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군참모총장탄생 (no win policy)제한 전쟁

[김성신(15)]

빨간 마후라 -32-작전국장 시절

1949년 10월1일 육군항공대는 공군으로 분리·독립했다. 김정렬 초대 공군참모총장은 나를 작전국장으로 임명했다. 나는 창설된 공군의 위세에 맞게 F - 51 무스탕 전투기 100대 군사 원조 도입과 10개 비행장 확보 계획을 세웠다.

이 같은 계획은 미국 공군의 개척자 빌리 미첼 장군의 영향이 컸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앞으로는 보병전이 아니라 항공전이 될 것이라고 예언했으나 보병 출신 더글러스 맥아더의 고발(보병 모독 혐의)로 군법 회의에 회부돼 영관급으로 강등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 후 20년 미국은 일본의 진주만 습격을 받아 일대 망신을 당했다. 결국 미첼 장군의 예언을 따르지 못한 대가를 치른 다음에야 항공력을 키웠다.

미국 본토에서 일본 도쿄(東京)까지 날아갈 수 없어 항공모함을 건조해 전투기를 탑재, 일본을 무차별 폭격함으로써 승리를 얻어낸 것이다.

항공력을 보강한 미국은 44년 7월8일 일본 규슈(九州) 서북부 지역 폭격을 시작으로 매일 100대 이상의 B - 29 전투기가 일본 본토를 공습했다. 45년 8월9일 나가사키(長崎)에 원자 폭탄이 투하되던 날에는 1600대의 폭격기가 일본 동북 지방을 강타했고 300대는 규슈를 공습했다. 원자 폭탄이 아니더라도 일본은 이미 패망하게 돼 있었다.

나는 이 점을 내세워 공군력 증강책을 제시했다. F - 51기 100대와 김포 비행장을 비롯해 여의도·수원·대구·광주·수영·대전·군산·제주·강릉 비행장 등 10개 비행장을 확보해야 하며 인력 수송 지프 1대, 무전기 1대, 비행장 경비 병력 10개 소대를 지원해 달라는 요청서를 만들었다. 사실 삐라를 뿌리는 연락기 수준의 L - 4 10대와 L - 5 10대 보유로 공군 독립이라고 말하기는 쑥스러운 일이었다.

이 같은 계획서는 장제스(蔣介石)의 국부군 시절 중국 공군 창설자인 미 공군의 세놀트 장군에게 보고됐지만 미 극동군사령부의 거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공군이 창설된 마당이니 다시 시도해야 할 입장이었다. 나는 차트를 만들어 육군본부 강문봉(대령) 작전국장을 찾아갔다. 같은 작전국장이라도 그는 대령이고 나는 대위였다. 이런 계급상의 차이만이 아니라 공군은 여전히 육군의 지휘를 받고 있었다.

“형님, 도와주십시오.”

일본 육사1기 선배인 그와 나는 사적으로도 가깝게 지냈다. 그러나 내 설명을 듣고 난 강국장은 “너 잠꼬대하냐”는 식이었다. 그러면서 이렇게 물었다.

“지금 보유하고 있는 비행기가 몇 대지?”

“20대입니다. 그것도 한 대는 북으로 넘어가 버리고 또 고장난 것도 있고 해서 열여덟 대만 쓸 수 있습니다.”

“잠자리 비행기 말이지? 그 비행기 지키려고 병력 10개 소대를 주고 자동차를 주고 비행장 10곳을 달라고?”

“앞으로가 문제 아닙니까. 당장 눈앞의 것만 가지고 말할 수 없죠.”
“지금 당장이 더 중요해, 인마!”

한마디로 거절이었다.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가장 이해심이 있어야 할 작전국장이 그 정도였으니 더 이상 말할 기분이 나지 않았다.

“형님은 앞으로 비행기 탈 생각 마시오. 죽을 때까지 지프나 타고 다니시오.”

나는 이렇게 쏘아붙이고 돌아왔다. 그러나 포기할 수 없었다. 며칠 후 나는 부관을 데리고 수원 비행장으로 나갔다. 그러나 그것은 비행장이 아니었다. 활주로까지 온통 옥수수 밭이었다. 주변 밭보다 더 잘 자란 옥수수 밭이 질펀히 뻗어 있었다.

나는 한쪽에서 옥수수 밭 고랑을 매고 있는 농부를 불러 세웠다.

“이곳이 비행장인데 어떻게 이렇게 옥수수를 심을 수 있소?”
그러자 농부가 더 이상하다는 듯이 되물었다.

“당신이 뭔데 남의 밭에 와서 감 놔라 배 놔라 야단이오?”

갈수록 기가 막힐 일이었다. 내용을 알아보니 그 옥수수 밭은 안양 교도소에서 죄수들을 풀어 경작하고 있었다. 비행장에 대한 인식이 이 모양이었으니 더 이상 말해서 무엇하랴. 나는 귀대하자마자 곧바로 전체 회의를 소집했다. 회의를 소집해 봐야 전체 공군 인력은 600명에 지나지 않았다.

빨간 마후라 -33- 6·25전쟁 발발과 공군 해산

공군 전체 회의를 통해 설명회를 가질 필요가 있었다. 내부부터 입장 정리를 해 놓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 같았다. 강문봉 육군 작전국장에게 브리핑했던 그대로 차트를 펼쳐 보이며 공군의 진로와 계획을 설명했다. 그러자 일본 하사관 출신으로 기상을 담당하는 홍윤범 대위가 질문이 있다며 손을 들었다.

“잠자리 비행기가 20대뿐인데 비행장을 10곳이나 사용해야 하고 병력이 10개 소대나 필요합니까.”

어이가 없었지만 설명하기 위해 다시 마이크 앞으로 나가자 박범집 공군참모차장이 “가만 있어”하며 대신 나섰다. 그리고 그의 대답은 의외였다.

“돌대가리 같은 놈!”

이로써 홍윤범 대위의 별명은 돌대가리가 돼 버렸다. 공군마저 이런 식이었으니 육군은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었다. 이러니 강작전국장을 탓할 이유도 못됐다. 어느 날 박참모차장 관사를 찾았을 때의 일이다. 박참모차장이 빙글빙글 웃으며 “네 부하 중에는 훌륭한 놈도 있더군”하고 말했다.

