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절 추라이 ( Chu Lai ) 지역 작전
6) 짜빈동 (Tra Binh Dong ) 전투
* 제11중대 제3소대 제1분대장 배장춘 하사 *
나는 북쪽 정면을 담당하고 있는 제3소대 제1분대장 이었다. 우리중대의 지형및 배치에 대해서는 제1, 2, 3 소대가 전면에 배치되고, 4.2" 소대도 몇개의 진지를 맡고 있었다.
우리분대 좌측에 바위가 있고, 제1분대와 제2분대사이에 LMG 가있었다. (제2분대장은 정원석 하사이고 LMG 반장은 강경희 하사였다)
우리 제1분대의 정면은 적이 접근하기에 가장 용이한 접근로 인데다가 정면이 너무 넓기 때문에 평소에 중대장에게 정면을 좁혀달라고 건의하였다. (그러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제3소대 정면은 약간 급경사인데다 철조망 외각부터 하향능선이 계속되다 다시 상향능선으로 되어있다. 따라서 진지에서 사격을 하면 사각지대가 생기는 사계가 나쁜 묘한 지형이다.
그러니까 진지 바로앞은 관측도 잘되지않고 하향사격도 곤란하였다. 중대본부 에서도 관측이 되지않았다.
그날의 날씨는 비도 아니고 안개도 아니고 이슬처럼 내리는 시계가 아주 불량한 날씨였다.
이때 제3소대 제1분대는 소대우일선 분대로서 우측에 1조(조장:상병 이학현) 중앙에 2조 (조장:일병 조정남) 좌측에 3조(조장:일병 정수철) 를 각각 배치하고, 분대장인 나는 제2조에 위치하여 분대를 지휘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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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23:20경, 청음초가 적의 접근을 인지하고 보고가 들어왔는데, 잇달아 거대한 폭음소리가났다. 폭음소리에 이어 곧바로 60mm 조명이 뜨고 전방상황을 확인하여 보고하라는 명령이떨어졌다.
나는 정수철 상병을 데리고 확인하러 나가보니, 철조망이 뚫리고 30~40명의 적이 도주하는 것이 보여 이를 보고한 다음 휴대한 M2 CAR 소총 으로 사격을 하려했으나 사격이 되지않았다.
당황하고 긴장하여 잠겨진 자물쇠를 풀지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즉각 진지로 복귀하여 상황을 보고 하였더니 적의 도주로에 포격이 가해졌다. 동시에 모든 소화기가 불을 품었다.
상황이 끝난다음 소대장 이수현 소위로 부터 특별 경계의 명을 받아 전분대원에게 소대장 지시를 하갈하고, 1개 청음초를 증가시켜 분대전방 60m 위치에 있는 철조망 주위에 근무를 시키고 특별경계에 임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2월 15일 새벽 3:30경 사수 도성용 일병과 2조 조장 조정남 일병이 보슬비를 맞으며 청음초 근무에 임하고 있었다.
이때 4:10 경 철조망 전방에 이상한 검은 물체가 움직이고 있는것을 발견하였는데, 월남인 특유의 체취가 감각되고 또 사방에서 수풀스치는 소리가 들리자 도 성용 일병은 계속 동태를 살피고, 조정남 일병이 상황을 보고해 왔다.
이어 적의 치열한 포격및 사격과 동시에 LMG 반장 강경희 하사가 전사하고, 청음초는 철수하였다. (내 예측은 청음초가 원위치에 있지않고, 철조망 안쪽으로 조금 들어와 있었던것 같다. 철수시간이 굉장히 빨랐던 것으로 보아 그런 판단을 하였다)
나는 즉시 소대에 보고하려 하였으나 어찌된 일인지 보고를 받지 않았다. 이후 한번도 소대와 연락을 하지못하였고, 소대장도 보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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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기억으로는 적이 10분이내에 우리의 진지부근까지 들어온것 같고, 20분도 못되어 적이 진지 안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오히려 우리가 적보다 외각에 있었던것 같다.
