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씨남정기(謝氏南征記)·김만중
줄거리
명나라 개국 공신 우기의 후손 유희에게는 유연수라는 아들이 있었다. 어머니를 일찍 잃었지만 훌륭하게 자라나 15살에 과거에 급제하여 한림학사가 된다. 그리고 숙덕과 재학을 갖춘 사씨와 결혼을 했다. 그런데 사부인이 자식을 낳지 못하자 스스로 유연수에게 첩을 얻을 것을 권한다. 유연수는 마지 못하여 교씨를 첩으로 맞이한다. 그러나 이 교씨가 아들을 낳자 간교해지기 시작했고, 그 뒤 사씨도 아들을 낳자 후사를 두려워하게 되어 사씨를 모함하기 시작한다.
마침 동청이라는 문객이 서사로 천거되어 들어왔는데, 그는 성격이 간악하나 인물이 잘나고 언변이 뛰어나며 글씨도 잘 썼다. 한편으로 동청과 사통하며 그와 함께 사씨를 참소할 계교를 세우던 교씨는 사씨의 글씨를 위조케 하여 유연수로 하여금 사씨를 멀리하게 한다.
얼마 후 사씨가 모친 병 때문에 친정에 가고, 유연수도 산동 지방으로 파견간다. 이에 교씨와 동청은 사씨의 옥지환을 빼내 다른 남자와 정을 통한 듯한 모함을 한다. 결국 교씨의 모함에 넘어간 유연수는 사씨를 내치고 교씨를 정실 부인으로 삼는다.
쫓겨난 사씨는 교씨가 보낸 냉진에게 쫓겨 천신만고 끝에 수월암에 머물게 된다. 그러는 사이 유연수도 동청과 교씨의 모함으로 엄승상에 의해 유배되고, 동청은 엄승상의 도움으로 지방관이 되어 간다. 그리고 시녀 설매는 교씨로부터 사씨의 아들을 죽이라는 사주를 받았지만, 양심의 가책으로 죽이지 않는다.
그런 뒤 유배에서 풀려난 유연수는 설매를 통해 전후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나 동청 일당의 추격을 받아 강물에 투신하게 되는데, 마침 묘희의 도움으로 살아나고 사씨를 극적으로 상봉하여 자신의 잘못을 뉘우친다.
한편 엄승상의 죄가 폭로되어 처벌되자 동청도 함께 죽음을 당하고, 교씨는 다시 냉진과 사통하다가 그가 죽자 기생이 된다. 유연수는 벼슬이 다시 높아지고 사씨의 권유로 임씨녀를 첩으로 맞이하게 되고, 아들 인아도 찾는다. 그리고 교씨를 잡아들여 죽인 뒤 사씨, 임씨 부인과 함께 부귀영화를 누리고 산다.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인간에 있어서의 덕성을 강조함으로써 민비 폐출의 부당성을 풍간하기 위한 풍간소설이다. 작가 김만중이 이 작품에서 표현하고자 했던 주제는 일반적으로 쟁총(爭寵)으로 보고 있으나, 오히려 덕(德)으로 보는 편이 타당하리라 생각한다. 예를 들면, 성혼 과정에서 매파가 사소저의 미색을 칭찬하자 유현은 덕을 강조하여 말했고, 또 사부인이 남편 유한림에게 소실을 얻도록 주선해주는 것은 부덕(婦德)의 소치이다. 그리고 교씨의 간교로 인해 시가에서 쫓겨난 사부인이 친정으로 돌아가지 않고 시부모의 산소에서 지내는 것은 끝까지 덕을 실행해보려는 강인한 의지의 발로라고 하겠다.
