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시- 주제:왜 쓰는가>
< 용기 내어 글쓰기 >
글을 쓰고 책까지 펴낸 사람들을 보면 대단해 보인다. 똑같은 24시간을 부여받고 기본적인 의식주 해결은 물론이고 시간을 쪼개어 자신의 이름으로 책을 남기고 작가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노후 준비를 제대로 하는 사람들이다. 나는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은 선천적으로 타고나거나 어려서부터 책 읽기를 좋아하고 집안 분위기가 뒷받침되어야 가능한 일이라고 여겼다. 핑계를 대자면 내가 살던 시골 마을은 가난했다. 먹고 사는 것이 중요하고 공부나 책읽기는 있는 집 자식이나 하는 먼 나라의 이야기였다. 고등학교 때까지 살던 시골 동네는 다른 고장에 비하여 새마을 운동이 늦게 시작되었다. 초등학교를 들어갈 무렵인 1970년 후반에서야 초가지붕이 헐리고 슬레이트 지붕으로 교체되면서 전기불이 들어오고 집 마당에 수도 파이프가 설치되었다.
가난했던 우리 집은 3남 2녀 중에 막내였던 내가 유일하게 부모의 도움으로 집에서 읍내로 고등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곧바로 언니가 직장을 다니고 있는 서울로 상경하여 직업전선에 뛰어들었다. 다행히 직장에서 좋은 선배와 동료들을 만나 자극을 받고 주경야독하며 학업과 일을 병행할 수 있었다. 친구들이 대부분 20대 초반의 나이에 결혼을 하였으나 나는 친구들 보다 늦은 나이인 서른에 결혼을 하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직장과 가정에 묻혀 사느라 뒤도 돌아볼 겨를 없이 분주하게 살다 보니 어느덧 정년이 성큼 다가왔다. 드디어 정년 후 남은 30~40년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후회 없이 잘 살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되었다. 하는 일이 전문직은 아니지만 그 동안의 경력으로 몇 년은 더 버티며 생업에 종사할 수 있지만 더 이상 그렇게 살지 않기로 했다.
특히 의료기관에서 일하면서 예기치 못한 갑작스런 질병의 발병이나 사고로 인하여 뇌사판정을 받는 환자와 가족을 접하면서 남의 일이 아니구나.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고 지금 함께 하는 배우자와 자녀, 부모와 형제 그리고 친구나 동료의 끈이 일순간 끊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렇다면 남은 내 삶을 혼자서 어떻게 잘 지낼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되었다. 주변에서 정년을 앞둔 선배들에게 향후 계획을 물어보면 그동안 일하느라 못 가본 여행을 다니거나 배우고 싶었던 취미생활을 즐기면서 살고 싶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였다.
나도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평소에 책 읽기에 관심은 있었지만 자기계발서나 목적이 있는 독서를 위주로 하다 보니 정독으로 책을 깊이 있게 사유하며 읽지 못했다. 내가 책을 읽고 글을 쓴 경험은 학교의 과제물이나 직장에서의 업무 보고서 등 공적인 것과 연관된 단순 반복 작업이 대부분이다. 특히 개인사적인 글을 써서 남들에게 보여준다는 것은 마치 내 치부를 드러내는 것고 같았다. 혹여 내가 아는 누군가 내 글을 보면 “그 나이에 그 정도 수준이야” 라는 조롱거리가 되지 않을까 두려웠다. 다행히 <글쓰기의 최선전>의 글을 읽으며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또 한 가지 명심할 것은, ‘과도한 주인공 의식’을 글쓰기에서 버려야 한다. 사람들은 생각만큼 남의 문제에 신경 쓰지 않는다. 다른 사람 문제를 두고두고 기억하고 되새기고 ‘색안경’으로 타인을 바라볼 만큼 부지런하지도 한가하지도 않다. 자신의 현안에 가려 남의 일은 뒷전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무엇보다 존재 개방의 수위를 고민하다 보면 자기 몰입이 어렵다. 좋은 글이 나오려면, 타인에게 비친 나라는 ‘자아의 환영’에 휘둘리지 말고 자기감정에 집중해야 한다. “중략” 그래서 타인의 시선을 극복하는 과정은 자기의 편견을 넘어서는 일이기도 하다.”(p61) 젊어서는 눈치 볼 것도 많고 걸리는 것도 많았다. 가정에서는 시어머니, 남편, 아이들, 직장에서는 상사와 동료 직원 등 주변 이목과 체면치레에 신경을 쓰고 살았다. 이제는 내 삶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여력이 생겼다. 지금 아니면 나중에는 더 못할 거라는 생각에 글쓰기 수업 최전선에 용기 내어 뛰어들었다.
