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 전도(Presense Evangelism)"
우리는 수없이 묻는다. "왜 나는 친구들을 주님께 인도할 수 없는거지? 우리 식구들은 왜 하나님한테 관심이 없어보이는 걸까?" 이에 대한 직선적인 답을 듣는다면 아마 충격에 빠질 것이다. 하지만 진리란 아픔을 수반하는 법이다. 우리가 아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관심이 없는 이유는 우리 삶에 하나님의 임재가 충분치 않기 때문일 수 있다. 하나님의 임재에는 모든 것을 부스러뜨리는 뭔가가 있다. 그것이 없이는 우리도 주변의 다른 사람들처럼 무미건조하고 생기 없는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그분의 임재가 없다면 우리는 주변 사람들에게 또 하나의 있으나마나한 사람일 뿐이다.
나는 주변의 잃은 영혼들에게 '또 하나의 있으나마나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데 지쳤다. 그래서 나는 결단했다. 뜻을 정하고 마음을 굳혀 이렇게 선포했다. "나는 평생 하나님의 임재를 구하리라. 내가 세상의 공공장소에 들어서면 사람들이 그분을 만날 수밖에 없을 정도로 하나님께 가까워지리라." 그들은 내가 그곳에 있는지는 모를지라도 그분이 계시다는 것만은 확실히 알게될 것이다. 내가 비행기 좌석에 앉으면 굳이 어떤 말을 하지 않아도 하나님과 관계가 바르지 못한 주변 사람들이 불편해질 정도로 그렇게 하나님의 임재에 푹 젖고 싶다. 그들을 정죄하거나 죄를 파헤치겠다는 것이 아니다. 그저 아버지의 향기를 지니고 싶을 뿐이다.
우리는 각종 전도 프로그램을 알고 있다. 예를 들면 가정 방문을 하거나 전도지를 돌리거나 기타 교회 프로그램을 통해 잃은 영혼에게 다가가는 것 등이다. 그러나 내가 말하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또 별로 실천하지 않는 전도 형태다. 나는 그것을 '임재 전도(presence evangelism)'라 한다. 사람들이 눈으로 보면서 "저들은 예수와 함께 있다"(행 4:13 참조)고 말하게 되는 전도다. 즉 우리에게 머무는 하나님의 잔영과 명백한 임재가 자연스럽게 주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마가복음에 보면 예수님이 심한 풍랑 중에 바다와 바람을 꾸짖으심으로써 제자들을 놀라게 하셨다. 그 후 그들은 '거라사인의 지방'에 이르렀다(막 4:35~5:1 참조). 나는 그날 벌어진 일이 우리 시대에도 일어나기를 기도한다. 예수님의 발바닥이 거라사의 모래 해변에 닿자 그곳에 있던 귀신 들린 사람이 갑자기, 난생처음, 귀신들의 숨막히는 손아귀에서 벗어났다. 왜?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마가는 귀신들린 사람이 예수님을 보고 달려와 경배했다고 말한다. 정확히 그 순간까지 귀신들은 사사건건 그에게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할지 지시했었다. 그는 자신의 행동을 제어할 수 없었다. 귀신들이 제 몸을 해하도록 시켜도 별 수 없었다.
그렇다면 그 모든 변화는 어디서 온 것인가? 그 순간 그 사람의 정신과 신체 기능을 악귀의 손아귀에서 떼어 낸 것은 무엇인가? 그날 있었던 일은 이것이다. 아버지가 집에 돌아오신 것!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그것이다. 하나님의 발바닥이 이 땅에 딱 닿는 순간 우리는 그 발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렇게만 되면 우리는 조그만 귀신들한테 굳이 나가라고 명할 필요도 없다.
그들의 우두머리에게 성경구절을 외쳐대거나 귀신의 요새를 애써 허물어내릴 필요도 없다. 하나님의 명백한 임재 목적은, 누가복음 4장 18절 말씀-"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을 성취하는 것이다. 그분은 나사렛에서 시작하실 수 없었던 일을 끝마치기 원하신다. 그때 그분은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눅 4:21)고 말씀하셨다. 다시 한번 주님께 간구하라.
"주님, 우리는 주님을 보기 원합니다! 저희는 주일학교 아이들처럼 주님에 대해 말만 하는 것에 지쳤습니다. 주님, 언제 오시렵니까?"
이사야 6장의 강림이 오늘 곳곳의 교회에도 있기를 나는 기도한다. 어느 도시건 전능하신 하나님이 한 발짝만 내딛으시면 수십년, 수백년 간 지배해 온 귀신의 사슬이 끊어지기 때문이다. 우리도 이사야 선지자와 함께 "여호와를 뵈었다"고 고백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나는 교회에 집단적 돌파구가 있기를 기도하지만 먼저 하나님이 우리 각자의 삶에 개별적 돌파구를 주시기를 기도한다. "주님, 저희는 그저 축복을 받기 위해 주님께 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복 주시는 분을 구합니다." 우리는 돌파구가 필요하다. 경고하건대 당신은 언젠가 깨어질 것이다. 그래야 돌파구가 열린다. 원리상 그렇게 되어있다.
기회 있을 때마다 주님의 임재 안에 머물며 거기에 젖어들기를 권하고 싶다. 그분께 가까이 갈 때는 급히 서두르지 말라. 그저 그것이 당신의 최우선 순위임을, 그래야 함을 인식하라. 하나님이 당신의 심령과 삶 속에 깊이 들어오셔서 작업하실 수 있게 해드려라. 그래야 하나님이 당신의 삶 속에 깊은 우물을 파실 수 있고, 그 우물이 그분의 임재 안에서 능력과 영광의 원천이 된다. 그분 임재의 목적은 포로들에게 해방을, 자녀들에게 승리를 주는 것이다.
- 하나님 당신을 갈망합니다, p150~1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