“네, 모두들 자기 직분에 충실합니다.”

“이 사람 순진하긴. 고영보란 놈 있지? 소년비행병 출신이지 아마? 이 녀석이 작전국장이 되지도 않을 일을 한다고 불평하는 거야. F-51기 100대 도입이 꿈이라도 꿀 일이냐는 거지. 그래서 내가 ‘너 이놈, 장지량의 똥구멍이나 빨아 먹으라’고 호통쳐 주었네. 자네 똥구멍 빨아 먹을 부하를 두었으니 얼마나 좋은가, 하하하….”

북한은 벌써 소련제 전투기 210대를 보유하고 있는데 우리 공군력은 잠자리 비행기 20대 수준이었으니 F-51기 100대 보유도 사실은 적은 형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6·25전쟁이 터졌다. 나는 곧바로 육군본부 참모 회의에 참석했다. 육군의 동향을 알아야 공군의 지원 계획을 세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는 중에 김포 집으로 달려가 산후조리 중인 아내와 아내를 돌보기 위해 상경한 어머니를 데리고 나와 소공동 아주머니 집에 투숙시켰다. 소공동 아주머니는 장모의 태화고등여학교 동창생이었으며 아내는 두 달 전에 첫딸을 낳아 산후조리 중이었다.

이윽고 27일 의정부 전선이 무너졌다는 소식이 날아왔다. 나는 또 육군 참모 회의에 참석했다. 김백일 참모차장이 최창식 공병감을 부르더니 “적의 도강을 막기 위해 내일 새벽 한강 인도교를 폭파하라”고 명령했다.

귀대하자마자 나는 공군 참모 회의를 소집했다. 이 자리에서 김정렬 참모총장과 박참모차장은 “끝까지 전쟁을 한다”며 비행 부대로 출발했고 나는 본부의 철수 계획을 수립했다. 한강 인도교 폭파 전에 철수를 완료해야 하는 것이다.

나는 한국은행에서 예금 잔금을 모두 찾아와 국장 30만 원, 과장 20만 원, 계장 10만 원씩 직원들에게 송별금을 지급했다. 그런데 30만원짜리 봉투가 하나 부족했다. 누군가 한 사람이 봉투 두 개를 가져간 것이었다.

비는 지척을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쏟아지고 봉투 문제로 승강이를 할 처지도 아니어서 후퇴 준비를 서둘렀다. 군용 트럭 7대를 소집해 중요 서류와 물건을 싣는 대로 내보냈다. 가지고 갈 수 없는 서류는 모두 태우고 병기 창고를 은폐하는 작업을 하는 사이 모든 차량이 떠났다. 최후로 트럭을 몰고 정문을 나서려는데 보초 헌병이 내 차를 가로막았다.

“무슨 일인가?”

“밖에서 아주머니 일행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정문 옆으로 달려가 보니 장모와 핏덩어리 아이를 강보에 싸안은 아내가 오들오들 떨면서 울고 서 있었다. 내가 만약 2, 3분만 먼저 떠났다면 나는 가족과 영영 이별했을지 모른다. 아내와 어머니는 빗속을 뚫고 나를 찾아온 것인데 그 시간 차는 불과 2∼3분이었다.

하늘에서는 번개가 번쩍이고 비는 줄기차게 쏟아졌다. 모든 것이 절망적이었다. 야릇한 패배감을 맛보면서 나는 아내와 어머니를 군용 트럭에 태우고 길을 떠났다. 아내는 소공동 아주머니에 대해 얘기했다. 북한군이 쳐들어왔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이상한 행동을 보이더라는 것이었다.

빨간 마후라 -34-맥아더 극동군사령관 출영

9·28 서울 수복 때 나는 급히 소공동 아주머니(김명순)를 찾아갔다. 대전에서 아내와 헤어진 뒤 전선으로 뛰어들어 3개월 동안 가족 소식을 몰랐는데 혹시 연락이 되지 않았나 하여 아주머니를 찾은 것이다. 그러나 폭격으로 허물어진 아주머니 집 앞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한 영감님으로부터 엉뚱한 말을 들었다.

“그 집은 쑥밭이 됐다네. 어서 적십자병원으로 가 보게.”

나는 서대문 적십자병원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병원 직원은 “장교님, 하루 늦었습니다”하고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아주머니는 바로 전날 처형됐던 것이다.

아주머니는 인민위원회 여성동맹위원장으로 활약하다가 체포돼 총살형을 당하고 시신이 병원에 안치돼 있었다. 군 장교가 보증 서면 살려 낼 수 있었다는 말을 듣고 하루만 빨리 갔어도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6·25전쟁 사흘 후 인민군이 서울을 함락한다는 소문이 돌자 아주머니의 표정이 싹 달라지더라는 아내의 말이 뇌리를 스쳤다. 아내를 두고 피난을 갔더라면 아내도 위험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전쟁 때는 군인 당사자뿐만 아니라 가족도 목숨을 운에 맡기고 사는 처지였다.

이야기는 다시 거슬러 올라간다. 6월27일 공군본부에서 지휘부를 인솔하고 부랴부랴 도강하자 곧이어 한강 인도교가 폭파됐다. 정말 간발의 차이였다.

나는 수원의 한 초등학교에 진지를 구축하고 게릴라전을 펼 계획을 세웠다. 한용현 인사국장이 계급(중령)이 제일 높으니 전시본부장을 하고 나는 작전국장, 박두선 소령은 군수국장직을 그대로 수행했다. 식량 보급 루트를 찾기 위해 나간 박 군수국장으로부터 수원 농대에서 식량을 확보했다는 연락이 왔다. 인민군이 쳐들어올 때까지 게릴라전을 벌일 만한 최소한의 준비는 갖춘 셈이었다.

그래서 지형 정찰을 하려고 밖으로 나가는데 해산된 공군 병사들이 소식을 듣고 하나 둘씩 학교로 찾아들기 시작했다. 절망적인 가운데도 희망을 걸어 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수원 농대 학장실에도 전시 국방부가 설치됐다는 소식이 날아왔다. 김정렬 공군참모총장은 국방부에 합류해 있었다.