인물 구성을 보면, 사씨 부인은 고매한 부덕의 소유자로 설정해 놓은 반면, 첩인 교씨는 간교한 여인으로 등장시켜 악녀를 선녀에 대입시킴으로써, 상대적으로 사씨 부인의 인격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에서 유한림의 숙모인 두부인은 선악을 판단하는 사리 판별자로서 역할을 하며, 또 다가올 일을 암시하는 복선의 기교적인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이 소설의 구성면에 있어서는, 다른 고전소설들에서와 마찬가지로 천우신조(특히 꿈)가 사건 전개에 큰 구실을 한다. 사씨 부인이 시부모 묘하에 쫓겨나 있을 무렵 두부인의 위조편지를 받고, 비몽사몽간에 최부인이 현몽하여 위기를 모면하게 되는 일, 여승 묘혜가 사씨 부인과 상봉하여 사씨 부인의 곤경을 벗어나게 해준 것도 꿈의 계시에 의해서였다. 또 유연수의 중병을 고치는 일, 위기에서 구출되는 일 등 모두가 현몽의 덕분이다. 이처럼 꿈을 지나치게 많이 사용한 것은 이 작품의 구성상의 흠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소설의 시대상의 배경은 숙종의 인현왕후 폐출 사건에 있으나 소설 내용상의 배경은 중국 명나라 시대로 하고 있다. 이것은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의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날카로운 저항의식을 숨기기 위함일 것이다. 이 소설은 이러한 목적의식 때문에 인물의 배치나 사건의 전개에 어떤 한계를 주어 작품의 문학성이 위축될 위험을 내포하고 있으나, 김만중의 작가적 능력은 이를 훌륭히 극복하여 작품적 성과를 발휘하였다.
핵심 정리
·갈래 : 고전 소설, 가정 소설, 풍간(諷諫) 소설, 목적 소설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문체 : 문어체, 산문체
·배경 : 시간-명나라 초기. 공간-중국 북경 금릉 순천부
·주제 : 사씨의 부덕(婦德)과 사필귀정
·출전 : 경판본(목판본) 『사씨남정기』
작품 구성
·발단 : 성혼(成婚 ; 유연수와 사씨의 결혼 및 후사의 단절)
·전개 : 요망한 첩(첩 교씨의 흉포함)
·위기 : 간악한 문객(문객 동청과의 음모 및 유한림에 대한 참소)
·절정 : 가화(家禍 ; 사씨의 폐출 및 유한림의 유배)
·결말 : 남정(南征 ; 사씨의 시련)-가운회복(사씨와의 해후 및 교씨 처형)
등장 인물
·사씨 : 현모양처로서 성품이 곱고 착한 여인의 전형.
·교씨 : 위선적이며 교활하고 표독스런 악인의 전형.
·유연수 : 한림학사. 판단력이 없고, 양반사대부가의 가부장적 사회에서 봉건적 사고방식을 지닌 전형적 인물. 그러나 본성은 착하다.
·동청 : 교씨의 정부(情夫)로써 악인의 전형
·엄숭 : 유한림을 제거하는데 앞장을 서는 간신.
----------------------------------------------〔학습 문제〕----------------------------------------------
1. 이 작품의 창작 동기는 역사적 사실과 어떤 관계가 있나요?
☞작품의 줄거리가 창작 당시 인현왕후 폐위 사건과 흡사한 점에서 작자는 이 작품을 통해 숙종의 처사를 풍자하는 한편, 숙종의 마음을 돌려보고자 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이 작품은 작자가 송시열 등과 함께 인현 왕후 축출을 반대하다가 남해로 유배가 있을 때 지은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강한 목적성을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2. 작품 내적인 측면만을 고려할 때, 이 작품에서 비판하고자 하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양반사대부 가문에서 일반화되어 있는 축첩제도가 얼마나 커다란 불행과 사회적 악덕을 낳는가 하는 것을 보여 주려 했으며, 나아가 선은 승리하고 악은 망한다는 윤리 도덕적 문제도 제기하고있다.
3. 이 소설의 유형을 내용과 관련지어 구분해 보아요.
☞작품 외적인 측면을 고려한다면 숙종의 심적 변화를 유도하기 위한 목적성을 띈 일종의 풍간 소설로 볼 수 있으며, 왕가의 수신제가(修身齊家)가 그릇되었음을 세간에 알려 윤리 도덕적으로 인간이 나아가야 할 올바른 도를 교시하려는 도덕 소설로 볼 수도 있다. 또한 당시 양반가에서 일반화되어 있는 축첩제도의 불합리성을 사회 문제로서 제기한 사회 소설로도 볼 수 있다. 내적인 측면만을 고려한다면 선량한 인간과 악한 인간의 대결에서 결국 선이 승리한다는 전형적인 교훈 소설로 볼 수도 있다.
----------------------------------------------〔참고 자료〕----------------------------------------------
서포의 종손(從孫)인 북헌(北軒) 김춘택(金春澤)이
"서포는 한글로 소설을 많이 지었다. 그 중 「사씨남정기」는 보통 소설에 비길 바가 아니다. 그래서, 내가 한문으로 번역하였다. 소설이란 한결같이 허무맹랑한 것은 아니다. 백성을 계몽하고 세상을 교화하는 데에는 이 「사씨남정기」가 가장 훌륭하기 때문이다."
