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한양도성길 북악산(北岳山 342.5)
1. 산행코스
흥인지문(동대문), 낙산성곽길, 낙산(124.4), 카톨릭대, 혜화문(동소문), 경신중, 경신고, 국제고, 와룡공원
말바위안내소, 숙정문(북대문), 청운대, 북악산(342.5), 창의문(북소문), 청운공원, 한양도성, 인왕산(338.2)
범바위, 사직터널, 월암근린공원, 서울시교육청, 돈의문터(서대문-멸실, 정동사거리, 6호선), 이화여고, 배재공원
경찰청앞 교차로, 소의문터(서소문-멸실, 2호선), 남지터, 숭례문(남대문, 1호선), 남산육교, 백범광장
남산(270.9), 다산성곽길, 장충체육관(3호선), 광희문(남소문), 한양공고, 이간수문(역사문화공원)
오간수문(청계천 오간수교), 흥인지문(동대문) -- 22.5Km
* 흥인지문-혜화문-숙정문-창의문-돈의문-소의문-숭례문-광희문
2. 소개
한양도성에는 4대문과 4소문을 두었다. 4대문은 흥인지문, 돈의문, 숭례문, 숙정문이며 4소문은 혜화문, 소의문, 광희문, 창의문이다. 이 중 돈의문과 소의문은 멸실되었다. 또한 도성 밖으로 물길을 잇기 위해 흥인지문 주변에 오간수문과 이간수문을 두었다.
종로구 종로6가 69의 흥인지문(興仁之門 동대문)은 동쪽에 위치한 문으로 궁궐을 비롯하여 중요한 국가 시설이 몰려 있는 한양 도성(한성부)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한양으로 도읍을 삼은 시기인 1396년에 지어졌다. 돌을 쌓아 만든 아치 모양의 홍예문과 2층에 멋스러운 문루, 반달 모양의 옹성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대문의 이름은 유학에서 다섯 가지 덕목으로 꼽은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에서 따왔다. 실제로 북쪽 문인 숙정문을 제외한 흥인지문과 돈의문, 숭례문, 보신각 등의 이름 속에는 각각의 덕목이 들어 있다. 다른 문의 이름이 석 자인데 반해 흥인지문의 글자가 넉 자인 까닭은 한양의 동쪽이 약하다는 풍수지리설에 따른 것이다.
종로구 혜화동 28-5의 혜화문(惠化門)은 동소문(東小門)이라고도 한다. 1397년(태조 5) 도성을 에워싸는 성곽을 쌓을 때 도성의 북동방에 설치한 문(門)으로 홍화문(弘化門)이라 하였다가 1483년(성종 4) 새로 창건한 창경궁의 동문을 홍화(弘化)라고 정함에 따라 혼동을 피하기 위하여 1511년(중종 6) 혜화로 고쳤다.
종로구 삼청동 산 25-22의 숙정문(肅靖門 북대문)은 북악산(北岳山) 동쪽 고갯마루에 있는 조선시대 성문으로 1396년(태조 5) 9월 도성의 나머지 삼대문과 사소문(四小門)이 준공될 때 함께 세워졌다. 원래 이름은 숙청문(肅淸門)으로, 도성 북쪽에 있는 대문이라 하여 북대문, 북문 등으로도 부른다.
종로구 청운동 산 1-1의 창의문(彰義門 북소문)은 북문(北門) 또는 자하문(紫霞門)으로도 불린다.
종로구 평동의 돈의문(敦義門)은 4대문 가운데 서쪽 큰 문으로 서대문(西大門), 새문, 신문(新門)이라고도 한다. 1915년 일제의 도시계획에 따른 도로확장 공사로 인해 철거되고 말았다.
중구 소문동 소의문(昭義門)은 1396년(태조 5) 9월 다른 성문과 함께 지으면서 소덕문(昭德門)이라 하였다가, 1744년(영조 20) 문루(門樓)를 세우면서 서소문(西小門)이라 하였다. 광희문(光熙門)과 함께 시체를 성 밖으로 옮긴 통로 구실을 하였다. 1914년 일제강점기의 도시계획에 따라 근처 성곽과 함께 철거되었다.
중구 남대문로4가 29의 숭례문(崇禮門)은 도성의 남쪽 정문이라서 통칭 남대문(南大門)이라고 불린다. 1396년(태조 5)에 짓기 시작하여 1398년(태조 7)에 완성되었다. 현존하는 한국 성문 건물중 가장 규모가 크고 서울의 목조건물(木造建物) 중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중구 광희동2가 105-32의 광희문(光熙門)은 남소문으로 시구문(屍軀門), 수구문(水口門)이라고도 하였으며 서소문(西小門)과 함께 시신(屍身)을 내보내던 문이다.
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