나는 적과 너무 가까이 있다는 주변의 우려를 묵살하고 착착 게릴라전을 준비해 나갔다. 그런데 29일 아침 김총장이 부관을 보내왔다.

“작전국장님, 맥아더 장군이 오늘 오전 10시 수원 비행장으로 들어오신답니다. 작전국장님이 직접 영접해 국방부로 모셔 오라는 지시입니다.”

극동군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 원수는 사령부가 있는 일본에서 전용기로 날아온다는 것이었다. 나는 즉시 수원 비행장으로 차를 몰았다. 오전 10시까지는 시간이 충분히 남아 있었지만 운전병을 닦달해 가며 차를 몰았다. 그만큼 마음은 다급했다.

오전 10시 정확히 맥아더 원수의 4발 전용기가 수원 비행장에 도착했다. 특유의 검은 선글라스를 쓰고 트랩을 내려온 맥아더 원수는 무표정했다. 나의 거수경례를 받는 둥 마는 둥 하며 안내하는 지프에 올라탔다. 맥아더 원수가 앞좌석에 타고 그의 정보참모인 미 육군소장과 나는 뒷좌석에 탔다.

초여름의 뙤약볕 아래 지프는 텅 빈 도로를 전속력으로 달렸지만 맥아더 원수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먼 곳에서 포성이 들려오고 지프는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질주했다. 나는 유별나게 긴 침묵에 야릇한 절망감을 맛보면서 맥아더 원수에게 큰 소리로 물었다.

“Are you comming?(미군이 오는가)”

무표정하게 앞만 바라보고 있던 맥아더 원수가 힐끗 나를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앞을 보며 침묵을 지켰다. 완전히 나를 무시하거나 질문을 묵살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하긴 내가 한 질문이 무례일 수 있고 세련되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새파란 장교가 시건방지게 태평양 전쟁의 영웅에게 “너(극동군사령부) 여기 오느냐”고 묻는다는 것이 상당히 도발적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급박해서 물은 말이었다. 따지고 보면 그 말은 ‘명언’이 아닐 수 없었다. 치열한 전투 상황에서 그 이상의 말이 무슨 필요가 있는가. 전선의 언어란 스타카토와 같이 짧게 끊는 단음절의 암호 문자 하나로 모든 것을 해석하고 해결하는 것 아닌가.

맥아더 원수의 묵살에 내가 머쓱해 있자 옆자리의 정보참모 소장이 슬그머니 내 손을 잡더니 꼭 쥐었다.

빨간 마후라 -35-첫 출격과 첫 전사

더글러스 맥아더 사령관의 정보참모는 내 손을 꼭 쥐며 고개를 끄덕거렸는데 그것은 걱정하지 말라는 메시지였다. 나는 비로소 안도의 숨을 쉬었다.

나는 수원 농대에 차려진 임시 국방부로 맥아더 사령관을 안내했다. 맥아더 사령관은 브리핑을 받는 둥 마는 둥 하며 곧바로 전선이 무너진 한강으로 나갔다. 맥아더 사령관은 한강 전선을 돌아본 뒤 한국군에 대한 전면적인 군사 원조를 약속했다. 이에 앞서 미국 정부는 해·공군에 한국 전선 참전을 명령했고(6월27일) 뒤이어 육군에도 참전을 명령했다(6월30일).

나는 공군 지휘부로 돌아왔다. 맥아더 사령관의 방한으로 상황은 급변했다. 미 군사 원조의 일환으로 미제 전투기 F-51기 10대 도입이 결정됐다. F-51기 인수와 함께 비행 훈련을 받기 위해 이근석·김영환·장성환·김신 등 조종사 10명이 일본으로 떠났다.

그러나 전선은 계속 밀리기 시작했다. 다시 대전 후퇴 명령이 떨어졌다. 정부는 대전으로 이전한 상태였다. 나는 수원역으로 나가 귀향하는 장정들을 불러 모아 게릴라군 부대를 재편성했으나 도리 없이 다시 짐을 챙겼다.

대전에 도착한 며칠 후(7월2일) 이근석 비행단장이 F-51기를 몰고 대전 유성 비행장에 내렸다. F-51기 10대는 전날 일본의 이타스케 미 공군 기지를 출발, 대구 비행장에 도착했다.

이타스케 공군 기지에서 조종이 익숙해질 때까지 몇 차례 비행 훈련을 받고 돌아와야 했지만 워낙 전황이 급박히 돌아가는 데다 기상 조건도 좋지 못해 단 한 번 훈련을 받고 전투기를 인수해 온 것이었다.

이단장은 정부와 공군참모총장에게 보고차 직접 F-51기를 몰고 대전에 도착했는데 모처럼 전투기를 몬 탓인지 매우 흥분된 모습이었다.

7월4일 이단장은 F-51기 편대(3대 편성)를 이끌고 첫 출격에 나섰다. 수원·안양 지역에서 탱크를 몰고 남하하던 인민군을 폭탄 투하로 저지하고 내려꽂히듯 기총 소사를 하던 중 적의 집중 포격을 받고 전투기가 격추되고 말았다. 첫 출격에 첫 전사였다.

이단장은 일본 소년비행병(2기) 출신으로 중일전쟁 때는 몽골 전선에서 전투기를 몰았고 41년 태평양 전쟁 초기 남양 군도 전투에 참전했다. 이때 전투기가 격추돼 목숨은 건졌으나 포로로 잡혀 해방될 때까지 4년간 버마에서 억류돼 생활했다. 그리고 46년 초 고국으로 돌아와 항공대에 입대, 공군 창설 주역 중 한 사람으로 활약했다.

가장 신망받던 비행단장이 첫 출격과 함께 전사하자 공군은 아연 긴장감이 감돌았다. 사실 이단장의 출격은 다소 무리가 있었다. 태평양 전쟁 때 4년간 포로 생활을 했고 해방부터 50년까지 5년간 전투기를 몬 경험이 없어 조종간을 잡지 못한 기간이 벌써 9년이나 됐던 것이다.

사실 참모총장이라도 한 달에 4시간씩 의무적으로 전투기를 몰도록 돼 있는데(유지 비행) 9년이라는 공백기를 지나 일본에서 단 한 차례 비행 훈련을 받고 실전에 나섰으니 무리라고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전선은 그만큼 급박히 돌아가 어느 누구라도 나서야 할 판이었다.

