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0강)
10. 나도 좋은 시인이이 될 수 있는가
지금까지 귀가 아프도록 들어온 시 창작에 필요한 여러 가지 방법과 시는 어떤 모습인가 하는 것들이 어렴풋이 정리되면서 시가 보이고 시인의 길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또 하나의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나도 정말 시인이 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입니다. 그리고 정말 좋은 시를 창작할 수 있을까 하는 나름대로의 걱정이 생기기도 할 것입니다. 이러한 물음은 시를 처음 배우는 사람이나 이미 각종 잡지를 통해서 등단했다는 사람도 모두가 한번쯤 가져보게 되는데 어쩌면 당연할 지도 모릅니다. 현재 우리나라에 제도화 되어 있는 시인 데뷔의 과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그 하나는 ‘신춘문예’라고 해서 각 일간 신문사에서 주관하여 응모작을 통해서 심사를 거쳐 당선하는 길이 잇습니다. 지금도 이 신춘문예에 대한 열기는 매년 대단하게 지망생들에게 화려한 꿈을 꾸게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문학잡지들의 ‘신인상’ 당선제도입니다. 옛날에는 3회의 추천을 완료해야 데뷔를 인정하는 까다로운 절차를 밟아야 했으나 최근에는 모든 문학지들이 신인상으로 바꾸어서 일 년에 몇 차례의 당선을 통해서 시인을 데뷔하고 있어서 옛날보다는 약간 쉬워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시인으로 데뷔하려는 사람은 우선 시인이 될 수 있는가 하는 자신의 자질과 정신을 한번 되돌아 보아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시인(詩人)은 글자에서 보는 바와 같이 시(詩)를 쓰는 사람(人)이라서 ‘사람’됨이 먼저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여기 몇 가지 문제를 제시하여 스스로 점검해 보고 난 뒤 현재 진행되는 시단 데뷔의 실정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0-1. 시인의 자질 또는 정신 ‘시인은 누구나 될 nt 있다’는 자신감은 좋지만, 시인이 되기까지는 몇 가지 생각해 볼 문제가 있습니다. 누구나 시인이 되고 싶은 욕망만으로는 올바른 시인이 될 수도 없고 똑바른 시 한 편도 쓸 수 없을 것입니다. 시인은 사물이나 인생을 관찰하는 동안 보통 사람들보다는 예민한 간수성과 풍부한 상상력을 가지고 있어야 함은 말할 것도 없지만, 실생활이나 사회에서 경험한 소재가 곧 시가 된다고 생각한다면 굳이 시인이 존재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똑 같은 시간과 공간에서 함께 체험한 것이라도 시인은 이것을 시로서 표현할 수 있는 감수성과 상상력이 있지만, 일반 사람들은 그냥 자기의 체험으로 끝난다는 마음의 자세가 문제입니다. 사실 보통사람들은 자기의 실생활과 관계가 없으면 굳이 깊이 생각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문제들을 다음과 같이 몇 가지로 정리해 보기로 합니다.
① 시인이 될 수 있는 사람은 자기의 마음 밑바닥에 깔려 있는 시심(詩心)이 충만한가를 먼저 따져 보아야 할 것이다. 나는 죽도록 시를 사랑할 수 있으며 죽는 순간까지 시를 쓸 수 있다는 시를 향한 투철한 정신이 필요하다. ② 시와는 친근감이라 할까, 시와 더불어 한 생을 살아가야 한다. 시는 곧 나의 인생이다라는 확고한 삶의 지표(指標)가 세워져야 한다. 잠시 논어(論語)의 말을 새겨 봅니다. 공자의 제자 중에는 진항(陣亢)이란 사람이 있었습니다. 공자의 아들 백어(伯魚)에게 ‘그대는 남달리 아버지(공자)에게 따로 가르침을 받았느냐?’ 하고 물었습니다. 백어는 없다고 대답하면서 다만, ‘일찍이 아버님께서 뜰에 홀로 께시면서 지나가는 나를 불러 말씀하시되 너 시(詩經)를 읽었느냐 묻기에 아직 읽지 못했습니다 한즉, 시를 읽지 않으면 남과 더불어 말할 수 없다하여 즉시 시르 읽었노라’라고 말했다. 