라 했고, 이규경이 「오주연문」에서 「사씨남정기」를 쓴 동기를
"숙종이 인현왕후를 내쫓고 장희빈을 맞아들인 처사를 못마땅히 여기고 왕을 깨우쳐 뉘우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라고 풀이했다. 즉 이 작품이 일종의 '목적소설'임을 암시하는 말들이다. 이 소설이 숙종의 이후의 행동에 영향을 주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작품이 숙종의 손에 들어갔던 것만큼은 분명하다.
서포의 형은 김만기인데 그의 딸이 숙종의 첫 부인인 인경왕후였다. 즉 김만기는 임금의 장인(부원군)이다. 당시는 당쟁이 치열했는데, 그들은 서인당의 핵심 인물들이었으므로, 남인당과 극심히 대립하고 있었다. 인경왕후가 죽자 인현왕후(민비)가 계비로 들어왔다. 그러나 인현왕후는 아들을 못 낳고, 희빈 장씨는 아들을 낳았는데 이 아이가 <균>으로 뒤에 <경종>이 되는 인물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서포는 숙종에게 '장씨가 천첩 소생이라는 말도 있으니, 너무 가까이하지 말고 수양하라'고 아뢰자 화가 난 숙종은 김만중의 관직을 빼앗고 귀양 보낸다. 드디어 인현왕후 폐비사건이 발생하고 <균>이 왕세자로 책봉되며, 희빈 장씨가 왕비로 승격된다. 이러한 혼란 속에 유배지에서 이 작품을 완성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작품의 제목을 분석해 보면, 사씨가 남쪽으로 쫓겨갔다는 뜻으로 결국 진실이 밝혀져 명예회복을 하게 된다는 의미가 담겨 있는데, 혹자는 '남정(南征)'의 의미를 '남인 정벌'의 의미로 해석, 인현왕후를 편들던 서인의 거물 김만중이 자신의 정치적 복권을 노리고 썼을지도 모른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숙종┎------ 인현왕후 ------ 없음 ┕------ 희빈장씨 ------ 균(경종) |
유연수 ┎------ 사씨(처) ------ 인아(아들)
┕------ 교씨(첩) ------ 장주(아들) |
사건에 얽힌 인물들을 표로써 대응시켜 보면 위와 같고, 사건 자체를 표로써 대응시키면 아래와 같다.
희빈 장씨의 무고(誣告) ↓ 인현왕후의 폐위(廢位) ↓ 인현왕후의 복위(復位) |
교씨의 모해(謀害) ↓ 사씨의 추방(追放) ↓ 사씨의 복권(復權) |
그러나, 소설 속의 허구의 세계와 현실에서 일어난 사건들과를 혼동해선 안된다. 소설은 어디까지나 현실로부터 유추된 허구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역사는 '일어난 사건'을 사실대로 기술할 뿐이며, 소설은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사건'을 만들어 낸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숙종은 서포가 죽은 뒤 인현왕후를 실제로 복위시킨다.
「사씨남정기」는 양반사대부 가문인 유한림의 가정과 서로 다른 양반사대부들의 생활을 배경으로 하여 벌어지는 사정옥과 교채란 사이의 갈등을 통해 축첩제도의 불합리성을 비판하고 있으며 동시에 양반가정의 추악한 내막을 드러내고 있다. 구성은 '성혼', '요망한 첩', '간악한 문객', '가화', '남정', '가운회복' 등 제목을 단 몇 개의 장들로 나뉘어 있는데 이야기줄거리는 크게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소설의 앞부분은 '성혼'부터 '가화'까지이다.
금릉 순천부의 명 가문에 한림 학사 유연수와 아내 사정옥이 살고 있었다. 그러나 결혼 후 10년이 지났어도 둘 사이에는 가문의 대를 이어줄 자식이 없었다. 그리하여 사씨는 어느 날 남편에게 첩을 맞아들일 것을 간청한다. 유한림이
"어찌 일시 자식이 없음을 한탄하여 첩을 얻겠소. 첩이 들어오면 집안이 어지러워지는 법인데, 부인은 왜 화를 자청하시오? 천부당만부당하니 그런 생각 마시오."
라고 반대하지만 사씨는 끝내 자기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마침내 교채란이 첩으로 들어온다. 그녀는 제 스스로 늘 말하기를,
"가난한 집 선비의 아내가 되느니보다는 공후 부귀가의 첩이 되는 것이 좋다."