이단장의 전사 소식을 듣자 나는 전투 조종사 특유의 의리와 복수심으로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김정렬 참모총장에게 전투비행단으로 배속시켜 줄 것을 요청했다. 마침 장덕창 참모차장도 전투기를 몰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한용현 공군본부장은 한사코 만류했다. 작전국장이 작전 지휘를 해야지 자리를 비우면 대신 할 사람이 마땅치 않다고 화를 내며 주저앉기를 원했다.

“형님, 저는 전투기를 몰겠습니다. 이선배가 당한 것의 열 배, 스무 배는 갚아 줘야 합니다.”

“네가 떠나면 네 자리를 노리는 자가 있단 말이다. 제발 자리를 지켜라. 본부가 더 중요해.”

“그거야 선배님이 알아서 하십시오. 저는 떠납니다.”

나의 결심은 이미 서 있었다. 이단장의 전사로 공군 전체의 사기가 뚝 떨어져 있었다. 이 점을 감안해 참모총장이 전투비행단장을 겸했다. 나는 고집대로 전투비행단 작전참모로 배속돼 7월6일 대구로 떠났다.

빨간 마후라 -36- 오폭과 사기 저하

이근석 비행단장의 전사로 전투 조종사들은 복수의 일념에 불타 있었지만 우리 공군 전력이라는 것이 고작 전투기 9대였다. 더군다나 미 공군 6146고문단의 지휘를 받게 돼 있어 운신의 폭은 그만큼 좁았다.

인민군은 대전까지 내려왔다. 게다가 미 육군보병사단장 딘 소장이 포로로 잡혔다는 소식이 날아들어 전황은 갈수록 절망적이었다.

딘 소장은 한국군과 인민군을 구분하지 못해 포로로 잡힌 것인데 인민군 선두 부대는 벌써 충주까지 내려와 있었다. 아군은 청주로 밀려났다.

적의 남침을 저지하는 것은 미 공군기뿐이었다. 일본의 공군 기지에서 날아온 미군기가 인민군의 침략 루트를 봉쇄하며 폭탄을 투하했다. 그러나 미군기는 목표물인 충주 대신 청주를 집중 공격, 엄청난 민간인 피해를 냈다.

이것은 웃지 못할 지명 착오로 생긴 오폭이었다. 미 공군은 제2차 세계대전 때 만든 한반도 항공 지도로 폭격에 나섰는데 영어 스펠링이 인민군이 점령한 충주도 ‘Chungju’고 아군이 후퇴해 전력을 재정비하고 있는 청주도 똑같은 ‘Chungju’였다.

스펠링은 같으나 지명의 차이가 현격한 현지 사정을 알 리 없는 미 공군 조종사들이 청주를 충주로 알고 무차별적으로 폭격하니 아군의 손실은 막대했다. 이로 인해 정신적 패배주의가 컸다. 사실 6·25전쟁 초기 인민군에게 밀린 절대 이유는 아군의 전력이 취약한 데 있는 것만은 아니었다. 이런 기막힌 오폭 사례에서 오는 정신적 공황의 결과도 컸다.

나는 전투비행단 작전 장교로 배속돼 정찰 임무를 수행하면서 이런 문제점을 제시하며 우리 공군력을 증대해야 한다고 절규했다. 우리가 우리 지형을 더 잘 알기 때문에 우리에게 전투기를 줘야 한다고 미 공군 측을 설득했지만 한마디로 한국 공군은 미숙하고 전투기 조종 능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1950년 7월20일. 대구로 가는 낙동강 상류의 구미대교. 인민군이 다리 북쪽까지 쳐내려 왔다는 첩보를 접한 공군본부의 작전참모가 이를 미 공군에 알리자 미군기가 날아와 폭격을 감행했다. 그러나 그것은 인민군의 침공이 아니라 아군의 후퇴 상황이었다. 또 인명 손실이 컸음은 물론이다. 결국 이 사건이 문제가 돼 공군본부의 작전참모가 자리에서 물러났다.

전황이 급박히 돌아가자 미 공군 최신예 제트 전투기 F-82기가 투입됐다. 그동안 F-51기와 B-29기(4발 엔진)·B-26기(쌍발 엔진)가 나왔으나 적기를 격추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판단에 따라 F-82기를 투입한 것이다. 이로써 어느 정도 숨을 돌리게 됐다. 성능이 뛰어난지라 적기를 꽤 많이 격추한 것이다.

나는 T-6 정찰기를 타고 정찰 임무를 수행하면서 작전을 지휘했다. 그러나 아직도 기관총을 달지 못해 무장은 안 된 상태였다. 청주 남쪽과 상주 일원을 정찰했지만 적기의 기총 소사에 대응하지 못해 여러 차례 고비를 넘겼다.

7월 하순 대구 비행장에 전투기가 가득 차기 시작했다. 일본 기지에서 날아온 미군 전투기와 영국·호주·남아프리카연방·필리핀 전투기들이었다.

비행장이 비좁아 우리 공군이 자리를 비워 주어야 했다. 사천 비행장으로 이동하기 위해 제1 선발 부대를 내려 보냈다. 사천 비행장은 제주 4·3 사건과 여순 사건 때 살펴 둔 비행장이었다. 그런데 강화일 소위가 이끄는 선발대가 인민군에게 포로로 붙잡히고 말았다.

낙동강을 건너지 않고 강을 따라 남하한 인민군 주력 부대에 붙잡힌 것이다. 그중 탈출한 병사가 귀대해 알려 준 것이 그 모양이었다.

김정렬 비행단장(공군참모총장 겸직)과 나는 사천이 적에게 점령당한 사실을 확인하고 비행기를 진해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우리 공군에는 연락기 L-4·L-5, 정찰기 T-6 등 26대가 있었지만 전투에 투입되지 못했다. 1개 전투비행단 규모(전투기 75대)에도 미치지 못하는 형편없는 공군력이었다.

번쩍이는 외국 비행기에 비해 우리 비행기가 너무 초라해 자존심도 몹시 상했다. 우리 전쟁인데도 완전히 더부살이 전쟁을 하는 인상이었다. 모든 것이 암울하고 참담했다. 비행장을 옮기는 것도 그런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진해 비행장으로 옮겼으나 무엇 하나 갖춘 것이 없었고 또 다른 난관이 우리를 가로막았다.

