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대절(出處大節)- 세상에 나가느냐 집에 있느냐에 관한 큰 절조
우리나라 속담에 ‘앉을 자리 설 자리를 본다’라는 말이 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어떤 시기에 자기가 있을 가장 적절한 자리가 있게 마련이다. 그 자리를 잘 알아서 그 자리에 서면 자기 몫을 하는 사람이 되고, 그 자리를 잘 몰라서 잘못 서면 실없는 사람이 된다.
옛사람은 이것을 ‘출처(出處)’라는 말로 표현했다. ‘출(出)’은 벼슬하러 나가거나 어떤 일에 참여하는 것을 뜻하고, ‘처(處)’는 벼슬하러 나가지 않고 집에 물러나 있는 것을 뜻한다. ‘출사(出仕)’, ‘출신(出身)’이라 할 때의 ‘출’자가 바로 이런 뜻이다. ‘처사(處士)’, ‘처가(處家)’라 할 때의 ‘처’자가 바로 이런 뜻이다.
우리 선현 가운데서 남명(南冥) 조식(曹植) 선생은 특별히 출처를 강조했다. 그가 출처를 강조한 말 가운데 이런 구절이 있다. “스스로 행동할 때는 처음부터 응당 금이나 옥처럼 조그만 먼지의 더러움도 받아들이지 않아야 한다. 대장부의 처신은 중후하기가 우뚝 솟은 만 길 산악처럼 해야 한다. 때가 되면 나아가 자기의 경륜을 펼쳐 많은 일을 이룩해야 한다.”
남명은 한평생 이 말을 그대로 지켰다. 그는 국가민족을 잊고 자기 한 몸만 깨끗이 지키려는 은자가 아니었다. 언제나 정치에 관심이 있었다. 그러나 세 임금이 벼슬로 열세 번이나 불렀지만, 끝내 나가지 않았다. 벼슬할 만한 때가 아니고, 같이 모시고 일할 만한 임금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 대신 다음 세대를 위해서 교육을 통해서 인재를 양성했다.
남명은, 훌륭한 선비들이 세상에 나가 좋은 일을 하려다가 뜻대로 되지 않아 자신이 죽임을 당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 재앙이 다른 사람에게까지 미치는 것을 늘 애석하게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렇게 된 데는, 시대상황을 바로 살피지 못한 당사자의 책임도 있다고 봤다. 그래서 기묘사화(己卯士禍)로 처형당하고 동지들을 죽게 만든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도 간신들에게 당한 면도 있지만, 자신이 출처를 잘못했다고 생각했다. 중국 삼국시대 촉한(蜀漢)의 제갈량(諸葛亮)의 출처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나가서 아무런 한 일이 없다는 것이었다.
안철수 씨가 11월 24일 후보를 사퇴했다. 사퇴한 가장 큰 이유는 이대로 가면 대통령이 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안철수 씨가 문재인 후보와 단일화가 성공한다고 확신했던 것은, 문 후보가 양보하리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단일화를 위한 접촉을 해 보고서, 양보하지 않을 것임을 알았다.
둘 다 나와서 떨어질 경우, 자신의 정치적 생명은 끝나고, 두고두고 국민들의 질타를 받을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이 취할 노선은 어떤 것인가? 5년 뒤를 기대하는 것뿐이다. 안철수 후보는 지금 자기로서는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다.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자기는 문재인에게 큰 덕을 보여준 것처럼 되기 때문에 그대로 영향력이 남아 있어 정치적 생명력이 살아 있게 된다.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안철수씨는 더 좋다. 패배한 민주당은 완전히 지리멸렬해질 것이고, 문재인은 재기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박근혜 후보가 당선돼 대통령으로 5년을 집권하면, 새누리당의 장기집권에 염증을 느낀 국민들이 새누리당에 대항할 인물로 안철수 씨의 재기를 기대할 것이다. 그때는 민주당이 아닌 자기의 당을 조직한 안철수 씨가 가장 유망하지 않을까 예상된다. 단일화가 되지 못한 상황에서 대통령에 나와 떨어지는 것보다는 후보를 사퇴한 것이 출처의 큰 절조(節操)에 맞지 않나 생각된다.
*出 : 나갈 출. *處 : 집에 있을 처. *大 : 클 대. *節 : 마디 절
(경상대 한문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