이를 두고 불학시 무이언(不學詩 無以言)이라 하여 시를 공부하지 않으면 남 앞에서 말을 할 자격이 없다는 뜻입니다. 또한 불학례 무이입(不學禮 無以立)이라 해서 예를 배우지 않으면 서 있을(살아갈) 자격이 없다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시나 예는 인생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이며 이를 잘 다듬고 이해하는 것, 특히 시를 쓰겠다는 사람은 시와 인생과 일치된 삶의 방식이나 가치관이 확실하게 정립되어야 할 것입니다. ③ 시를 위한 노력이다. 한 편의 좋은 시를 쓰기 위한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④ 인생의 수양이다. 올바른 인생관과 정립된 가치관이 있어야 한다. 그 시는 그 사람의 마음(其詩其人心)이고 그 글은 곧 그 사람(人)이며, 그 사람은 그 글(詩)이다. 시는 진실한 마음이며 그 인간 됨됨이가 바로 시이다. 그 사람의 인격이나 인간성이 결여되면 우선 시인으로서의 자질이 의심스러울 뿐이다. 논어의 시경에는 ‘시 삼백편의 내용은 한 마디로 생각함에 사악함이 없어야 한다(詩 三百 一言而蔽之曰 思無邪)’고 말한 것과 ‘시는 감흥ㅇ을 일으키며 인정을 관찰케 하며 사람과 어울리게 하며 비정(非情)을 원망할 줄 알게 한다. 가까이는 어버이 섬김을 가르치고 나아가거는 나라를 위하는 바탕이 되며 새와 짐승과 초목의 이름을 많이 알게 한다’는 명언은 곧 시와 인간성과의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유념해야 합니다. ⑤ 진실의 응집(應集)이 있어야 한다. 인간의 진실이 곧 시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진실은 정의하기가 너무 넓지만 시적 진실은 어디까지 사랑의 실천입니다. 진솔한 삶의 진실도 내가 남을 사랑하면 남도 나를 사랑한다(愛人者卽愛之)는 공자가어(孔子家語)의 신념이 무엇보다도 무르녹아서 그 진액만이 진실로 형상화되어야 합니다. ⑥ 인내가 필요하다. 시인은 고독함과 고뇌와 갈등을 참아내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시가 곧 돈이 되지 않는 현실에서는 더욱 그 고통을 이겨내야 한다. 흔히 시인이라면 가난한 존재이거나 상식 밖의 엉뚱한 논리를 전개하는 사람으로 알고 있습니다. 때문에 상식의 틀에서 맴도는 일상인들은 시인을 받아들이기는 커녕 되독이면 기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고대 희랍에서도 철학자 플라톤이 그가 생각하는 이상국가의 건설은 철학자가 제왕이 되든지 제왕이 철학자가 되어야 한다면서 시인 추방론을 내세운 적도 있습니다. 한편 독일 시인 쉴러는 그의 「지구의 분배」에서 소외당한 시인의 처지를 잘 밝혀주고 있어서 주목됩니다.
어느 날 제우스 신은 천상에서 인간들에게 호령했다. - 물려 받아라. 이 세계를. 물려 받아라. 이것이 너희들 것이다. 너희들에게 이것을 유산으로서, 영원한 영지로서 보내노라. 자, 사이 좋게 나눠 가져라. 이 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서로 앞다투어 손이 미치는 대로 마구 자기의 것으로 차지햇다. 농민, 상인, 귀족, 어부 등 자기가 필요한 것은 모두 차지하여 지구의 분배는 끝났다. 그때 아주 먼 곳에있던 시인이 나타났다. - 참, 너무하군. 어찌하여 나 혼자만이 모든 사람한테서 따돌려져야 하나. 당신의 가장 충실한 자식인 내가... 시인은 컨 소리로 괴로운 심정을 호소하면서 제우스신에게 애원했다. - 너는 도대체 어디 있었느냐? - 나는 당신 곁에 있었습니다. 나의 눈은 당신의 용안을 우러러고 귀는 천상의 음악에 솔깃해 있었습니다. 이 마음을 용서하십시오. 당신의 눈부신 광채에 황홀해서 지상의 일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것을...... - 어떻게 하면 좋지. 지구는 이미 모두 나뉘어져 버렸다. 계절도, 사랑도, 시장조 모두 이젠 내것이 아니야. 네가 이 천국의 나와 함께 있고 싶으면 가끔 오너라. 이곳은 너를 위해 비워 놓을테니까.
