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된 구두를 고르는 일은 생각보다 단순하지가 않다. 하루 종일 수십 킬로그램의 체중과 거기에 보태진 보행의 하중을 견뎌내는 일은 의복이 담당하는 기능 중 가장 고된 노동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구두에 ‘디자인을 위한 디자인’은 있을 수 없다. 앞코의 작은 능선이나 구석에 있어 보이지도 않는 박음질 하나하나까지 모두 고도로 계산되고 정밀하게 마감된 기능과 맞닿아 있다.
구두에서만큼은 뛰어난 기능이 곧 진정한 미학이다. 기계로 찍어내고 접착제로 붙여서 만든 구두가 아무리 예뻐도 장인이 직접 매만지고 한 땀 한 땀 다듬어서 ‘빚어낸’ 구두의 멋을 따를 수 없는 이유 역시 거기에 있다.
무엇보다 남성구두에서 그런 특징을 두드러지게 발견할 수 있다. 남성구두는 여성의 그것과는 완전히 별개로 독립된 세계를 갖고 있다. 전문적 기술과 다양한 소재의 기술적·미학적 가치에 대한 조예, 구두의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까지 갖춘 사람만이 제대로 된 선택을 한다는 룰이 적용되는 세계, 신발을 그저 몇 년 신다 버리는 소모품으로 생각지 않는 세계, 제대로 만들어진 진정한 ‘명품’ 신발이라면 대를 물려줄 수도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세계다. 이처럼 남자 구두가 가져야 할 가치를 정면에서 대변하고 있는 두 개의 브랜드가 알든(ALDEN)과 존 롭(JOHN LOBB)이다.
4대째 代 물린 가족 기업… 알든
올 초 국내에 소개된 알든은 미국에서 4대째 대를 물린 가족 기업 브랜드. 1884년 문을 연 이래 지금까지 클래식한 아메리칸 스타일 구두를 만드는 것으로 명성이 높다. 알든 제품 중 가장 유명한 건 코도반(cordovan) 소재 구두다. 말가죽, 그것도 한 마리당 구두 두 켤레 만들 분량이 겨우 나올까말까 할 만큼 희귀한 엉덩이 가죽을 일컫는 코도반은 통상적으로 사용되는 카프(calf·생후 6개월 미만 소가죽)보다 조직이 치밀해서 구두로 제작했을 때 거울같이 반짝이는 독특한 광택은 물론 내구성도 한결 뛰어나다는 게 알든 측의 설명.
알든의 정식 수입처인 남성구두 전문 편집매장 ‘일 치르꼬(Il Circo)’의 강재영 매니저는 알든의 구두를 ‘클래식한 아메리칸 스타일의 전형’이라고 표현했다. “알든은 남성구두 중에서도 피팅(fitting·발의 굴곡에 잘 맞는가)을 최우선으로 하는 브랜드입니다. 전형적인 아메리칸 스타일이란 실루엣이 전체적으로 둥그스름하고 앞코가 다소 넓은 편이며 튼튼해 보이는 외관이 특징입니다. 코가 날렵하고 길며 화려한 색이 강조된 이탈리아 브랜드나, 그에 비해선 코가 둥글지만 포멀하고 점잖은 이미지가 있는 영국 브랜드와는 차별되는 부분이지요.”
강 매니저는 “납작하지 않고 볼륨감을 살린 어퍼(upper·구두의 윗부분)와 어퍼보다 큰 아웃솔(outsole·바닥 창 부분)을 사용해 편안함을 강조한 디자인은 다소 투박한 느낌을 주지만 실용적이어서 활동량이 많은 비즈니스맨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고 전했다. 일 치르꼬에선 알든의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내는 5가지 라스트(구두 모양을 결정하는 나무틀)를 선정, 수입한다. 그중엔 한국인의 발 모양에 가장 편안하게 맞는 ‘트루플레어(Truflare)’ 라인도 포함돼 있다. 강원식 일 치르꼬 대표는 “서양인과 동양인의 발 모양 차이를 섬세하게 느끼는 고객이 많아졌고 트루플레어 라인을 찾는 구두 매니아 역시 점차 늘고 있다”고 전했다.
