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적 발걸음
“쥴리아 자매님, 본당에 녹색 분과를 신설하는데 초대 분과장을 맡아주시겠습니까?” 처음에 신부님의 전화를 받고 ‘어쩌지?’ 하는 마음 이 먼저 들었다. 그렇지만 무슨 마음이었는지 그만 “예!”라고 대답을 해버리고 말았다. 하느님의 도움 과 본당에 좋은 뜻을 가지고 도와주실 분이 많을 거 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책임을 맡고 보니 조금씩 나의 생태적 시야가 열리기 시작했다. 마침 본당 수녀님들이 틈틈이 손수 황마 수세미를 만들어 신자들에게 나눠주시면서,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일회용품과 무심하게 낭비되는 자원에 대한 경각심과 함께 잠자고 있던 생태적 감 수성을 일깨워주고 계셨다.
처음엔 솔직히 귀찮고 버거웠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방법과 용기도 부족했다. 하지만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면 배우는 자세로 열심히 따라 해 보겠다고 결심했다. 우선 교구에서 실시하는 환경 교리 학교에 참석하기 시작했고, 여러 매체를 통해 환경에 관한 공부를 시작했다.
“하느님은 항상 용서하시고, 인간은 가끔 용서하 지만, 자연은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처럼 환경 보존은 미룰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이란 생각이 들면서 맨 먼저 본당에 자원 정거장을 설치하였다. 투명 페트 병, 플라스틱, 병류, 캔류, 우유 팩, 폐건전지 등을 담는 수거함을 만들어 신자들로 하여금 버려지는 자원을 모으도록 하였다. 본당 주보에 녹색 분과 지면을 확보하여 매주 실천 사항을 올려 신자들이 생활 안에서 실천할 내용들을 알리고 있다. 또한 첫째 주일을 본당 환경보호의 날로 정해 미사 중 공지 사항을 전달할 때 환경영상을 시청하도록 하고 있다. 그렇게 봄이 왔다. 그동안 수녀님들이 일구어 오 셨던 성당 유기농 텃밭을 녹색 분과에서 맡아서 해 보라고 하셨다. 농사 경험이 없던 나로서는 눈앞이 캄캄하였지만, 어느덧 내 손엔 상추, 고추, 토마토, 호박, 가지 등의 모종이 들려져 있었다. 심고, 물 주 고, 정성을 들이며 그 예쁜 생명의 마력에 끌려 자주 자주 텃밭에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시설관리 분과와 협력하여 수세미 터널을 만들어 천연 수세미 를 만들 꿈에 부풀어 있었다.
본당 아나바다 장터에서는 종이컵, 플라스틱 컵이 아니라 여분의 머그잔들을 모아 활용한다. 작은 행 동에 깃든 정신을 신자들 모두가 기쁘게 호응해 주 신다. 무더운 8월이 지나는 즈음엔 새로운 일이 기다 리고 있다. 각 가정에서 손대지 않고 묵히고 있는 소 형가전이나 주방용품, 기타 생활용품들을 기증받아 필요한 이들이 값싸게 구입해서 사용할 수 있게 하여 자원을 절약하고 건전한 소비 습관을 키워갈 수 있는 상설 판매장 ‘녹색가게’ 오픈을 준비하고 있다.
지금 마스크를 쓰는 우리 아이들에게 산소마스크 를 씌워 주는 어른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일념으로 나부터 환경지킴이가 되어서 가정, 지역, 나라, 지구 사랑에 온 힘을 쓰고 있다.
이정희 쥴리아 간석2동 성당 녹색분과
<교구주보 연중 제19주일 '믿음과은총' 란 환경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