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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학당] 진여와 열반 38강-유식삼십송 제7송 보강, 제20송(3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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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을 좀 보강해 드리는 게 제가 맡은 거라서, 예전 경전만 갖고는 설명이 좀 안 맞는 게 많아요, 바로 적용이 잘 안되고. 그걸 원만하게 작동되게 도와드려야 되잖아요. 여러분 마음 안에서 원만하게 작동이 되어야지 매뉴얼이 도움이 되는 거죠. 매뉴얼이 도저히 앞 뒷말이 안 맞고 충돌나고 막 이러면 못 해요. 구동을 못 시켜 봐요. 구현을 못 해봐요. 매뉴얼을 설명해 줘야 돼요, 누가. 설명을 해줘야 이게 구현이 돼요. 그런 느낌이에요. 지금 매뉴얼들이 2천 년 전, 3천 년 전 이렇게 천 년 전에 나오다 보니까 언어의 장벽과 뭐 여러 가지로 구현이 잘 안돼요. 각각의 어떤 또 함정들이 있거든요. 그 시대, 그 시대에 논리를 구사하다 보니까 좀 빠진 게 있고 보강해야 될 게 있고 이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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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맡은 것 같아요, 총체적으로. 모든 경전이요, 종교 불문하고. 제가 지금 불교 강의하고 있지만 제가 "너 불교도냐?" 그러면 또 아니잖아요. 모든 종교를 다루고 있으니까 보강을 해야 돼요, 경전을. 보강한다는 게 경전을 새로 쓰는 게 아니라 경전을 풀어줘야지요. 이 매뉴얼은 이렇게 쓰라고 있는 말입니다. 그걸 문자 그대로 해석해서 이렇게 하시면요, 이건 사이비 밖에 맹신자 밖에 안 됩니다 이겁니다. 칭의·성화·영화라는 답이 다 있는데 칭의를 맛보셨나요? 간단해요. 새로운 얘기하는 게 아니에요. 칭의, 맛보셨나요? 진짜 본인이 의로워지신 것 같아요? 말 못합니다. 그럼 다들.. 눈이 이제 또 흔들려요, 딴 데 보고. '의롭다'라고 하기엔 애매하잖아요, 자기가 의롭다고 하기에는. 거룩해지셨나요? 성화는 거룩해져야 돼요. 내가 봐도 내가 거룩해지시는 분들이 교회에 몇 분이나 계실까요? 있는 것도 못 한단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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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라서도 못하고 뭐 욕심 때문에도 못 하고 그래서 불교도요. 그 8만대장경이, 견성을 도와주는 방편이 8만대장경이 있어요. 근데 왜 견성이 이렇게 힘들까요? 매뉴얼이 그렇게 각종 버전으로 나와 있는데. 이거 힘들어? 이거 해봐! 화두 힘들어? 염불 해봐! 염불 힘들어? 뭐 묵조선(默照禪) 해봐! 온갖 게 나왔는데 그럴수록 더 견성자가 줄어들어요. 이상하잖아요. 그거를 도와드리지 않으면 어떡하겠어요? 지금 이 시대에 구현해서 우리가 떠먹지 못하면 다 부질없는 거예요. 보세요. 솔직히 여러분 내생 있는지도 모르겠는데 이번 생에 못 떠먹으면 끝이죠. 못 먹은 거죠. 그렇죠? 그런 절박함으로 하셔야 돼요. 지금 내가 맛보지 못한 것들은요, 그냥 구경만 하다 가는 거고, 풍문만 듣다 가는 거고 아무 의미 없습니다. 여러분한테 도움이 안 돼요. 맛보고 가시라고요, 제가. 저는 뭐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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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애플 잘라서 주는 사람, 맛보고 사세요. 제가 더 말 안 합니다. 일단 맛을 보세요. 견성, 맛보시고 좋으면 깨어있으세요. 몰라! 괜찮아! 자명!만 하면 깨어 있잖아요. 깨어있는지 수시로 확인하세요. 지금 이 순간에 정신 모으면 돼요. 눈만 또렷이 떠도 깨어있는 거예요. 저를 또렷이 보세요, 제 주먹을 또렷이 보시든가. 지금 다 깨어 계세요, 지금. 눈빛 좋습니다. 깨어계시죠? 이게 지금 깨어있는 상태예요. 이게 참나예요. 이게 참나라고 아시라고요. 