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쎄. 내가 몇 살이더라. 아마 50살쯤 됐을 거야. 결혼은 아마 17살에서 18살쯤에 했고. 아이는 13명을 낳았는데, 셋째 아이가 죽고 지금은 12명이 남았지."
라오스 시엥쿠앙도 농헷군 피헹홍 마을에 사는 사우붓(Saubouth) 씨는 지난 11일 두 달에 한 번 열리는 보건소 방문 진료를 받았다. 사우붓 씨는 "셋째 아이는 열이 나더니 태어난 지 한 달 만에 숨을 거뒀다"고 말했다. 그는 자녀 13명을 모두 집에서 낳았다.
19살인 현재 둘째 아이를 임신한 라이(Lai) 씨도 세 살배기 첫째 아이를 잃었다. 산전 진찰을 받기 위해 보건소 방문 진료단을 찾은 라이 씨는 "아이가 갑자기 아프더니 몇 번 구토를 했고, 보건소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숨을 거뒀다"고 말했다. 그는 "첫째 아이의 예방접종을 5번 중 2번밖에 못 맞췄다"며 "둘째 아이의 접종은 다 맞추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라오스의 50여 개 종족 중 소수민족인 몽족이 주로 사는 이 마을에서 여성은 평균 5~6명의 아이를 낳는다. 몽족에게는 현세에 아이를 많이 낳아야 내세에 출산의 부담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신념이 있다. 결혼도 일찍 한다. 몽족을 포함한 라오스 여성 중 전체의 15%는 15세에 이미 첫 아이를 분만했고, 18세가 되면 40%가 분만 경험이 있다.
▲라오스 북동부 시엥쿠앙도 농헷군 피헹홍 마을. ⓒ프레시안(김윤나영)
"제왕절개 비용 월급 2~5배, 전국민 건강보험 없어"
대부분의 인구는 15세 미만으로 구성됐지만, 라오스의 모자보건 실태는 동남아시아 국가 중에 최하위권에 속한다. 2005년에 진행된 인구조사에 따르면 라오스의 모성 사망률은 출산 10만 건당 405명으로 동아시아 국가 중 캄보디아 다음으로 높다. 연간 800명, 하루에 산모 2명이 사망하는 꼴이다. 5세 미만 유아는 매년 1만9600명씩, 하루에 36명이 죽고 있다. 생후 1년 동안 권장 예방접종 8종을 모두 받은 영아는 27%에 불과하다.
이에 보건복지부 산하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KOFIH·코피)은 지난 2010년부터 세계보건기구(WHO)와 '모자보건 증진사업'에 관한 협약을 체결하고, 라오스 시엥쿠앙도 8개 군과 후아판도 8개 군을 상대로 56억8600만 원을 지원했다. 가임기 여성과 산모 10만5000명과 영유아 및 아동 8만 명이 지원 대상이다.
국제원조기구들은 라오스에서 모자보건 증진 사업을 벌이는 데 애로사항이 많다고 호소한다. WHO 라오스 사무소 파견전문위원인 고은영 소아과 전문의는 "라오스의 보건소 직원 월급은 4만 원, 중간공무원 월급이 10만 원가량인데, 보건소 분만 비용은 1만5000~3만 원, 제왕절개 비용은 20여 만 원"이라며 "이 때문에 산모들이 꼭 필요한 진료마저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한국에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건강보험이 있는 것과는 달리, 라오스에는 오직 공무원만 건강보험에 가입돼 있다. 고 전문의는 "1인당 1년 진료비는 23달러(한화 약 2만6000원)인데, 그 중 60%를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며 "나머지 40% 중에서 다시 60%는 해외 원조에 의존하고, 40%만이 정부가 부담한다"고 말했다. 본인부담금이 높은 까닭은, 의사들이 '국가 공무원'이라 진찰료는 무상이지만 약값은 환자가 부담하기 때문이다.
의료 접근성도 문제다. 산전 진찰을 받기 위해서 산모들은 많게는 30km 떨어진 보건소까지 가야 한다. 하지만 병원이나 보건소를 더 지어도, 마을 주변에 도로가 없거나 비가 오면 외부로부터 완전히 단절되는 산간지역 주민들에게는 보건소는 그림의 떡이다. 집이 길가에 위치했는가의 여부가 보건소 이용률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정도다.
