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3차 사역 보고 : 푸에르토 에스페란자 교회를 가다
정전 사태는 비냘레스도 예외가 아니었다. 낮 3시부터 시작된 정전은 결국 아침 7시가 되어서야 끝났다. 부랴부랴 아침 식사를 만들어 먹고 아직 마르지 않은 빨래를 마당에 널어 두었다.
그 때 왠 군인 제복의 공무원들이 찾아왔다. 주인 집에 들어가 대화를 나누더니 내게로 온다. 여권과 비자를 보자고 한다. 자기들끼리 몇 마디 나누더니 내게 출입국 관리 사무실까지 동행하자고 한다. 이게 무슨 일인가 의아해 하면서, 혹시 한국인이라고 우습게 여겨 금전을 요구하거나, 또는 쉽게 자신들의 업무 실적을 채우려는 것인가? 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이곳은 사회주의 국가이며 한국과는 수교가 되어있지 않은 나라이다. 이대로 끌려가면 자칫 위험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이유로 나를 체포하냐고 물었다. 대답은 고사하고 무조건 사무실로 가자고 압박을 한다.
순찰차에 태워 그리 멀지 않은 사무실에 가서 잠시 기다리는데, 통역할 사람을 데려온다고 한다. 한국말을 하는 사람을 데려온다는 것인가? 5분쯤 지났을까 두 명의 쿠바인이 왔다. 영어를 할 줄 아는 쿠바인이었다. 그러나 그 두 명은 나처럼 콩글리쉬를 하는 수준이었다. 어쩔 수 없이 손짓 발짓으로 서로 의사 소통을 한다.
(아침 일찍 찾아 온 출입국 관리소 직원)
(출입국 관리소로 데려가 취조(?)를 하였다)
어떻게 알았는지 어제 라 팔마에 간 이유를 물어본다. 즉, 여행객이 왜 관광지 구경을 안하고 쿠바 험지를 굳이 찾아 나서느냐는 것이었다. 순간 내 동선을 모두 파악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과 거짓으로 둘러대다가는 더 복잡한 상황이 전개될 것 같아 솔직한 답변을 하기로 한다.
내가 험지를 가는 이유는 교회를 돕기 위해서이고, 쿠바 목사님들을 만나 응원하고 위로하며, 쿠바 교인들과 함께 가난한 사람과 환자들을 돕는데 조력하고 있다는 설명을 하였다. 만난 사람들의 이름과 신분을 대라고 한다. 아무개 목사, 아무개 의사, 아무개 교사 등을 댔다. 컴퓨터로 뭔가를 조회한다.
이번이 몇 번째 방문이냐, 언제부터 이러한 활동을 했느냐, 목사에게 돈이나 선물을 주느냐 등등 꼬치꼬치 캐묻는다. 마지막으로 쿠바 비자는 어디서 구입했느냐고 묻는다. 미국 마이애미 공항에서 합법적으로 구매했다고 답했다. 두 명의 출입국 직원과 두 명의 통역인이 서로 대화를 주고 받는다.
두 명의 통역인 중 한 명은 크리스천인 것 같았다. 내게 트집을 잡으려는 사무관에게 그는 나의상황에 대해 호의적으로 설명을 한다. 내게 대하는 말투와 표정 등도 매우 부드러웠다. 마치 나를 변호해 주는 사람과도 같았다.
사무관이 내게 경고를 했다. 다음에 또 방문할 시에는 종교비자를 받아서 오라고 한다. 단순한 관광비자로 들어와서 종교활동을 할 경우 추방되어 입국금지가 될 수도 있다고 한다. 나는 목회자도 아니고 일반 성도이므로 종교활동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사무관은 내가 목사들을 반복적으로 만나는 것 자체가 종교활동이라고 하였다. 쿠바 법이 그렇다고 한다.
그들을 자극해서 좋을 것은 전혀 없다. 여기는 사회주의 국가이고 그들의 법을 따르지 않으면 곧바로 추방이기 때문이다. 다음부터는 주의하겠다고 웃으면서 말하며 출입국 사무소를 나왔다. 쿠바를 방문하는 관광객 중 나처럼 일반적이지 않은 관광 행태를 보이는 사람은 전화, 신용 카드, 숙소 기록 등을 통해 감시를 받는다. 그러한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크게 걱정되거나 두려움을 느끼지는 않았다. 그래도 다만 걱정스러운 것은 사소하고 불미스러운 일로 괜히 추방당하면 앞으로 입국이 거부되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침 일찍 푸에르토 에스페란자로 출발했어야 하는데, 조사 관계로 시간을 많이 소모하였다. 부랴부랴 준비를 해서 정류장으로 나갔다. 여전히 사람들은 많이 대기하고 있었고, 그들 틈에 끼여 언제 올 지 모르는 차량을 조바심 내며 기다렸다.
(오늘도 20여명 이상의 사람들이 차량을 기다리고 있다)
두 시간 정도 기다렸을까. 관광버스가 외국 여행객들을 한아름 내려 놓는다. 그리고 운전기사와 배차 사무원이 한참 이야기를 나눈다. 갑자기 기다리던 사람들이 술렁이기 시작하고 분주히 짐을 챙겨 관광버스 문 앞으로 모인다. 옆에 있던 사람이 말해준다. 이 관광버스 기사가 푸에르토 에스페란자 근처에 사는 관계로 자기 집까지 사람들을 태워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배차 사무관의 지시 하에서 이루어진다. 요금은 5페소이다. 약 0.05달러.