참나랑 둘이 아니라니까요. 이게 내 안에 들어와 있는 참나인 줄 알고 사시라고요. 내 안에 들어와 있는 참나를 매일 맛보시지 않으면 어떻게 삽니까? 저 하늘에 있는 참나 찾지 말고 지금, 내가 내 마음 안에서 나타난 참나를 수시로 보라고요. 거기에 접속해서 사시면 돼요. 깨어있는 마음 품고 사시면 하루하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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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수행이 됩니다. 깨어있는 마음은 6바라밀의 마음이니까 깨어있는 마음과 함께, 울고 웃고 따지고 싸우고 하다 보면 6바라밀이 자꾸 는다니까요. 깨어있기만 하면 자꾸 늘어요, 문제는. 자꾸 늘어요. 새로운 기본값이 여러분 안에서 점점 작동해요. 그럼 새사람 되는 겁니다. 이렇게 닦아가시지 않으면, 지구촌은 미래가 없다, 지금 식으로는. 그런데 다행히 답이 나왔다. 8지까지 가는 길이 나왔으면 끝난 겁니다. 9지는 알아서 가세요. 아니 8지까지 설명해 드렸으면 됐지, 굳이, 굳이 제가 9지까지 설명해야겠어요? 저도 카드 하나는 갖고 있어야죠. 9지는 책에 다 써놨습니다만, 아무튼 8지까지는 완전히 지금 휴게소를 8지까지 뚫어놓은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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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저기 좀 많이 활용해 주세요. 오늘 강의는요 8지 휴게실 오픈, 그랜드 오픈. 아시죠? 8지, 거기 장난 아닙니다, 쇼핑몰 수준의 휴게소. 제가 꿈꾸는.. 열려 있으니까 와서 누리세요. 차를 더 몰고 오세요, 계속. 저기 지금 입구만 지금 대박 났어요, 신사 쪽. 신사 휴게소만 대박 나가지고 물건도 몇 개 없는데, 좀 더 오세요. 아래쪽으로 내려올수록 라면 맛이 더 좋아집니다. 이 정도 영업했으면 제가 이제 진도 나갈게요. 15분 남겨놓고, 교재 하나라로 읽어야죠. 그렇죠? 우리 앞 시간에 했던 것 중에, 이 얘기 좀 더 드릴게요.
[제7송
말나식은 ‘유부무기有覆無記’이니,
(제7식의 심왕 자체는 오염되지 않으나, 함께하는 4번뇌의 심소는 염오법이다. ‘유부’는 ‘청정성’과 ‘성도聖道’를 가리는 염오법이 있다는 것이며, ‘무기’는 선과 악이 없다는 것이다.)
태어나는 곳에 따라 얽매인다.
(제8식이 종자에 따라 몸과 기세간을 현전하게 함에. 제8식의 견분을 집착하여 ‘자아’로 삼으니 태어나는 곳에 따라 얽매인 것이다.)
아라한과 멸진정滅盡定, 출세도出世道(견도見道)에서 없어진다.
(부처님의 경지에서는 제7식이 영원히 단절되며, 멸진정과 출세도에서는 잠시 단절된다.)
有覆無記攝 隨所生所繫 阿羅漢滅定 出世道無有.]
그 7식이, 7식이 에고 의식이잖아요. 이 7식 에고 의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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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단절되냐? 라고 하니까 아라한에서 완전히 단절된다. 7송에 보면요. 여기서 완전히 사라진다는 건 아라한은 부처님 자리를 말합니다. 그렇죠? 이 에고 의식이 언제 사라지느냐? 저 7송, 7이요, 7. 지난 시간에 한 거예요. 지난 시간 끝 부분에 한 겁니다. 7식 아라한! 하면, 아니 딱 아라한! 하면 아! 7송, 이래야죠. 그렇죠. 또 언제 사라져요? 멸진정 때. 멸진정 때는요, 7식이 작동하지 않는다. 이해되시죠? 8식은 작동해도 7식은 작동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업보 유지하는 그 의식은 있지만 에고 의식은 사라져야 되지 않아요? 7식이면 상수라는, 상수(想受)면 느낌 수(受)자죠. 생각 상(想)자. 그럼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 중에서 상수가 사라진대요. 의식 작용이 완전히 중지되는 거예요. 무의식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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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져버려요. 