첫 수업을 함께 하는 학인들의 자기소개를 듣고 같은 책을 읽고 과제물로 제출한 학인들의 글을 나누면서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바쁜 일상 속에서 생업에 종사하며 이렇게 글을 잘 쓸 수 있을까 부럽기도 하고 이 나이 먹도록 무엇을 했나 스스로 위축되고 부끄러웠다. 시작부터 익숙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책을 많이 읽고 글쓰기가 익숙하고 의견을 잘 말하는 학인들의 모습에 기죽지 않기로 했다. 지나고 나면 별거 아니다. 이제는 다 잘하지 않아도 실수해도 괜찮다며 스스로 온기를 불어넣었다. 우연히 유트브에서 가수 박진영이 연습생들에게 ‘인맥을 쌓기 위한 시간에 실력을 쌓으라’ 는 말을 들으며 나는 지금 무엇으로 실력을 쌓을 수 있을까? '글쓰기를 하면 마음의 평정을 되찾는다'는 <글쓰기의 최전선>의 작가의 말처럼 글을 쓰다 보면 내게도 언젠가는 작가라는 이름이 찾아오지 않을까.
*참고도서 : 글쓰기 최전선(은유)
첫댓글 마지막 문단이 재미있고 화자가 살아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오히려 이 부분에서 시작하는 성장나무님만의 이야기와 글쓰기에 대한 에피소드를 만들어도 재밌을 것 같아요. (앞부분은 다소 책에 대한 감상을 특별한 문제의식 없이 나열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문장이 참 안정적이고 차분해서 일기가 편했습니다! 문장이 안정적이고 호흡이 차분하다는 것은 글쓰기의 큰 장점인데... 잘 읽었습니다! 앞으로의 글도 궁금해져요.
멋진 오빛나리님 글마다 의견 달아 주셔서 넘 감사해요. 소중한 의견 주신 것 저의 마음밭에 담고 나아가려 합니다. 앞으로도 많은 조언 부탁드립니다.
글쓰기에 대한 글을 읽으니, 2차시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라요. 그새 초심을 잃어갔는데, 성장나무 님 덕분에 초심에 대한 성찰을 해봅니다🙂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과 자기검열에 대한 성찰을 진솔하게 써주셔서 공감이 되어요.
앞부분의 성장배경도 글쓰기와 관련된 초점으로 맞추어(문득문득 글쓰기를 동경했던 기억?) 써보면 어떨까요?
여전히 긴글쓰기가 어렵습니다. 제가 왜 글쓰기를 동경하는지 좀더 구체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해주셔서 김사해요. ❤️
조근조근 이야기를 풀어주시는 성장나무님 글을 읽으며 글방에서 들었던 성장나무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거 같았어요. 글은 글쓴이를 이렇게나 오롯이 담는구나 싶어지고... 성장나무님 글이 성장나무님을 닮을 수 있는건 이글이 솔직해서 일거라 생각해요. 애써 꾸미거나 잘보이려 하지 않고 담담히 자신을 풀어내는 글이기에 읽는 이로 하여금 감동과 공감을 줄 수 있는 거겠죠. 한가지 제안선물을 드린다면, 가끔씩은 글에 엉뚱한 상상?이나 도저히 현실에서는 뱉을 수 없을 거 같은 말이나 마음 같은 새콤 쌉싸름한 변수를 넣어보신다면 글이 다채로와질 거 같아요. 김밥에 단무지같은 역할이랄까요? ㅎㅎ 요게 또 쓰는 맛을 주는 꽤 괜찮은 킥이 되기도 하거든요. 강추강추 합니다.
예쁘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다채로운 글쓰기를 위해 노력해볼게요.
한 직장에서 30년(!) 간 일했다는 건 정말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아요! 내가 가장 잘 알고, 익숙한 그곳에서부터 글감을 찾아보면 어떨까요? 지금껏 바라보신 모습 중에서 생과 사의 경계라든가 마음에 오래 남는 사람들의 모습들... 글감이 많이 있을 것 같아요~
맞아요. 익숙한 고셍서의 경험을 조금씩 써보도록 할께요. 소중한 의견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