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는 답사를 해야 할 열왕지맥에 속해있는 영취산은 내게 있어 생소한 산이다. 우주택 님의 소개가 없었다면 그 만남이 멀기만 했을 산, 오늘은 영취산을 간다.
정사용 님과 마지막 산행이 2004년 8월 1일 이었다. 만 3년 만에 같이 산을 오르니 감회가 새롭다.
부곡온천지구 ‘원탕’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일부대원만 식당에서 아침을 먹었다.
느긋한 식사 후, 김은필 님의 자동차에 올랐다. 영산면소재지로 들어가서 영산 석빙고를 지나 보덕사를 향해 간다. 시멘트도로를 따라 가파른 산을 올라가니 좁은 주차장(5대 정도 주차가능)이 나온다. 보덕사는 공사중이다. 굴삭기와 작업차량이 오고가기 편하도록 주차장 아래쪽에 주차를 하고 산행 준비를 한다. 산행 안내판을 보니 보덕사 안으로 들어서서 대웅전을 지나고 산신각을 지나 오르는 길이 있지만 우리는 안내판 왼쪽으로 바로 오르기로 한다.
07:52 기념촬영 후 출발, 쉼 없이 가파른 치받이를 오른다. 전망대에서 경치를 보고 다시 쳐올린다. 오석홍 님은 무척 가쁜 숨을 몰아쉰다. 다시 전망이 좋은 지점이 나온다. 무논에는 푸릇푸릇 벼가 자라고 있다. 무논 뒤쪽으로 고속도로는 시원하게 뻗어있고 하늘엔 구름이 잔뜩 덮였다. 스크린에 안개를 뿌려놓은 듯 희뿌연 먼 산의 끝에 백두대간 마루금이 끝없이 이어진다.
08:39 신선봉(632m)에 올랐다. 전망이 좋다. 가야할 방향으로 바위산들이 웅장하다. 병봉은 뾰족하고 영취산정상은 바위로 덮여있다. 신선봉을 내려서는데 야생화들이 저마다 화려함을 발산한다. 엉겅퀴, 털중나리(한국특산식물), 인동, 까치수염, 기린초, 노루발풀, 노루오줌 등이 다가왔다가 멀어진다. 예전에 화마가 휩쓸고 간 흔적이 아직도 뚜렷하다. 굵은 소나무 밑둥치가 검게 그을려있고 많은 나무들이 쓰러져있다.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절벽에 법화사가 아찔하게 걸려있고, 그 아래 구계리(구계리)에 적지, 새터, 진촌, 중촌, 내촌 등 마을들이 구계저수지를 앞에 두고 아늑하게 자리 잡았다. 마을 남쪽에 불룩 솟은 산은 함박산이다. 원점회귀를 하려면 함박산을 거쳐내려 가겠지만 오늘은 길의 방향이 다르다.
영축산성이 시작된다. 산성의 흔적이 뚜렷한데 성을 따라 오르니 보존을 위한 것인지 돌무더기위에 격자로 줄이 쳐져있다. 바위를 즐기며 오르면 왼쪽 절벽사이에 구봉사가 눈에 들어온다. 아찔한 절벽에 예술적으로 건물을 앉혔다. 대원들은 환희의 함성을 터트리며 바위봉우리를 하나씩 정복해 나간다. 때론 위험하게 때론 행복의 비명을 지르면서 봉우리를 넘어간다.
영취산(681.5m, 靈鷲山)정상에는 부서진 표석이 엉거주춤 서있다. - 통도사 뒤쪽에도 이곳과 같은 이름의 영취산이 있는데 - 영취산은 석가모니가 말년에 오랫동안 머물면서 제자들에게 설법을 한, 인도의 산 이름과 같은 것이다. 팔만대장경 중 부처가 열반에 들기 전 마지막으로 중생을 위해 어렵다는 불법을 방편에 비춰 설파한 묘법연화경은 바로 인도의 영취산 설법에서 전해진 것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영상회상’은 이때의 장관을 가리킨다.
이런 내용으로 볼 때, 이곳 영취산의 영험함을 옛사람들은 알았을 것이며 영취산이라는 이름을 붙였을 것이다. 영취산의 바위사이에 기대어 기도를 하려는 사람들이 몰려들었을 것이고 이들을 위해 산자락의 길지에 절과 암자가 들어섰을 것이다.
영취산을 내려서는데 바위틈에 뿌리를 내린 노간주나무가 눈길을 잡는다. 소나무가 바위에 뿌리를 내린 모습은 많이 볼 수 있지만 노간주나무의 이런 모습은 특이하다. 화왕산과 관룡산을 살피다가 시선을 아래로 내리니 옥천저수지가 눈에 들어온다.
‘故 金漢出 靈前에! 山이 좋아 山의 품에 안긴 당신이여! 당신의 메아리만 귓전에 맴돕니다. 구름, 산새, 들꽃 벗 삼아 山사람되어 편히 잠드소서 1994년 7월 10일 당신의 아내 여옥이가’라고 새겨진 석판이 바위에 박혀있다. 산을 가다가 이런 석판이나 동판을 보면 몸에 전율이 흐른다.