그런데 무의식은 8식이니까 8식은 살아있어요. 그런데 무의식은 살아있지만 지금 우리 의식은 작동 안 합니다, 멸진정에서는. 멸진(滅盡)이라는 게 소멸해서 다 했다는 거거든요, 남김없이. 멸했다. 뭐가 멸했냐? '상수가 멸했다' 해서 상수멸정(想受滅定)이에요, 선정(禪定) 이름이. 요거랑 출세도(出世道)라고 했죠. 출세도는요 요게 그거예요. 참나, 진여 자체. 참나나 진여 자체. 보통 이제 그때도 말씀드렸지만 이거를 4선정에서 보통 4선정에서 들어가거든요. 그런데 이제 선정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4선정에서 들어가야 제일 깨끗하다 하는 게 유식학 이론이고요. 근데 성유식론(成唯識論)에도 이렇게 나와요. 나중에 자료 나눠드릴 거예요. 우리가 찰나삼매라고 하는 1선근분정. 찰나삼매는 1선정 아래잖아요. 1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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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처까지 갔다고 해서 근분정이거든요. 아니면 1선미지정 그럽니다. 아직 본삼매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해서 미지, 이르지 못했다. 미지정 플러스 4선정이 있거든요. 1선정부터 4선정까지.. 그중에 제4선정, 제4선정에서 들어가야 제일 깨끗하다고 하는데 근데 이건 조건들이에요. 선정의 조건이고요. 선정은 어차피 에고 문제입니다. 에고가 얼마나 정신 집중하고 있느냐의 문제예요. 그런데 지금 출세도는 세상을 떠난 도죠. 에고의 조건을 말하지 않겠죠. 4선정이니 뭐니 그런 선정이 아니에요. 제가 지난 시간에 4선정에서 들어갔는데 이런 말을 드린 것 같아서 보강 설명드리면요, 그냥 이거는 진리 그 자체를 말합니다. 진리 자리에는 7식이 없다고요. 아시겠죠? 그러니까 이렇게 딱 이제 무슨 선정에서 들어갔건 딱 진여, 무분별지 상태에서 진여 마주할 때를 말하는 거예요. 무분별지에서 진여를 마주할 때 그전에 이게 찰나삼매에서 들어갔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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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선정에서 들어갔건 2선정에서 들어갔건 제일 깨끗하게 들어가는 건 4선정에서 들어가는 게 제일 깨끗하다는 거예요. 근데 출세도는요, 멸진정에서는 못 들어가요. 왜냐하면 출세도는 정혜쌍수(定慧雙修)의 도거든요. 멸진정은 생각을 못 일으키잖아요. 정혜쌍수가 못 닦아요, 멸진정은. 그러니까 멸진정에 들어있는 게 열반자리는 맞아요. 다만 우리가 이제 처음에 요 괄호 열고 견도라고 했잖아요. 견도(見道), 도를 정확히 보고 들어가려면 4선정이 제일 좋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다만 멸진정은 이제 멸진정 들어가면 그냥 그것도 출세도 상태입니다. 근데 뭐죠? 우리가 견도할 때는 4선정에서 들어가는 걸 최고로 친다고요. 왜냐하면 딱 인가를 하고 들어가야 돼요. 인가를 못 해요, 멸진정은. 생각을 못 일으키니까. 그래서 4선정까지만을 주로 쳐가지고, 견도할 때, '4선정에서 견도하는 게 최고다'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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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진정이 못 들어가는 건 아닌데 견도할 때는 정혜쌍수를 이루어야 들어가는데 지관쌍운(止觀雙運)을 해야 들어가는데 지(止)만 있지 관(觀)이 없단 말이에요. 그리고 4무색정(四無色定)도 거론 안 하는 게, 견도에서. 거기는 관이 약하다고 보는 거예요. 생각이 거의 사라져 있기 때문에 올바르게 딱 내가 도를 인가해가지고 들어가려면 4선정이 제일 좋다. 4선정은 생각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이거는 선정의 에고의 조건일 뿐이고 출세도 자체가 의미하는 건 뭐라고요? 이거는 진여자리요, 열반자리를 말합니다. 거기는 애초에 그게 없죠. 7식이 작동하지 않죠. 그래서 이 출세도에 접속했을 때는, 나도 같이 에고가 작동하지 않습니다. 