▲산간마을 가는 길. 비가 오면 차나 오토바이가 다닐 수 없어 마을은 외부로부터 단절된다. ⓒ프레시안(김윤나영)
실제로 모자보건센터가 지난 2006년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라오스 여성의 84.8%는 집에서 출산하고, 18.5%만이 보건시설에서 분만했다. 특히 농촌지역에서는 도로망 확충지역 산모의 87%가, 도로망 미비지역 산모의 96.5%가 집에서 출산했다. 도시 산모의 51%가 보건시설에서 분만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사망한 산모 중 90% 이상은 적절한 관리를 받지 못한 채 집에서 아이를 낳다가 사망했다.
보건 시설을 이용할 여건이 안 되는 산모와 아동을 위해 보건소는 1년에 한 번씩 직접 마을에 들러 '방문 진료'를 한다. KOFIH는 보건소와 가까운 곳에 거주하는 산모들에게 분만시설을 이용할 것을 권장하는 교육을 하고, 1년에 한 차례만 있던 방문 진료를 1년에 6회로 늘리도록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고 전문의는 "영아 사망의 원인은 미숙아, 선천성 기형, 감염 순인데, 미숙아나 선천성 기형은 고도의 기술이 필요해서 개선하기 어렵다"면서도 "하지만 파상풍 등 감염으로 인한 사망은 탯줄이라도 깨끗한 가위로 자르면 충분히 줄일 수 있기 때문에 분만시설을 이용할 수 없는 산모에게는 보건직원을 파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위 20%는 국제원조, 나머지 빈곤층은 발만 동동"
이 마을의 보건소장인 캄파 분러분흐앙(Khampha Bounlebounheuang·48) 씨는 "방문 진료와 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한 이후 마을이 변했다"며 "예전에는 주민들이 주로 전통 주술을 믿었는데 이제는 점점 보건소를 찾거나 출산 계획을 세우는 가구가 늘어났다"고 말했다.
▲두 달에 한 번 있는 방문 진료를 받기 위해 모인 마을사람들. ⓒ프레시안(김윤나영)
캄파 씨는 특히 "지난해 11월 20km 떨어진 곳에서 보건소까지 온 임산부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아이가 뱃속에서 죽었기에 빨리 큰 병원으로 보내서 엄마는 살았다"고 말했다. 그는 "그 임산부는 매우 가난해서 병원에 갈 돈이 없었지만, 다행이 빈곤퇴치기금의 지원을 받아 목숨을 구했다"고 덧붙였다.
이는 산모들의 인식 변화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과제도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하위 20% 미만의 극빈곤층은 국제원조를 통해 '무상의료 지원'을 받을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하위 20% 이상의 절대적·상대적 빈곤층은 '의료비'라는 난관에 부딪친다.
두 살 난 첫째 아이에 이어 현재 둘째 아이를 임신 중인 유안(Yuan·21) 씨는 "첫째 아이는 집에서 낳았지만, 보건소 교육을 받고 나니 둘째 아이는 가능하면 의료시설에서 낳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출산 비용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고 했다.
제2, 제3의 유안 씨는 의료시설에서 무사히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 라오스 정부가 풀어야 할 숙제다.
"수세식 화장실 지어줬더니, 물이 안 나올 줄이야"…국제원조의 과제
라오스에서는 보건의료 실태에 대한 그 어떤 질문을 던지든지 간에 상상 이상의 답변을 들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모자보건 지표가 향상됐느냐"고 물으면 "이 나라에는 출생신고체계가 제대로 안 잡혀 있어서 전 국가적인 모자보건 통계가 아예 없다"는 답변이 돌아온다.
고은영 소아과 전문의는 "라오스에서 병원은 주로 상위 20%만 이용하는데, 국가 공식 통계는 병원 통계뿐이라 대표성이 없다"며 "그래서 마을의 보건 통계, 그 중에서도 특히 백분율(%)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단순히 의료시설에서 출산한 임산부가 늘었다고 해서 그것이 더 나아진 수치인지 알 수 없고, 백분율을 알아야 비교 가능하다는 것이다.
