 세금비리가 적발됐다.
◎「인간」포기 지존파살인 충격
거액의 재산을 노려 부모를 살해한 박한상(5월19일), 사회에 대한 증오심으로 무고한 시민들을 납치살해한 지존파(9월21일)및 훔친 택시로여성들을 납치, 성폭행한 뒤 살해한 온보현(9월27일) 사건 등이 잇따라 국민들을 경악시켰다. 이같은 인면수심사건을 계기로 사회각계에서인간성 회복운동이 활발히 전개됐다.
◎「장교 길들이기」군 하극상
지난 9월27일 발생한 육군제53사단 장교무장탈영사건은 「장교길들이기」로 불린 병사들의 조직적인 하극상 실태를 드러냈다. 이 사건으로 장병35명이 구속돼 이중 21명이 실형을 선고받았다. 그 이후 지난 10월31일 다시 장교사살사건이 터져 강군육성을 바라는 국민들의 소망에찬물을 끼얹었다.
◎성수대교 붕괴 32명 떼죽음
10월21일 오전7시40분 성수대교 가운데가 무너져 출근길 직장인과 등교길 여고생등32명이 사망하고 17명이 부상했다. 이 여파로 이원종 우명규서울시장이 잇따라 사임했으며 전국 교량과 고가도로 등에 대한 긴급점검이 실시됐다. 성장과 외형에만 치우친 우리사회의 「빨리빨리」 「대충대충」주의를 반성케 하는 계기가 됐다.
◎북미 핵타결 관계개선합의
북한과미국은 10월21일 제네바에서 핵협상을 타결짓고 기본합의문에 서명,북한핵문제의 해결을 위한 기틀을 마련했다. 북한은 핵시설을 동결하고핵확산금지조약(NPT)상의 의무를 완전 이행하는 반면 미국은 이에대한 대가로 북한에 경수로 2기와 대체에너지를 제공하고 북―미관계 개선을 추진한다는 것이 주요골자다.
◎검찰 12·12군사반란 규정
검찰은 79년「12·12사태」는 당시 신군부세력의 계획된 「군사반란」이었다고 규정, 10월29일 이 사건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검찰은 그러나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대통령등 이 사건 관련자 34명을 기소유예처분했다.정승화전육군참모총장등은 검찰의 기소유예처분에 불복, 헌법재판소에헌법소원을 냈다.
◎정부조직 개편 “세계화”추진
12월3일 발표된정부조직개편방침은 김영삼대통령의 세계화추진을 위한 첫조치였다. 「작고 효율적인 정부」가 모토였다. 그러나 공직사회는 감축에 대한 불안감때문에 동요했다. 정부조직법개정안은 12월23일 임시국회에서 통과됐고 김대통령은 즉시 서명했다. 비경제부처와 지방행정조직의 개편은 아직도 과제로 남아 있다.
[동아일보 선정 1993년 10大 뉴스]국내
▼ 쌀시장 개방… 총리 경질
7년여의 우루과이라운드(UR)협상이 12우러15일 마무리되면서 우리의 쌀시장이 열렸다.
10년간의 관세화유예기간 확보등 당초 기대했던 것보다 유리한 조건을 따냈다고 정부는 설명하지만 이를 계기로 우리 농산물시장의 개방이 한층 가속화, 농업 및 농촌의 구조조정이 피할 수 없게 됐다.
농축산물시장뿐만아니라 경제의 모든 분야가 국제개방에 노출됐다. 쌀개방에 따라 농민등 국민들의 반발은 거셌고 黃寅性대각이 사퇴하기에 이르렀다.
▼ '금융실명제' 전격 실시
시행방안 논의만으로 10여년을 끌어온 금융실명제가 8월 12일 오후 8시 전격 시행돼 금융기관의 거래때 실명사용이 의무화됐다. 실명제 시행 직후 △ 현금거래 선호 △ 私債시장 위축에 따른 영세중소기업의 자금난 가중 △ 사라지지 않는 차명거래등의 문제가 나타나기도 했다.