딱 진여만 볼 때는, 진여만 들여다볼 때를 말해요. 진여를 들여다보고 있을 때를 말하는 겁니다, 진여와 접속했을 때. 더 설명하자면 무분별지로 진여를 보고 있을 때. 진여를 보려면 나도 무분별지로 봐야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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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나도 세속을 초월해야 돼요. 이게 간단한 이치입니다. 에고는 뭐만 볼까요? 그 6근의 대상인 6경이 보이겠죠, 에고한테는. 내가, 에고가 사라지면요, 무분별지에 들어가면요. 얘네도 이제 진여로 드러나는 겁니다. 이쪽이 상분이거든요, 이쪽이 견분이고. 근데 이건 오염된 견분, 오염된 상분이라면 청정 상분, 청정 견분이 드러날 때 이때가 우리는 견성했다고 해요. 견성, 여기에 견(見) 성(性). 자기가 자기를 보는 상태입니다. 근데 이 견성은요, 무분별 진여심 안에서의 견성이에요. 그리고 아까 같이 깨어있는 마음을 가지고 견성을 논할 수도 있어요. 이게 '견'이고 이 전체가 뭐예요? 진여성이죠. 이거 이해되세요? 아까 제가 깨어있는 마음으로 본다는 말도 한 적 있어요. 이것도 가능합니다. 깨어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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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자식이 엄마를 보는 경우, 모자합일이 일어납니다. 대행스님은 모자상봉이라고 합니다, 모자합일이. 티베트 밀교에서는 모자상봉, 모자합일을 되게 중요시해요. 엄마와 자식이 만난다. 진여성(眞如性), 이 견이 성, 이 견성도 있어요. 이거는 청정 견분이 청정 상분, 무분별지가 진여를 들여다보고 있는 하나 된 상태, 이게 유식학에서 이 자체가 원성실성(圓成實性)입니다, 진여성이고. 그런데 요 깨어있는 마음이 진리를 보면 뭐라고 그랬죠? 이거 보면 여기서 자수용보신이 생겨난다고요. 진여를 보면. 내가 나만 수용하고 있는 이 법신이 카르마의 세계에 들어왔기 때문에 보신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 자체는 법신이에요. 참나의 태양이 내 무의식에 들어온 거예요. 그래서 그거를 자수용의 보신이라 그래요. 그래서 카르마의 세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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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왔을 때 보신, 그래서 이때 견성도 가능합니다. 견성의 두 가지 의미예요. 견성이란 뭐냐? 깨어있는 마음으로 참나를 알아차리는 것. 그래서 이 둘이 한 덩어리가 되는 것. 이것도 견성이고요. 자체적인 견성은요 이제 에고가 완전히 사라지고 깨어있는 마음을 초월했을 때도 자기가 자기를 알아차리고 있습니다. 저게 태극(太極) 상태예요. 견성은 황극(皇極) 상태죠. 에고가 존재하죠, 깨어있는 에고라는.. 근데 저기 뭐죠? 깨어있는 마음으로 견성할 때는. 그런데 진짜 이제 어떤 에고성도 사라지고 딱 4선정 이상 들어가서 참나만 남을 때는 그때도 견성을 논할 수 있어요. 무분별지가 진여를 보고 있어요. 여기까지 설명하면 충분합니다. 그래서 신기하게 원성실성을 무분별지라고 하는 이게 설명이 돼요. 이 견은 깨어있는 마음이지 원성실성은 아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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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하는 마음인데 불변의 세계에서 무분별지를 논하고 무분별지가 진여를 보는 거를 원성실성이라고 한다. 이렇게 말하는 게 가능해요. 원성실성의 지혜 측면, 지혜의 측면에서는 무분별지라고 하고 진리의 측면에서는 진여성이라고 그래서 이 둘의 합을 이지명합(理智冥合)이라고 그럽니다. 이지(理智)가 그윽하게 하나로 섞여서 합해져 있다. 이지명합 상태가 진짜 여러분의 원성실성, 참나상태입니다. 참나는 그 자체로 자기가 자기를 보고 있어요. 그래서 태극(太極)이라고 그래요. 아시겠죠? 진도 못 나갔네요. 다시 20송. 이거 쉬워요, 20송은. 이건 이제 지난 시간 보강이고요. 