이래서 시인은 가진 것은 없지만, 그 자유롭고 고귀한 동경에 의해서 이따금 신과 함께 할 수 있는지도 모릅니다. 시인은 세상 사람들이 별로 탐내지 않는 구름의 벗이 되고 사물의 주인이 되기도 합니다. 고귀하고 순결한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고 밝고 따스한 호흡과 향기로운 이름을 불어넣어 주기도 하는 특권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요즘은 워낙 심오한 그 어떤 것에 까지도 보다 넓고 깊은 상상의 세계를 가진 시인들이 그것들을 볼 수 있고 깨달을 수 있게 작품 속에서 구현해 내고 있습니다. 이야기가 좀 진부하고 길어졌지만, 이와 같은 것은 시인으로서의 자긍심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현실에서의 측은함 같기도 합니다. 이러한 고뇌와 갈등들이 화해를 위해서 지독한 인내가 요구되기도 하는 것이 시인의 길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10-2 시인과 우리 글 사랑 시는 언어의 예술이라고 앞에서 말한 바처럼 시인에게서 언어라고 하면 당연히 우리의 글이며 말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글 ‘한글’을 갈고 닦아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 글을 많이 알고 아름답게 구사할 줄 알아야 좋은 시를 쓸 수 있다는 것은 익히 강조한 바 있는데 특히 시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국어에 대한 관심과 민족문화의 바탕이 되는 국어를 사랑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도 시가 언어의 예술이라는 자각과 함께 국어의 순화와 아름다움을 중시하기 시작한 것은 1930년에 창간된 『시문학』을 중심으로 한 박용철, 김영랑, 정인보, 정지용 등의 시문학파들의 활동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당시는 일제 식민지였지만, 국어 사랑이 곧 나라 사랑이라는 의식이 자리 잡아서 우리 글로 시를 쓰는 것이 우리 민족과 문화를 지키는 것으로 인식하고 우리 국어 지키기와 순화에 앞장 섰습니다. 이러한 노력은 서정주와 조지훈, 박목월, 박두진(청록파) 등에게로 이어져 주옥 같은 우리 글로 다듬어진 시편들을 많이 썼던 것입니다. 포켓용 국어사전을 세 번 정도는 완독(玩讀)한 후에 시 쓰기에 임해야 한다는 어느 노시인의 말처럼 우리 글의 중요성과 우리 글 사랑이 바로 시인들에게서부터 인식되어야 하며, 실제로 우리 글을 잘 알지 못하고는 아무리 좋은 시상과 명확한 주제가 있다할지라도 표현에는많은 어려움이 따릅니다. 시를 쓰고자 하는 사람이나 시인이 되려고 하는 사람. 그리고 더욱 좋은 시를 쓰려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이 좋은 언어를 사용하기 위해서 우리 국어를 누구보다도 많이 이해하고 쓸 줄 아는 노력이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뵈오려 안 뵈는 님 눈 감으니 보이시네 감아야 보이신다면 소경 되어지이다 --이은상의 「소걍되어지이다」중에서
내 마음의 어딘 듯이 한 편에 끝 없는 강물이 흐르네 돋쳐 오르는 아침 날 빛이 빤질한 은결을 도는데 가슴엔 듯 눈엔 듯 또 핏줄엔 듯 마음이 도른도른 숨어 있는 곳 내마음의 어딘 듯 한 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김영랑의 「끝 없는 강물이 흐르네」중에서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조지훈의 「승무(僧舞)」중에서
이러하듯이 우리의 국어를 최대한 활용하여 섬세하게 묘사할 수 있는 실력의 배양이 뒤따라야 할 것입니다. 논어에 이른 것과 같이 단 한 마디의 언어로써 지자(知者)도 되고 무식한 자도 될 수 있다(一言以爲知 一言以爲不知)는 교훈을 신중하게 생각해 봐야할 문제입니다. 그리고 우리 글을 사랑하는 것만큼 시 쓰기에서 유의해야 할 점은 글쓰기에도 유의해야 합니다. 옛날 같으면 원고지 사용법이 정확해야 하지만, 요즘은 컴퓨터 워드 프로세로 그을 쓰기 때문에 우리 맞춤법에 유념한다든지 하는 문제만 해결하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