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된 맹세에 따른 비참한 결과: 베냐민의 끊어짐과 야베스 길르앗의 멸절
본문말씀: 삿 21:1-12
21:1 이스라엘 사람들이 미스바에서 맹세하여 이르기를 우리 중에 누구든지 딸을 베냐민 사람에게 아내로 주지 아니하리라 하였더라
21:2 백성이 벧엘에 이르러 거기서 저녁까지 하나님 앞에 앉아서 큰 소리로 울며
21:3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어찌하여 이스라엘에 이런 일이 생겨서 오늘 이스라엘 중에 한 지파가 없어지게 하시나이까 하더니
21:4 이튿날에 백성이 일찍이 일어나 거기에 한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더라
21:5 이스라엘 자손이 이르되 이스라엘 온 지파 중에 총회와 함께 하여 여호와 앞에 올라오지 아니한 자가 누구냐 하니 이는 그들이 크게 맹세하기를 미스바에 와서 여호와 앞에 이르지 아니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라 하였음이라
21:6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의 형제 베냐민을 위하여 뉘우쳐 이르되 오늘 이스라엘 중에 한 지파가 끊어졌도다
21:7 그 남은 자들에게 우리가 어떻게 하면 아내를 얻게 하리요 우리가 전에 여호와로 맹세하여 우리의 딸을 그들의 아내로 주지 아니하리라 하였도다
21:8 또 이르되 이스라엘 지파 중 미스바에 올라와서 여호와께 이르지 아니한 자가 누구냐 하고 본즉 야베스 길르앗에서는 한 사람도 진영에 이르러 총회에 참여하지 아니하였으니
21:9 백성을 계수할 때에 야베스 길르앗 주민이 하나도 거기 없음을 보았음이라
21:10 회중이 큰 용사 만 이천 명을 그리로 보내며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가서 야베스 길르앗 주민과 부녀와 어린 아이를 칼날로 치라
21:11 너희가 행할 일은 모든 남자 및 남자와 잔 여자를 진멸하여 바칠 것이니라 하였더라
21:12 그들이 야베스 길르앗 주민 중에서 젊은 처녀 사백 명을 얻었으니 이는 아직 남자와 동침한 일이 없어 남자를 알지 못하는 자라 그들을 실로 진영으로 데려오니 이 곳은 가나안 땅이더라
오늘 이 말씀이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중에 대표적인 것은, 이스라엘이 미스바에 모여 여호와 앞에서 맹세한 것이 큰 문제라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미스바에서 맹세를 합니다. 누구든지 자기들의 딸을 베냐민 사람들에게 아내로 주지 말라고 합니다. 만약에 아내로 주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는 맹세를 합니다. 이 사람들이 한 그 맹세가 그들에게 어떤 의미를 주고 있는가. 또 어떤 결과를 얻게 되는가.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 주님께서 맹세하지 말라는 말씀과 같은 의미를 가집니다.
3절을 보면, 이 사람들이 여호와 앞에 앉아 여호와를 원망하며 울부짖습니다. 여호와여 어찌하여 이스라엘에 이런 일이 생겨서 오늘 이스라엘 중에 한 지파가 없어지게 하냐고 원망을 합니다. 실질적으로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된 것은 그들의 맹세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하신 일은 아닙니다. 자기들이 맹세하고 자기들이 행한 것에 문제가 생김으로 그 문제를 하나님께 돌리는 것입니다.
이런 잘못을 우리도 합니다. 하나님 앞에 내가 서원을 해놓고 그 서원한 것을 지키려니 힘들어서 원망하는 일이 우리 삶 가운데서도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맹세 해놓고 그 맹세한 것이 시간이 지나면 지키기가 힘들어서 지키지 안습니다. 이런 일들이 종종 있습니다.
