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27구간(조령3관문-하늘재)
1. 산이름 : 조령산, 신성암봉, 깃대봉
2. 소재지 : 충북 괴산군 연풍면 주진리 3-3, 원풍리 40-1
3.산행코스 : 제3관문 ←(0.88km)→ 마역봉 ←(3.3km)→ 동암문 ←(1.4km)→ 주흘산갈림길 ←(0.58km)→
평천재 ←(1.0km)→ 탄항산 ←(1.8km)→ 하늘재
0.고사리주차장-조령3관문(00:30)-마패봉(01:00)-북암문-동안문(부봉)(02:30)-부봉삼거리-부봉
-959봉-평천재-탄항산(04:30)-모래산(05:00)-하늘재(05:30)
4. 산행 거리 및 소요시간 : 13.7km,(5시간 30분)
5. 산행 인증 : 마패봉, 탄항산, 하늘재, 인증
6. 산행 안내 : 서울-수안보-택시-고사리주차장-산행-하늘재 - 문경버스-문경 모텔숙박
0.동서울 버스 :06:50, 07:50 –수안보 –고사리(조령)
0.하늘재 산장 : 054-571-2613, 010-2839-9264, 010-9633-9264
0.문경택시 : 054-571-7300, 054-571-7301, 문경개인택시:010-6524-3829
조령3관문-하늘재 구간
마역봉(馬驛峰, 마패봉 / 충청북도 괴산군, 충주시 및 경상북도 문경시의 경계에 있는 산.
높이는 940m로, 마패봉이라고도 부른다. 백두대간이 지나는 산으로, 충청북도 쪽으로는 신선봉과 맞닿아 있다. 조령 제3관문을 사이에 두고 깃대봉과 마주하며 명칭의 유래는 암행어사 박문수가 이 산을 넘을 때 조령 제3관문에서 쉬었을 때 마패를 관문 위의 봉우리에 걸어놓았다고 하여 이 지방에서는 마패봉이라 부른다.
신선봉 정상으로 오르는 길에는 3가지 코스가 있다. 제1코스는 조령 들머리인 작은새재 아래 레포츠공원에서 오르는 길이다. 제2코스는 새재 중간 주차장 위 휴양림매표소에서 오르는 길이다. 제3코스는 조령 제3관문에서 시작하여 마역봉을 거쳐 신선봉을 오르는 길이다.
제2코스로 산행을 시작하는 것이 가장 힘이 덜 든다. 고사리마을 주차장을 기점으로 한다. 제법 널찍한 산길을 10분쯤 가면 조령산 자연휴양림이라고 새긴 표지석이 나온다. 표지석에서 20m쯤 가면 실개천이 나오며 30분쯤 오르면 조령 제3관문의 고갯마루에 이르며 고사리마을 쪽으로 100m쯤 오르면 마역봉 안내판이 나타난다. 이 길은 무척 가파른데, 50분 정도 오르면 마역봉 정상에 이른다.
정상에서는 북쪽으로 월악영봉에서 포암산의 능선이 보인다. 서쪽으로는 신선봉이 가까이에 있다. 하산은 왼쪽으로 30분 정도 내려오며 신선봉까지는 1시간 정도 소요된다.
마역봉 정상에서 서쪽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은 비교적 평탄하다. 숲길로 들어서면 ‘신선봉 1.8km 80분’이란 안내판이 있다. 계곡을 따라 오르면 다시 ‘신선봉 0.6km 35분’이란 안내판이 나오며 여기서부터 산길은 거의가 너덜길이다.
주릉길로 올라서면 4거리가 나온다. 오른쪽 산등성이를 계속 오르면 신선봉 정상이다. 신선봉 정상에서는 기묘한 암봉들과 조령산·주흘산·월악산 등을 볼 수 있다.
정상부의 우뚝 솟은 암봉은 그리 넓지는 않지만 제법 편편하여 사방을 조망하기에 좋다. 신선봉에서의 하산은 서쪽을 향한다. 이 능선 안부를 따라 15분 정도 가면 남쪽의 너덜지대를 통과해 휴양림매표소로 하산할 수 있다. 산행시간은 4시간 정도가 걸린다.
대중교통편은 충주나 괴산에서 수안보행 버스로 갈아타고 소조령에서 하차한다. 소조령에서 고사리마을까지는 15분 정도 걸어야 한다. 승용차로는 괴산이나 충주까지 진입한다.
괴산에서는 34번 국도를 이용하여 수안보 방향으로 간다. 소조령에서 조령 제3관문쪽으로 우회전하여 고사리마을에 주차하면 된다. 주변에는 수안보온천과 월악산국립공원, 충주호가 있다.
서울 경부 고속터미널에서 수안보에서 내려 고사리 가는 버스를 타고 갔다.
버스에서 내려서 30분 올라가면 조령3관문이 나오고 왼쪽으로 올라가면 마패봉에 도착한다.
