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속죄소를 궤 위에 얹고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넣으라
22.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출 25:21-22)
4. 금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언약의 비석들이 있고 (히 9:4)
증거궤를 체험함
우리가 주 예수님을 영접했을 때 우리는 하늘에 속한 신성한 생명을 받았다. 하나님은 하늘에 속한다. 그분의 본성은 신성하고 거룩하시다. 하나님이 운행하실 때 그분은 유기적으로 움직인다. 즉 하나님은 그분의 존재와 본성과 생명에 따라서 우리 안에서 운행하신다. 이 유기적인 생명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자라야 하고 성숙해야 한다. 결국 우리도 하늘에 속하고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그분의 간증이 될 것이다. 이러한 하늘에 속한 신성한 간증이 곧 증거궤의 체험이다.
증거궤를 체험하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증거판, 십계명 앞에 항상 머물러 있어야 하며, 그분의 측량할 수 없는 무한한 공급 (감추인 만나)을 누림으로 하나님을 간증하며, 부활 능력(싹난 지팡이)을 살아내야 한다 .
증거궤 안에는 세가지 물품이 있다. 언약의 비석들 (십계명)과 감추인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다 (히 9:4).
1. 십계명: 증거판 - 하나님의 증거(Testimony)
출애굽기에서 십계명은 증거판이라 불리운다 (출 32:15). 십계명은 단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시험하기 위해 주신 율법이 아니라 하나님 그분 자신의 증거였다. 십계명은 두 방면으로 하나님을 증거한다. 첫째, 그것은 하나님이 유일한 하나님이심을 증거한다 (출 20:2-3). 그분 외에는 하나님이 전혀 없다. 오직 그분 자신만이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다. 둘째로, 십계명은 하나님의 본성을 증거한다. 그것은 우리의 하나님이 어떠하신 하나님이신 지를 계시한다. 우리의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며, 빛의 하나님이며, 의로운 하나님이며, 거룩한 하나님이심을 계시한다. 십계명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알려주는 하나님의 사진이요, 하나님의 증거이다. 다음은 십계명의 내용이다.
1) 첫 번째 계명
2.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3.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찌니라 (출 20:2-3)
주님은 먼저 우리가 그분이 누구인지를 알기 원하신다. 그분은 유일하신 하나님이다. 주님은 우리의 유일한 촛점과 갈망이시다. 그 무엇도 그분을 대치할 수 없다. 우리는 다른 신을 결코 가질 수 없다. 우리는 주님이 유일하신 하나님이심을 증거한다.
2) 두번째 계명
4.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6.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
우리가 하나님을 알았다면 다른 신을 경배하지 말아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우상은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 모든 것, 즉 하나님을 대치하는 모든 것들을 말한다. 많은 사람들은 전자 제품이나, 직업이나, 종교적 성공 또는 수많은 다른 종류의 우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분의 주권을 사용하시어 우리의 마음을 얻기 위하여 되돌리신다. 그분은 필요하시면 우리의 죄를 다루시기 위하여 방문하신다. 도움이 필요하면 긍휼을 베푸신다. 그분은 우리의 환경을 주관하시며 내적으로 우리를 회복시킨다. 하나님은 우리의 주님이 된 이상 우리를 사로잡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자신을 하나님의 섭리에 기쁘게 순종해야 한다 그리고 그분이 우리의 일생을 주관하시도록 허락해야 한다.
3) 세번째 계명
7.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주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은 그분이 당신과 함께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 것이다. 만일 내가 한 방에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데 그들이 내가 그 방에 없는 것처럼 내 이름을 사용한다면 나는 매우 기분이 나쁠 것이다. 우리의 주님은 우리에게 실제이다. 우리는 결코 그분에 관하여 또는 그분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가 될 수 없다.
우리는 주님의 이름을 부름으로 그분을 만져야 한다. 이것은 결코 망령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우리의 영 안에 계셔서 응답하기를 기다리신다. 그분은 우리의 사랑이시므로 우리가 어떻게 그분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가? 주님을 부르는 것은 가장 단순하고 순수하며 달콤한 기도이다. 고린도 교회에 있는 성도들은 우리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각처에서 부르는 자들이었다 (고전 1:2).
4) 네번째 계명
8.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9.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10.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11.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출 20:8-11) |
처음 세 계명을 체험함으로 우리는 안식일로 들어간다. 이것은 율법적인 것이 아니라 생명의 길이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안식한다. 우리는 그분의 주권적 통치와 그분의 친근하신 임재를 깨달어야 한다. 우리의 안식은 외부 환경에 근거하지 않는다. 외적으로 소란하더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돌보심에 신뢰하게 된다.
5) 다섯 번째 계명
12.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나머지 계명들은 우리가 주님 안에서 안식을 체험함으로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 지를 묘사한다. 그러한 삶의 첫 번째는 우리가 우리의 부모를 공경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적 근원이시다. 그러나 우리의 부모님은 육체적 근원이시다. 이러한 면에서 부모님은 하나님과 똑 같은 공경을 당연하게 받으셔야 한다.
