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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교실 스크랩 독립운동가의 기념관을 찾아서
어등산나무꾼 추천 0 조회 38 14.02.10 09:55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담양 창평은 요즘은 슬로우시티로 유명하지만 일제시대 때에는 유일하게 일본인 자본이

침투할 수 없었던 민족자존의식이 강한 독립운동가들이 살았던 지역입니다. 이곳은 상월정을 중심으로 

여러 근대문화지도자들을 배출하였고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임진왜란 때에는

의병장으로 3부자가 순절한 장흥고씨들의 노블레스오블리제의 전통이 살아 있는 고장입니다.

3.1절을 맞이하여 이 고장의 가장 유명한 한말 의병장이었던 녹천 고광순 의사의 기념관을 찾아가

보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나 짓다만 기념관은 찾는 이 없이 아직도 완공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옛 독립운동의 기풍은 찾을 길이 썰렁하기만 하였습니다.

하루 빨리 녹천 고광순의사의 기념관이 완공이 되어서 창평을 중심으로한

이 고장의 드높은 독립운동정신이 널리 알려졌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2010년 3월 4일

 

 창평읍내의 남극루. 얼마전(1~2년전) 까지만 해도 곧 무너지고 귀신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던 이 누각이

다행히 보수를 통하여 창평의 명물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왼쪽 지평선 방향으로 석양이 지는 모습과

함께 남극루는 아주 멋진 남도의 절경중의 하나입니다.

 

오래된 나무들과 새로운 나무들

 

 남극루에 올라서 바라본 창평읍내

 

 

 남동쪽으로는 유천리가 자리잡고 있으며 그 뒤로는 월봉산과 호남정맥이 지나는 만덕산의 지맥이

병풍처럼 읍의 남동쪽을 에워싸고 있습니다.

 

 귀신이 나올 것처럼 쓰레기가 나뒹굴던 남극루 주변은 말끔이 정돈되었습니다.

 

 

 남극루의 날아갈듯한 모습. 학이 날개를 편 것 같습니다.

 

 월봉산 능선. 월봉산은 해발 5백여미터도 못되는 낮은 산이지만 긴 산맥을 가지고 있어서

중첩된 산봉우리가 구름속에서 솟아올라서 멋지게 보입니다.

녹천 고광순의사의 기념관을 찾아가기 위해서 월봉산 기슭 유천리에 갔습니다.

 

 잠시 기순도의 전통장담그기 체험장을 구경도 해보고

 

 

 

 마을에 핀 노란 반가운 산수유꽃도 감상합니다.

 

 

 

 

 2백여년된 소나무의 모습입니다. 마을의 당산나무처럼 천제단을 놓고 제사를 지내고 있습니다.

 

 

 근처에는 요상한 불상을 많이 세워 놓은 절이 있습니다.

 

 지붕의 색깔과 벽의 벽돌 색깔들이 조화를 이루며 멋진 전원주택도 보입니다.

 

 한말 의병장 녹천 고광순의사의 기념관에 왔습니다.

 

 

 

 불행하게도 아직 기념관이 완공이 안되고 뎅그라니 건물 몇채만 들어섰을 뿐 아무런 기념품도

기념시설도 갖추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일단은 멋진 터를 잡았으니 이제 내부를 꾸미는 일은 머지 않아 잘 마무리되리라고 봅니다.

 

 

 우선 진흙땅에 잔디라도 심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당안에 모셔질 영정이라든가 하는 것도 빨리 준비되었으면....

 

 

 유천리 녹천 고광순 의사의 기념관을 뒤로 하고

유천리 동북방에 자리하고 있는 용운리로 와서 상월정을 향해 갑니다.

기념관으로부터 상월정까지는 약 1.5km의 거리로 길을 잘 연결한다면

큰 돈을 들이지 않고도 멋진 <독립운동가의 길> 혹은 <항일구국의 길>을 완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용운리 위쪽에 있는 용운저수지

 

  

  

 

 월봉산 가는 길 중간쯤에 상월정은 자리잡고 있으며 상월정에서는 근대 정치계와 문화계에

영향을 준 인촌 김성수, 고하 송진우, 가인 김병로등 인재가 신학문을 공부하기

시작하였던 유서깊은 곳입니다.