고 말해온 여인이다. 이때 교씨의 나이는 이팔청춘이었으나 성품이 교활하여 유한림의 비위를 잘 맞춰주었고 사씨를 섬기는 것도 극진해 보였다. 유씨 가문엔 전에 없던 기쁨과 화기가 떠도는 듯하였다. 사씨는 두말할 것도 없고 유한림도 이제 자식을 보게 될 것을 생각하면서 기쁨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일시적이며 피상적인 것이었다. 교씨는 유한림의 사랑을 독차지하려고 노래와 탄금(彈琴)으로 그의 마음을 유혹하는 한편, 동청이라는 한량을 끌어들여 그와 함께 남몰래 부화방탕한 생활을 하면서 갖가지 흉계를 꾸미다 마침내 자기 소생인 장지까지 죽이고 그 죄를 사씨에게 덮어씌운다. 간계에 속은 유한림은 십 년 세월 함께 살아온 사씨를
"천지간에 용납 못할 죄를 저지른 음부, 방자하고 음흉한……"
운운하면서 집에서 내쫓는다. 이때부터 서글프고 괴로운 사씨의 '남정'이 시작된다.
소설의 뒷부분은 '남정'부터 '가운회복'까지이다.
집에서 쫓겨난 사씨는 시부모 선산에서 초가집을 얻어 여생을 마치려 한다. 그러나 행방을 알아낸 교씨는 동청과 함께 또다시 흉계를 꾸며 냉진이라는 사나이를 보내어 사씨의 절개를 꺾으려 하지만 사씨가 먼저 떠났기에 실패로 돌아간다. 한편 유한림도 자신들의 죄상이 드러날 것을 두려워한 교씨와 동청의 모함으로 간신 엄승의 손을 빌려 '임금을 기롱한' 죄로 귀양가게 된다. 유씨가문은 마침내 파산몰락의 운명에 처해지게 된다. 그러나 곧 황제의 은사령으로 유한림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자기를 모함한 원수들의 행차와 마주친다. 이를 안 교씨와 동청은
"그놈이 죽어 타향 귀신이 될 줄 알았는데 살아 돌아오다니, 만일 다시 득의(得意)한다면 우리는 살지 못할 것이다."
하고 건장한 관졸 수십 명을 뽑아 유한림의 목을 베어오면 천금의 상을 주겠노라고 한다. 쫓기던 유한림은 진퇴양난의 위기에서 쪽배 한 척을 발견하고 탈출하는데 성공하고, 그 배에는 소복단장한 부인이 그를 맞이하는데 그녀는 바로 사씨였다. 이 무렵 조정에선 전횡을 일삼던 엄승상이 처형되고 동청과 냉진도 차례로 처단된다. 교씨는 낙양땅에 도망쳐서 창루의 창기로 타락한다. 예부상서로 복위된 유연수는 사씨부인을 데리고 서울로 가던 중에 교씨를 만나 그녀를 처단한다.
전반부는 유연수 가문 내에서의 갈등을 주로 다루었고 후반부는 조정에서의 정치적인 사건의 해결을 주로 다루었다. 임진왜란 이후 양반사대부들 내에서 첩을 맞아들이는 일이 더욱 빈번해짐에 따라서 그것이 빚어내는 악덕은 사회적 문제가 되었다. 작가는 이러한 축첩제도의 불합리성을 비판하는데 그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나아가 착한 것은 승리하고 악한 것은 망한다는 궁극적인 도덕윤리 문제도 제기하고 있다.
작품 내에 수많은 인물이 등장하는데 다양한 묘사를 통해 인간의 성격을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 많은 시비들과 창두.유모 그리고 배장사꾼 등이 교씨.동청.냉진을 '하늘 땅에 용납 못할' 사람으로 증오하고 사씨부인의 비극적 운명을 동정하고 있는 것은 당시의 민중들의 도덕관념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사씨는 집에서 쫓겨났지만 결코 패배한 것이 아니라 결국은 승리하고 만다는 결말 처리가 이러한 사정을 반영한다. 유연수는 가장으로서 언뜻 보기에는 학식이 있고 사리에 밝은 사람으로 조정에서는 간신 엄승상의 박해를 받는 것으로 되어 있으나 본질적으로 수신제가를 못 이룬 무능한 양반관료에 불과하다. 그는 교씨의 흉계에 속아 사씨를 내쫓을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도 똑같은 궁한 처지에 빠진다. 눈여겨 볼만한 인물로 유한림의 고모인 두부인이 있다. 그녀는 유씨 가정의 어른으로서 오랜 생활체험을 통해 축첩제도의 불합리성을 깨달은 인물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사씨가 자진해서 첩을 맞아들인다고 했을 때,
"속담에 이르기를 한 말에 두 안장이 없고 한 밥 그릇에 두 숟가락이 없다 하더라, 지금 시속이 예전과 다르고, 성인이 아닌 범인으로서 어찌 투기가 생기지 않으리라고 장담하랴. 공연히 옛날의 미명(美名)을 사모하여 화근의 씨를 뿌리지 않도록 함이 좋다."