그러니까 적이 밀려들면서 제2분대와 제3분대가 적에게 밀려서 우리 제1분대 쪽으로 밀리고, 우리분대의 바위를 경계로 제3소대는 우리분대의 일부만 진지를 지키고 있는 형편이었다.
나는 부상을 당하고 압박붕대를 맨채 인접한 제2소대 오승환 하사에게 두차례나 구원을 간절히 요청하였다.
육박전 과정에서 어떻게 싸웠는지도 모르겠고 전투가 어느정도 끝났을때 나는 내 진지에서 지도, 콤파스 등 중요하다고 생각되는것을 향도하사 정승일 하사에게 인계하고, 헬기를 타고 후송되었다. 그때까지 나는 소대장을 한번도 보지를 못하였고 통화도 한바없다.
ㅇ 진지 구축요령은? ㅇ
화기진지는 유개호로 구축하였고, 개인호는 무개호와 유개호가 섞여있었다. 취침호는 분대에 2~3개씩 조단위로 구축되었다. 교통호도 외곽것은 모두원형으로 연결되고 거기서 내곽으로 연결되었다.
ㅇ 기타 다른 이야기는? ㅇ
전투후 내가 을지무공훈장을 받았지만 사실 부끄럽게 생각한다. 오히려 전사한 제1분대원들이 받아야 할것이다. 정말 분대원은 용감하게 싸웠다. 중대 진지는 여단에서 모두들 모범진지로 선정하였던 만큼 아주잘 구축되어 있었다.
그리고 철조망 외곽에 Target 같은것도 세워두고 사격훈련을 하였고 위장진지 같은것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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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1중대 제3소대장 정 정상 소위 *
최초 숙영을 위해서 각소대 후방(2선) 에 1개분대씩 개인천막을 치고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밤 11시 적의 1차 공격이 있은후 주로 3소대 후방을 중심으로 숙영장소(배치) 를 다소 조정하였다.
ㅇ 2차 공격때 상황은? ㅇ
그날저녁은 옷을 입은채로 그냥누워서 3시경에 잠이 잠깐 들었는데 갑자기 무수한 예관탄이 날고, 기지의 곳곳에는 포탄이 작렬 하였다.
RKT 사격소리 뒤에는 프로펠러 소리도 들렸다. 교통호 밖에서는 고개도 제대로 들수가 없었다. 교통호와 토끼굴이 좋다는 것을 실감하였다.
얼마후 11중대 3소대가 밀려나면서, 적과 아군이 뒤섞여 육박전이 벌어졌다. 적이 풀로 위장을 했기때문에 풀밭에 엎드리면 조명아래서도 분간하기가 어려웠다.
진지외곽에도 적이 새까맣게 엎드렸는데 적이 대부대인것 같았다. 적과 아군이 뒤섞인 극도의 혼란한 와중에서 어떻게 지휘를 했는지도 기억할수가 없었다.
통신장비도 적의 포탄에 파괴되고 통신병도 그때에 전사하였다. 날이 밝아지면서 적은 도주하기 시작하였고, 무장헬기가 날아오고 아군도 사방에서 나타나니 적도 당황한것 같았다.
ㅇ 전투가 끝난후의 상황에 대하여? ㅇ
적이 퇴각하고 미군 제3상륙군 사령관이 흩어진 적 시체를 보고 자기도 지금까지 수많은 전투를 치렀지만 이렇게 시체가 지저분하게 죽은것은 처음보았다고 했다.
아마 포에 의하여 몸의 각부분이 따로따로 흩어져 있는것을 보고 한말인것 같았다.
그날 여단지역의 모든포( 미 175mm까지) 가 동원된것으로 안다. 포병의 화력으로 적의 후속부대를 차단함으로써 아군 방어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지않았는가 생각 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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