 

 편백나무가 우거진 숲길을 걸어들어갑니다.

 

 

 문화재를 빈틈없이 잘 보수관리해야 할 것입니다. 상월정에서 옛 선현들의 뜻을 되새겨 보고

다시 오솔길(차 한대가 다닐 만한 숲길)을 걸어 내려와 용운리로 왔습니다.

 

 용운리의 돌담과 축대들. 시멘트로 덮힌 곳이 옛날에는 개울이었으니까 수해를 예방하기 위하여

든든한 축대를 쌓았겠지요....

 

 자연스런 돌담

 

 넓은 정원을 갖춘 전원주택

 

 고풍스런 돌흙담

 

 

 앞에 보이는 파란 건물이 마을회관입니다. 마을 회관에서는 노랫소리가 흘러나오고...

 

 작지만 평화로운 마을입니다. 그러나 세월의 흐름을 비껴갈 수는 없습니다. 낡아가는 돌담.

 

 

다음은 2006년 광주전남데일리안에 실렸던 독립운동가 녹천 고광순의사의 기념관에 관한 기사입니다.

 

녹천 고광순 의병대장 순국 100주년 추모대제 2006/10/31 16:33[데일리안]http://blog.naver.com/jdp0053/100030205192

<녹천 고광순 의병대장 순국 100주년 추모대제 1일(2006년 11월1일) 오전 11시 담양군 창평면 유천리 기념관에서>

 

구한말 호남지역 의병의 선봉장이었던 녹천(鹿泉) 고광순(1848~1907)선생 순국 100주년 추모대제가 담양 창평에서 열린다.
 
한말의병대장 녹천 고광순의사 기념사업회(회장 고재춘)는 11월 1일 오전 11시 창평면 유천리 녹천 고광순 의병대장 기념관에서 녹천 고광순 의병대장 순국 100주년 추모대제를 봉행한다.

이날 추념행사에는 국가보훈처·광복회·순국선열유족회·국민문화연구소·담양향토문화연구회·(주)금광기업 등이 후원한다.

창평면 유천리가 고향인 녹천 선생은 한말 전남북 일대에서 항일 의병활동의 선봉장으로 활약했다. 그는 1906년 창평에서 궐기해 화순읍과 남원성 등에 주둔한 일본군을 공격해 전과를 올렸으며, 60세가 되던 1907년 구례 연곡사에서 일본군과 싸우다 장렬히 전사했다. 매천 황현의 매천야록에도 녹천선생의 항일투쟁이 자세히 기록돼 있다. 정부는 녹천의 이같은 공훈을 기려 지난 1962년 3월 건국공로훈장을 추서했다.

녹천은 임진왜란때 700의사의 지도자로 알려진 제봉 고경명 의병장(광주 광산구에 소재한 포충사에 영정이 모셔짐)의 둘째아들인 학봉 의열공 고인후의 사손이다.

이날 100주년 추념대제가 열리는 '녹천 포의사 기념관’은 녹천선생의 항일 의병정신을 자라나는 후손에게 널리 알리기 위해 창평면 유촌리 일대에 건립중에 있다.

‘녹천 포의사 기념관’은 사업비 19억1천900만원(국비 7억6천900만원, 도비 3억원, 군비 6억5천만원, 특별교부세 2억원)을 들여 지난 2004년부터 3년여동안 녹천선생의 사당과 내삼문, 외삼문을 완공하고, 현재 유물전시관과 진입도로 공사가 한창이다.

군은 앞으로도 국도비 등 40억여원을 확보해 관리사무소·충의교육장·생가를 복원, 호남의병의 본거지가 담양임을 인식시키고 자라나는 세대를 대상으로 충효사상과 민족정신을 함양하는 교육장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녹천 선생 기념사업회는 “녹천 포의사 기념관 건립과 100주년 추념대제를 계기로 의병운동의 본거지인 창평과, 독립운동을 선도했던 녹천선생의 의기를 전국에 널리 알리게 될 것”이라며 “이 기념관이 청소년들의 충효 교육장으로도 활용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태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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