빨간 마후라 -37- 한국 지형 잘 모르는 美 공군

진해 비행장으로 가긴 했지만 활주로부터 닦는 일이 급선무였다. 비행장이 늪지대로 변해 있었고 일부는 잡초가 1m 이상 자라 있었다. 게다가 런웨이(runway)가 짧고 협소해 중무장한 전투기의 이착륙은 기대하기 어려웠다.

우리 공군은 전투기가 절대 부족해 연락기인 L - 4·L - 5기에 30파운드짜리 국산 폭탄(300발을 제조했음)을 두 개씩 싣고 적 점령지에 투하하고 돌아왔다. 연락기에는 조종석 뒤에 한 사람이 타게 돼 있는데 후방석 탑승자가 폭탄 두 개를 가슴에 안고 초저공(1000피트·약 300m 상공)으로 비행할 때 지상으로 투하했다. 그러나 위험하기만 할 뿐 적중률이 떨어졌다.

30파운드짜리 국산 폭탄 1~2발 가지고는 간에 기별도 안 갔을 뿐더러 적에게 쉽게 노출돼 변죽만 울리고 도망 나오는 형편이었다. 용기는 가상할망정 따지고 보면 격추되기 쉬운 지점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푼수였다. 6·25전쟁 직후 후퇴하는 길에 안양·시흥 상공에서 인민군에게 투하한 뒤 남은 폭탄을 쓰기 위해 시도한 것이지만 이처럼 성과는 별무였다.

나는 문경·안동·상주·청주 지방으로 T-6을 몰고 정찰 임무를 수행했다. 미 공군을 중심으로 한 유엔군 전투기와 북한군의 Yak - 9·IL - 10기 간에 치열한 공중전이 벌어진 것도 이때다. 적의 전투기는 여의도·김포 비행장을 초토화한 것들이었다. 그러나 7월20일께부터 미 공군의 F - 80 제트 전폭기가 등장하면서 양상이 달라졌다. 속도·화력 등 성능이 단연 앞선 이 제트 전폭기는 적기가 나타나는 족족 격추했다. 이로써 제공권을 완전 장악해 가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얼마 전 민간인 피해 보상 문제로 쟁점화된 영동의 노근리 오폭도 있었을 것으로 본다. 이를 객관적으로 살펴보기 위해 이를 다룬 외신을 인용한다.

“(노근리 오폭) 사실은 1998년 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을 특종 보도한 AP 통신 취재팀이 새로 발굴한 문건 등을 토대로 펴낸 노근리 사건 보고서인 ‘노근리 다리 - 한국전쟁의 숨겨진 악몽’을 통해 공개됐다. 미국 출판사 헨리 홀트(Henry Holt)가 발간한 이 보고서에 인용된 50년 7월26일자 ‘미 5공군 제8폭격전대 35전폭기대대’ 출격 임무 결과 보고에 따르면 이날 오후 6시40분 일본 이타즈케 공군 기지를 이륙한 35전폭기대대 소속 F-80 전폭기 4대가 영동군 용암리 남동쪽 3마일 지점(노근리)에 출격했다.”〈연합뉴스·2001. 8. 20〉

보도에서 보듯 미 공군 출격으로 민간인 피해가 있었다고 판단된다. 이 같은 피해 사례는 일본에서 출격한 미 공군기가 피아 구분이 잘 안 되는 데다 한국 지형을 잘 알지 못한 데서 기인했다고 본다. 피난민을 적으로 오인케 한 적의 교란 작전에도 말려들었을 수 있다.

나는 이 점을 우려해 지상 부대를 지원하는 일이 무엇보다 긴요하다고 보았다. 그래서 정찰부대를 별도로 편성했다. 오폭 사례를 줄이고 지상군과의 협조 체제를 강화하고 일사불란한 작전을 수행하기 위한 조치였다.

편성된 정찰부대를 우선 전선이 급박한 포항으로 보냈다. 뒤이어 모든 비행기를 김해 비행장으로 옮겼다. 그런데 이동하는 과정에서 또 사고가 터졌다. 장동출(일본 소년비행병 출신) 중위가 진해 비행장 무기고에 저장된 폭탄을 싣고 이륙하다 전투기가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진해 앞바다에 떨어지고 말았다.

동체가 무거워지면 정면으로 뜨지 못하고 이륙하자마자 사선으로 비껴 가게 돼 있는데 이때는 수습할 방법이 없다. 폭탄을 잔뜩 싣고 비정상적으로 날고 있는 비행기를 유도할 방법이란 없기 때문이다.

장중위의 전사와 전투기 파괴. 이는 정말 우리 공군에 뼈아픈 손실이었다. 이근석 비행단장의 전사에 뒤이은 희생인 데다 몇 대 안 되는 전투기 중에서 또 한 대를 잃어버렸으니 가슴을 칠 수밖에 없었다. 이로써 우리 공군이 보유한 전투기는 8대뿐이었다. 이러다 조종사는 물론 전투기도 모조리 없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긴장과 불안감이 앞섰다.

빨간 마후라 -38- 김정렬 비행단장의 깊은 뜻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전투비행단의 김영환 1대대장, 장성환 2대대장, 김신 3대대장에게 근신 처분이 내려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들의 근신은 장동출 중위의 전사 뒤 비행단에 드리워진 극도의 심리적 불안감에서 온 결과였다.

모두 죽어 가는구나 하는 절망감에 빠져 있는데 모 정비 장교가 가족을 후방으로 빼돌리고 개인적 안락을 취하고 있다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너도나도 죽어 가는 판에 상급자랍시고 어른 행세를 하며 혼자만 살겠다고 가족을 피신시키는 모습이 공군 정신에 어긋난다는 불만이었다.

나 역시 가족과 헤어진 뒤 생사를 모르고 전선에 투입된 상황이었다. 하지만 절망적일지라도 서로 의지하고 하늘을 지키는데 이런 돌출 행동이 나오자 세 전투 조종사가 그와 심한 언쟁을 벌이다 끝내 폭력 사태로까지 가고 말았다.