30분 걸었기 때문에 다시 산행을 시작하려하니 발이 무겁고 또한 너덜길과 로프로 무장한 급격한 오름이라 가쁜 숨소리를 내며 올라야 했다.
암행어사 박문수가 이 산을 넘을 때 마패를 관문 위의 봉우리에 걸어놓았다고 이름 붙여진 마패봉(馬牌峰, 927m)에서의 조망은 과히 압도적이다. 일망무제의 조망처인 마패봉에서 부부 산객의 도움으로 인증을 하고 조령산으로 이어지고 있는 길을 돌아보고, 부봉을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또한 마패봉은 신선지맥 (神仙枝脈, 백두대간 마패봉(927m)에서 서쪽으로 분기하여 충주시 상모면과 괴산군 연풍면의 경계를 따라 가면서 神仙峰(950m), 소조령(370m), 마등봉(699m), 송치재(310m), 박달산(△825.4m), 城佛산(530m)을 지나 괴산군 감물면 오성리 구무정마을 달천변에서 끝나는 36km 산줄기다.)의 분기봉이라 멀리 신선봉으로 흘러가고 있는 신선지맥을 바라보고는 8.6km거리에 있는 하늘재로 향한다.
오후 산행은 삼국이 서로의 북진과 남진을 막거나 진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차지해야 하는 군사적 요충지이기도 했던 곳이라 산성터가 계속 이어진다.
길은 그지없이 편안하여 북암문과 동암문을 지나 부봉 삼거리에 도착했다. 문경새재 제2관문인 조곡관 뒤에 우뚝 솟아 있는 바위산으로 6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있는 부봉(釜峰, 917m)은 대간에 벗어나 있고, 하늘재에서 가족들도 기다릴 뿐만 아니라 이미 부봉의 6개 봉우리를 모두 섭렵을 했는지라 그냥 통과한다.
간혹 숲 사이로 남쪽으로 주흘산의 위용을 느끼며 시원시원한 적송들의 기운을 받으며 산행을 이어간다.
주흘산은 산이 솟아오를 때 산 밑에 도읍을 정하리라 생각하고 솟아올라 왔다는 산이다.
솟아보니 서울의 삼각산이 먼저 솟아 있어서 삼각산을 등지고 앉았다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조령산, 포암산, 월악산 등과 더불어 소백산줄기의 중심을 이루는 아름다운 산인 주흘산은 백두대간 길에서 벗어나 있어 멀리 바라보는 것만으로 만족하며 좌측으로 난 가파른 계단길을 따라 평천재로 내려섰다가 다시 오르면 월항삼봉(月項三峰, 856m)이라고도 불리는 탄항산(炭項山)에 도착했다.
이제 하늘재까지 1.9km 거리의 내림길이라 그렇게 힘들지도 않다. 전망 좋은 곳에 고사목 넘어 주흘산의 위용을 느끼고 있는데 는개와 이슬비 수준의 비가 살살 내리기 시작한다.
나야 시원하여 산행하기가 좋다마는 하늘재 위에 있는 밤나무에서 놀기로 한 식구들은 어설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몇 개의 기암들을 뒤로하고 모래산을 지나 하늘재에 도착하였다. 도보 10분 내려가면 포암에서 문경가는 버스를 타고 터미널 옆에 있는 모텔에서 숙박을 하였다.
하늘재는 하늘길인 백두대간을 지나는 이들 외에는 거의 행인이 없는 옛 고개이다.
경북 문경시 문경읍 관음리에서 충북 충주시 상모면 미륵리 사이를 이어주는 고개이다. 하늘과 맞닿아 있다 해서 하늘재라는 이름을 지니고 있기도 하지만 높이는 525m로 그리 높지 않다. 하지만 하늘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고갯길이다. 최초로 뚫린 고갯길이다.
신라 제 8대 아달라(阿達羅) 왕이 재위 3년(156년) 북진을 위해 길을 열었다고 한다. 삼국사기에는 '겨릅산', '계립령'으로 기록되어 있고 고려사에는 '대원령(大院嶺)'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 또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마골점(麻骨岾)', '마골산(麻骨山)'이라는 이름이 보인다. 뿐 아니라 한원령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하늘재라는 이름이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이 이름은 많은 함축된 의미를 안고 있다.
하늘에 맞닿아 있어 하늘재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안고 있다. 그것은 하늘재라는 이름이 고단한 삶을 살아가던 민초들의 소망과 간절한 바람이 깃들어져 있는 이름이기 때문이다.