정부는 금융실명제충격을 완화하기위해 소득세등 세율인하, 새로운 저축상품개발등의 보완조치를 취했다.
금융자산소득 종합과세는 96년 소득분부터 적용될 예정이다.
▼ 陸·空·海 잇단 대형참사
땅과 하늘과 바다에서 대형참사가 잇따라 터졌다.
78명의 목숨을 앗아간 3월28일의 부산 구포역 열차전복사고를 시작으로 66명이 숨진 7월 26일의 아시아나 항공기 추락사고, 2백 92명을 수중고혼으로 만든 10월 10일 서해훼리호 침몰등 엄청난 사고가 이어졌다.
세계2위의 造船國, 세계 10위권의 항공기이용국, 아시아두번째로 고속철도를 놓는 나라에서 터진 이들사고는 內實없이 웃자란 우리 사회의 또다른 얼굴을 아프게 드러냈다.
▼ 金永三 14代대통령 취임
金永三 제14대 대통령이 2월 25일 취임했다. 金대통령은 취임사를 통해 32년만의 문민시대개막을 선언하고 '신한국창조'를 임기 5년간의 국정지표로 제시했다.
그러나 2월 26일 출범한 金대통령의 첫내각은 처음부터 도덕성시비에 휩싸였고 이는 막 시작하는 새정권에 큰 부담을 안겨줬다. 朴熺太 법무 許在榮 건설 朴孃實 보사장관 金尙哲 서울시장이 자녀편입학 부동산투기 그린벨트훼손등으로 공직부적격자시비에 휘말렸다. 이들은 모두 취임 10여일만에 물러났다.
▼ 공직자 재산공개·司正
5월 20일 개정, 발효된 공직자윤리법에 따라 3만3천여명의 공직자들이 재산을 등록, 이 가운데 1급이상 공직자와 지방의회의원등 6천8백여명이 재산을 공개했다. 그 결과 金德柱 前대법원장이 사퇴하는등 많은 공직자들이 공직을 떠났다.
이에 앞서 정치권의 자진재산공개로 朴浚圭 金在淳 前국회의장과 金文起 兪學聖 李源祚의원이 의원직을 떠났다. 재산파동과 맞물려 사정한파가 몰아쳐 朴哲彦의원 金鍾仁 前의원등이 슬롯머신가선과 동화은행장비자금사건으로 구속수감되기도 했다.
▼ 하나회등 대규모 肅軍
신정부는 출범 11일만인 3월8일 金振永육군참모총장의 전역조치를 시작으로 12·12관련장성전역, 하나회출신및 율곡비리 인사비리 뇌물수수연루자등에 대한 대규모 숙군을 단행했다. 해임 전보된 장성만도 39명에 달했다.
이는 군을 국민의 군대로 만들려는 불가피한 조치로 이해돼 국민의 환영을 받았다. 율곡비리등 각종 비리사건으로 '군은 복마전'이란 인식이 퍼져 군의 사기가 떨어지자 제도위주의 개혁으로 군안정화정책이 취해졌다.
▼ 교육계 大入부정 회오리
1월말 현직교사인 申薰湜씨 일당이 국민대등의 입시에서 돈을 받고 대리시험을 알선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시작된 입시부정파문은 광운대 한양대등 사립대 고위관계자들이 관여, 조직적으로 입시부정을 저지른 것으로 밝혀져 일파만파로 번져나갔다.
4월에는 崔炯佑 당시 민자당사무총장의 차남이 90년 경원전문대에 부정입학한 사실이 드러났고 전 한서대 재단 이사장 부인 韓勝惠씨가 국립교육평가원 金光玉장학사와 짜고 91년부터 3년동안 대입시험정답지를 빼낸 사실이 적발됐다.