내리는 곳에서 약 5 Km를 걸으면 푸에르토 에스페란자 라고 한다. 뙤약볕이지만 쿠바에서 5 Km를 걷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차량 안은 역시 사람들로 붐볐지만, 생각보다 저렴하고 편하게 갈 수 있다는 것에 내심 기분이 좋다. 에어컨이 나오는 깨끗한 관광버스를 5페소에 가다니, 오늘도 운이 좋은 것 같다. 교회를 방문한 후 숙소로 돌아오는 길만 형통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별안간 나타난 외국인 전용 관광버스 : 배차원의 지시에 따라 일반 승객을 운송한다)
(역시 만원이지만 크게 불편하지는 않았다)
(푸에르토 에스페란자로 가는 길에 한 컷)
중간 종착지에 내려 푸에르토 에스페란자를 향해 걷는다. 눈에 익은 모습들이다. 잊혀졌던 장면들이 살짝 되살아난다. 마을 입구에는 작은 배모양의 조각이 예쁘게 전시되어 있다. 항구 마을을 뜻하는 조각이다. 이곳은 유럽 사람들이 종종 낚시를 하러 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 또한 랍스타 산지로 유명하다고 한다.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피자 가게를 찾아 보았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점심을 못 먹었기 때문이다. 두 군데나 있었던 피자 가게가 모두 없어졌다. 과자 하나와 땅콩 강정 하나를 사서 대충 먹었다. 이곳 교회에서 식사를 하게 되면 자칫 늦을 수도 있는 상황이기에 간식으로 일단 허기를 채우고 교회를 방문해야 했다.
(중간 지점에서 약 5 Km를 걸어간다)
(마을 입구에서 한 컷 : 배 모양의 조형물이 있다는 것을 오늘 알았다)
(폭풍우로 바다 한 가운데 있던 오두막이 유실되었다고 한다)
교회에 들어가니 Armando (아르만도) 목사님과 사모님이 반갑게 맞아 주신다. 곧이어 Marcial (마르시알) 목사님과 사모님도 오시고, 몇 분의 성도님들이 아이들과 함께 교회를 방문하였다. 시간 관계상 오래 대화하지 못하고 간단한 교제를 나누는데, 새로이 교회를 지을 계획이 있다고 하시면서 교회 부지가 이미 마련되었다는 말씀을 하신다. 가보고 싶다는 요청에 마르시알 목사님이 안내해 주셔서 그곳으로 이동했다.
배 조각상이 있었던 마을 입구에 큰 마당이 딸린 주택이 있는데, 그 마당이 새로운 교회 부지이다. 목사님은 그 부지의 소유주인 교인을 소개해 주신다. 목사님이 그 분들께 감사해하는 것으로 보아 부지를 헌납하셨거나 매우 저렴하게 임대하시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아무튼 현재의 교회가 늘어난 성도 수로 인해 비좁았는데, 넓은 교회를 신축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하니, 이 또한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아닐까 생각된다. 두 분 목사님이 서로 합력하여 목회하시는 이 곳 교회에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시기를 기도해 본다.
(푸에르토 에스페란자 교회에 헌금을 하였다)
(새 교회를 지을 부지)
(이 분들의 소유지에 새 교회를 짓는다)
이제부터는 숙소가 있는 비냘레스로 복귀를 해야 한다. 사람들이 차를 얻어 타기 위해 모이는 별도의 장소로 갔다. 흑인 모녀와 한 부부가 그곳에서 지나가는 차량을 잡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잠시 후 트럭이 한 대 온다. 중간 지점까지 가는 차량이다. 일단 이곳을 빠져 나가야 한다. 좀 더 유동인구가 많은 곳으로 이동해야 다시 차량을 얻어 탈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앉을 곳도 없고 고약한 냄새에 덜컹거리며 달리는 이 허름한 트럭은, 사실 오늘 나를 숙소에 데려다 줄 매우 고마운 존재이다. 이 트럭이 없으면 숙소로 복귀하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중간 지점에 내려 다른 차량을 기다린다. 날은 어두워지고, 저 멀리 번개가 치며 곧 폭우가 몰려 올 것 같다. 살짝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아무리 외진 곳이라 하더라도 숙소로 복귀하지 못한 적은 없다. 행선지를 정하기 전에 미리 준비하고 기도하며 인도하심을 따르기에, 인적이 끊긴 늦은 시간에도 어디선가 나를 태워줄 차량이 나타나곤 했다.
지나가는 동네 주민들이 나를 걱정스런 눈빛으로 쳐다본다. 이 동양인이 여기를 왜 왔으며 이 늦은 시간에 어떻게 돌아가려나 하는 의구심의 눈빛이다. 그 때 스쿨버스 한대가 내 앞에 선다. 손가락으로 비냘레스 방향을 가르켰다. 문이 열리며 타라는 소리가 들린다.
올라타서 보니 학생이 아닌 성인들이 앉아 있다. 이 사람들도 나처럼 지나가는 차량을 잡아탄 것 같다. 조수석에 앉은 사람이 10페소의 운임을 요구한다. 아마도 이 차량은 스쿨버스 운전자가 밤마다 아르바이트 형식으로 운행하는 차량인 것 같다. 가는 도중에 타는 모든 사람들은 알아서 10페소씩을 낸다.
(숙소 방향으로 가는 화물 트럭에 올라 탔다)
(중간 지점에 만난 뜻 밖의 학교버스 : 운전기사가 방학 중에 알바를 하는 것일까?)
뜻하지 않은 알바(?) 스쿨버스 때문에 무사히 숙소가 있는 비냘레스로 돌아왔다. 지난 방문 때, 차량이 없어 결국 푸에르토 에스페란자를 못 갔던 기억이 난다. 현재 상황은 그 때보다도 더 안좋은데, 가는 길과 오는 길이 비교적 수월해서 무척 다행이다. 어제의 라 팔마 방문과 아울러 오늘의 여정은 어찌 보면 이전 방문보다 더 수월했던 것 같다.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고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