뾰족한 병봉 뒤쪽 멀리에 가로로 길게 이어지는 검은 능선을 따라 임도가 보인다. 지나온 길을 돌아보면 이 또한 장관이다.
병봉(676m, 屛峰)바로 앞에 독립적으로 솟아있는 바위봉우리에 힘겹게 올라 전망을 살피고 병봉에 올랐다. 병봉을 만끽하고 내려서면 이제부터는 육산이다. 산자락에는 굵은 소나무가 많이 보인다. 임산물을 보호하고 불법채취를 말자는 경고문이 눈길을 끈다.
11:54 임도에 내려섰다. 임도를 따라가면서 시선을 살짝 올리면 가야할 방향으로 높이 능선이 이어진다. 능선을 따라 서있는 송전철탑이 이정표가 된다. 붉게 익은 산딸기가 발길을 잡는다. 한두 개만 입에 넣고 왼쪽 능선으로 올라선다. 부곡온천 가는 방향을 지시하는 아크릴판이 나무에 걸려있다. 창녕군에서 달아놓은 것이다. 11:58 누군가 매직으로 나무이정표(화왕산 14.6km, 영산 8.3km, 부곡온천 3.7km)기둥에 보름고개라고 적어놓았다. 복숭아나무에 열매와 표시기가 많이 달려있다. 곧이어 송전철탑 아래로 지난다. 키 큰 야생초 사이에 산딸기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곽인수 님과 김은필 님은 물 만난 고기마냥 빠르게 산딸기를 한 움큼 따서 입에 넣는다.
가파른 치받이를 잠시 올랐다. 바위봉우리가 길을 막는다. 종암산(546m, 宗岩山)으로 추정되는데 표시는 없다. - 여기서부터는 창령군과 밀양시의 경계를 따르다가 큰고개까지 가서 다시 창령군으로 들어서게 된다. - 바위봉우리에 올라앉아서 한참을 쉬다가 점심 먹을 자리를 찾아 봉우리를 내려선다.
화기애애한 점심시간을 보내고 길을 이어가는데 굵은 산딸기가 유혹한다. 딸기를 따먹으며 신나게 걸어가는 중 김은필 님과 정사용 님이 동시에 걸음을 멈추고 뭔가를 두고 서로 가지려고 힘쓰기를 한다. 결국 김은필 님의 손이 쟁취를 했지만 뭔지는 말하지 않고 싱글벙글 미소를 지으며 앞서간다. 부곡온천지구내에 건물이 나무사이로 시야에 들어온다.
12:54 ‘큰고개’에는 나무이정표(화왕산 17km, 덕암산 1.6km, 부곡온천 1.3km)가 서있다. 이진용 님은 다시 이곳에 오기 힘드니 덕암산(543.9m)을 오르자 했고 다른 대원들은 오늘 목표대로 이곳에서 부곡온천으로 내려가자고 했다. 결국 부곡으로 내려가는 것으로 결정이 났다. 이때 전화가 울렸다. 휴대폰 주인이 전화기를 가지러 곧 갈 테니 기다려 달라는 것이다. 김은필 님은 기꺼이 기다렸다가 휴대폰을 주인에게 넘겨주고 산 아래로 발길을 옮긴다.
체육시설이 설치되어있는 곳에 서있는 이정표에는 종암산 1.3km, 약수터 130m, 큰고개 250m라고 적혀있다. 이제 길은 대로나 마찬가지다.
13:14 창녕군 광역상수도저장시설을 지나서 포장도로를 따라서 조금 더 내려가니 굵은 가지가 흉측하게 잘려진 느티나무가 나타난다. 새끼가 밑둥치에 둘러져 있는 것으로 보아 예전에는 이 나무가 마을을 지켜주고 그늘을 내어주고 주민들을 보호해준 정자나무가 아닌가 생각된다. 나무 바로 옆에는 ‘안동김씨세거지(安東金氏世居址)’라고 적힌 표석이 서있다. 조선인조 병자호란(1636년)이후에 안동 풍산현에서 이곳 영산현으로 거주지를 옮긴 곳이며 이를 기념하기위해 그 후손들이 2006년(丙戌年 淸明節)에 표석을 세웠다는 내용이 새겨져있다.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글로리온천 유스호텔’과 ‘로얄관광호텔’이 보인다. 원탕은 왼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도로를 따라 나가야한다.
산행 후 : 원탕에서 목욕을 했다. 하산뒤풀이를 하려고 중국식당에 들어갔지만 앉을 자리에 먼지가 소복하여 슈퍼마켓 앞에 내놓은 파라솔 아래에 자리를 잡고 맥주를 마셨다.
2007년 6월 17일 일요일.
거리 : 도상거리 약 11.5km.
시간 : 약 5시간 30분(보이는 바위봉우리에 모두 올라 경치구경하면서 많은 시간을 즐겼다.)
날씨 : 가끔 구름, 영상25도.
대원 : 이진용, 정사용, 오석홍, 김은필, 임상택, 곽인수, 권재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