▼ '첨단' 펼친 大田엑스포
국제적인 과학기술축제인 '93 대전 엑스포'가 8월 7일부터 11월 7일까지 93일간 대전 유성구 대덕연구단지내 도봉지구 27만 3천여평에서 열렸다. '새로운 도약의 길'을 주제로 열린 대전엑스포에는 1백 18개국과 33개 국제기관및 국내 31개기업, 정부기관들이 참가, 첨단과학기술과 문화전통을 자랑했다. 대전엑스포는 우리나라가 1893년 시카고박람회에 참가한 1백주년을 기념하여 개발도상국에서는 처음 열린 것으로 관람객수는 1천4백만5천88명에 이르렀다.
▼ '불씨' 안꺼진 한약분쟁
3월 약사법시행규칙개정으로 촉발된 '한-약분쟁'은 7개월여를 끌면서 전국 3천여 한의대생들의 집단유급 및 전국 약국의 휴업사태로 이어졌다.
정부는 우여곡절끝에 의약분업을 골자로 하는 약사법개정안을 마련, 국회에서 통과됨으로써 수습의 가닥을 잡았으나 의약분업의 시행시기가 늦춰지고 약사및 의사단체가 계속 개정안에 반대하고 있어 불씨가 그대로 남아있다.
이 불씨가 내년에 어떻게 확산될지 모른다.
▼ 國軍 소말리아 PKO파병
7월 30일 공병대대인 상록수부대 2백 51명이 유엔평화유지활동(PKO) '희망회복작전'에 참가하기 위해 소말리아로 향했다. 한국이 유엔의 이름으로 파병하기는 처음이었다. 상록수부대는 9월 11일부터 현지에서 파손된 도로를 복구하는 공사에 착수했다.
부대원들은 '한국어학교'를 개설해 현지인들과 우의를 나누고있다. 정세의 악화와 미군철수로 국방부는 내년 1월 전원 교체되는 부대원들을 보호하기 위해 경비전담 1개소대를 파병한다.
국내 동아일보 1992년 10대뉴스<사건발생순>
후기대입시 하루전날인 1월21일 부천 서울신학대에서 문제지를 도난당한 사실이 드러나 시험이 연기되는 입시사상최악의 사고가 발생했다. 윤형섭교육부장관이 인책사퇴하고 수사도중 경비과장이 의문의 자살을 하는 등 파문이 확대됐으나 범행을 자백한 경비원이 결국 증거부족으로 풀려나는 바람에 영원한 미제사건으로 남게됐다.
◎「남북협력합의서」발효
남북한은 지난 2월 평양에서 열린 제6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 남북합의서를 발효시킴으로써 그동안의 반목과 대립을 청산하고 화해협력 단계에 들어섰음을 국내외에 공식 천명했다. 합의서 발효는 남북 △정치 △군사 △교류협력분과위 구성→부속합의서 발효→김달현북한부총리 남한방문 등으로 이어지는 해빙무드조성의 계기가 됐다.
◎황영조 올림픽마라톤 제패
92바르셀로나올림픽 마지막날인 지난 8월10일 새벽은 황영조(22·코오롱)의 마라톤우승 낭보와 함께 밝아왔다.「일장기사건」을 낳은 손기정옹의 36년 베를린올림픽우승이후 56년만의 올림픽제패였다. 올림픽주경기장에 애국가가 울려퍼졌을때 가난한 해녀의 아들이 따낸 마라톤 금메달은 온국민의 뇌리에 깊숙이 자리잡았다.
◎한중수교 노 대통령 방중
한국과 중국은 지난 8월24일 수교성명을 교환,양국간의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국교를 정상화했다. 노태우대통령은 수교를 기념해 9월28일 한국의 국가원수로는 처음으로 방중,한반도비핵화문제 등을 논의했다. 동북아냉전체제의 종식과 한반도 평화통일을위한 외적 장애가 제거됐지만 오랜 우방인 대만과는 단교해야 했다.
