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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 얘기가 나온 김에 지난 번에 이어 고차원(?)적인 얘기를 좀 더 하고자 합니다.
미국은 금융위기가 발생하여도 외환위기 걱정은 하지 않습니다. 미국은 지난 번 금융위기를 3차에 걸친 양적 완화(QE; Quantitative Easing)를 통해 엄청난 달러화를 살포하면서 가볍게 금융위기를 벗어났습니다. 미국의 달러화가 실질적인 의미에서는 유일한 국제통화, 즉, 기축통화이기 때문입니다. 자국통화가 바로 외환의 역할을 수행한 것입니다. 반면에 우리는 그 당시 2500억 달러라는 거액의 외환보유고를 자랑하면서도 외환위기를 걱정하였습니다. 우리나라는 유럽과 달리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로 인한 피해는 거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외환보유고의 상당 부분을 당장 현금화되지 않는 미국의 주택금융관련 기관(FNMA, FHLMC 등)이 발행한 채권에 투자하여 당장 가용 가능한 달러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만일 우리 원화가 일본 엔화 정도의 국제적인 통용력을 갖고 있었다면, 가용 가능한 달러가 많지 않더라도 외환위기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당시 유럽을 포함한 전 세계 금융기관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달러자금을 구하는 바람에 모두 달러 품귀 현상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처럼 외환위기라는 언급은 없었습니다. 각 금융기관이 비싼 값이긴 해도 스스로 스왑 등을 통해 필요한 달러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환헤지의 기능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합니다. 환헤지가 원활하게, 그리고 제대로 된 가격기능을 발휘하면서 작동된다면 외환위기 걱정은 크게 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우리 원화의 위상이 높아지고 금융산업이 충분히 발전해야 하는 당위성을 여기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동북아 3국의 흐름을 보면 우리 원화의 위상이 정말 걱정입니다. G2인 중국이 미 달러화의 지위를 넘보겠다고 위안화의 국제화를 차근차근 추진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엔화는 그 위상이 ‘잃어버린 20년’으로 좀 약화되긴 하였으나 최근 부활의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서울에 “위안화 직거래소” 설치를 두고 감격해 하면서 서울이 ‘동북아시아의 위안화 허브’가 될 것처럼 떠들며 앞서 나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를 찾는 중국 여행객들은 달러화를 굳이 환전해오지 않은 지가 꽤 되는 것 같습니다. 서울의 명동이나 제주도, 백화점 및 면세점에서 위안화는 달러 보다 더 인기 있습니다. 모든 서비스나 상품 구매 시 위안화를 지불하는 것이 아주 보편화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위안화는 우리나라에 있는 은행에 예금으로 점점 더 쌓여 갑니다. 최근 국내의 외화예금 규모는 보통 600억 달러 정도입니다. 그 중에서 위안화 표시 예금은 약 200억 달러(약 1250억 위안)로 국내 외화예금의 1/3이 중국 위안화 예금입니다. 이런 현실을 반영하여 국내에서 원활하게 위안화를 거래할 필요도 있고, 쌓여만 가는 위안화를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도 있었을 겁니다. 이런 배경으로 작년 7월초 박 대통령의 중국 방문 시 양국 정상 간에 합의한 것이 ‘중국은 한국에 800억 위안의 증권 투자를 허용하고, 그 대가로 한국은 위안화 직거래소 설치를 허용한다’ 입니다. 그 후속 조치로 작년 10월말에 “위안화 금융중심지로의 도약을 위한 ‘위안화 거래 활성화 방안’”이라는 대책을 정부에서 발표하였습니다.
정부에서 발표한 대책들이 좀 오버를 해도 적당히 오버해야 하는데, 대책들을 하나하나 들여다 보면 중국의 위안화 국제화를 위해 우리가 첨병이 되겠다는 선언서를 읽는 기분이 듭니다. “위안화 역외금융중심지로서의 잠재력”, “위안화 결제, 투자, 환전 등 인프라 필수”, 위안화 무역결제 확대를 위해 “위안화 수출대금 결제시 발생 손실에 대해 단기수출보험 한도 우대”, “서비스 지원 확대 추진 현황 점검을 위한 각 은행 부행장과 기업체 간담회 실시”, “청산은행에 대한 외환건전성 부담금이나 을기금 관련 우대 조치 검토” 등 외환 및 감독 규정 개선 추진, 위안화 표시 외국환평형기금 채권 발행, 중국관련 무역거래의 위안화 표시 20% 목표 설정, “위안화 금융 중심지 구축 로드맵” 2015년 중 수립, 기타 등등 한숨 나오는 대책들이 많습니다. 동 활성화 방안을 검색해서 보시기 바랍니다.