결국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기 입으로 자기들이 서원을 한 대로, 결국 그들에게 저주가 되고 올무가 되었습니다. 베냐민 지파에게 딸을 주어서 아내를 삼게 하는 자에게 저주가 임한다고 맹세한 그 맹세를 지키려고 하였지만, 그들 가운데 한 지파가 없어지게 되는 저주가 임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열두지파를 세우고 그 지파들에게 각각 기업을 준 것은, 하나님은 구원의 하나님으로써 그 나라를 세우고 그 나라의 통치자인 왕이 되고자 함인데, 왕이 없으므로 자기 소견대로 하면서 자기들이 율법을 가졌다는 것으로써 율법으로 정죄하고 율법으로 판단하고 자기들 임의로 어떤 법을 정하여서 그대로 맹세함으로 인해서 결국 그들에게 얻어진 결과를 지금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맹세는, 베냐민에게 딸들을 아내로 주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일로 인해서 두 번째로 악한 일을 행합니다. 베냐민에게 가서 진멸하는 것도 모자라서 야베스 길르앗에 가서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다 죽입니다. 그 중에 처녀들만 남겨서 데리고 옵니다. 이와 같이 행한 이유는, 야베스 길르앗 사람들이 여호와의 총회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와 같이 행한 것입니다. 9절을 보면 야베스 길르앗 주민이 하나도 거기 없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10~11절 말씀에 야베스 길르앗 주민과 부녀와 어린아이를 칼날로 치고 모든 남자와 남자의 자녀들을 진멸하여 받칠 것이라고 했습니다.
야베스 길르앗이라고 한 이 땅은 므낫세에게 준 땅입니다. 므낫세 지파 사람들이 그 곳에 살고 있었습니다. 야엘이 이 땅을 잘 지켜서 그 자손들이 하봇야엘이라는 이름까지 계속 가지고 있었던 만큼 길르앗 사람들은 진실했고, 길르앗 자손 중에서 입다가 사사로 일어났던 족속입니다. 그런데 길르앗 야베스에 사는 사람들을 다 진멸해서 없애버리면서 남자를 알지 못한 처녀들만 남겨서 베냐민 지파에게 사백 명의 젊은 처녀들을 주는 일을 했습니다. 결국은 누구를 죽여서 다시 베냐민 사람들이 자손을 이어내려 갈수 있게 하더라는 말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그와 같이 자기들이 정죄하고 판단하였습니다. 또한 그 다음에 두 번째로 잘못한 것은, 그들이 자기의 임의대로 자기 결정을 따라서 다른 사람들을 죽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이 두 가지 죄를 저질렀습니다.
율법의 행위에 속한 자들은 그 율법의 저주 아래 놓인 자가 되어진다(갈3:10)고 말씀합니다. 그들이 율법을 가지고 판단하고, 율법을 가지고 베냐민을 향해서 대적하였던 것과 같이, 자기 스스로 맹세하고 지키려고 했던 총회에 올라오지 않은 자들은 다 죽임을 당한다고 맹세한 대로 그 일을 행했습니다. 이렇게 행한 자들도 똑같이 자기들도 그 저주에 놓인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처음에 이스라엘 지파가 베냐민을 대적하기 위해서 미스바에 다 모였을 때는 길르앗 사람들도 그곳에 있었습니다. 그곳에 나와서 함께 베냐민을 대적하는 자들 속에 있었습니다. 그랬던 사람들이 여호와의 총회는 나오지 아니함으로 결국은 그들이 그 저주 가운데서 죽임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율법을 지키려고 하는 자는 율법으로 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율법의 저주 아래 놓이게 되고 결국은 율법 책에 기록된 모든 것을 지키고 행하지 않는 자는 모두가 저주 아래 있게 된다는 것을 우리에게 지금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베냐민을 심판한 그들 중에 이 길르앗 사람들은 여호와의 총회 앞에 나오라고 한 것을 지키지 아니함으로 그들이 불이익을 당하게 되고 결국 저주 아래서 모두가 진멸된 것은, 율법은 우리를 저주 아래 놓이게 한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우리 입으로 함부로 말을 뱉지 말아야 합니다(전5:2). 함부로 말을 하면 내가 급한 마음에 입을 열어서 하나님 앞에서 행한 말이기 때문에 행한 그 말에 대해서는 책임을 내가 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무슨 무익한 말을 할지라도 그 말에 대한 책임이 하나님 보좌 앞에서 반드시 내가 직고 하게 되어지고 내가 말한 대로 그 책임을 내가 지게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내가 말에 대해서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우리는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반드시 우리의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을 적게 하는 것이 지혜로운 것입니다.
너는 땅에 있음이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다(전5:2)고 말합니다. 즉, 모든 것을 행하고 모든 것을 판단하시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다는 말은. 모든 만물을 다스리시는 자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들은 땅에 있다는 것입니다. 땅에 있다는 것은 피조물이라는 것이고 지음을 받은 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가 무엇을 스스로 하지 말아야 합니다. 맹세를 잘못하면 어떤 말을 할지라도 그 말에 대한 올무에 내가 놓입니다. 내가 한 말에 내가 올무에 놓입니다. 우리 스스로가 우리에게 올무를 묶는 것이 있습니다. 그만큼 말에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무엇을 못한다고 말하고 스스로에게 주입을 한다면 이 상태가 우리 스스로에게 올무가 된다는 것입니다.
