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로

[이응환]

여로(旅路·女路)

   몇 년 전이었을까. “용의 눈물” 이라는 일일연속극이 한참 인기 있었던 일이 기억난다. 나는 일일드라마를 거의 처음부터 끝까지 본 기억이 없다. “용의 눈물“도 다른 드라마 보다 워낙 인기드라마였었기에 들은 기억만 날 뿐이다. 나의 청소년 시절은 서울에서 성장했다. 적어도 군에 입대할 때까지 말이다. 언제부터인가 ”여로“라는 드라마가 생각났다. 인터넷 지식 창을 열어보니 1972년 4월 3일부터 방영했다고 했다. 서울중앙방송국(현재 KBS TV)이다. 당시엔 서울이건 지방이건 흑백TV도 웬만큼 사는 가정이 아니면 볼 수가 없었다. 서울은 친한 친구이거나 시골은 동네 공회당이나 이장 집에서 본 기억이 난다. 특히 다른 드라마는 몰라도 ”여로“ 는 내가 비록 어렸지만 거의 마지막 방송까지 본 드라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1960년대 박정희 군사정권이 들어서고 경제개발이 한창 일 때였고 모두가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새마을 운동을 기치로 시골은 시골대로 노래의 가사처럼 초가집도 없애자는 운동을, 서울은 도시 새마을 운동과 산업사회 초기였기에 모두 열심히 일 할 수밖에 없었던 시대였다. 지금이야 각종 전자산업이나 아이 티 산업의 발전으로 소유하거나 경험 해 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가며 편리함도 많지만 당시 저녁이면 네 다리 달린 흑백TV수상기 앞으로 모여 드라마를 보는 것이 거의 유일한 오락이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TV수상기 있는 가정은 집안에 가보(家寶)였다.

  이 드라마는 해방 후 시골 농촌을 배경으로 극화한 내용이다. 악랄한 시어머니 박주아, 불우한 운명 속에 태어나 가난을 못 이겨 사창가 등을 전전했던 태현실(분이 역)과 바보 남편 장욱제(영구 역)가 주연 탤런트들이다. 특히 이 집안에 씨받이로 들어가 죽지 못하고 온갖 구박을 받다가 쫒겨난 후에 다시 귀가한 며느리를 통해 행복을 찾는 드라마였다. 내용은 그 때의 시대상이었기에 많은 시청자들에 심금을 울렸으며 나를 비롯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자신의 처지를 드라마에 맞춰져 있었기때문에 전후 한 많은 세대들이 모두 기억하고 있다. 특히 장욱제의 바보연기와 며느리 태현실의 현모양처 역할은 비록 그 시대였지만 인기가 하늘을 찌를듯했다. 시어머니 박주아의 연기가 얼마나 며느리를 구박했으면 장안에 며느리들한테는 많은 욕을 먹고 미움을 샀지만, 더 이상 표현 할 수 없을 만큼 정말 잘했던 연기로 기억된다.

   "여로"가 시작될 저녁 무렵이면 시골은 물론이고 서울에 장년들과 나처럼 어렸던 학생들도 모두 TV수상기 앞에서 턱받치고 본 기억이 나기도 한다. 드라마를 보려고 다방에 가 커피 한 잔 시켜놓고 보았으며 서울시내 거리가 한산했을 정도로 그 인기는 정말 대단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장욱제의 바보연기는 어린 학생들까지 따라해 학교에서도 문젯거리가 됐다고 했다니 가히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오른쪽 이마에 조그만 점이 있었던 며느리 태현실은 정말 지혜로웠다. 작가(이남섭)의 각본이었지만 흰 얼굴에 어진모습이 지금의 무너져 가는 가정과 비교 자체가 될 수 없을 정도로 전통적인 여인상을 잘 표현했다. 더욱이 컬러TV가 나오기 훨씬 전이었기에 안방에서 펼쳐지는 흑백의 모습들은 당시를 회상하기에 더 없는 좋은 추억이었다.

