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와 손자의 가정학습 외 2편
김영주
전 초등학교 교사
대경상록아카데미 수필창작교실 회원
코로나와 손자의 가정학습
신학기를 며칠 앞두고 유치원, 어린이집, 각종 학원들이 임시휴원에 들어가고 개학이 연기 되었다. 코로나로 인해 등교가 늦어지나 보다 싶어 내가 10살 손자와 7살 손녀를 돌보기로 했다. 퇴직할 무렵 몇 년동안은 주로 3,4학년을 담임했기에 학교 가는날까지 나름대로 학습계획을 세워 두 아이가 알찬 시간을 보내게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아빠 엄마가 출근하고 아이만 있는 시간을 줄이려고 저녁에 늦게 재워 아침에는 9시 가까이 일어나게 하겠다기에 아침 점심 간식 이렇게 3번을 챙겨 먹이겠노라 했다. 저녁은 퇴근한 제 에미가 챙겨 먹이리라.
아침 9시에 도착해 오후 5시까지 8시간 동안은 오롯이 내가 돌봐야 하는 시간이다.
우선 2학년때 외운 구구단을 잊어버리지 않게 매일 한번씩 외게 했다. 또한 알맞은 분량의 책을 읽게 하고 누구에게든지 하고싶은 말을 몇줄씩이라도 쓰라고 했다 선생님이나 엄마 아빠 친구 등.
제 오빠가 구구단을 외니 듣고 있던 손녀가 어느날 부터 따라 외는게 아닌가. 그렇구나 싶어 A4용지에 2단을 써주며 보고 바르게 외라고 했다. 아라비아 숫자와 간단한 덧셈과 뺄셈도 하며 한글도 거의 익혔다고 하기에. 그리고 그 아이에게도 글자 수가 적은 그림책을 읽어 보라 했더니 제가 좋아하는 책을 가지고 와 곧잘 읽는다. 벌써 여러번 읽은 책인가 싶다. 이제 쓰기도 해야겠기에 연필 바르게 잡기와, 쉽고 익숙한 낱말을 필순에 맞게 반복해서 쓰게 했다. 제 오빠가 외는 구구단을 계속 따라하기에 3단과 4단도 써 줬더니 어느날 5단은 언제 써주나 하며 중얼거린다. 그리하여 그 아이도 구구단을 9단까지 모두 외게 되었다.
개학이 계속 연기되어 온라인 수업을 하게 되니 3학년 전 교과를 지도하게 되었다. 3학년 음악 수업에서는, 리코더를 반드시 익혀야 함을 알기에 그것도 매일 부니 하루에 6가지를 하게 되었다. 구구단 외기, 리코더 불기, 독서하기, 글쓰기, 온라인 수업듣기, 문제집 풀기. 손녀 아이도 글자를 제법 바르게 쓰기에 제 오빠처럼 할아버지 할머니 엄마 등 누구에게나 하고 싶은 말을 써보라 했더니, 「엄마 할머니가 사온 매론이 또 먹고 싶어요」라고 쓴 것을 보여준다. 물론 나에게 옆에 있으라고 하며 무슨 글자를 써야 하는데 어떻게 쓰냐고 물어가며 썼지만. 주로 뭐가 먹고 싶다 뭐가 갖고 싶다는 내용 들이다. 제 엄마에게 너무 무리하지 않으면 들어 주라고 했더니 재미를 붙여 쓰기도 곧잘 한다. 아직 학교에 다니지도 않는 아이에게 글을 쓰라고 하니 내 욕심이 지나친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일은 이미 나에게 현직에서 가르치던 즐거움과는 또 다른 즐거움을 주는 일인 것을 어쩌랴.
하기 싫다면 쉬고, 유치원에서 보내온 학습 꾸러미에 든 만들기도 함께 하며 놀고, 온라인 수업 듣기도 힘들다면 제 엄마 퇴근하면 함께 하라고도 한다. 구구단 외기와 리코더 불기 이런 것들은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으니 두 아이는 놀고 싸우며 장난치고 나는 혼내야 하고, 따라 다니며 정리하느라 하루해가 짧다.
어느날 손녀 아이가 베란다 창문을 열고 “아! 사람이다”라고 외친다. 계속 집에만 갖혀(?) 있고 사람구경도 못하다가 대구의 코로나가 누그러지며 사람들이 조금씩 움직이게 된 시기였다. 그리고 손자 아이의 글쓰기 공책에도 이렇게 쓰여진 것을 보았다. 「주말에 엄마 아빠와 밖에 나갈 때 마스크를 쓰니 너무 불편하다 어서 코로나와 헤어지고 싶다」
처음에는 이렇게 오래 갈 줄 몰랐는데 결국 내가 6개월을 돌봐도 코로나는 끝나지 않고 아직도 진행중이다. 그동안 제 엄마의 재택근무, 가족돌봄시간 활용, 연가 그리고 아이의 격일 등교로 해서 내가 매일 가지는 않는다. 세계적인 펜데믹을 극복하려면 어서 치료제와 백신이 개발되어야 하지만 그시기가 언제나 될지. 일상으로 돌아갈 날만을 기다릴 뿐이다.