고 타이른다. 이러한 인물의 설정은 작가가 축첩제도에 대해 비판적 견해를 갖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사씨남정기」는 특히 교씨.동청.냉진 등 부정적 인물들의 성격을 묘사하는 데에서 매우 사실주의적이다. 동청과 냉진은 전형적인 악인이다. 그들은 모두 양반가의 자손들로 주색과 사기, 모략과 아부를 일삼는 패륜아들이다. 그들은 교씨와 한 짝이 되어 음탕한 생활을 하면서 자신들의 야욕을 채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작품에서는 이들을 간신 엄승상과 연계시켜 놓고 그들의 성격을 사회관계 속에서 밝히고 있다.
작품은 또한 까다로운 한문투의 표현을 피하고 구어체에 접근하여 속담이나 격언 등을 적절히 이용하여 우리말을 능숙하게 구사하고 있다. 그러나 작품은 권선징악적 관념과 봉건적인 각도에서 사씨부인의 성격을 지나치게 이상적으로 묘사한 한계를 갖고 있다. 사씨는 양반가문에서 자라났고 유씨 가문에 시집온 후에도 전통적인 유교의 윤리규범대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여인이다. 그녀가 가문의 대를 잇기 위해 자진해서 첩을 맞아들이는 것, 누명을 뒤집어쓰고 유씨 가문에서 쫓겨난 다음에도 남편의 선산에 가서 살려는 것 등이 다 '착하고 현숙한' 며느리로서의 도리를 다하려는 데서 비롯된다. 그녀의 이러한 판단과 처신은 유교적인 삼종지의(三從之義)를 따르는 것으로 작가 자신의 가치관이 봉건적 도덕성을 옹호하고자 하는 한계성을 지닌 것으로 판단된다.
이 작품은 후대 소설 창작의 모범이 되면서, 이후 많은 모방작들이 나타났다. 그런 의미에서 17세기 중.후반기에 들어 본격적인 소설시대를 연 문학사적 의의를 지닌다. 최근 이 작품과 매우 유사한 구성이나 지향, 주제의식을 보이는 「창선감의록(彰善感義錄)」을 중심으로 이러한 초기 장편소설 발생의 측면에 주목해 '규방소설'이라는 유형을 새롭게 설정하기도 한다.
서포는 작품을 통해서, 진실은 언젠간 드러나며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는 교훈을 주려 했으며, 시대적 상황을 작가적 안목으로 형상화하는데 성공했다. 또한 당시 천대받던 한글로 작품을 완성한 점도 높이 평가해야 하겠다.
■ 형성 평가
♣ 이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무엇인가.
▶ 숙종이 인현왕후를 폐출하고 장희빈을 중전으로 책봉한 사건에 대한 풍간
♣ 이 글에서 사씨는 어떠한 성격을 보이는가?
▶ 늦도록 소생이 없음을 근심하여 남편에게 소실을 얻도록 하고, 시집에서 축출당하면서도 한 마디 변명도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친가로 가지 않고 시부모의 산소 아래 초옥을 얻어 거처한다. 이것은 사씨의 인품이 현숙함을 암시하는 것인 동시에 가문에 대한 자긍심의 발로라 하겠다. 이로써 사씨는 가부장적 사회 제도에 순종하는 표본적 인물임을 알 수 있다.
♣ 이 작품을 인현 왕후 폐비 사건을 비판한 정치적 목적 소설로 볼 때, 다음에 제시된 부분은 어떤 사실을 풍자한 것인지 말해 보자.