이 사실을 접한 김정렬 참모총장은 세 조종사를 영창에 보내 버렸다. 이런 때일수록 내부 충돌과 반목은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 김총장의 뜻이었다. 그러나 나는 김총장의 깊은 뜻을 알고 있었다.

이들을 그대로 두면 모두 나가 죽게 돼 있었다. 전선은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혼미를 거듭하고 있고 우리 공군은 화력·정비·조종술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갖춘 것이 없었다. 더군다나 나가는 족족 전사하거나 행방불명되니 조종사들은 극도로 불안정한 심리 상태에 빠져 있었다.

이런 때 사고가 나기 십상이다. 만에 하나 세 사람 모두 나가 죽으면 우리 공군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만큼 이들의 위치는 절대적이었다.

나는 김총장이 이들을 죽일 수 없다는 깊은 뜻에서 영창에 보냈다고 생각했다. 더군다나 김영환 1대대장은 김총장의 친동생이었다(그러나 얼마 후 문제의 정비 장교는 전사하고 김대대장은 순직했다. 이 부분 추후 기술).

진해 비행장에서 이처럼 값진 대가를 치르고 김해 비행장으로 옮겨 가자 김총장이 나를 불러 세우더니 “전투 조종사가 이제 박희동·강호륜·정영진·이상수·김성룡 다섯 명뿐이다. 우리 공군의 씨앗이니 잘 길러라”라며 몇번이나 당부했다.

김해에서는 주로 낙동강 방어선 서편인 진주·하동·삼천포·사천·고성 지역에 대한 정찰과 때로는 폭탄 투하와 기총 소사 임무를 수행했다. 8월 중순 정찰에 나섰는데 미 해병 전투기들이 진주 남강의 촉석루를 폭격하고 있었다. 이들은 지상 부대의 연락을 받고 폭격했지만 때로는 그들 편의대로 폭격할 때도 있었다. 촉석루가 그 경우였다.

정찰 중 이를 발견한 내가 전투기에 알리려 했으나 무전기의 통신 채널이 달라 촉석루 폭격을 고스란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나 역시 의욕만 앞섰을 뿐 사격이 빗나가는 경우가 있었다. 남강 하류에 긴 다리가 하나 놓여 있었는데 정찰 도중 적군으로 보이는 수색대원이 강을 건너고 있는 모습이 포착됐다. 내 정찰기에는 기관포 무장은 못하고 고물 캘리버36을 장착해 놓고 있었다.

적 발견 즉시 낙하해 쏘려고 하는데 적 척후병은 벌써 물속으로 잠수해 버렸다. 2~3분 지나면 엉뚱한 곳에서 머리만 내미는데 비행기의 속도를 멈출 수 없어 다시 올라갔다가 내려꽂히며 기총 소사를 했으나 적군은 물속 깊숙이 잠수해 버렸다. 그리고 다른 산쪽에서 응사해 와 도리없이 물러나고 말았다.

며칠 후 사천과 진해 중간 지역을 정찰하는데 통영 앞바다에 흰옷을 입은 민간인 수백 명이 탄 배가 포착됐다. 나는 인민군이 민간인 복장으로 위장, 진해나 부산으로 침입해 들어가는 것으로 알고 배 위를 몇 차례 선회하며 기총 소사를 퍼부었다. 그러나 고물 캘리버36은 고장나 픽픽 물똥 싸는 소리만 낼 뿐 도무지 나가지 않았다. 대신 배에서 응사해 왔다.

내 정찰기가 그 총에 맞았으면 격추됐을 것이다. 알고 보니 그들은 우리 해병대로 민간인 복장으로 후퇴하는 중이었고 아군기가 총을 쏘자 기가 막혀 위협 사격만 가했던 것이다.

빨간 마후라 -39- 13일의 금요일

7월 하순 미 해병대 대위가 나를 찾아왔다. 그는 다짜고짜 “몇 시간 전 비행기를 탄 자가 누구냐”고 따져 물었다. 필시 사고가 난 것으로 알고 나는 “그 비행기는 우리 소속이 아니다”라고 둘러댔다.

“당신네 비행기가 우리를 쏘았다. 이런 오발·오폭이 당신네 공군의 모습인가?”
상당히 조롱하는 말투여서 자존심이 상했다.

“보다시피 우리는 제대로 무장된 전투기가 없다. 미 공군은 우리에게 전투기를 주지 않는다. 오발이든 오폭이든 그런 전투기가 없으니 그 이야기는 상부에 하라.”

나는 이렇게 말하고 돌아서 버렸다. 그제서야 그는 머쓱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그런 사실이 보고됐는지 모르지만 8월 하순 미 고문단이 대거 우리 공군에 투입됐다. 고문단 중에는 전투 비행 시간이 500~1000시간인 조종사도 있었고 출격 100회를 기록한 조종사도 있었다. 우리의 전투 비행 시간은 겨우 10시간 정도였다.

미 고문단을 통해 우리 공군은 비로소 제대로 교육을 받았다. 이후 해병대의 통영상륙작전 지원도 할 수 있었다. 이는 인천상륙작전의 예행 연습이기도 했다.

1950년 9월15일 역사적인 인천상륙작전이 개시되자 다섯 명의 우리 전투 조종사도 출격했다. 미 5공군을 주축으로 한 비행기는 오키나와·괌·사이판은 물론 필리핀에까지 출격했다.

B-29·B-26·F-51·F-80 등 전투기가 인천 상공을 새까맣게 뒤덮으며 폭격을 감행했다. 이때의 출격은 3300여 회나 됐다. 제2차 세계대전의 노르망디 상륙작전과 미군의 일본 공습 절정기(1600회) 때보다 많은 출격으로 전세를 완전 역전시킨 작전이었다.

출격 3300회라면 어마어마한 수치로, 공군력으로 적을 완전 초토화한 작전이었다. 흔히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지상군 투입으로 상륙작전이 성공한 것처럼 이야기되지만 이런 공군의 지원이 없었으면 쉽게 이루어질 수 없었다. 그런데도 공군의 역할이 평가되지 못한 부분이 있다. 이때 우리 공군도 50회 출격했다.