◎경제 12년래 최저성장
감속성장이 두드러져 건설 및 설비투자 소비등 전 부문에서 경기하강현상이 나타났다. 올해 실질경제성장률은 지난80년 마이너스성장이후 12년만의 최저수준인 5.0%로 추정되고 있다. 내수불황에 따른 자금난으로 부도기업이 급증,올 연간부도건수가 사상 최대인 1만여건. 의류업체들은 연중 할인판매에 나서기도 했다.
◎한 전군수 관권선거 폭로
한준수 전 연기군수가 지난 8월31일 국회에서 제14대총선에 관권이 조직적으로 개입됐다고 양심선언을 하면서 시작된 관권개입 폭로사건은 노태우대통령의 「민자당 탈당 및 중립내각 구성」에 이르기까지 정치권을 맹타했다. 한씨의 양심선언이후 한씨 자신과임재길 민자당 연기지구당위원장이 구속되는 등 여파가 계속됐다.
◎헌정최초 중립내각 탄생
노태우대통령의 9·18민자당탈당으로 헌정사상초유의 선거중립내각이 탄생했다. 중립내각 탄생의 직접적 계기는 한준수전 연기군수의 관권개입 폭로 양심선언이었다.
현승종내각 출범으로14대 대선에서는 관권개입시비가 과거보다는 크게 줄었으나 부산기관장대책회의사건이 터져 중립성에 먹칠을 했다.
◎시한부 종말론 휴거파문
다미선교회를 비롯한 시한부 종말론교회들이 주장했던 이른바 「10·28휴거」소동은 광적인 신자들의 가정파탄과 가출로 이어지면서 사회적 파문을 불러 일으켰다.
일부교단의 이같은 「종말론」은 가치관의 혼란속에 표류하는 우리사회의 한단면에 기성종교의 한계를 극명하게 드러냈다는점에서 충격을 주었다.
◎김영삼후보 대통령당선
12월18일 실시된제14대 대통령선거에서 민자당 김영삼후보가 유효투표의 42%를 획득,당선됐다. 김 후보의 당선으로 5·16군사쿠데타이후 32년만에 문민시대가 열리게 됐다. 그러나 3·24총선에서는 민자당이 과반수의석 확보에 실패한데 반해 정주영 돌풍으로 그가 이끈 국민당이 제3당으로 급부상했다.
◎김대중씨 정계은퇴 선언
이 나라 민주화투쟁의 기수였던김대중씨가 14대대선에서 낙선후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야인으로 돌아갔다. 김씨는 김영삼대통령당선자와 함께 우리 현대정치를 이끌어온 주역이었다. 김씨는 세차례나 대권에 도전했으나 실패하고 정계를 떠났지만 많은국민들은 그의 민주화투쟁업적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동아일보 선정 1991년 10大 뉴스]국내
<사건발생順>
▼ 대학入試 잇단 不正사건
서울대 이화여대 건국대 성균관대등 전국 7개대학입시에서 부정사실이 밝혀져 전현직 대학 총장 이사장 교수등 50명이 구속됐다. 이로 인해 대학의 권위와 신뢰는 회복불능의 상처를 입었다. 아울러 예체능계 실기시험제도가 바뀌고 사학재정난 타개책으로 기여입학제가 거론돼 논란을 빚었다.
▼ 水西비리 의원 구속사태
水西사건은 政 經 官이 복잡하게 얽힌 구조적인 권력형 비리였다. 지난 2월 여론에 떠밀려 수사에 착수한 검찰은 鄭泰守 한보그룹회장 吳龍雲 金東周 李台燮 李元湃 金台植의원 張炳朝전청와대비서관등 9명을 구속했다. 그러나 의혹의 초점이었던 청와대의 개입여부는 밝혀지지 않은채 龍頭蛇尾식으로 검찰수사는 끝났다.