무엇이든 내 입의 말에 힘이 있다는 것을 MBC 방송에서 시험한 것을 많은 사람들이 보셔서 잘 하십니다. 똑같은 조건의 밥을 놓고 한쪽 밥에는 축복의 말을 계속하고 다른 한쪽 밥에는 저주의 말을 계속한 결과 시간이 지난 후 살펴보니 그 밥에 생긴 곰팡이가 달랐습니다. 축복의 말을 받은 밥에는 흰곰팡이가 생기고 저주의 말을 받은 밥에는 검은 곰팡이가 생기는 결과를 얻었습니다.
이와 같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밥에도 우리가 말로써 어떤 말을 했을 때 거기에 나타난 결과를 보면 말과 같이 되었습니다. 믿는 자들의 입의 말이 얼마나 능력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너희가 땅에서 매면 무엇이든지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땅에서 풀면 무엇이든지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말씀한 것처럼 우리가 이 땅에서 하는 말인 저주와 축복이 능력이 되어서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을 뱉어서도 안 되고 함부로 말을 해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무익한 말일지라도 내가 책임을 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맹세는 함부로 하면 안 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여호와 앞에서 맹세를 하고 그들은 그 저주와 올무 아래 놓이게 된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와 같이 자기들이 맹세하고 그 저주와 올무 아래 놓였으면서 누구에게 불평불만을 합니까. 하나님 앞에 불평불만을 합니다. 이 모습이 바로 우리 죄성의 모습입니다.
아담이 하와를 얻었을 때, 내 뼈 중에 뼈요 내 살 중에 살이라고 기뻐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가나안 땅을 주실 때는 그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들어갈 때는 기뻐했습니다. 그들이 죄를 짓고 그 죄악 가운데서 하나님의 보호하심 가운데 있지 않을 때는, 우리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냐면서 불평불만 하는 이런 모습은 우리도 동일하게 똑같이 행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을 할 때 더 주의 해야 합니다.
말이 어디로부터 나옵니까. 율법을 따라서 그들이 맹세한 것은, 그들의 육체의 생각을 따라서 왔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우리가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물은 것이 아니라, 그들이 스스로 결정하고 그들이 그 일을 시행 했습니다. 이스라엘을 세우신 하나님의 목적은 그들을 통해서 구원의 하나님이 되심을 나타내고자 함이며 그들에 반드시 여호와의 구원이 날마다 드러나야 하는데, 그들의 육적인 생각은 육신의 일을 했습니다. 결국 같은 형제가 싸우고 같은 형제가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을 했습니다.
육신의 생각은 육신의 일을 영의 생각은 영의 일을 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하나님의 법에 굴복할 수도 없다(롬8:6~7)고 합니다. 율법은 사랑의 법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기 위해서 주신 법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육신의 생각을 따라서 행함으로 결국은 스스로 율법의 저주 아래 놓인 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 스스로가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거기에 더 나아가서 길르앗 사람들을 무참히 살해 하는 죄까지 지었습니다.
예수님이 중풍 병자에게 행하신 일이 누가복음 5장에 기록 되있습니다. 중풍병자가 실려서 나왔을 때, 예수님은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이제 네가 네 침상을 가지고 걸어가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하신 말씀이, 네 죄가 사함을 받았다고 하심으로 거기에 모인 사람들이 다 같이 참담하도다. 저가 어떻게 저와 같은 말을 할 수 있느냐고 회중들이 비난을 합니다. 24절에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믿는 자는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음을 너희로 알게 하기 위함이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율법은 정죄하고 판단하고 그들에게 저주와 올무에 놓이게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셨을 때 우리를 그 모든 죄에서부터 건짐을 받게 하시는 권세를 가지신 분입니다. 우리의 죄를 사해 주시는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에게 행하신 일은 중풍병자가 죄 사함을 받았다는 증거를 치유 받으면서 스스로 침상을 가지고 걸어가게 하는 사건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왜냐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각에는, 병에 걸리면 하나님의 저주 가운데 놓여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저주 가운데 놓여 있다는 그 저주는 율법에 의해서 맺어진 저주입니다. 율법의 판단, 그 죄의 값이 우리에게 저주와 사망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율법의 용무를 그 몸에 짊어지고 이루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로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그 뜻인 우리를 구원하시는 구원을 나타내신 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 사함을 얻게 하는 권세가 우리 예수 그리스도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입니다.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패하여지며 스스로 분쟁하는 집은 무너지느니라(눅11:17).