바다낚시
김영주
제주생활이 끝나갈 무렵 지인 한분이 낚시를 하러 온다며 공항에 좀 나와 달라고 연락해 왔다. 그분은 몇 년전에 부부 여러팀과 함께 해외 골프투어도 함께 다녀온 바 있다. 제주는 섬이라 가장자리로 나가면 곳곳에서 낚시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이른바 말로만 듣던 바다낚시. 그 바다낚시를 경험해 볼 좋은 기회가 왔기에 우리의 숙소인 서귀포에서 운전해 55분이나 걸리는 먼 길도 감수해 가며 공항으로 나갔다.
여기와 보니 그동안 내가 지나가면서 얼핏 본 강이나 호수에서 낚시하는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야외용 의자에 앉아 혼자서 여러대의 낚싯대를 드리워 지루해 하는 표정으로 책도 읽어가며 찌가 움직이면 잡아당기던 그런 모습이 아닌, 바닷가 바위 위에 서서 한 대의 낚싯대만 들고 있는 모습들이 그것이다. 안전한 곳에 자리를 잡아야 한다며 한림항으로 가니 많은 배들이 정박해 있어 자리가 좁고 마땅치 않아도 낚싯대를 드리웠다. 하긴 열흘전 쯤 풍랑경보와 함께 해안가 낚시야영객은 안전지대로 대피하라는 안전문자도 왔었다. 파도가 낚시를 즐기는 사람을 덮칠 수도 있으니 안전이 우선이리라.
새우미끼를 끼우는 것부터 낚싯대를 바다에 던지는 방법, 고기가 물리는 느낌과 동심원이 생기며 찌가 아래로 내려갈 때 살살 당겨 유인하며 들어 당기는 등, 배워가며 낚시를 시작했다. 밑밥을 푹 떠서 물에 던지며 고기를 낚고 또 던지고 하는 것을 며칠 전 숙소 바로 뒤 바닷가를 산책하며 봤기에, 사람마다 낚시 방법이 다양한가 보다 싶다. 몇 번 미끼만 소모하며 헛탕을 하다가 드디어 묵직함이 느껴져 제법 큰놈이 물었나 싶어 높이 쳐들었더니 내손바닥 절반 크기의 ‘정갱이’가 파닥거리며 올라왔다. ‘애걔 이렇게 작네’ 하면서도 어릴 때 맛은 좋은데 가시가 많다며 어머니가 우리를 먹이려고 애쓰시던 일이 떠올라 한동안 잊고 있었던 행복감에 젖어본다.
이제 실력(?)이 늘어 자꾸 잡아 올리니 2시간도 안되어 17마리나 잡아 올렸다. 그제야 고기가 많아 앉아 있을 여가가 없어 서서 낚시를 하나 보다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런데 한자리에서 계속해 그런지 비슷한 크기의 같은 어종만 올라왔다. 그래서 지인께 여쭤보니 지난번에는 이 항구의 다른 쪽에서 낚시하니 고등어만 계속 잡혔단다. 같은 장소에서도 방향에 따라 물의 환경이 달라, 비슷하지만 같지는 않은 어종이 잡히는 것 같다. 이제 그만 정리를 하고 보니 주변에 정박되어 있는 고깃배가 눈에 들어온다. 긴 비닐 앞치마를 하고 장화를 신은 사람들이 그물을 던져 잡은 많은 고기들을 떼어 내어 상자에 담고 있었다. 들여다 보니 조기,갈치, 고등어 등 여러 어종들이 얼음에 채워지고 있었다. 예전에 북한어선, 중국어선 들이 우리 영해로 들어와 꽃게나 오징어 같은 것들을 잡아 우리 어부들이 시름에 잠긴다는 뉴스가 생각나 만선(滿船)의 기쁨으로 항구에 들어오는 어부들의 마음이 짐작된다.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처음 경험해 보는 바다낚시, 취미활동은 나이에 상관없이 즐거운가 보다.
앞으로도 지금까지 해보지 못한 여러 가지 일들을 접할 기회가 더 많았으면...
제주살이 두 달
김영주
공무원연금공단이 운영하는‘은퇴자 공동체마을’이 제주도에도 운영 되고 있다는걸 알았다. 공단 홈페이지를 통해 소개의 글과 시설안내를 보고 나에게 알맞은 2개월 단기 체험형을 선택해 입주 신청을 했다. 몇 번이나 신청해 탈락한 사람들을 보았기에 어떤 사람들이 선정이 되는지 나름대로 연구를 해 신청서를 작성한 결과, 입주자로 선정이 되어 9월과 10월 두달을 제주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해외 여행을 가도 이렇게 오래 집을 떠나 있기는 처음이라 많은 준비가 필요했다. 퇴직후 20일간의 해외 골프투어가 지금까지 가장 긴, 집을 떠난 기간 이었는데 이번에는 두달이나 되고 식사준비를 직접해야 하니 각종 양념과 주방용품도 필요했다. 물론 거기도 우리나라니까 병원도 대형마트도 카드사용도 편하니 해외여행 보다는 마음이 가벼웠다. 계속 자동차를 랜트할 수가 없어 차에 두 달 살림을 싣고 그 차를 배에 실어 제주에 도착했다. 배정된 원룸이 서귀포시 하원동에 위치해 있어 스마트폰의 길찾기에 주소를 찍어 제주시 여객선 터미널에서 1시간이나 운전해 도착했다. 원칙적으로 정원이 2명이라 우리처럼 대부분 배우자와 함께였다.