▼ 낙동강 페놀오염 '물恐怖'
지난 3월 26일 두산전자 龜尾공장에서 나온 3백여t의 페놀원액이 낙동강으로 흘러들어 大邱市전역의 수돗물에서 심한 악취가 풍겼고 釜産등 낙동강수계 1천만주민들이 발암공포에 떨었다. 아직도 피해보상문제가 완전히 타결되지 않고 있는 이 사건은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온국민에게 체득시킨 계기가 됐다.
▼ 地自制 30년만의 부활
5·16 쿠데타로 중단됐던 풀뿌리 민주주의가 30년만에 부활됐다. 3·23 및 6·20선거로 4천3백3명의 구시군의회의원과 8백 66명의 시도의회의원을 뽑아 본격적인 주민자치의 시대가 다시 열린 셈이다. 일부의원들의 비리와 경험부족, 지역이기주의 팽배등이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지만 自治에 거는 기대는 사뭇 크다.
▼ 大邱어린이 실종등 수난
'어린이 수난의 해'로 기록될 만큼 어린이를 상대로 한 범죄가 잇따랐다. 李炯昊 李得和 두 어린이의 유괴살해 사건은 물론 '서커스소녀' 沈珠姬양 학대 감금사건 '12세짜리 접대부'사건등 숱한 어린이 대상범죄는 인간성 상실의 극한을 보여주었다. 대구개구리소년 실종사건도 다섯어린이의 생사확인조차 안된채 한해를 넘기게 됐다.
▼ 姜慶大군 치사 時局긴장
시위진압경찰의 무자비한 폭력으로 숨진 姜慶大군 사건은 뒤이은 항의 분신과 투신자살로 12명이 희생되는 '분식정국'을 초래했다. 5,6월 전국적으로 가두시위가 확산됐으나 그 와중에 발생한 강기훈씨유서대필사건과 鄭元稙국무총리 폭행사건은 운동권의 입지를 약회시켜 새 운동방향을 모색하지 않을수 없게 했다.
▼ 南北韓 유엔 동시가입
남북한은 9월 17일 오후(한국시간 18일 새벽) 제 46차 유엔총회 개막식에서 회원국의 만장일치로 유엔에 동시가입했다. 국명표기 알파벳 순서에 따라 북한이 1백 60번째, 남한이 1ㅐㄱ 61번째였다. 이로써 남북한은 국제무대에서 어깨를 나란히 함으로써 분잔 46년간 지속해온 경쟁적 낭비외교를 청산, 공존의 길로 들어섰다.
▼ 현대 鄭周永씨 탈세파문
국세청은 지난11월1일 現代그룹 鄭周永명예회장 一家의 주식변칙이동에 대한 세무조사를 벌여 사상최대인 1천3백61억원의 세금을 부과했다. '정치적 의도'가 있지 않느냐는 의혹도 많았으나 재벌들의 '副의 변칙상속'이 심판받는 계기가 됐다. 현대측이 한때 과세금액에 정면반발 하다가 일단 전액 납부키로 해 마무리됐다.
▼ 사상최대 무역수지 赤字
올해 무역수지적자가 사상 최대규모인 1백10억달러(추정)에 달했다. 수출경쟁력 약화와 건설등 내수경기과열, 과소비풍조확산으로 내수용 자본재및 소비재의 수입이 급증, 적자폭이 컸다. 임긍상승과 자금난 등에 따른 경쟁력의 약화로 수출이 부진, 국내경제는 어려움이 많았고 기업들은 高금리와 인력난으로 몸살을 앓았다.
▼ 南北 '화해 불가침' 합의
남북한은 12월13일 서울에서 막을 내린 제5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 '남북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 협력에 관한 합의서'를 채택했다. 이 합의서는 분단 46년간의 반목과 대립을 청산하고 화해와 공존을 추구하는 평화문서이자 기본틀. 그러나 내외의 관심은 한반도 核문제 등 합의서 내용이 얼마나 성실히 이행될 것인지에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