이런 것도 다 체험해야죠. 체험해 보세요. 그러니까 지금 깨어있는 마음, 지금 내 에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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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있는데 분명히 남이 아니고 나예요. 남과 다른 내가 참나를 보고 있는 느낌이 들면 에고의 견성이고요. 시공을 초월했는데 가만히 있는데 그 참나상태인데 그게 알아차리는 자도 있고 거기서 알아차려지는 것도 있는 것 같다. 그 안에서는 구분을 못하지만 두 개가 분명히 나뉘어 있는 것 같다면 그게 태극상태예요. 그런 강의 제가 예전에도 많이 했었죠. 그런 구분을 초월한 알아차리는 자, 그 자체만 말했을 때 무극(無極)이라 그래요. 알아차리는 자 자체를 무극이라고 그러고 이 무극이 자기를 알아차리는 거예요. 이거 되게 재미있잖아요. 재미없을 수도 있는데.. 무극이 자기를 알아차리면 태극이 돼요. 이 참나가 자기를 알아차리면 깨어있는 마음이 돼요. 그럼 이건 이제 황극(皇極)의 세계죠. 에고를 경영하는 센터가 돼요, 여기가. 여기 이제 동서남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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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죠, 에고의 세계니까. 태극의 세계는 무극이 자기를 알아차려요. 태극이 자기를 또 알아차려요. 재밌죠? 이런 구조입니다. 이게 플로티누스가 일자·누스·영혼 이렇게 부르는 게 이거거든요. 그러니까 누구나 들어가면 똑같이 만나요, 이 세계를. 알아차리는, 궁극에 알아차리는 자가 있으면요 한 생각 돌려 자기가 자기를 알아차리면 상이 생겨요, 자기가 자기한테. 그래서 여기서 제가 이걸 뭐라고 구분해요? 순수한 존재감(무극), 나라는 존재감(태극). 왜냐하면 자기가 자기를 알아차리면서 나라고 생각해요. 나라는 상이 생겨요. 그러니까 태극이 되는 거예요. 알아차리는 자와 나라는 게 있어요. 여기 이 '성(性)'이 나예요, '견(見)'도 나고요. 내가 나를 보고 있어요. 그래서 나라는 존재감 하면 태극인 거예요. 나라는 존재감도 없어요. 왜냐하면 그냥 순수 존재감이 무극이고요. 자기가 자기를 알아차리면서 내가 현존한다는 말이 나오면 태극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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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기독교에서 'I AM THAT I AM' 그러면 태극이에요. 'I AM' 내가 있다는 건 알아요. 그럼 뭔가 정보가 들어갔잖아요. 이 이데아를 본 거예요. 나라는 이데아를 봤기 때문에 '내가 있다'라는 말을 하는 거예요. 존재 자체로는 알아차림만 있는데 자기가 자기를 알아차리면서 내가 있다라고 나오는 거예요. 나라는 존재감이 생겨요. '나라는' 이라는 게 이미 이데아가 하나 붙은 거예요. 뭘 본 거예요. 지금 정보가 들어간 거예요. 그 'I AM' 뒤에 '나는 깨어있다'가 들어가면 여기까지 오는 거예요. 'I AM 깨어있음' 그럼 이제 시공 안이 더 부풀어진 거예요. 이런 이상한 얘기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20송 하고 끝낼게요. 제가 그래도 진도 하나는 나가야죠. 여긴 쉬워요. 20송은요 이제 8식·7식·6식 다 넘어갔고 이제는 변계소집성, 늘 했던 의타기성·원성실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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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로 옵니다. 그다음에 이제 그거를 깨달아가지고 도를 이루는 얘기를요. 유식30송을 제가 더 할까 하다가 일단 뒤에 부록으로 더 붙여놨어요. 다음 시간에 또 나눠드릴게요. 유식학이 계속 이어집니다. 20송.
[제20송
이리저리 두루 따지는 능력으로 말미암아
온갖 사물을 두루 따지니,
이렇게 두루 따지고 집착하는 것은
자성(불변의 본질)이 실재로 있지 않다.
(‘변계소집자성’으로 ‘이름’을 지어 집착하는 형상은
실체가 없는 허망한 것이라 본래 존재하지 않는다.)