9·28 서울 수복과 함께 나는 10월2일 전투비행단을 인솔, 여의도 비행장으로 이동했다. 이때 전투·정비·기지·의무전대를 갖춰 비로소 제1전투비행단을 편성했다. 유엔군이 38선 이북으로 진격하자 공군은 평양 공격에 나섰다.

10월13일(금요일) 여의도 비행장. 전투 조종사 이상수(일본 소년비행병 출신) 중위가 출격하기 위해 낙하산을 둘러메고 F-51기 쪽으로 가더니 얼굴을 찌푸리며 되돌아왔다. 나는 출격하는 조종사들을 배웅하기 위해 언제나 활주로에 나가 있었다. 이중위의 기분 나쁜 표정을 본 내가 “왜 그래?” 하고 묻자 그는 “기분이 좀 그렇네요”라고 말했다.

“왜, 기분 안 좋은 일이 있나?”
“네, 비행기 앞 프로펠러 꼭대기에 까마귀가 앉아 있잖아요.”

조종사들은 새를 귀찮아 하지만 그중에서도 까마귀를 특히 싫어한다. 그의 말을 듣고 나는 비행기 앞으로 갔다. 까마귀 한 마리가 프로펠러의 열 십(十)자 위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순간 나도 섬뜩한 기분이 들어 크게 소리쳐 까마귀를 쫓은 뒤 “다른 사람으로 바꾸겠다”고 말했다. 나는 작전참모로서 전쟁 수행을 책임지고 있지만 그에 앞서 그들과 나는 형제보다 더 끈끈한 유대감이 있었다.

“아닙니다. 그냥 가죠.”
“아냐, 기분 좋을 때 나가고 오늘은 바꿔라.”

이렇게 만류했으나 이중위는 “그런 미신이 뭐 대수입니까” 하고는 대뜸 전투기에 올라탔다. 이중위는 평양 외곽의 김일성 관사(숙소)를 공격했다. 기총 소사와 폭탄 투하를 하던 중 인민군의 지대공 포격을 맞고 그는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나는 그를 끝까지 말리지 못한 자책감으로 몇 날 며칠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그를 부르며 울부짖기도 했다.

이중위는 가정적으로 불행한 청년이었다. 일제 때 일본에서 성장하면서 공부도 잘하고 특히 영어 회화가 뛰어났다.

귀국 후 항공대에 들어와 미군들과 곧잘 통했으나 계모 슬하에서 자란 탓인지 언제나 표정이 우울했다. 그래서 내가 형처럼 대해 주며 격려해 줬다. 그 역시 친형 이상으로 나를 따랐다.

전사 사실을 통고하기 위해 돈암동에 있는 그의 집을 찾았을 때 계모가 섧게 울고 동생들도 처연히 우는 모습을 보고 나는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미신이라고는 하지만 나는 그 이후 ‘13일의 금요일’은 생리적으로 싫어한다. 이런 날이 달력에서 보이면 진저리가 쳐진다. 아끼는 동생을 잃어버렸다는 자책감으로 괴로워 견딜 수가 없다.

빨간 마후라 -40-평양 미림 비행장 점령

유엔군이 평양에 입성하자 우리는 1950년 10월20일 평양 외곽의 미림 비행장을 재빨리 점령했다. 미림 비행장은 바로 전날까지 북한 공군사령부가 있던 곳이었다.

작전참모(소령)인 나는 기지·정비·의무전대 등 지상 부대를 인솔해 육로로 38선을 넘었다. 김신(중령) 기지전대장과 함께 지프를 타고 가는데 개성 북쪽에서 김중령이 갑자기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형, 왜 그래요?”하고 내가 묻자 김중령은 “저걸 보라”면서 북쪽에서 내려오는 세단 승용차를 가리켰다. “저 차가 경교장 차야. 아버님(김구 선생) 전용차라고.”

그러고 보니 나도 그 차를 몇 번 탄 기억이 났다. 남북 협상을 추진하다 쓰러진 주인 잃은 차를 전선에서 만나자 만감이 교차했다. 나는 재빨리 지프에서 내려 세단 승용차를 세웠다.

“이 차를 어디로 가지고 가는가.” 차는 육군 운전병이 몰고 있었다.

“인민군놈들이 징발해 간 것을 평양에서 찾아 오는 길입니다. 서울로 보내라고 해서 가져오는 중입니다.”

“이 차 임자는 김구 선생님이시다. 이분이 김구 선생님의 아드님이시고.”

나는 지프에 앉아 있는 김중령을 가리켰다. 운전병이 차에서 내리더니 경례를 붙였다. “영광입니다. 두고 갈까요?”

그러자 김중령이 말했다. “아니다. 서울로 보내라.”

그러나 서울로 보내진 세단 승용차는 그 후 영영 찾지 못했다. 전쟁 중에는 사사로운 것을 챙길 수가 없는 것이다.

미림 비행장은 대동강변에 있는 잘 닦인 비행장으로 평양의 두 개 비행장 중 하나였다. 거기에 인민군 전투기는 한 대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이미 박살이 났거나 어디론가 도망간 뒤였다. 하기는 미 5공군을 주축으로 한 유엔 공군은 8월1일 흥남에 전투기·폭격기 500대가 출격해 도시를 초토화했고 같은 날 청진에는 B - 29 60대, 9월16일 원산에는 80대가 출격해 파괴했다.

전투기는 국내의 대구·김해·부산 수영·포항 비행장에서, 국외는 일본의 이타스케를 비롯해 3개 기지, 오키나와 2개 기지, 괌·필리핀 클라크 기지 등에서 출격했다. 또 동해안·남해안에 대기 중인 항공모함에서 출격한 미 해군기와 해병대 항공기들까지 하루 1000소티(출격)를 초과했으니 며칠 만에 북한은 쑥대밭이 된 셈이었다.

적의 비행장과 지상군 집결지, 보급집적소, 통신지휘소, 후방 원조 병력의 운송 대열과 연안 선박이 완전히 사라졌다.

출격 수치도 어마어마했을 뿐만 아니라 정확도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그것을 훨씬 능가했다.

당시 한국 공군의 F - 51 전투기 1개 편대(4대)는 적의 지상 병력 1개 중대 산개 지역을 불바다로 만들 수 있었다. 1개 편대에는 폭탄 8발(250파운드), 로켓포 24발, 기관총 7440발을 장착할 수 있었다.

