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0호(남, 58세. 7리 이장. 2021.10.06.)
- 재생사업, 주민 스스로 갈고 닦아야 한다 -
<사북 정착이야기>
이00 이장은 사북토박이다. 학교도 사북초등학교를 다녔다. 자녀는 슬하에 1남1여를 두었는데 모두 장성했다.
사북은 2개의 리로 구성되어있는데 7리 이장을 맡고 있다. 이장을 맡은 지는 6년 되었다. 이장일이 마을의 민원을 읍이나 군 등에 가서 전달해야 되고 생기는 일 없이 분주하기만 해서 힘들다.
그는 잠시 도시 생활을 한 것을 제외하고는 여기서 생활을 했다. 자영업 하다가 회사생활 하다가 자영업 하다가를 반복했다. 요즘은 지역의 어르신들 하고 간단한 일을 하고 있다.
“이장 겸 같이 하고 있어요.”
예전에 어렸을 때 마을과 지금 마을을 비교한다면 많이 변했다. 이진호 씨가 어렸을 적에는 여기가 ‘새카만 동네!’ 탄광촌이었다. 집들도 뭐 거의 판잣집이 주로 많았고, 광산생활하기 위해서 들어온 사람들이 많다보니까 인구가 많았다. 삶은 그리 넉넉지는 않았는데 지금은 그때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모두가 풍부하다.
이 지역의 변화를 시대별로 살펴보면 많이 변화한 거 같다. 석탄산업이 합리화 되다보니까 사람들은 많이 떠났지만 그래도 남은 사람들이 지역의 대체산업을 바라고 있어 강원랜드도 들어왔다.
“그러다보니까 지금처럼 발전이 좀 된 거죠.”
지역발전을 위해 33뿌리관도 들어서게 되었는데 관계도 좋고 협력도 잘 된다. 자신도 유치투쟁에 참여했다.
“저도. 빨간 띠 두르고 대체산업을 해 달라고 앞장서서 다 했어요. 33뿌리관에 가면 제 사진이 딱 하나 있어요.”
그도 탄광 일에 조금은 종사했다. 후산부일을 했다. 적성에 맞지 않아서 ‘이건 아니다.’ 싶어서 직장생활도 하고 여러 가지 일 많이 배웠다.
“그러다보니 여기를 떠나지도 못 하고 발목 잡혀서 지키고 있어요.”
<도시재생사업 이야기>
3년 전부터 도시를 살리기 위해 사업이 시작되었다. 전에는 농어촌공사에서 ‘시가지정비사업’이라는 명목으로 했다. 소도시 가꾸기 사업 같은 거였다. 케이블을 지중화하고 조형물을 세우고 불빛으로 도시를 밝히고 있다.
지금도 시가지 뒤쪽 하천가를 보면 그런 작업을 많이 해놓았다. 일명 ‘650 거리’ 이 명칭은 동원탄좌 갱도가 처음 시작되는 지점이 해발 650미터라서 그렇게 붙였다.
“그 위로 올라가면 850항도 있고, 950항. 고지에 따라서 갱도이름이 붙어있어요.”
그게 곧 마을 이름같이 되었다. 지금 카지노가 들어서있는 쪽으로 가면 지명유래는 잘 모르지만 화질령이라는 마을이 꽤 컸다. 초등학교도 하나 있었고, 살기는 열악했지만 광산생활 하는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
소도사업 가꾸기 사업으로 예산이 많이 투자되었는데 공모를 통하여 선정된 사업이다. 번영회에서 주축이 되었으며, 자신도 33뿌리관을 포함하여 이사를 맡고 있다. 사업의 명칭을 ‘빛의 거리’조성이라고 짓고 조형물도 하나 세웠다.
“탄광이 죽다보니까 뭔가 빛처럼 밝혀보자는 의도가 있었죠.”
고한의 경우는 야생화가 많다보니까 야생화 마을로 이름을 지었다. 사북은 빛의 도시, 빛의 마을로 가꿔보자, 라는 의미가 담겼다. 지금도 그 사업은 진행 중이다. 사업 당시에 하지 못했던 것을 보완하는 차원에서 이어나간다.
이 사업 이외에는 마을번영회에서 추진하고 있는데 코로나 때문에 잘 추진도지 않는다. 그는 이 사업이 마감되면 관광사업으로 갔으면 좋겠다고 한다. 강원랜드와 연계하여 지역 관광상품 개발을 바랬다. 허울 좋은 관광이 아니라 볼거리, 먹을거리, 즐길거리를 모두 개발해 나가야 하는데 쉽지 않다.
“의견이 다양해서 쉽지 않아요.”
그는 발전을 꾀하기는 해야 하겠는데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에 마음 아파했다. 그는 또 지장천 문제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예전에는 까만 물이 내려갔다. 그런데 지금은 너무나 깨끗해져서 물고기도 살고 있어 좋다.
사람들이 드나들게 하거나 편의시설을 갖추어서 쉴 공간도 만들고 그 위는 복개해서 주차장시설로 활용하면 좋을 것 같은데 법이 강화되어서 그것도 어렵다.
역대 번영회장들이 일본을 견학하고 돌아와서 모노레일을 깔자는 아이디어를 냈고 사업이 추진되었다. 지역이 좁아 상가에서 차가 다니지 못하기 때문에 상권이 위축된다고 반발이 있어서 흉물로 방치된 상태다. 이것을 강원랜드와 석탄유물박물관 그리고 시내와 연결시키면 좋을 것 같다.
모임을 갖고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중요한 것은 협조라고 한다. 사북사태 때 자료도 남아있고 하니 보여주는 관광과 더불어 강원랜드와 연계해서 사업을 전개했으면 하는데 거기와는 거의 있어서 못내 아쉽다.
<앞으로의 도시재생사업 이야기>
그는 또 초등학교가 폐교된 곳이 많아서 이곳에 대한 활용방안에 대해서도 이야기 했다. 지역의 정체성을 살리는 방안에 대해서도. 광산촌이기에 현실과 그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부각시키는 방향에 대해서 고민했다. 광산이미지에 맞는 삽이나 장화 등의 커다란 조형물을 세워서 꽃밭을 만드는 것도 생각하고 있다.
“재생사업이라는 게 수리하고 고치고 이렇게 가야는 건데 과감해야 돼요. 어차피 버릴 거는 과감하게 버리고 새로 가꿀 건 새로 가꾸고. 이렇게 가야지, 안 되는 걸 그걸 수리한다고 한들 그거 얼마 못 가요. 그런 걸 잘 계산해서 사업을 해야 되지 않나 싶더라고요.”
우리가 살아야 할 동네이기 때문에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있어야 한다. 이웃마을과도 서로 상부상조해야 하고 의식도 개선되어야 한다.
“아무리 잘 가꿔놓으면 뭐 해요. 스스로가 나서서 닦아주고, 내 집 앞 청소도 좀 하고 이렇게 해야만 도시재생이란 면모도 생기고 그러죠.”
‘아, 저 동네 가니까 참 잘 되어있더라.’ 이런 게 보여줘야 되는데… 라며 아쉬워한다. 예전에는 이웃 간 음식도 나눠먹고 살가운 시절이 있었는데 이런 시절이 모두 가버리고 이젠 삭막해서 재미가 없다며 도시의 현주소를 말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