이 말씀을 하시고 23절에 말씀하시기를 나와 함께하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라고 말씀을 합니다.
지금 열두지파가 모였을 때에 야베스 길르앗은 그 총회에 나오지 않았다고 말하면서 이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결국은 이스라엘과 그 안에 일어난 같은 형제요, 같은 이스라엘 사람들 안에서 분쟁이 일어나고 그래서 베냐민도 야베스 길르앗 주민들도 죽임을 당하는 일이 일어난 것이 오늘 17장 말씀입니다. ‘
육적인 생각을 가지고 나아갈 때는 스스로 분쟁하는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서 스스로 분쟁하면 그 나라가 세워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씀하시는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세우고자 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의미합니다. 이스라엘 나라입니다. 그래서 열두지파가 온전하게 세워져서 하나님의 나라가 되어야 하는데 그 안에서 분쟁이 일어납니다. 이후에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 북 왕국 이스라엘과 남 유다 왕국이 계속 싸움이 일어나서 서로 죽이는 일을 하는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화평입니다. 이 화평은 율법을 가지고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둘이 하나가 되게 하셨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가 하나가 되고, 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가 되는 화평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과 그의 백성 간에 화평을 이루서 결국은 둘이 하나가 되어서 하나님께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나아가게 하는 일을 이루신 예수님은 화목제물로 이 땅에 오셨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화목제는 하나님 앞에 향기로운 냄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 향기로운 냄새입니까. 율법은 다툼이 생기게 하고 율법은 황패케 만들고 나라를 무너뜨리지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준 복음은 하나가 되게 하고 서로간에 화평하고 평안하게 하는 나라가 세워질 수 있게 하는 일을 합니다. 그러므로 율법으로는 세워질 수 없고,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복음으로만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온전케 세울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은 바리새인들을 향해서 말씀하시기를,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는 잘 드리되, 즉, 율법은 잘 지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렸다(눅11:42)고 말씀합니다. 십일조를 드리는 의미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첫 것으로 하나님 앞에 드려짐으로써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들이 구원함을 받고 한 나라로 세워지는 것을 말하는 것이 십일조의 의미입니다.
예수님이 드려지심으로 인해서 모든 인류가 죄 사함을 얻게 되고, 한 사람 아담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온 이 세상의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으로 죄 사함을 얻게 되고 한 나라로 세워지는 것이 십일조의 의미인데, 너희들이 십일조의 행위는 잘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하신 십자가의 사랑은 버렸다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주신 공의는 버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주신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율법으로 판단하고 정죄하고 율법으로 어떤 행위를 하였지만 지키고자 하고 열심히 지키려고 하는 바리새인들이지만,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이것을 이루기 위해서 오셨을 때는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하나님의 공의로 오신 예수님은 버리고 사랑으로 나타나신 메시야 그리스도는 그들이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하였습니다.
그들 안에서 율법은 분쟁을 일으키고 죽이고 멸망하게 하는 일을 이루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화가 있다는 것입니다. 율법 아래서 율법을 지키고자 하는 자는 모두가 저주 아래 놓인 자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롬2:1).
이스라엘 사람들은 베냐민이 음행한 것을 정죄하려고 그들에게 가서 죽였는데, 이들도 똑같은 죄를 저지른 것이라는 말을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구를 참소하고 비방하면 우리도 똑같은 죄를 저지르는 자라는 것입니다.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4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5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롬2:3~5)
오늘 이 사사기 21:1~12절까지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 곧 이 로마서 2:3~5절 말씀입니다. 그들이 자기가 의롭다고 생각하고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서 형제를 판단하고 심판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그와 같이 심판하고 판단한 것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길이 참으심을 멸시한 것이라고 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대적하는 행위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못하는 자라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도 똑같이 심판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이와 같은 일을 행한 것은 우리들의 한 지파가 없어짐이 무슨 일이냐. 하면서 하나님 앞에 화목제 번제를 드립니다. 즉, 율법을 잘 지키는 모습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원망하고 하나님이 시키지도 않은 일을 자기들이 하면서 율법을 가지고 형제를 판단한 죄를 짓고 있으면서 행위로는 제사도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 안에는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긍휼하심을 멸시하는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여기에서 말씀 하고자 하는 것은 그들의 마음을 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내 마음이 어떠한지 돌아보라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정말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을 내가 가지고 있느냐. 만약에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형제들을 그렇게 판단하고 진멸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결국은 그와 같이 판단하고 행한 사람들은 더 나아가서 더 끔찍한 죄도 자기의 문제를 또 가리기 위해서 다른 일도 서슴없이 저지릅니다. 그래서 죄가 또 죄를 낳게 합니다. 내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 결국 하나님의 심판 아래 놓이게 되는 것을 말씀합니다.