동 ‘활성화 방안’의 결과로 작년 12월 1일부터 위안화 직거래 시장이 개설되어 거래되고 있습니다. 이 시장에서 하루에 9억 달러 정도 거래되고 있다고 합니다. 은행간에 치고 박고 하는 트레이딩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양국 정상 합의 사항이라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한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규모 면에서는 상당히 활발합니다. 이런 거래로 인해 은행들은 업무영역과 수익을 조금이라도 확대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으니 나쁜 건 아니겠지요. 그러나, 정부가 발표했듯이 엄청난 효과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착각입니다. 또한 과거 외국자본이 중국으로 물밀듯이 들어가 위안화가 일방적으로 절상되어 이를 방지하기 위해 외자 유입을 조절하던 시기에는 위안화 투자가 확실한 수익을 보장하기 때문에 이런 위안화 증권 투자한도 배정과 위안화 거래소 설치가 특혜가 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의 상황은 그렇지 않습니다. 경제성장률 둔화, 지방재정의 악화, 막대한 금융 부실이 숨겨져 있는 등 중국 경제의 앞날이 장밋빛만 있는 건 아닙니다. 위안화 환율도 어떤 방향으로 움직일 지 알 수 없습니다.
정부가 위안화 거래 활성화 방안에서 내세우는 대부분의 것들은 어느 나라나 통화가 국제화되면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거래들입니다. 중국은 규모 면에서야 위안화 국제화를 본격적으로 추진할 수 있을 정도로 큽니다. 그러나, 자본시장을 본격적으로 개방하기에는 아직 부담스러운 면(위안화 절상에 따른 가격경쟁력 저하, 외국투자가에게 헐값으로 자국 기업 지분 매각 우려, 금융 및 외환 시장의 불안정성 학대 등)이 있어서 조금은 조심스러운 행보를 하고 있습니다. 통화에 관해서는 아직 도광양회韜光養晦)의 전략을 지속하고 있다고 봐야겠죠. 중국이 이런 부정적인 면을 잘 통제해 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면 위안화의 국제화를 본격적으로 서두를 겁니다.
위안화의 본격적인 국제화는 무엇이겠습니까? 자금의 흐름과 관련되는 여러 규제들을 철폐하는 겁니다. 지금 우리가 무슨 특혜를 받은 것처럼 생각하는 중국증권 투자 한도(이를 ‘위안화적격외국인기관투자자’ ,즉, ‘RQFII; RMB Qualified Foreign Institutional Investors’ 한도라고 합니다.)나 위안화 거래와 관련한 각종 외환규제 등은 시뇨리지 효과(Seigniorage Effect)*를 확대하기 위한 중국의 필요에 의해 자연스럽게 없어질 것입니다. 그 단적인 예가 작년 11월부터 외국 개인의 상하이 주식시장을 통한 주식거래를 허용한 겁니다(이를 후강퉁이라 하며, 상하이를 뜻하는 ‘후(扈)’와 홍콩을 뜻하는 ‘강(港)’을 서로 ‘통(通)’하게 한다는 의미임).
G2가 된 중국은 미 달러가 갖고 있는 지위가 탐날 수 밖에 없습니다. 3조 달러에 달하는 외환보유고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인구를 감안하면 큰 돈이 아닐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인구의 30배이니 3조 달러를 30으로 나누면 1000억 달러에 불과합니다. 만일 중국이 잠재된 부실채권, 불합리한 경제체제나 기업관행 등이 표면화되어 경제가 일시적으로 악화된다면, 우리의 IMF외환위기 같은 사태가 중국에서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IMF든 미국이든 어느 누구도 중국을 구제할 수 없을 것입니다. 워낙 덩치가 크기 때문이죠. 이런 사태가 오더라도 방비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위안화가 미국 달러와 더불어 국제통화로서의 역할을 일부 담당하는 것입니다.
