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환경속에서도 전교1등을 놓치지 않았던 똑똑한 학생 이명박]
이명박은 일제 강점기인 1941년 12월 19일 일본 오사카에서 부친 이충우(81년 작고)와 모친 채태원(64년작고)의 4남3녀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1945년 해방이 되자 부모님을 따라 11대조가 입향하여 터전을 잡은 고향인 포항시 북구 흥해읍 덕실마을로 돌아왔으며 이곳에서 여섯 살까지 살다가 포항 읍내, 지금의 중앙초등학교 부근 판잣집에서 살았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해 격전지였던 포항시내를 벗어나 다시 이곳 덕실리로 피난해 살았으며, 전쟁으로 손위 누이와 막내 남동생을 잃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집안이 가난했던 그는 어린시절부터 포항 죽도시장에서 어머니를 도와 뻥튀기, 풀빵장사, 과일행사 등을 했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머리가 좋아 포항중학교 시절부터 전교 2등을 놓친 법이 없었지만 가정형편 때문에 명문고 진학은 포기해야 했고 담임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포항동지상업고등학교(야간)에 전체 수석으로 입학할 수 있었다. 입학 후 3년내내 주야간 통틀어 1등으로 장학금을 받아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1959년 12월 부모님을 따라 서울로 올라가 이태원 산동네 쪽방을 전전하던 와중에도 미래를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헌책과 밤낮으로 씨름해 고려대 상대 경영학과에 합격했다.
대학 3학년때 가난한 생활때문에 친구도 없었지만 새로 태어나겠다는 각오로 상과대학 학생회장에 출마, 당선됐으며 1964년에는 한·일 국교정상화 반대 데모를 주도하다 6개월간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샐러리맨의 신화]
대학 졸업 후 데모를 주동했다는 이유로 입사시험마다 떨어지는 불운을 거듭하다가 우여곡절 끝에 현대건설에 입사하여 태국의 건설현장에서, 중동의 뜨거운 모래바람과 경부고속도로 건설현장에서 밤낮으로 누비며 1977년 37세에 현대건설 대표이사 사장, 1988년 48세에는 현대건설 대표이사 회장에 오르며 샐러리맨 신화를 창조했다.
[대한민국의 리더]
성공한 기업가로 청장년을 보낸 그는 1992년 정치판에 뛰어들어 실용주의 정치인, 경제 정치인을 표방하며 서울시장에 도전해 2002년 6월 한나라당 후보로 민선3기 서울시장에 당선됐다.
서울시장 성공이력을 바탕으로 경제를 살려 국민 성공시대를 열겠다는 슬로건을 내걸었던 그는 마침내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경제 분야에서 반 평생을 살았고 동료들과 뛰고 또 뛰어왔다. 나가려다 희생되거나 좌절한 이들의 헌신적인 땀과 눈물을 기반으로 경제적 번영의 토대를 마련해 일조하며 양질의 참된 사회를 만드는 책임을 질 것이다.
스무살 시절 정치의 열병을 앓았던 출발점으로 돌아와 기업 성장의 불을 밝히기 위해 뛰었던 그는 이제 우리모두의 성장을 위해 더 열심히 뛸것이다.
자료제공: 포항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