민초들의 소망길이요 백두대간과는 또 다른 하늘 길이었기 때문이다. 고단한 현실 너머에 있는 관음 세계와 미륵 세계를 이어주는 통로요 들어가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관음 세계와 미륵 세계를 향해 열려 있는 그들의 소망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단지 이 고개의 동쪽에 있는 마을이 관음리이고 서쪽에 있는 마을이 미륵리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하늘재가 관음리와 미륵리를 이어주는 길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하늘재가 민초들의 사랑을 받았던 이름이었다는 것은 관음리와 미륵리라는 마을 이름에서 쉽게 알 수 있다.
관음리와 미륵리가 있었기에 하늘재가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이고 이 이름들 안에 살아가기 힘든 그들의 삶이 그대로 담겨 있다. 슬픔과 절망과 분노와 희망 등이 그대로 담겨 있다. 삶이 얼마나 고단하였으면 마을 이름이 자비의 상징인 관음리가 되고 민초들을 구원하기 위해 오시는 미륵이 되었을까.
탄항산
탄항산(炭項山) 월항삼봉 이라고 지도에 이렇게 되어있는데 월간 산 2004년2월호에는 월항삼봉이라는 표현 잘못된것이라고 한다. 탄항산이란 옛 고개를 지킨다는 의미의 '수(수)고개', 발음상 '숫고개', '숯고개'로 불리다가 한자로 표시할 때 '숯(炭)'으로 되고, '항(項)' 또한 지키기에 가장 알맞은 곳인 '목'의 한자 표현이다. '목을 지키는 곳에 있는 봉수' 라는 뜻에서 '탄항 봉수' 라고 불리고 '탄항봉수가 있는 산' 이라고 하여 '탄항산' 이라 불린다.
하늘재/역사의 유서가 가장 많이 간직하고 있는 고개 계립령
하늘재에 관한 기록은 삼국사기의 신라본기에 보면 아달라이사금 3년의 여름 4월에 계립령 길을 열었다고 되어있다. 아달라왕 3년은 156년인데 인접해 있는 죽령길 보다 2년이나 먼저 길을 개척해 통행을 했다.
또 삼국사기의 열전 - 김유신조에는 마목현(麻木峴)이란 이름으로 나온다. 고구려에 원병을 청하러 간 김춘추에게 고구려의 보장왕은 “마목현과 죽령은 본래 고구려땅이니 돌려주지 않으면 원병을 보내주지 않겠다”고 했다.
또한 삼국사기의 열전 - 온달조에는 “계립령과 죽령 서쪽의 땅을 되찾기 전에는 돌아오지 않겠다”는 온달의 출사표로 나타난다.
하늘재 길은 문경새재길이 개척되면서 사용 빈도가 점차 축소되어 지금은 한적한 오솔길로 변해있다.
구한말까지만 해도 경북 북부지역에서 생산되는 도자기와 지역의 특산물, 곡물을 지개에 지고 하늘재와 충북의 닷돈재를 넘어 제천시 한수면의 황강나루에서 소금 등과 물물교역을 했다는 옛 노인들의 증언이다.
5~6세기 신라·고구려의 전쟁과 계립령
하늘재에 관한 기록은 삼국사기의 신라본기에 보면 아달라이사금 3년의 여름 4월에 계립령 길을 열었다고 되어있다.
아달라왕 3년은 156년인데 인접해 있는 죽령길 보다 2년이나 먼저 길을 개척해 통행을 했다. 또 삼국사기의 열전 - 김유신조에는 마목현(麻木峴)이란 이름으로 나온다.
고구려에 원병을 청하러 간 김춘추에게 고구려의 보장왕은 “마목현과 죽령은 본래 고구려땅이니 돌려주지 않으면 원병을 보내주지 않겠다”고 했다. 또한 삼국사기의 열전 - 온달조에는 “계립령과 죽령 서쪽의 땅을 되찾기 전에는 돌아오지 않겠다”는 온달의 출사표로 나타난다.
계립령·계립령로의 개척시기
신라시대부터 이 일대 백두대간 고갯길을 넘는 곳으로는 동쪽에 죽령길이 있고, 서쪽에는 상주와 보은 사이의 화령길, 중간은 계립령길이다. 계립령로는 문경의 동쪽 계류인 신북천(身北川)을 따라 포암산으로 오르는 길목의 당포리 - 용연리 - 갈평리 - 관음리의 황정, 사점, 관음, 포암 마을을 지나 대간의 주능선이며 경북과 충북의 도계지점인 해발 525m의 하늘재를 넘는 길이다. 하늘재를 넘으면 충북 쪽으로 미륵리 - 송계리 - 역리 - 황강나루로 이어져 충주를 지나 서울로 향하게 된다.
불교문화 전파와 계립령
관음의 세계에서 미륵의 세계로 현실의세계에서 미래의 세계로 나아갈려는 신라의 북진통일을 위하여 종교를 정치적 이데오르기로 사용한 결과 계립령 남쪽을 관음리로 북쪽은 미륵리 로 명명한 것을 보아도 호국불교로서 나를 강대하게 만들려는 신라인의 기상을 엿볼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