160년 전통, 하루 100켤레만… 존 롭
한편 1850년 작은 맞춤구두가게로 시작해 160년의 전통을 이어온 영국 브랜드 존 롭은 영국 왕실이 사랑하는 구두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현재도 왕실의 공식 품질인증을 받아 계속해서 공급계약을 이어가고 있는 존 롭의 구두는 작곡가 라흐마니노프, 성악가 엔리코 카루소,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 영국의 처칠 수상과 영국 왕족을 비롯해 역사적 저명 인사들의 발끝에서 빛났던 구두이기도 하다.
영국의 가장 오래된 구두 메이커 중 하나인 존 롭은 1976년 에르메스그룹에 합류된 이후 세계적으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국내엔 2004년 신라호텔 아케이드에 처음 문을 열었고 2009년부터 갤러리아 명품관에도 매장이 들어섰다. “존 롭은 자부심이 매우 높은 브랜드입니다. 필요 이상의 정보를 외부로 유출하는 일도 없고 홍보에도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전세계는 물론 국내에서도 VVIP 고객들이 찾아옵니다.” 존 롭 홍보팀 하은정 과장의 말이다.
존 롭은 이 최상류층 매니아들을 위해 고객이 자신의 취향에 맞게 가죽과 박음질의 색상 및 디자인을 선택할 수 있게 한다. 국내 매장에서도 1년에 두 차례 영국 수석장인이 내한해 고객 한 사람 한 사람의 발에 맞춰 구두를 제작해주는 ‘비스포크’ 행사를 진행한다. 하루 100켤레만 완성하는 구두인 만큼 일일이 수작업으로 제작하는 건 기본. 여기에 구두 제작 전문가들이 최고급 기술로 여기는 존 롭만의 전통적 박음질이 신발 형태 유지에 기여한다.
하은정 과장은 “국내 존 롭 매장엔 기존 명품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진 동시에 나만의 명품을 찾는 고객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신라호텔 아케이드 매장 이은실 점장에 따르면 존 롭 구두의 고객 중엔 40~50대 경영인과 방송인, 전문직 종사자가 많다. 일본인도 단골 고객 리스트에 다수 올라 있다. 이 점장은 “새로운 고객보다는 존 롭 구두를 신어본 고객이나 지인의 추천을 받아 방문한 고객, 선물 받은 이후로 꾸준히 구입하는 고객이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전했다.
명품구두의 조건은 밑창
명품구두의 조건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강원식 일 치르꼬 대표는 구두 제조 방식의 중요성에 대해 역설했다. “남성구두는 특히 제조 공법이 중요합니다. 착화감부터 수명까지 구두의 가치를 결정하는 모든 요소가 제대로 된 제조 방식에서 출발합니다.”
그에 따르면 구두는 어퍼 부분과 바닥 부분을 접합하는 기술이 관건이다. 알든이나 존 롭의 구두는 모두 최고급 기술인 ‘굿이어 웰티드(Goodyear Welted)’ 기법으로 제작된다. 이는 ‘웰트(welt)’라 불리는 가는 가죽을 덧대어 어퍼와 솔을 직접 꿰매는 방식으로, 일반 구두가 플라스틱 솔을 주조해 본드로 접합하는 것과 달리 장인이 일일이 손으로 작업해야 하는 최고급 기술이다. 알든은 그중에서도 구두 전체에 웰트를 360도로 돌려 아웃솔을 부착하는 ‘올라운드 웰티드’ 제법을 채택하고 있다. 이 제법으로 제작된 구두는 착화 시 안정감과 내구성을 보장함은 물론 밑창이 닳으면 바닥 전체를 뜯어내고 교체해 새 구두처럼 수리할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
일 치르꼬는 현재 매장 내 판매 제품에 대해 이 같은 밑창 교체 서비스를 계획 중이다. 강원식 대표는 “대(代)를 물릴 수 있는 제품이라야 진정한 명품으로 불릴 수 있을 것”이라며 “남자가 제대로 된 방식으로 제작된 구두를 신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알든 02-542-3156(일 치르꼬)
존 롭 02-6905-3993(갤러리아백화점 명품관)
02-2230-1159(신라호텔 아케이드)
/ 최혜미 패션칼럼니스트 meetdream@gmail.com
첫댓글 좋은글 감사 합니다. 웰트 오리지날은 가죽으로 덧데어서 만들어진것 처음 알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