<다음>
이튿날 한림이 일가 친척을 모두 청해 놓고 사씨의 전후 좌상(罪狀)을 이르고 기어코 쫓아낼 것을 말하니, 모든 사람이 본디 사씨의 친절함을 알고 모두 한림의 망령(妄靈)임을 짐작하나 모두 한림에게 먼 일가 아니면 손아래 사람이라 뉘 즐거이 고집을 부려서 한림의 뜻을 거스르리오. |
▶ (조정에 바른 말로 임금에게 간(諫)하는 신하가 없음)
♣ 이 글에 등장하는 유한림은 어떠한 성격의 인물인가?
▶ (명분과 의리를 중시하는 사람이지만, 쉽게 남의 참소를 곧이 들을 정도로 심지가 굳세지 못하다.)
2000 대학입학 수학능력시험 문제
[50∼54]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가) 각설 이 때 한림〔유연수〕이 물가를 따라 점점 가며 탄식하되, “내 당초에 혼미하고 용렬(庸劣)하여 요사한 말을 귀담아 들어 현인(賢人)을 방출하여, 위로 조상 제사를 받들지 못하고 아래로 처자의 성명을 보전치 못하고 또 신세 만 리에 떠돌고 문호(門戶) 하루 아침에 몰락하니, 이 또한 만고의 우부(愚夫)요 천지간 죄인이라. 부부의 정이 사씨에게 멀어지고 부장의 정이 인아(麟兒)에게 단절하니 살아 무엇하리오.”
무수히 탄식하며 악주(岳州)에 이르러 강가에서 방황하며 어부를 만나면 문득 사씨의 소식을 탐문하되 종족이 막연하고 소식이 묘연하니 한림이 더욱 원통하고 울적함을 이기지 못하여 강촌에 가 곳곳에 묻더니 촌사람이 말하되,
“그 때 사씨 회사정(懷沙亭)으로 향한다 하더니다.”
오래 듣다가 황망히 행하여 회사정 아래 이르니, 고목의 잎이 누렇게 떨어진 가운데 인적이 끊어지고 여러 짐승들이 좌우로 울되, 다만 눈앞에 보이는 바는 동정호 (洞庭湖) 구의산(九疑山)과 소상(瀟湘)의 저물 무렵의 구름이더라.
한림이 방황하며 탄식하더니 홀연 벽 위의 글을 보니 크게 썼으되, ‘모년 모월 모일에 사씨 정옥은 물에 빠져 죽노라.’ 하였거늘 한림이 크게졸라 대성통곡 왈,
“무죄한 부인을 이 지경에 이르게 하였으니, 슬프다, 나의 용렬함이여. 비록 후회한들 어찌 부인을 위로하리오. 내 이미 황천에 가지 못하고 물에 몸을 던지지 못하니 이 죄를 어찌 면하리오. 슬프고 슬프다. 부인이 무슨 죄로 萬頃蒼波에 죽었느뇨?”
굽어보며 방성대곡(放聲大哭)하니 물결이 흐느끼고 천지가 참담하더라. 이 때 해는 서산에 지고 안개는 동정호에 일어나니 한림의 무한한 비회(悲懷)외 부인의 구천(九泉)에 사무치는 애원(哀怨)이 전후(前後)가 똑같더라.
(나) 한림이 이에 원혼을 위로하고자 하여 강촌에 내려가 술상을 갖추고 등불 밑에 앉아 제문을 지으며 슬픈 감회 가슴에 가득하여 피눈물 흘러 지필(紙筆)을 적시니 밤늦도록 지으나 한 자도 이루지 못하여 앉아 탄식만 하더니, 문득 함성 소리 진동하거늘 한림이 대경하여 창을 열고 보니, 한 떼 도적이 창검을 가지고 들어오며 크게 소리하여 왈,
“유연수는 가지 말라.”
하거늘 한림이 크게 놀라 북쪽 창을 열고 나와 급히 도망하여 동서를 분별치 못하고 달아나니, 황급한 말을 어찌 다 기록하리오. 겨우 백여 걸음 가다가 뒤를 보니 불빛이 점점 가까워 오고 함성이 더욱 진동하니 한림이 당황하여 초목 사이로 살기를 바라 달리더니 의관이 다 부서지더라. 급히 가매 수풀이 다하고 큰 강이 닥치니 몸에 날개 없으니 어찌 능히 달아나리오. 적당(賊黨)이 외쳐 왈,
“유연수 비록 살고자 하나, 팔랑개비라 하늘로 오르며 두더지라 땅으로 들랴?”