평양은 50년 10월 1차 폭격에서 거의 파괴됐고 52년 7월 650대의 폭격기·전투기가 하루 1300여 출격해 완전 쓸어 버렸다. 이때 우리 공군도 작은 규모(1개 편대)지만 지정된 목표를 파괴했다.

적의 전선은 붕괴됐고 우리는 강계·혜산·압록강까지 올라갔다. 통일은 눈앞에 와 있는 듯했다.

적의 몇 대 안 남은 비행기는 만주로 도망가 북한에서는 전투기를 단 한 대도 찾아볼 수 없었다.

미림 비행장에서 작전을 수행하던 50년 11월 중순. 박범집 공군참모차장이 고향 함흥을 간다고 나섰다. 고향을 해방시켰으니 개선장군처럼 가는 것이었다. 그가 직접 T - 6 훈련기를 몰고 뒷좌석에는 수행하던 서한호 작전국장이 탔다.

빨간 마후라 -41-박범집 공군참모차장의 전사

박범집 공군참모차장은 고향 땅에서 극진한 대우를 받고 다음 날 귀대하기 위해 비행장으로 나왔다. 그런데 고향 사람들이 너도나도 선물을 가져왔다. 선물은 고향 특산물인 청어였다. 함흥 앞바다는 예부터 명태·청어가 많이 잡히는 고장이었다. 집집마다 명태나 청어로 김치(식혜)를 담가 먹을 정도였다.

“데리고 다니는 부하가 많을 텐데 청어나 몽땅 구워 주소.”

인심이 후한 고향 사람들은 비행기 뒷좌석에 청어 상자를 실어 주었다. 그러나 비행기가 이륙하는데 워낙 꽁지가 무거워 뜨는 듯 마는 듯하다 기수가 더 이상 올라가지 못하고 계속 한쪽으로 쏠리더니 건너편 산에 추락하고 말았다. 고향 사람들이 손을 흔들며 환송하는 바로 눈앞에서 T-6은 폭발했고 박참모차장과 서한호 작전국장은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다.

이 소식을 접한 공군은 초상집이 됐다. 공군으로서는 최고 지위자가 전사(적지에서 숨졌기 때문에 두 사람을 전사자로 처리)한 데다 존경스러운 선배가 변을 당했으니 그 비통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박참모차장은 일본 육사52기로 나보다 8년 선배였다. 우리 공군 창설 7인 중 한 사람으로 참모총장이 될 수 있었지만 2년 후배인 김정렬 선배에게 한사코 총장 자리를 양보한 분이다. 참모총장은 조종사 출신이어야 하며 자신은 정비 출신이기 때문에 최고 책임자가 될 수 없다고 고사한 것이다.

내가 작전국장으로 있을 때 전력 증강을 위해 세운 비행기 100대 보유, 10곳 비행장 확보 등의 계획안을 여기저기서 비판하는데도 “장지량의 비전과 스케일이라면 됐다”라며 전폭적으로 지지해 준 분이었다. 그는 나중에 조종술을 익혀 전투 비행사로서의 몫도 다했으며 6·25전쟁이 나자 직접 전선으로 뛰어든 충성스럽고 엄격한 군인이었다. 전쟁은 본래 모든 것을 파괴하지만 이런 아까운 분들을 빼앗아 간다는 점에서 저주스러웠다.

1950년 12월2일. 미림 비행장 정문을 지키던 보초로부터 긴급 연락이 왔다. 이상한 청년이 부대를 기웃거리고 있다는 보고였다. 현장에 나가 보니 우리말을 전혀 하지 못하는 청년이 보퉁이를 안고 서 있었다. 부대로 데려와 보퉁이를 열어 보니 기다란 청룡도 여섯 자루가 나왔다. 바로 중공군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중공군이 새까맣게 넘어오고 있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은 만주를 폭격, 중공군의 개입을 막으려 했지만 미국 정부는 국민 여론에 따라 전쟁을 어떻게든 종식시키려는 방침을 세웠다. 만주 폭격으로 공산군의 도발을 차단하려는 맥아더 장군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 것은 급격하게 돌아간 외교전 때문이었다(94년 미 버클리대 주최 ‘한국전쟁에 관한 고찰’ 국제 세미나 참조).

이오시프 스탈린은 미국을 건드리면 득 될 게 없다는 판단 아래 김일성에게 만주에 망명 정부를 세우도록 독려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영국을 위협했다.

반면 중공의 마오쩌둥(毛澤東)은 만주 땅에 김일성이 망명 정부를 세우는 것을 귀찮게 여겼다. 국공 내전에서 어렵게 승리한 마오쩌둥으로서는 망명 정부를 수용할 여력이 없었다. 그래서 한반도 북위 40도 이북을 국경선으로 해 휴전하도록 김일성에게 종용했다. 북위 40도라면 서해 쪽으로는 신의주 밑 용천이고 동해 쪽은 함흥 신포 지역이다. 즉, 평안북도와 함경남북도를 말한다. 이런 정도라면 숨만 쉬고 간신히 연명하는 영토였다.

그러나 맥아더 장군은 전쟁 종식을 위해 만주에 원자 폭탄을 투하할 것을 계속 고집했다. 당시 미국은 14발의 원자 폭탄 여분을 갖고 있었으며 이에 놀란 마오쩌둥이 북위 40도선 휴전을 제시한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영국이 미국을 만류하고 나섰다. 한반도 통일은 우방인 영국 때문에 수포로 돌아가고 마는 꼴이었다. 그러나 거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미국이 만주에 핵을 사용할 경우 소련이 영국을 핵공격하겠다고 위협했다. 영국을 위협함으로써 미국의 만주 공격을 저지하자는 전략이다.

결국 미국은 영국의 제안을 받아들여 제한 전쟁(no win policy)에 나선 것이고, 이것이 휴전의 중심 테제(주제)가 되고 말았다. 역시 남의 손으로 통일을 이루려는 꿈은 한갓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역사의 교훈을 통해 얻을 수 있다.

[김영부(1기)]

가슴아픈 역사의 교훈이지만 읽어야 하겠지요
아침마다 역사 공부를 할 기회를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신현철 11기]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