2주 동안은 스스로 자가격리하는 마음으로 지도를 보고 네비게이션을 활용해 남편과 둘이서 거의 제주도를 한 바퀴 돌았다. 물론 연금공단의 담당자가 톡방을 만들어 코로나19로 인해 출장과 공식적인 모임이 전면 금지되었음을 알려주었기에. 원래의 취지는, 퇴직한 사람들이 모여 1주일에 3번 이상 함께 준비한 식사도 하고 봉사활동도 하며 문화행사에도 참여하는, 그야말로 공동체 생활을 하며 은퇴생활을 보다 풍요롭게 보내자는 것이었는데...
암튼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끼리 톡방에서 몇 동 몇 호 누구라 인사하고 서로 다녀온 올레길이나 오름을 소개하고 안내도 하며 지냈다. 내일 어디에 갈 예정인데 함께 하실분은 몇시에 정문에서 만나 출발하자는 등을 톡방에 올려서 소수의 사람들이 함께 하기도 했다. 그래도 언젠가는 모두 한자리에 모여 자기소개를 하며 인사하는 날이 올 것을 기대하며. 그러나 끝나는 날까지 그런 날은 오지 않아 아쉬웠다. 7월과 8월에는 모두 연금공단 본사에도 방문하고 함께 식사도 했다는데, 8월 이후 코로나의 재확산으로 이렇게 되었다고 한다.
누구나 이 나이가 되었으니 몇 번쯤은 제주에 다녀 갔을테지만, 모두 나처럼 바쁜 일정에 쫒겨 랜트카로 알려진 관광지나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을 허겁지겁 다녀 왔겠지.
이제 시간적 정신적 여유를 가지고 제주를 둘러보니, 정말 아름다운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진 보석같은 섬이다. 한라산이 섬 중앙에 위치해 있고 동서남북 사방의 가장자리로 나가면 바다가 보이고, 공해 걱정이 없는 맑은 공기와 울창한 숲, 정갈한 도로위 중앙분리대를 대신해 줄지어 선 야쟈수는 우리나라이면서도 이국적인 분위기를 느끼게 해준다. 세계적인 관광지로 잘 알려진 태평양 인근의 어떤 섬들이라도 여기보다 더 좋을까.
함께 입주한 사람들을 나름대로 3부류로 나누어 보았다.
매일 등산 복장을 하고 한라산 등반과 올레길 걷기, 오름 오르기, 배를 타고 추자도 우도 비양도 등 작은 섬을 두루 다녀 제주 전체를 정복 하려는 부류.
매일 낚시를 하러 나가는 부류.
매일 골프를 치러 나가는 부류.
물론 어느 부류라도 박물관이나 폭포 등 여러 유명한 관광지는 공통적으로 설렵했다고 보고.
그럼 나는 어떤 부류에 들어가냐고?
지인 부부가 퇴직후 제주에 거처를 마련하여 대구에서 수시로 오가며 우리보고 다녀가라고 했다 바둑도 두고 골프도 치자며. 몇 년전에 골프치러 말레이시아에도 함께 다녀온 부부다.
또한 평생 사업을 하던 사람이 늘그막에 제주의 리조트를 구입해 차량까지두고 들락거리며 가족과 친구들을 오라고 연락을 한다. 낚시도 하고 골프도 치며 제주를 들락 거리는 지인도 있다.
좋은 계절 가을이면 부부모임을 제주에서 하는 지인분들도 오셨다.
우리는 제주살이 두 달 동안 그들과도 어울리고, 올레길도 걸으며, 예전에 바쁜 일정으로 못가본 향토 오일장도 가보고, 골프도 치며 평안하게 보냈다. 마트에 가 먹거리를 사와 추석상도 차려 먹고, 제주 오메기떡과 굵고 싱싱한 은칼치도 사먹으며, 힘든 등반은 하지않고 가파른 오름도 오르지 않고 바쁜 일정도 잡지 않고 그저 편안하고 자유롭게.
보고 또 보아도 질리지 않는 코발트색 바닷물과 쏟아지는 폭포수 그리고 키큰 야자수,
농장에 들러 갓 따서 맛본 향기롭고 달콤한 애플 망고,
숙소를 나서면 눈앞에 펼쳐진, 황금빛 귤이 다닥다닥 많이도 달려 있는 감귤나무 들판,
우리나라 좋은 나라 금수강산 우리나라를 수도 없이 외치며 떠나온 제주.
언제봐도 편한 친구 몇명과 다시 이렇게 편하고 즐거운 제주살이를 떠나고 싶지만, 살아 생전에 또 이런 기회가 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