하며 급히 쫓아오거늘 한림이 하늘을 보고 탄식 왈,
“내 어찌 이 곳에서 죽을 줄 알았으리오. 차라리 강에 던져 부인의 혼백을 의지하리라.”
하고 강을 향하고 달리더니, 홀연 바람결에 사람 소리 들리거늘 한림이 생각하되 이곳에 혹 어선인가 하고 황망히 달리더니 달빛은 희미하고 적적한데 멀리 바라보니 조각배 하나 떠오르고 푸른 옷을 입은 여동(女童)이 뱃머리에 의지하여 손으로 물결을 희롱하며 낭랑한 소리로 시를 읊고 있거늘,
……중략……
한림이 급히 불러 왈,
“여동은 인명을 구하라.”
하거늘 이 때 묘희와 부인이 배의 창문을 반쯤 열고 여동을 명하여 가로되,
“급히 배를 대어 저 상공을 구하라.”
하니 여동이 급히 배를 저어 언덕에 대니 한림이 급히 오르며 왈,
“뒤에 강도들이 급히 따라오니 바삐 행하여 수중의 어육(魚肉)을 면하게 하라.”
말을 마치지 못하여 도적 등이 이미 강가에 이르러 대성 왈,
“여동은 바삐 배를 대라. 그 배 안의 행인이 살인한 도적이매 계림 태수께서 우리를 보내어 급히 잡아 오라 하여 왔으니 만일 놓치면 너희 등이 그 도적과 같이 죽을 죄를 당하리라. 바삐 배를 대라.”
하니 한림이 비로소 동청(董靑)의 적당인 줄 알고 더욱 두려워하여 여동에게 왈,
“나는 경성의 유한림이요. 저 놈들은 다 도적이니 급히 배를 건너 화를 면하게 하라.”
하니 여동이 적당에게 이르되,
“너희 무리 지어 죄 없는 군자를 해코지 하니 우리 어찌 군자를 구치 아니 하리오.”
모든 도적이 왈,
“감히 관청의 명령을 어기니 장차 어디로 가리오.”
여동이 크게 웃고 배의 창문을 의지하고 돛대를 쳐 노래하며 돛을 달아 배를 저어가니 적당이 하릴없어 돌아가더라.
― 김만중, <사씨남정기>
* 악주, 동정호, 구의산, 소상 : 중국의 지명 |
50. (가), (나)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 ③
① (가): 한림의 정서와 공간적 배경이 상응하고 있다.
② (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한림의 회한이 깊어지고 있다
③ (나): 한림의 내면 갈등이 대화를 통해 드러나고 있다.
④ (나): 급박한 상황 전개가 시간적 배경과 상응하고 있다.
⑤ (나): 한림의 비통한 심리에 극도의 위기감이 부가되고 있다.
51. 윗글을 읽고 사건 전개의 필연성과 관련하여 재기할 수 있는 의문은? ▶ ④
① 유한림은 왜 회사정에 갔을까?
② 유한림은 왜 물에 빠져 죽을 생각을 했을까?
③ 도적의 무리는 왜 퇴로도 차단하지 않고 달려들었을까?
④ 묘희와 부인의 배가 어떻게 해서 그 순간에 나타났을까?
⑤ 유한림은 촌사람들에게 사씨에 대해 어떻게 물어 보았을까?
