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부터 몹시 부러운 장면이 하나 있었어.
서점 바닥에 앉아 페이지를 넘겨가며 책 읽는 모습.
너무 당연한 얘기지만, 일반 서점에는 점자책이 없어.
허나 점자책이 있다 한들 내가 감히 읽을 수 있을까? 그 육중한 점자책을, 그 불편한 자세로, 시린 손 뎁혀가며, 그렇게 느리게, 떠듬떠듬...
그래서 내 독서 장소는 늘 내방 컴퓨터 앞이었어.
독서라는 건 그래서 늘 고독하고 번거로웠어.
또 전자책, 또는 음성책에는 페이지가 없어.
그래서 우리끼리는 책 길이를 줄 수, 파일 수, 재생 시간 심지어 용량(킬로바이트)으로 확인하는 게 자연스러웠어.
그렇게 우리는 내용이 같은 책도 다른 공간에서, 다른 매체로, 다른 단위로 불러가며 읽었어.
얼마 전, 국립중앙도서관의 일부인 국립장애인도서관에서 '국가대체자료공유시스템 드림서비스'라는 E북리더를 출시했어.
http://dream.nl.go.kr/hosting/dream/index.do
여기에 들어가면 PC 버전을 무료로 다운받을 수 있고,
앱스토어에서 '국가대체자료공유시스템' 또는 '드림'이라고 검색하면 역시 무료 앱을 다운받을 수 있어.
이 E북리더에서는 전국 점자도서관에서 소장한 47만여 권의 책을 검색할 수 있고,
그중 3만 4천여 권은 어디에서나 바로 다운받아 그 자리에서 읽을 수 있어.
책은 참여 기관에 등록한 회원이라면 모두 무료야. 드림서비스는 서점이 아니라 도서관이니까.
중요한 건 이 E북리더가 클라우드 방식이라는 점이야.
그러니까 PC에서 다운받아 읽던 책은 스마트폰에도 그대로 저장되어 멈춘 곳에서 다시 읽을 수 있고,
스마트폰에서 다운받아 읽던 책도 PC에 저절로 저장되어 읽고 있던 위치에서 다시 읽을 수 있다는 거야.
이제 컴퓨터로 읽던 책을 침대 위에서도 읽고, 전철 안에서도 읽고, 학교에서도 읽고, 걸어가면서도 읽고, 헬스 하면서도 읽고, 머리하면서도 읽을 수 있어(미용사 언니는 이어폰 끼지 말라고 하지만 ㅋㅋㅋ).
게다가 E북리더는 일반 책과 똑같은 페이지를 표시해줘.
누군가에게 내가 읽고 있는 페이지를 이야기해줄 수 있다는 건 별것 아닌 것 같아도 뜻밖에 독서 공동체에 물리적으로 편입된 느낌을 주더라.
잠시 이동한 시간에 무려 몇 페이지나 읽었다고 스스로 뿌듯해 할 수 있는 것도 소소한 즐거움이야.
게다가 이제 나도 내 손가락의 작은 제스처로 일반인처럼 책장을 넘겨가며 책을 읽어.
그 작은 제스처 덕분에 난 비로소 책을 '듣는' 수동적인 존재에서, 책을 '읽는' 주체적인 존재가 되는 거야.
책 읽기 그 자체가... 책의 내용이 아니라, 페이지 넘어가는 그 자체가 즐거울 수 있다는 건 내게 신선한 경험이었어.
이제 더 이상 서점에서 쪼그려 앉아 책장을 넘겨가며 책 읽는 모습이 부럽지 않아.
이렇게 읽을 수 있는 책이 더 늘어나길 바랄 뿐이야~
엑스비전에서도 리드애니라는 좋은 앱을 이미 개발했는데,
이제 더 좋은 목소리로, 더 많은 책을 읽을 수 있기를...
적어도 독서만큼은 시각장애인에게 난공불락이 아니기를 꿈꾸고 있어.
첫댓글 페북에 쓴 글을 카페로 옮기면서 존대말로 쓰려다가 재미로 반말로 써봤어요~ㅋㅋㅋㅋ 혹시 기분 나쁘신 분 계시면 지송~;;
전혀....
독서는 물론이고 최소한 여가생활은 능동적주최자로 지냈으면하는게 나도바라는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