    드라마를 통해 시청자들의 회자되는 내용도 많았단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공장주인 들이 드라마 때문에 일을 못해 피해를 본다는 하소연도 있었고, 집을 나갔던 며느리가 드라마를 보고 돌아와서 고맙다며 방송국까지 찾아와 태현실의 손을 잡은 이야기는 자체가 감동이다. 드라마였기에 그만이지 온갖 며느리들이 태현실을 구박한 시어머니 박주아(당시 30세)는 얼마나 미움을 얻었던지 저녁밥을 먹던 어느 시청자가 밥그릇을 TV수상기에 던졌다는 이야기는 거짓이 아닌 사실이었다. 또한 서울시내 중심가 극장에서는 저녁시간 영화를 방영하기 전에 이 드라마를 먼저 보여주고 영화를 상영했다고 했다. 지금도 TV시청률을 어떻게 산출하는지는 모르지만 당시 70%이상이 이 드라마를 시청했다고 하니 상상이 된다. 탤런트 조형기는 얼마 전 종편방송에서 감자, 고구마를 살마 먹으며 봤다고 하며, 서서 떠들고 보다 주인한테 쫓겨났다는 이야기는 재미있는 에피소드다.

    며칠 전 모 중앙일간지에 어렵게 동춘 서커스단을 운영하던 박세환씨가 나와서 그때를 회상하며 게재한 글을 읽었다. “1972년 4월 3일 이런 망할 놈의 TV가 탄생하더니 드라마 여로가 천막지붕을 찢고 터진 것이다. 대한민국의 밤을 평정해 버린 것이다. 또한 서커스 공연은 7시. 여로는 7시 30분 90회 예정으로 시작했으나 전국 며느리들의 성화로 180회까지 방영하며 종영했단다. 첫 방송 5일 만에 동춘 서커스단은 관객 없는 밤을 맞았다. 한 번 드라마 맛을 안 사람들은 더 이상 쇼를 찾지 않았다.” 며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사랑과 애환을 가지고 시청했는지 가히 짐작이 된다며 말했다. 종영 4일을 남기고 집 나간 며느리(태현실)가 돌아온다고 바보남편 (장욱제)의 “온다, 온다, 꼭 온단다.” 하며 봄이 왔네 봄이 와 숫처녀의 가슴에도.......를 부르며 시어머니를 비롯해 덩실덩실 춤을 추는 장면은 4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장면이 눈에 선하다. 다시 흑백화면이라도 한 번 방영했으면 하는 바램이지만, 지금 그 자료가 없다고 일전에 어느 일간지에서 보았는데 그 사무침에 안타가운 마음이 든다.

여로(주제가)     1.그 옛날 오색댕기 바람에 나부낄 때       봄 나비 나래 위에 꿈을 실어 보았는데       날으는 낙엽 따라 어디론가 가버렸네       무심한 강물 위에 잔주름 여울지고       아쉬움에 돌아보는 여자의 길    2. 언젠가 오랜 옛날 볼우물 예뻤을 때       뛰는 가슴 사랑으로 부푼 적도 있었는데      흐르는 세월 따라 어디론가 사라졌네      무심한 강바람에 흰 머리 나부끼고       아쉬움에 돌아오는 여자의 길

처녀 총각     1. 봄이 왔네 봄이 와 숫처녀의 가슴에도        나물 캐러 간다고 아장아장 들로 가네        산들산들 부는 바람 아리랑 타령이 절로 나네        응~~~~~     2. 호미 들고 밭가는 저 총각의 가슴에도       봄은 찾아 왔다고 피는 끓어 울렁울렁       콧노래도 구성지다 멋들어지게도 들려오네       응 ~~~~~~     3. 봄 아가씨 긴 한숨 꽃바구니 내 던지고        버들가지 꺾더니 양지쪽에 반 만 누어       장도 든 손 삭둑삭둑 피리 만들어 부는구나       응~~~~~    4. 노래 실은 봄바람 은은하게 불어오네       늙은 총각 기막혀 호미자루 내던지고       피리소리 맞춰가며 신세타령을 하는구나       응~~~~~~

[이응환]

이미자의 "여로" 와 은방울 자매의 "처녀 총각" 동영상 올렸습니다.
젊었을 때의 음성이라 음악이 새롭습니다.

[조정자]

여로의 노래랑 처녀총각 잘들럿읍니다 그 드라마가 나는 아주 가물가물하기만 한데
어떠게 그렇게도 잘 기억하시나요.오랜만에 이미자씨와 으낭울 자매의 젊었을 때의
목소리를 들었네요. 감사합니다.

[이응환]

권사님. 지금까지 본 것중 유일하게 끝까지 본 드라마입니다.
며느리 태현실이 집 나갔다가 돌아온다는 소식에 바보남편(장욱제)이 온다, 온다 하며 부르는 장면 "처녀총각"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눈 시울도 적셨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