52. (가)의 밑줄 친 부분에 담긴 사씨의 심정과 가장 가까운 것은? ▶ ②
① 까마귀 싸우는 골에 백로야 가지마라
성낸 까마귀 흰 빛을 시샘할세라
청강에 기껏 씻은 몸을 더럽힐까 하노라
② 묻노라 멱라수야 굴원이 어찌 죽다터니
참소에 더럽힌 몸 죽어 묻힐 땅이 없어
청파에 골육을 씻어 고기 뱃속에 가추니라
③ 산은 옛 산이로되 물은 옛 물이 아니로다
밤낮으로 흐르거든 옛 물이 있을소냐
사람도 물과 같도다 가고 아니 오는도다
④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 님 여의옵고
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저 물도 내 안 같아서 울어 밤길 예놋다
⑤ 욕심 난다 하고 몹쓸 일을 하지 말라
나는 잊어도 남이 내 모습 보느니라
한 번을 악명을 얻으면 어느 물로 씻으리
53. (나)에서 유한림이 못 쓴 '제문'을 독자가 대신 쓰 려고 한다. <보기>처럼 초안을 작성하였을 때, ______ 에 들어갈 내용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2점] ▶ ①
<보기>
사월 보름날, 연수는 부인에게 조촐한 음식을 차려 놓고 고하오. 부인이 죽었다니 그것이 정말이오? 아직도 그것이 믿어지지 않소. 돌이켜 보니 우리 처음 혼인 했을 때가 제일 화평했던 때가 아니었던가 싶소. 그 좋았던 시절도 이제는 추억이 되고 말았구료. ___________________________ 내 잠시 혼미하고 용렬하여 요망한 말을 듣고 부인을 쫓아냈으니 차마 볼 면목이 없소. 생각해 보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었는지. 그러나 이제 후회한들 어쩌겠소. 부인이 이제 세상에 없으니 내 무슨 낯으로 살겠소. 부인을 따라 죽고 싶은 심정이오. 저승에서 다시 만날 때까지 명복을 비오. |
① 부인의 현숙한 덕행을 칭송함
② 부인이 쫓겨난 후의 행적을 기술함
③ 부인을 모함한 자에 대한 분노를 표출함
④ 부인과 헤어진 후의 경제 사정을 회고함
⑤ 부인을 죽도록 한 불합리한 제도를 비판함
54. 위 소설을 '우리 고전 다시 읽기 운동'의 대상 작품으로 추천하고자 한다. 윗글을 바탕으로 할 때, 추천의 이유로 가장 설득력이 있는 것은? [2점] ▶ ①
①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전통적인 가치 인식과 함께 속도감과 박진감을 한 축으로 삼는 현대적 서사성을 두루 갖추고 있다.
② 한국 문학의 세계화를 지향해야 하는 시점에서, 중국을 공간적 배경으로 삼은 국제적 감각과 권선징악이라는 보편적 주제가 돋보인다.
③ 당대의 풍속을 사실적으로 반영하며, 유교적 가치관을 실감 있게 형상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온고이지신( 溫故而知薪)'의 대상으로 적절하다.
④ 독백을 통한 인물의 내면 묘사가 탁월하고, 집단의 고뇌와 갈등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고전 소설의 특징을 잘 보여 주고 있다.
⑤ 쫓고 쫓기는 행위, 위기 일발의 상황, 극적인 조력자의 출현 등 활극을 연상케 하는 장면들은 요즘의 대중 소설과 견줄 만한 경쟁력을 지니고 있다.
<진단평가>
◈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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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한림의 아버지 유공은 이윽고 주파를 보내 사 급사 부인에게 혼인할 뜻을 전하게 했다. 사 급사 부인이 주파를 불러 보았다. 주파는 먼저 유공의 가문이 대대로 부귀하며 한림의 문채와 풍류가 빼어남을 칭찬했다.
주파는 이어서 다시 말했다.
“어느 재상인들 유공에게 혼인을 청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렇지만 유공께서는 ‘소저의 자태가 국색(國色)이요 재덕이 출중하다.’는 소문을 들으셨답니다. 이에 소인으로 하여금 중매를 서게 한 것입니다. 소저께서는 유공 댁의 폐백을 받는 날 바로 명부(命婦)*가 되실 것입니다. 부인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
부인은 매우 기뻐했다. 그렇지만 소저와 의논하고자 하여 주파를 기다리게 하고 손수 소저의 침소로 갔다. 부인은 주파가 말한 대로 전하고 소저의 뜻을 물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네 생각을 숨기지 말아라.”
그러자 소저가 대답했다.
“소녀가 들으니 유공은 당대의 어진 재상이라 합니다. 혼인을 맺음에 불가할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다만 주파의 말에 의심스러운 점이 있습니다. 소녀가 듣건대 ‘군자는 덕을 귀히 여기되 색(色)을 천하게 여기며, 숙녀는 덕을 가지고 시집을 가되 색으로 지아비를 섬기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 주파가 먼저 소녀의 색을 칭찬했습니다. 소녀는 그것을 몹시 부끄러워하고 있습니다. 또한 유공 댁의 부귀함은 크게 자랑하면서도 돌아가신 아버님의 성덕(盛德)에 대해서는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혹시 주파가 미천한 사람이라서 유공의 뜻을 제대로 전하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요? 그러한 것이 아니라면 소위 ‘유공이 어진 사람이다.’고 하는 말은 헛소문에 불과한 것입니다. 소녀는 그 댁에 들어가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사 급사 부인은 평소 딸을 몹시 사랑했다. 어찌 그 뜻을 어길 리가 있었겠는가? 부인은 밖으로 나가 주파에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