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 ④
* 조선 혁명군과 조선 의용대
- 일제가 만주 사변(1931)을 일으키고, 이듬해 괴뢰국인 만주국을 수립(1932)하여 만주 일대를 장악하면서, 이 지역에서 활동하던 독립군은 큰 어려움을 겪었다. 이에 독립군은 일제의 만주 침략으로 항일 의식이 고조된 중국군과 연합하여 활동하였다.
남만주(서간도) 지역에서 국민부를 모태로 1929년 설립된 조선 혁명군은 양세봉의 지휘 아래 중국 의용군과 연합하여 영릉가, 흥경성 전투에서 일본군을 크게 물리쳤다. 그러나 조선 혁명군은 1934년 양세봉이 살해당하고, 간부들이 체포, 처형당하면서 세력이 크게 약화되었다.
- 1937년 중·일 전쟁이 시작되자 의열단과 조선민족혁명당을 이끌던 김원봉은 공산주의 정당과 연합하여 조선민족전선 연맹을 결성하고 중국 국민당의 지원을 받아 우한에서 조선 의용대를 창설하였다(1938). 이는 중국 관내에서 결성된 최초의 한인무장부대였다. 조선 의용대는 중국 국민당 군대와 함께 선전 활동, 일본군 포로 심문 등을 수행하였으나, 일부는 중국 국민당의 과도한 통제와 소극적 항일 투쟁에 반발해 화북 지역으로 이동하여 조선 독립 동맹 및 조선의용군을 결성하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다(1942.7).
- 조선의용군은 중국 공산당군(팔로군)의 지원을 받으며 함께 태항산 전투, 호가장 전투 등에 참가하였다. 그러나 조선 의용대의 대원이 화북 지역으로 이동한 후 김원봉과 남은 세력들은 임시정부(군무부장)와 한국 광복군(1지대장)에 합류하였다(1942.5).
① 1920년 봉오동전투와 청산리전투에서 활약하던 북간도 지역의 북로군정서, 대한독립군 등의 제 독립군들은 그해 말의 간도참변으로 인하여 소련의 지원을 믿고 만.소 접경지역인 밀산부에서 모여 대한독립군단을 조직하고(1920.12, 총재 서일), 이듬해 연해주 자유시로 근거지를 옮겨갔으나 독립군의 지휘권을 놓고 공산당 간의 갈등 속에 자유시 참변을 겪었다(1921.6).
③ 북만주에서 1931년 결성된 한국 독립군은 지청천(1888~1957)의 지휘 아래 중국군과 연합하여 토일군(구국군 또는 호로군)을 조직하였다. 토일군은 쌍성보, 사도하자, 대전자령 전투에서 일본군을 격파하였다.
②, ⑤ 태평양 전쟁(1941.12)이 발발하자 임시정부가 일본에 선전포고를 한 후 한국 광복군은 연합군과 공동으로 인도와 미얀마 전선에 참전하였다(1943). 또, 미국과 미국전략정보국(OSS)과 협조하여 국내 진공 작전을 준비하였으나(정진군, 1945.3), 일제의 다소 이른 패망으로 실현하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