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미래 캐스터의 위안
꿈을 확인하려고 길을 찾으시나요?
입춘을 하루 앞두고
첫 봄꽃이 지상의 한 귀퉁이에 피었다
콩닥거리는 숨을 조절하는 걸음은 점차 빨라지고
반가움에 가까이 가서
뚫어지게 눈을 마주칠 때
꽃 아래 놓아둔 황금빛 호박과 알알이 옥수수는 어디로 가고
순간 눈동자에 걸리는 꽃잎은 동트는 해보다 더 맑았다
희망으로 가는 기상캐스터의 입김으로
오늘은 맑음 햇살을 당겨 보는데
그래도 믿음이 충분하지 않아 인증샷 한 컷이라도 찰칵
손가락은 아직도 떨고 있고
누군가의 해몽은 로또 아니면 불운일까
꿈 풀이는 그저 풍류 재담일 뿐이다
2.
블루스 2020
언어를 실종한 채 늘어진 하루하루 화려한 탐색은 오히려 오해다
눈먼 자들의 도시*
유령처럼 돌고 도는 불안의 파편들 사방으로 번지네
마스크를 쓴 채
입속말도 감정을 떼어버린 지 한참
층층 포개지던 결핍의 문장들 헐거워지고
빈혈 같은 정적은 낮게 공간을 마취시키는데
하룻날 같지 않은 오늘이 언제 왔는가
머무름 없이
교만을 꾸짖는 소리가 광선 속에서 빗나가도
나목의 엷은 껍질 사이
한 가닥 줄로 이어가는 구도의 붓 자국
눈을 돌리면
발끝 둘레에 토끼풀 잎새 같은 앙증스러운 기미
고립 속에서도
홀로 웃음 지으며 피어나는 꽃들 겸손하다
*‘눈먼 자들의 도시’는 주제 사라마구의 장편소설이다
3.
흰 공작새 무희가 되다
친구가 말했다 아들 태몽이 지금도 선명한데 온통 초록 잔디밭에 하얀 공작새 한 마리가 날개를 펼치고 있었다고 꿈속에서도 가슴 뭉클하게 아름다웠다고
과천국립대공원 동물원에 갔다
돌고 돌며 온갖 동물들을 보다가 다리가 지칠 때쯤
공작새 우리에 닿았다
날 기다렸다는 듯이 곧바로 우아한 군무가 펼쳐진다
난생 처음 보는 상상 밖 장면이다
어머머. . .기막혀
저것들이 한꺼번에 무희가 되다니
꽁지를 부채 모양으로 활짝 펴고 다투어서
자태를 뽐내기 거의 한 시간이나
행운을 이렇게 쉽게 잡을 줄이야
오후 네 시
하늘은 흐려지고 곡우비가 쏟아질 듯이 갑자기 바람이 분다
이즈음
사력을 다해 암컷에게 구애하는 짓이라는 설명을 듣자니
어이구
온몸으로 사무치는 정열의 몽환
모자에 꽂혀 있는 꽃술 모양의 깃털 파르르 떨더라니
나도 꿈속에서 흰 공작새 춤 또 볼까
4.
피에로와 조우하다
빗속의 여수 항구
밀물이 저녁을 끌고 와 부두 위에 풀어 놓는다
흩어져 날리던 지푸라기 같은 날들이
이렇게 굵어진 밧줄이 되었나
부풀어 오른 생맥주의 흰 거품이 혀를 적시자
실핏줄도 터져 오르고
얼굴도 이름도 몰랐던 사나이 둘은
신화적이기까지 한 서로의 비밀을 알아챘는가
슬픈 눈망울에 몇 번인가 눈물이 맺히더니
덮어뒀던 일기장의 먼지를 털어내고 첫 장을 펴듯이
파도 같이 밀려가며 살아야 했던 사춘기의 기억을
궁색한 변명도 없이 털어 놓는다
풍경화로 그려지는 비의 결례는
비틀거리던 그날의 목마름을 외치게 한다
제대로 족보 꼬인 미완의 여행길에
비야, 오너라. . . 더, 오너라
카페의 밤은 길어지고
살아온 날을 공감하며 듣는 사이
밤의 항구에 내리는 비는
흩어지는 눈물이다가 웃음이다가
피에로의 부대낌도 씻어 내리는 술판 끝의 웃음판이다
별이 다 뜨고 나서도 마음 밭이 허전했다는 그는
자신의 연대기에 보이지 않던 별도
이제는 미소를 건네 온다며 어깨를 감싼다
5.
늦추기
가만히 느려지는 햇살 앞에
마음 눕히고 몸 눕히고 싶다
잔물결 일으키는 바람의 표면에 푸른 살결 문지르며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쉬운 말을 해본다
하루를 느리게 통과하고 있는 시간들
더 간절한 고립의 시간을 견디는 겨울바람아
침묵의 경계를 들락거리며 어깨를 흔드는 숱한 사랑아
춥다는 것은 천천히 피어나는 일이다
너는 아니, 얼어버린 마음 눈치 채고
숨어서 우는 씨앗의 눈물을
하룻밤 풋사랑 같은 겨울의 몸살을
너는 아니
깊고 깊은
불면의 시간은 자정부터 느리다
어깨를 흔드는 겨울 양떼들아
주변을 빙빙 돌며 적막의 껍질을 부수는 서늘한 말씀을
몇 번이나 굴절된 환희의 말씀을
들은 적이 있니
가시덤불 헤치며 세상에서 가장 늦게
씨 뿌리는 사람아
6.
스무 고개 꽃 이름
몸과 마음이 따로 놀기도 하는 날
친구들 카톡방에
여릿한 잎이 날리는 붉은 꽃 사진이 올랐다
싱그러운 초록의 이파리 사이에서 고혹적이다
한 사람이 명자꽃인가?
치맛자락 한끝 치켜 올리며 막 춤을 시작하는 카르멘의 동작 같아
정열의 스페인 투우가 연상된다는 재치에
요즘은 가을보다 봄이 좋아진다고 귀띔을 하자
.
.
.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양산을 들고 저 꽃 흐드러진 언덕을 걸어가는 그림
아, 양귀비꽃 맞아
아마 모네의 그림에서는 바람이 살랑거리지?
인생길에 부는 바람을
생수 들이키듯 호흡하며 여행을 즐겼는데
코로나 19 팬데믹으로
집안에서 혼자 숨결을 담금질 하는 동안
찔레꽃은 저대로 피고 지고 아아아 봄날은 갔다
해바라기꽃도 어느새 지고 여름도 끝이다
식탁에선 달콤한 디저트 유혹하고
BTS의 신곡 다이너마이트가 펑펑 터지는 아침나절
무궁화꽃이 환하다
첫댓글 원고,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