내 고집과 회개하지 않은 마음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진노를 당하는 자가 된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 앞에 내 고집 내 생각 내 의가 지금 어떻게 하나님 앞에 범죄를 하고 있는가를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심판 당하는 그 길에 서지 않기 위해서 주의 인자하심을 생각하라는 말씀을 오늘 우리에게 주고 계십니다.
십자가의 은혜가 우리에게 준 그 사랑이 어떤 것인가를 우리가 안다면, 그 은혜 안에 사는 자가 되어야 하고, 그 은혜와 사랑으로 형제를 돌아보고 주님이 우리를 향해서 끝까지 그 인자하심이 용납하시고 길이 참으심이 풍성한 것처럼, 우리도 이와 같은 자가 되어야 할 것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 손에 장을 지지리라는 이런 스타일의 맹세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내 임의 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피조물입니다. 우리 주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면 하고, 하지 말라 하면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인생들이 바로 이런 모습이어야 합니다. 주님 앞에 하나님은 나의 주 나의 하나님 그래서 예수님 앞에 묻고 예수님의 공의로 판단하고 예수님의 그 공의 안에서 살고 그 인자와 사랑을 누리는 자라면 인자와 사랑으로 또한 우리 형제를 사랑하고 참고 용서하고 용납하면서 주님께서 이루게 하시는 대로 순종할 것 밖에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이와 같이 율법 앞에 행하려고 하는 자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복음 안에서 사랑으로 형제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할렐루야 거룩하신 아버지.
이스라엘 자손들이 베냐민 지파를 대적해서 그들을 진멸하고 이제는 또 베냐민 지파가 없어졌다고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그들은 율법이 하라고 한 대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며 그들이 어떤 행위로 의롭다함을 얻고 그들은 무엇인가를 잘하고 있다는 행위로 주님 앞에 여전히 보이고 있지만, 실상 그들 안에 있는 것은 악이요 독입니다.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칼이요 살인이요 그래서 결국은 그 야베스 길르앗 족속들도 다 죽이고 그 곳에서 자기들의 방법으로 처녀 사백 명을 데려다가 베냐민 지파의 자손을 이어갈 수 있게끔 자기 임의로 행하는 이런 모습이 오늘 우리가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는 우리의 모습임을 보여주시니 참 감사합니다.
우리 스스로가 하나님 앞에 헛되게 맹세하는 것이 있는지 돌아보게 하여주시고, 또 맹세함으로 우리가 이미 짊어진 저주나 올무가 힘들어서 하나님 앞에 원망하는 것은 아닌지, 또 율법으로 무엇인가를 행하려고 하는 열심이 있다면 그 율법의 저주 아래 우리가 놓여 있는 자요 우리 마음의 고집과 회개하지 않는 마음이 내 의를 가지고 행하면서 주님 앞에 주님이 베푸시는 인자와 긍휼하심을 멸시하는 자가 되어있지는 않은지, 주님 앞에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서 예수님이 우리를 용납하시고 우리를 용서하신 그 십자가의 사랑을 우리 가운데 부어주셔서 우리도 형제들을 판단하고 정죄하고 심판하여서 죄가 더욱 더 죄를 낳게 하는 이런 자가 되게 하지 마시고, 오직 사랑으로 함께 그 십자가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 갈수 있는 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힘이나 우리의 노력이나 우리 열심이 할 수 없기 에 주 앞에 구합니다. 날마다 우리를 돌아보게 하옵시고, 겸손하게 낮아진 자가 되게 하옵시고, 우리의 무지한 입술이 무익한 말을 함으로써 그것에 대한 보응을 스스로 받는 자가 되지 말게 하옵시고, 오직 주님 앞에 묻고 주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말할 수 있는 자요, 행할 수 있는 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에나 일에나 주 예수 이름으로 행하고, 주 예수님 앞에만 영광 돌리고, 오직 주님의 나라를 세우는 일에 하나님의 영으로 그 뜻과 그 마음으로 함께 함으로 이루어 갈 수 있는 사랑의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감사하며,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 받들어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첫댓글 감사 합니다.
아멘 항상 나를 돌아보게 하옵시고 입술에 파수꾼을 붙여 주옵소서
주님의 은혜를 사모하시는 자수정님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