젊은이들은 부모님을 공경하며 사랑해야 한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그러한 대접을 받기를 기뻐하신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우리가 참 안식일을 누리고 있다는 증거이다.
6) 나머지 계명
13. 살인하지 말찌니라 14. 간음하지 말찌니라 15. 도적질하지 말찌니라 16.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찌니라 17.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찌니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찌니라 (출 20:13-17) |
우리가 안식일을 누릴 때 의롭고 거룩하고 풍성한 인간 생활을 하게 된다. 이것은 율법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통치를 경험하고 하나님의 친근하신 임재와 안식을 누린 열매들이다. 첫 번째 열매가 우리의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며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주님의 임재 안에서 우리가 안식을 누린다면 살인하거나 도적질하지 않을 것이다.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동안 탐내지 않을 것이다. 대신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공급하심으로 인하여 매우 행복하며 감사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참 안식을 누릴 것이다.
2. 감추인 만나
증거궤 안에는 두번째 물품은 금 항아리가 있다. 그 안에 감추어 있는 만나는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공급을 가리킨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 거할 때 그들은 만나를 먹었다. 그러나 증거궤 안에 있는 만나는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우시는 하나님을 가리킨다. 증거궤 안에 있는 만나는 금 항아리 안에 있다. 증거궤는 주 예수를 예표 하며 금 항아리는 하나님을 예표 한다. 즉 만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또한 아들 안에 있다 (요 14:10). 만나를 품고 있는 분은 하나님 자신이시다. 오늘날 우리의 모든 환경은 하나님에 의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간증으로 표현될 수 있도록 안배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이 땅에서 일어나는 모든 환경과 사건은 우리가 하나님의 간증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환경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무한한 공급이신 금 항아리 안에 감추어 있는 만나를 먹어야 한다 (계 2:17).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을 위한 간증이 된다.
3. 아론의 싹난 지팡이
증거궤 안에 있는 세번째 물품인 싹난 지팡이는 무엇을 예표하는가? 그것은 부활의 능력을 가리킨다. 지팡이는 원래 죽고 단단한 막대기에 불과했지만 하루 밤 사이에 싹이 나고 꽃이 펴서 살구를 맺었다 (민 17:8). 이것은 부활의 능력이 역사하심을 보여주는 그림이다.
민수기 16장에서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과 이백 오십 인의 인도자들이 모세와 아론에게 대적한다. 고라는 레위인의 직분에서 보다 높은 제사장 직분을 열망했다 (민 16:10). 그는 그것을 얻지 못하고 반역했다. 다단과 아비람은 인도 직분에 대하여 비난했다 (민 16:13-14).
이로 인하여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은 그들의 아내들과 아들들과 유아들 및 고라에 속한 모든 사람들과 모든 물품이 땅에 삼켜져 산채로 음부로 넣어졌다 (27-33). 땅이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의 가족들을 삼킨 후에 여호와께로서 불이 내려와서 분향하는 이백 오십 명을 소멸하였다 (35). 다음 날 아침에 온 회중이 모세와 아론을 거스려 원망한다 (41). 그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 아래서 그들을 죽이기 위해 염병을 보내셨다 (46).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이었다.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하는 방법을 살펴 본다면, 우리는 그분이 세방면-땅으로부터, 하늘로부터, 반역하는 사람들 안에서부터 그분의 심판을 집행하시는 것을 본다.
민수기 17장 4절에서 심판 후에 하나님은 열 두 지팡이를 증거궤 앞에 두라고 명령하셨다. 지팡이는 죽은 나무 토막이다. 그것은 잘려졌을 뿐 아니라 말라서 죽은 것이다. 이튿날 레위 집을 위하여 낸 아론의 지팡이에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서 살구 열매가 열렸다 (8). 아론의 싹난 지팡이는 증거궤 앞으로 다시 가져갔다. 아론의 싹난 지팡이는 반역의 자손들에게 표징으로 보관해야 했는데, 이는 그들로 하나님께 대한 원망을 그치고 죽지 않게 하려 함이었다 (10).
아론의 싹난 지팡이는 죽은 그리스도가 아니라 생명을 다른이들에게 분배해 주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아론의 싹난 지팡이에 의해 산출된 익은 살구 열매들은 그리스도의 누림을 가리킨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누릴 수 있으며 그분은 우리의 분깃이다.
오늘날 언약궤의 체험은 주로 이 세가지 항목- 하나님의 증거판, 감추인 만나, 싹난 지팡이의 체험에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경륜과 간증을 수행하는 것 또한 이 세가지 항목의 체험 안에 있다. 만약 우리가 이런 특성을 가진 형제를 발견한다면 그는 하늘에 속하며 신성한 운행과 간증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첫 째로 그에게 있어서 증거판은 모세의 정죄의사역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충만한 생명의 성령의 법이다. 둘째로 그는 하나님의 누림으로 충만하게 조성되고 신성한 생명이 흘러 넘치는 금항아리 안에 있는 만나와 같은 사람이다. 셋째로 그는 하나님의 권위로 다스리는 부활의 실제로 충만한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같은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