의료비가 부족해서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느냐는 질문에는 "의료비도 문제이지만, 병원에 가기 위해서는 먼저 길부터 닦여야 한다"는 답변이, 에피소드로는 "기껏 기생충을 치료했더니 마을의 물이 더러워서 주민들에게 기생충이 또 생겼다"는 얘기도 들린다. 보건의료지표가 수도시설이나 도로망 확충 등 전반적인 생활환경과 무관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이유로 개발도상국에 들어선 국제원조기구들은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겪는다. 한광수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KOFIH) 총재는 "수세식 화장실이 있는 병원을 지어줬더니 수도시설이 갖춰지지 않아 변기가 무용지물이 되거나, 주민들의 거의 시설을 이용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며 "개발도상국에 건물만 지어준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현지 주민의 필요를 고려하지 않으면 쓸 데 없는 원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고 전문의도 비슷한 경험을 말한다. 라오스의 보건의료시스템을 보면 진료비는 무료이되, 약값이나 재료비는 환자가 부담한다. 보건소는 20%의 이윤을 붙여서 주민들에게 약을 팔고, 그 비용을 다시 보건의료 증진에 쓴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제원조기구가 마을 주민에게 무료 백신을 지원하면 어떻게 될까. 그는 "당장 무료 백신을 주면 주민들의 보건지표는 잠시 향상될 수 있지만, 그러는 동안 그 마을의 보건의료 재원은 초토화된다"며 "백신을 나눠주고 해외원조기구가 떠나면 마을 보건소는 자립할 수 없게 된다"고 말했다.
원조기구들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장기적인 계획이나 그 나라 정부와의 협조 없이 잠깐 도와주고 떠나면 실적은 낼 수 있어도 자기만족밖에 안 된다"는 교훈을 얻는다. 고 전문의는 "해외원조 봉사단이 떠나고 나면 마을은 다시 예전의 나쁜 상황으로 돌아가는 만큼, 이 나라 사람들이 스스로의 보건의료체계를 세울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며 "특히 지방정부와 보건소의 '끊어진 연결'을 찾아주는 것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KOFIH가 두 달에 한 번씩 보건소 직원과 회의를 열어 마을 보건 통계를 모으고 보건소의 1년 건강계획을 세우는 이른바 '마이크로 플랜'을 진행하는 이유다. 고 전문의는 "재원만 지원하기보다는,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마을주민들이 직접 보건의료사업을 자기 사업으로 받아들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자연히 사업은 더디고 느리게 갈 수밖에 없다. 그는 "라오스 사람들은 주로 현세에 만족하고 성과를 내야한다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는 어려움을 털어놓기도 했다.
물론 해외원조기구는 현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와 협력하는 과정에서 딜레마에 부딪히기도 한다. 고 전문의는 "국제단체는 조력자에 불과함을 알고 그 나라의 정부 체계를 존중하려는 태도가 중요하지만, 인도주의 사업의 딜레마도 있다"며 "정부와의 조력을 중시하다보면 부패 정부를 비판하지 못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떠나는 것도 현지 주민들에게 책임감 있는 태도는 아니"라며 "중립성을 잘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중앙정부-지방정부-마을 단위의 연결을 중시하되, 풀뿌리 민주주의의 원칙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지역주민과의 조력 끝에 WHO와 KOFIH는 지난 2년 동안 지원하는 110여 보건소의 보건의료지표를 조금씩 향상시키는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시엥쿠앙도 펙군 랏코이 마을의 경우, 보건소에서 출산한 산모는 2010년 5명에서 2011년 13명, 2012년 3개월 동안 10명으로 늘었다. 영아 사망 또한 2010년 7명, 2011년 4명, 올해 1명으로 줄었고, 산모 사망은 2010년 2명이었다가 2011년 이래로 아직 없다.
이 마을 주민 5017명을 담당하는 보건소장 분짠(Bounchanh·47) 씨는 "마이크로 플랜 덕분에 마을 사람들과 회의를 하고, 보건요원을 통해 마을에 누가 아프고 임신했는지를 알게 돼서 좋다"고 말했다. 이 보건소는 올해 마을 영유아 70%의 예방접종 마쳤다. 라오스 전체의 영아 예방접종률이 평균 27%임을 고려하면 큰 성과다.
고 전문의는 "임산부들이 보건소에서 1번 이상 적어도 4번은 산전 진찰을 받고, 분만시설에서 분만을 유도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