由彼彼遍計 遍計種種物 此遍計所執 自性無所有]
이리저리 한문으로요. 피피변계(彼彼遍計)라고 그러는데 '이것저것 두루 따지는 능력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이것저것 6식으로 따지다 보니까 온갖 사물을 두루 따니, 따지니, 이렇게 두루 따지고 집착하는 것은 자성이 실제로 있지 않다. 이거는 이제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을 말합니다. 변계, 보세요. 이게 두루 변자예요. 두루 변자. 변계(遍計), 계산하다. 두루 계산해가지고요. 소집(所執) 집착합니다. 집착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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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는 뭐예요? 아집(我執), 나라고 집착하고요, 법집(法執), 대상이라고 집착합니다. 아집은 견분에서 오고요, 법집은 상분에서 옵니다. 아뢰야식이 구르다 보면 아까 같이 견분과 상분이 꼭 나뉘거든요. 인식 주체가 견분(見分)이고요, 견분은 인식 주체, 상분(相分)은 인식 대상입니다. 그러니까 의식이 작용하다 보면, 애초에 무분별지, 청정광명심은 알아차리고 있죠? 여러분 의식에서요 없앨 수 없는 게 있어요. 그게 무극이에요. 영원히 없앨 수 없는 게 알아차리는 의식이에요. 여기에 포인트를 딱 두시면 모든 게 설명돼요. 청정광명심의 본체가 무극이거든요. 청정광명심은요 알아차리고 있어요, 그냥. 시공을 초월해서 알아차리는 거예요. 이 우주에서 알아차린다는 건 이게 인식 주관이거든요. 순수인식 주관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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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때도 묻지 않은, 시공 안에 때 묻지 않은, 순수인식 주관을 서양철학에서도 '선험적 자아'라고 합니다. 선험적 자아가 신이에요. 알아차리는 의식이 거기 밖에 없거든요. 지금 여러분이 막 떠들지만 알아차리는 의식은 여러분 내면에 그 자리밖에 없어요. 밖에 있는 거는 모르죠. 알아차려지는 대상이죠. 한 개인의 존재가 놀라운 게요 각자 내면에 인식 주관을 갖고 있어요, 순수인식 주관. 그렇죠? 경험 이전에 알아차리고 있는 그게 무극이에요. 그 무극이 1차적으로 자기가 자기를 알아차려가지고 자기에 대해서 어떤 상을 형성하는 게 태극이에요. 거기에 6바라밀상까지 다 들어있어요. 내가 원래 6바라밀로 생겼네!까지 다 알아요, 태극은. 여러분이 몰라서 그렇지, 다 알아요. 그리고 나는 5온을 가지고 살아야 되네. 12처·18계를 살아야 되네 하는 걸 다 알고 있어요, 태극이. 여기까지는 청정광명심의 영역이에요, 무극과 태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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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극의 영역은요 깨어있는 마음을 통해 현상계를 구현해내는 겁니다, 탐진치(貪瞋癡)의 세계에서. 왜냐하면 현상계가 딱 일어나는 순간 탐진치와 6바라밀이 딱 갈리거든요. 계정혜(戒定慧), 삼독(三毒)과 삼학(三學)이 딱 갈려요. 빨간 약, 파란 약이 딱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고요, 둘 중에 뭘 먹을지. 여기서 계속 삼학을 키워서 삼독을 제압하는 게 아까 얘기하는 화엄삼매의 세계고, 여러분이 이제 황극의 세계예요. 여러분이 경영해야 될 세계예요. 경영 이전의 세계예요. 무극·태극은 이미 완성돼 있습니다. 순수인식 주관인 청정광명심과 청정광명심이 그대로 진여인데 자기가 자기를 보면서 진여라고 알아요. 6바라밀인 줄 알고 상락아정(常樂我淨)인 줄 알아요. 청정광명심이 자기가 자기를 본 상태를 뭐라고 하냐면 태극이라고 하는 거예요, 동양철학에서. 그래서 음양으로 그려놔요. 하나지만 안에 갈라져 있다는 거예요, 안에 주객이, 견분과 상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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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분과 상분이에요, 그게. 그 견분과 상분을 초월한 세계가 무극의 세계. 그래서 이 청정한 견분과 상분의 세계가 진여성·원성실성의 세계가 되고, 거기서 이제 한 생각이 구르면 8식·7식·6식을 통해서 우주가 펼쳐집니다. 이게 펼쳐졌을 때 여전히 뭐가 돼요? 인식 주체와 대상이 갈려요. 8식·7식·6식·5식은 다 인식 주체 쪽이죠. 대상이 되는 게 6경이죠. 색성향미촉법을 대상으로 해서 8식·7식·6식·5식이 작동하는 거예요. 인식 주체 쪽과 인식 대상 쪽이 갈리잖아요. 이때 이 주체 쪽을 나라고, 보여지는 쪽을 법이라고 해가지고 집착해요, 따로 있는 것처럼. 