위와 같이 위안화가 엔화 이상의 국제통화가 되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전 세계에서 몇 군데 안 되는 위안화 직거래 시장이 2014년 서울에서 열렸다고 서울이 위안화 거래 중심지가 되고 동북아의 위안화 거래 허브가 될까요? 상하이나 홍콩, 아니면 북경이 국제금융의 중심지로 확고해져 위안화를 대가로 현물환은 물론 선물환, 스왑, 옵션, 선물 등 다양한 외환거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중국기업 뿐 아니라 전세계 외국인들이 위안화 표시 채권이나 주식을 발행하고 거래할 것입니다. 원/위안의 현물환거래 조차도 서울이 이들 시장보다 많이 거래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우리 정부나 한국은행은 직거래시장의 개설로 우리 기업이나 개인이 위안화 환전 시 수수료 등 거래비용 절감, 한중 교역 확대, 위안화 허브 도약 등을 기대한다고 언론에 발표하였습니다. 위안화 표시 무역거래를 하면 중국 기업이야 편할 겁니다. 특히 환리스크가 없으니까요. 그러나, 은행의 수수료 체계상 환전이 일어나지 않으면 무역거래와 관련된 자금의 이동에는 다른 수수료를 징구합니다. 또한 양국 통화의 환율 결정 방식(재정환율, 즉, 원/달러 환율을 위안/달러 환율로 나눈 환율로 결정되는 방식)을 감안할 때 정부나 한국은행의 기대와 같이 되지는 않습니다. 우리 경제 규모가 엄청나게 커져서 원/위안의 거래가 위안/달러 거래를 그 규모 면에서 압도적으로 능가하고 이 때문에 위안화의 환율은 달러가 아니라 원화와의 거래에 의해 결정되는 상황이라면 정책당국이 생각하는 효과가 나올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그런 시대는 결코 오지 않을 겁니다. 양국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사항이라고 해서(사실 양국 정상이 아닌 재무장관 합의사항 정도면 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만) 열심히 포장을 하다 보니 우리 원화를 위안화에 대놓고 종속하겠다는 선언같이 되어 버렸습니다. 관료들의 전형적인 대통령 보여주기식 보고서고 대책이었습니다.
제대로 된 대책이었다면 위안화가 그 활동 영역을 이렇게 확대하고 있는데 우리 원화는현재 상황에 만족하고 그대로 갈 것인지, 위안화처럼 활성화시킬 것인지, 활성화시킨다면 무엇을 어떻게 해나가야 하는 지 등등에 대한 고민과 대책이 나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정말 우리 원화는 그냥 이렇게 두어도 괜찮은 건가요? 한 나라 통화의 국제화란 측면에서 볼 때 엔화와는 비교도 할 수 없고, 위안화에 비해서도 한참 뒤쳐져 있습니다. 위안과 엔 사이에 끼인 샌드위치신세가 되지는 않을까요? 아니 고래 사이에 끼인 새우 꼴이 되지 않을까요? 별다른 해결책은 없는 걸까요? 걱정됩니다.
저는 정책을 담당해보지 않아서 국가 전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 구체적인 방안을 갖고 있진 않습니다. 그러나, 한가지는 확실합니다. 외환위기의 재발을 걱정하여 단기외채나 외화유동성 관리에 치중하는 한 절대 해결책을 찾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일본은 1980년대에 정말 일부 조항만 남겨두고 외환관련 규제를 완전히 철폐하였습니다. 이와 더불어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일본의 비중에 비해 뒤쳐진 엔화의 국제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현재와 같은 위상을 갖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말로는 외환규제를 네거티브 방식으로 전환하는 등 대부분 자유화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말이 좋아 네거티브 방식이지 실제는 포지티브 규제 방식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빅브라더가 통치하듯이 모든 것을 시시콜콜하게 간섭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외환관련 규제를 과감하게 풀어 우리 금융기관이 자유롭게 원화를 활용한 업무를 해외에서 할 수 있도록 하고, 외국인들도 우리 시장에 들어와서 다양한 방식으로 자유롭게 원화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허용할 때가 아닌 지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겠습니다. 마침 원화 금리와 달러, 유로, 엔 금리 차이가 2%가 채 되지 않습니다. 중국에 비해서는 2% 정도 낮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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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뇨리지(Seigniorage)는 화폐주조권, 즉, 중앙은행이 화폐를 발행해서 얻는 이익을 말합니다. 국제적으로는 기축통화 국가는 중앙은행의 화폐주조권과 같은 이익을 얻기 때문에 이를 시뇨리지 효과(Seigniorage Effect)라고 합니다. 지금은 달러 이외에 대부분 국가의 화폐가 해외에서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모두 이 효과의 득을 본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국력과 국제통화로서의 위상이 어느 정도냐에 따라 그 이익의 규모는 큰 차이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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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원화 국제화의 필요성에 대해 쉽게 잘 설명해셨습니다.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