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포 지방은 예로부터 충청도 지역 교회의 중심지였다. 합덕 본당은 바로 이 내포 평야에 복음을 밝힌 지 120여 년이 넘어 한국 교회의 산 증인이 된 유서 깊은 본당이다. 합덕 성당 인근에는 손자선 토마스(?-1866년) 성인의 생가이자 다블뤼(Daveluy, 安敦伊, 1818-1866년) 주교의 주교관으로 사용되었던 초가집 주변에 조성된 신리 성지가 있고, 옛 동헌이 있었다고 전해지는 면천 사적지도 자리하고 있다. 합덕 삼거리에서 서야 고등학교 방면으로 조금 올라오다 보면 길 오른쪽 낮은 언덕 위에 마치 두 팔을 들어 환영하듯 두 개의 첨탑이 우뚝 서 있는 합덕 성당이 눈에 들어온다. 두 개의 첨탑으로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상징하며 고딕 양식으로 1929년에 건립된 유서 깊은 성당이다.
합덕 성당의 전신은 1890년 충청남도 예산군 고덕면 상궁리에 설립된 양촌 성당으로, 퀴틀리에(Curlier, 南一良, 1863-1935년)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부임하였고, 1899년 현 위치로 이전하면서 합덕 성당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현재의 성당 건물은 1929년 제7대 주임인 페랭(Perrin, 白文弼, 1921-1950년 재임) 신부 때 준공된 것으로, 페랭 신부가 6.25 때 체포되어 순교한 슬픈 역사도 간직하고 있다.
페랭 신부 재임 때인 1926년 예산 본당, 1935년 서산 본당, 1938년 당진 본당이 각각 분리 신설되었고, 1961년 제8대 박노열 바오로 신부 때 신합덕 본당이 분리되면서 합덕 본당은 구합덕 본당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그 후 1997년 다시 본래의 이름인 합덕 본당으로 변경되었다.
성당 정면으로 난 계단에 올라 도톰한 언덕배기를 바라보면 빨간 벽돌과 두 개의 첨탑으로 세워진 성당이 그림같이 펼쳐진다. 계단 왼쪽으로는 성모동산이 조성되어 평화로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성당 정면에서 신자들을 반기는 예수성심상을 바라보며 오른쪽으로 돌면 초가지붕 아래 설치된 본당 주보(主保)인 성가정상과 함께 너른 잔디광장이 펼쳐진다. 광장을 지나 성당 뒷마당으로 내려가면 야외제대와 또 하나의 잔디광장 그리고 성 황석두 루카(黃錫斗, 1813-1866년)와 6.25 순교자인 페랭 백문필 신부, 윤복수 라이문도 총회장, 송상원 요한 복사의 순교비가 나란히 세워져 있다. 양들을 위해 끝까지 성당에 남은 백 신부는 1950년 8월 14일 고해성사 중에 인민군에게 체포되어 피살되었고, 윤 회장과 송 복사 또한 백 신부의 곁을 지키기 위해 자진해 체포되어 처형되었다.
합덕 본당은 30년간 본당에 재임하다가 6.25 때 순교한 백문필 신부를 기념해 1957년 성당 옆에 ‘백 비리버 문필 신부 순교비’를 건립하였고, 함께 순교한 두 평신도의 순교비는 2005년 본당 설립 115주년과 순교 55주년을 맞아 그 옆에 나란히 세웠다. 그리고 순교비 옆에는 이 지역의 신자들을 하느님께 인도했던 백 신부를 포함한 네 명의 신부 묘소(유해는 2003년 대전가톨릭대학교 내 성직자 묘지로 이장하였다)와 백 신부와 함께 순교한 회장과 복사의 묘소를 조성하였다. 백 신부와 함께 순교한 두 평신도의 묘소에는 유해 없이 유물만 묻었다. 현재는 순교비와 묘소 모두를 성당과 구 사제관 사이 뒷마당, 야외제대 옆으로 옮겨 모셨다.
내포 교회 가운데서도 유서 깊은 공동체인 합덕 성당은 1998년 7월 28일 충청남도 기념물 제145호로 지정되었고, 2008년에는 성당 구내에 당진시와 함께 합덕 유스호스텔을 건립하여 젊은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신앙인들에게 하느님의 은총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였다. 2010년에는 본당 설립 120주년을 기념해 2월 21일 모태인 양촌 공소에 기념비를, 4월 12일 성당 내에 착한 목자 백문필 필립보 신부 흉상을, 12월 25일 성당 초입에 120주년 기념비를 건립해 제막식을 가졌다. 이어 2014년에는 성당 옆에 있는 구 사제관 복원공사를 마무리하였다.
서해안에 인접한 합덕과 면천 지역은 주위에 많은 사적지와 명소들이 분포되어 있다. 홍성 · 해미 · 솔뫼 · 신리 성지 등이 근접해 있어 시간의 여유가 있으면 이들 중 하나를 연결해 함께 순례할 수도 있다. 또 덕산 도립공원과 온양 · 도고 · 덕산 온천 등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도 있고, 여름이면 만리포 · 몽산포 · 대천 등의 해수욕장에도 인파가 붐빈다.
합덕 유스호스텔은 인근 성지와 연계한 도보순례길 등을 통해 순교신심을 고양하는 거점으로서의 역할뿐만 아니라, 인근의 역사 유적과 문화 관광지를 탐방하는 가족 나들이에도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오늘도 성당 마당 잔디 위에 앉아 소박한 웃음꽃을 피우는 신자들의 모습은 그 옛날 숨죽이며 믿음을 지켜 오던 당시의 조심스런 몸짓들을 역설적으로 상기시키면서 다시 한 번 순교자들의 피로 닦은 신앙의 터 앞에 고개를 숙이게 한다. [주평국, 하늘에서 땅 끝까지 - 향내나는 그분들의 발자국을 따라서, 가톨릭출판사, 1996, 내용 일부 수정 및 추가(최종수정 2015년 1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