다 지금 한 의식의 작용인데. 한 의식의 작용인데 따로 있는 것처럼 서로 분리된 것처럼. 이름을 붙이는 순간 분리되거든요. 여러분 이름을 딱 붙이면 분리됩니다.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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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말도 하지 말고 저를 보세요. 여러분 의식 안에 지금 인식 주체와 대상이 만난 것뿐이에요, 지금. 보는 쪽과 보여지는 쪽이 지금 있죠. 근데 이름을 붙여요. 보는 쪽을 나, 보여주는 쪽을 너, 하면 너는 이제 내 우주 밖으로 날아가요. 너는 영원히 남이죠. 이해되세요? 나와 남이 딱 갈려요. 남은 이제 내가 아닌 거예요. 내가 남이라고 하는 순간, 이게 내가 아니게 된 거예요. 안 그러면 사실 내 의식 작용인데.. 다 내 의식이에요. 근데 길에 쓰레기 있어도요, 여기 누군가는 참 힘들겠네! 치우느라고.. 딱 가요. 내 우주에 들어온 내 거라고 생각 안 하는 거죠. 다르게 생각해 보시면 지금 내 우주에 들어온 거예요. 재미있죠. 내 의식의 상분일 뿐인데 내가 이거를 남이라고, 남의 거라고 생각한 거예요. 이걸 이제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밖에 있는 남의 거를 막 잡으시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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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왜왜왜 제 폰을 가져가세요?” “지금 제 의식의 상분일 뿐입니다. 그쪽 의식에서도 상분이라고 주장할 수는 있겠죠.” 이건 아니죠. 근데 이 정도 느낌으로 한번 봐 보세요. 재밌죠. 빌딩 부러워하지 마세요. 여러분 거예요. 지금 여러분 의식의 상분으로 있잖아요. 여러분이 안 보면 없어요, 여러분 우주에서. 이런 논리가 가능해집니다. 그러니까 지금 유식학이 말하는 건 그거예요. 매트릭스 세계, 다 지금 네 의식의 상분과 인식 주체 쪽과 보여지는 쪽과 보는 쪽이 나눠져서 인식 주체 쪽과 보여지는 쪽과 보는 쪽이 나눠져서 펼쳐지는 게 의식의 세계인데, 의식의 전변의 세계인데 그 8·7·6·5식의 작용일 뿐인데 거기서 어떤 걸, 남이라고 딱 이름을 붙여버리는 거예요. 이게 지금 변계소집성이예요. 딱 이건 나, 이건 남. 그래서 원래는 아와 법이 아니라 뭐로 봐야 돼요? 견분과 상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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봐줘야 돼요. 한 의식의 견분과 상분, 이거를 유식학에서는 뭐로 설명하냐면 '달팽이의 두 뿔'이라고 합니다. 자증분이라는 아뢰야식의 본체, 자체분, 자증분이 자체분, 자증분이라고 하는데 두 뿔이 나 있어서 이쪽이 이쪽을 보는 거예요. 견분과 상분, 근데 남인 줄 아는 거예요, 자기인데 다. 다 자신의 작용, 한 의식의 작용. 한 의식이 작용하다가 견분이 상분을 봅니다. 그렇죠. 근데 이 상분마저도 이 의식이 만든 거예요. 자기가 만들고 자기가 보는 거예요. 이게 이제 모든 8·7·6·5식이 다 그래요. 자기가 만들고 자기가 봅니다. 그래서 그때 나와 남을 갈라가지고 이건 나, 이건 남. 이렇게 갈라버리는 순간, 이름을 붙이는 순간, 별개의 내가 있는 것 같은 게 아집이고요, 별개의 남이 있는 것 같은 게 법집이에요. 따라서 이렇게 아집과 법집은 실재할까요? 아닐까요? 실재가 아니라는 거예요. 이건 망상이라는 거예요. 원래 없는 거라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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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독자적인 실체를 가진 별개의 나와 남은 없다는 거예요. 이걸 깨달으시고 뭐라 그래요? 아공·법공이라 그래요. 그래서 아공의 이름이 뭐예요? '독자적인 실체를 가진 나는 없다' 이걸 깨달으시는 거예요. 법공은요 '독자적 실체를 가진 법은 없다' 아공·법공 이제 얼마나 깨닫느냐 예요, 이제 영적 레벨은. 이 두 개를 얼마나 실감나게 깨달아서 자기 삶에서 6바라밀을 구현하는 데 활용하느냐? 아공·법공을 깨달아서 구공을 닦는 게 다 입니다, 도는. 여기까지 이해되시죠? 아집과 법집, 변계소집성을 더 뭐 아실 필요 없어요. 변계소집성의 세계는 망상의 세계라는 겁니다. 실재하지 않아요. 언어에서만 존재해요. 언어로만 존재해요. 언어와 이미지로만 존재해요. 언어를 붙일 때 우리 마음에 어떤 이미지가 형성되거든요. 그렇게만 존재해요. 실재는 우리 의식의 실재 작용에서 나타나는 건 아니에요, 실재하는 건.. 그래서 불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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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고를 무시합니다. 에고는 이제 망상이다. 하지만 또 나와 남의 구분은 다 쓸데없는 망상이라고 치부하지만 저는 아닙니다. 변계소집성도 의타기성 안에서 봐줘야 돼요. 변계소집성이 있으니까 우리가 살아요. 이거를 펜이라고 부르는 순간, 여러분 여러분 법계에서 떠나서 객관적인 펜이 돼요. 그렇죠. 그냥 내 의식의 작용이 펜이 아니라 펜이라고 부르는 순간 어떤 보편적인 펜이 돼버려요. 그게 싫어서 이거 펜이라고 안 부르시면 어떻게 사실 거예요? 어떻게 구분하실 거예요? 여러분 마음 안에 있는 수많은 상분 중에 이걸 뭐라고 부르실 거예요? 방법은 있어요. 임시로 펜이라고 불리는 그것 좀 줘! 이렇게.. 임시로 펜이라고 불리는 그것 좀.. 임시로 준다고 하는 그 행위로 나한테 좀 해봐! 이렇게.. 미친 짓이죠? 그걸 줄여서 뭐라고 하면 돼요? "펜 좀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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됐죠. 결국 돌아왔죠. 결국 도를 알아도 도로 써야 돼요. 그럴 때 이제 뭐라고 멋지게 표현하면 돼요? 방편으로 쓴다. 그래서 이 유식30송 쓴 사람도 “아(我)와 법(法)을 방편으로 성인들도 다 쓰셨다. 그래서 나도 아와 법이란 말을 쓰겠다.” 이렇게 하고 시작합니다. 결국 뭐예요? 안 쓸 수 없다는 얘기죠, 아무도. 부처님도 안 쓸 수 없다는 얘기예요. 부처님도 원래 그렇게 쓰셨다, 임시방편으로. 따라서 방편이 반드시 필요하고 이 우주에는, 방편이 필요하고 방편을 활용해야 하는 이상 변계소집성도 일정 부분 의타기성 안에서 들어와서 활용해야 됩니다, 제 주장은. 없이 못 사는데, 망상이라고 주장하는 게 의미가 있나요? 실재하지 않는데도 이 이름으로 정해서 이름을 붙여가지고 활용하는 그 이름도 의타기성의 대상이다라고 저는 보는 겁니다. 언어도 중요한, 지금 우리 마음 안에서 언어라는 그 자체로도 되게 중요한 겁니다. 언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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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현대 언어철학자들이 얘기하는 것처럼 언어 없이 어떻게 살아요? 언어의 세계도 의타기성의 세계로서 해서 우리가 활용해야지, 방편으로 쓴다고 하더라도. 이걸 변계소집이라고 내쳐버리면요, 이 책도 쓸 수가 없어요. 쓰면 안 돼요. 이해되시죠? 그러니까 방편으로 쓸 수 있는 영역이라는 건 얼마든지 무루로, 무루의 의타기성으로 활용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변계소집성도. 변계소집성 무조건 유루로 보거든요, 유식학은. 저는 그렇게 보면 안 된다. 어차피 쓸 거면서 계속 죽일 놈이라고 해 가면서 쓰시면 되겠어요? 넌 망상이야! 하지만 방편으로 허용해 주지. 이론이 뭔가 이상하죠? 언어도 참나 작용이다. 끝. 에고도 참나 작용이다. 끝. 대상도 참나 작용이다. 끝. 이렇게 결론 내시고 사세요. 이렇게 유식학처럼 자꾸 쪼개다 보면 뭔가 문제가 생겨요. 이제 배제되고 자꾸 배제시키고 배제시키다 보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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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가 제약돼서 보입니다. 아시겠죠? 에고도 망상, 즉 언어도 필요합니다. 망상도 다 참나작용이에요. 이렇게 가자고요. 유니콘(Unicorn) 보신 적 있어요? 유니콘도 참나작용입니다. 유니콘이 우리 삶에 유용하게 쓰이면 된 거예요. 그럼 그 유니콘도 무루의 작용할 수 있는 거예요. 그렇죠? 꼭 그게 나쁘게만 쓰인다고 할 수 없어요. 마찬가지로 존재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언어를 가지고 이름 붙이는 것만으로 우리 삶에서 큰 작용을 합니다. 의타기성의 세계로 들여와야 돼요, 변계소집성의 세계를. 이렇게까지 생각해서 제가 유식학을 좀 더 보강해서 설명 드리는 부분이니까, 이건 이제 제 주장이니까 따로 보셔도 좋은데.. 그렇게 해야만 제대로 우리가, 그 성종(性宗)의 세계랑 연결시키려면 그렇게 보셔야 맞을 겁니다. 예 여기까지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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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녹취) [홍익학당] 진여와 열반 38강-유식삼십송 제7송 보강, 제20송(30:54) (홍익학당) | 작성자 수호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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