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단오제(江陵端午祭) 이야기
그네타기 대회 / 농상(農商/중앙고-제일고) 축구 / 서커스 쇼 / 창포(菖蒲)물에 머리 감기
강릉단오제의 진행을 세분(細分)하여보면,
음력 3월 20일부터 시작하여 5월 6일까지 약 50일간에 걸쳐 진행되며, 절차상 제1 단오부터 제8 단오까지로 세분된다.
예전에는 음력 3월 20일에 제례상에 올리는 신주(神酒)를 담갔다고 한다.
초단오(初端午-제1 단오)<4월 1일> - 헌주(獻酒)와 무악(巫樂)을 연주. 4월 5일 - 신주(神酒) 빚기 시작
재단오(再端午-제2 단오)<4월 8일> - 헌주(獻酒)와 무악(巫樂)을 연주.
제3 단오<4월 15일> - 대관령 산신제와 대 국사 성황제 봉안, 신목(神木) 모시기, 홍제동 봉안제(奉安祭)
제4 단오<4월 27일> - 무당굿 시작
제5 단오<5월 1일> - 위패를 단오장으로 모시는 화개(花蓋) 행렬 및 무당굿, 그리고 관노가면극 공연
제6 단오<5월 4일> - 무당굿과 관노가면극
제7 단오<5월 5일> - 무당굿과 관노가면극
제8 단오<5월 6일> - 산신과 국사서낭 봉송(奉送), 행사를 마무리하는 소제(燒祭) 행사
강릉단오제는 단오굿과 관노가면극을 중심으로, 그네, 씨름, 줄다리기, 윷놀이, 궁도 등의 민속놀이와 각종 기념행사가 함께 벌어진다.
관노가면희(官奴假面戱)는 강릉 관아(官衙)의 노비(奴婢)들이 가면을 쓰고 놀던 놀이라고 하는데 조선시대부터 300여 년간 전해 내려오다가 일제강점기에 맥이 끊기지만, 강릉시에서 다시 옛 기록을 살펴 되살려 냈다고 한다.
그 연희는 다섯 마당(五科場)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첫째 마당 : ‘장자마리’- 가면을 쓴 관노 2명이 나와 해학적인 춤을 추며 마당을 정리,
둘째 마당 : ‘양반과 소매각시의 사랑’- 양반 탈을 쓴 광대와 소매각시의 사랑 춤,
셋째 마당 : ‘시시딱딱이의 훼방’- 험상궂은 탈을 쓴 시시딱딱이가 양반과 소매각시의 사랑을 훼방,
넷째 마당 : ‘소매각시의 자살소동’- 실망한 소매각시가 양반의 긴 수염에 목매달아 죽으려는 자살소동,
다섯째 마당 : ‘양반과 소매각시의 화해’- 오해가 풀리고 화해하자 구경꾼들도 함께 몰려나와 춤판 한 마당.
그 밖에, 내가 보았던 단오제 한시경연대회(漢詩競演大會)를 잠시 회상해 보면....
경포호숫가에 세워진 경포대(鏡浦臺) 정자각의 앞마당에는 갓을 쓰고 한복 두루마기를 입은 어르신들이 줄을 맞춰 앉아있는데 앞에는 벼루와 먹, 붓과 한지를 가지런히 놓고는 눈을 지그시 감고 있다.
잠시 후, 징소리가 울리며 운자(韻字)를 건 긴 대나무 장대가 올라오는데 내가 보았던 것은 바다 해(海)였다. 앉아있던 어른들은 운자(韻字)를 쳐다본 후 다시 눈을 감고 몸을 앞뒤로 흔들며 시상(詩想)을 떠올린다. 시상이 떠오른 어른들은 서둘러 벼루에 물을 붓고 먹을 간 후 한지를 펼치고 시구(詩句)를 써 내려간다. 오언절구(五言絶句)도 있고 칠언율시(七言律詩)도 있고... 형식은 자유다. 그뿐만 아니라 중고등학생들의 백일장(白日場)도 열렸다.
나도 학생 글짓기 대회에 참석했었는데 입상(入賞)하지는 못했지만, 한시 경연대회를 볼 수 있었던 것도 복이다.
그 밖에도 활쏘기(國弓)대회, 서커스, 마술(요술) 쇼 등 강릉단오제는 볼거리가 무궁무진했다.
내가 어렸을 때(1950년대 초)는 말과 코끼리가 등장하는 동물서커스도 있었는데 우리 어머니는 말광대(曲馬團)라고 하시던 기억이 난다.
마술(魔術)쇼도 재미있었는데 나의 기억으로 입장료가 매우 싸서 돈을 내고 입장한 적이 있었다. 먼저 변사(辯士)가 나와 한참 청산유수로 떠든 후 젊은 아가씨가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무대 위로 나온다.
아가씨는 무척 예쁘게 생겼는데 관객들에게 공손히 인사를 하더니 한 손은 아래로, 다른 손은 가슴을 가린다. 변사는 또 청산유수로 읊어대는데 불빛이 조금 흐릿해지는가 싶더니 아가씨의 옷이 점점 희미해진다. 그러더니.... 옷은 완전히 보이지 않고 알몸뚱이의 아가씨가 한 손은 사타구니를, 다른 손은 가슴을 가리고 있다. 관객들은 깜짝 놀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데 또다시 불빛이 약간 어두워지며 다시 몸뚱이가 희미해지는가 싶다가 갑자기 뼈가 보이기 시작한다. 눈구멍이 두 개 뻥 뚫린 해골에다 팔다리뼈는 물론, 앙상한 갈비뼈까지 분명하게 보인다. 아가씨가 약간 움직이는지 해골도 움직이고....
다시 변사가 고저장단을 넣어 청산유수로 중얼거리자 차츰 빛이 밝아지는가 싶더니 살이 살아나 나체가 되었다가 다시 옷이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하더니 조금 지나자 처음 보았던 완전한 모습으로 바뀐다.
아가씨는 가벼운 미소를 머금더니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공손히 절을 하고는 무대 뒤로 사라진다. 그것이 전부...
가장 중심이 되었던 민속놀이의 한가지로 농악경연대회도 있었는데 내 어릴 적에는 마을마다 농악대(農樂隊)가 있었기에 가능했지만, 지금은 마을마다 없으니 시범으로 공연하는 정도이다.
또, 인기가 있었던 것으로는 씨름대회를 꼽을 수 있었는데 한쪽에는 우승 상품인 황소 한 마리가 매어져 있었는데 전국에서 씨름꾼들이 모여들었다. 또 그네타기도 인기가 많았는데 내 어렸을 적 1등을 하면 2돈짜리 금반지가 상품으로 걸려있어 단오 20일쯤 전이면 마을마다 그네를 매는 것이 유행이었다.
마을 처녀들이 열심히 그네를 연습하고 단오날 대회에 나가면 그네 발 받침 뒤에 줄을 매달아 얼마나 높이(멀리) 올라갔는지 길이를 측정하여 상품을 주었는데 우리 누님은 1등이 자신이 있다고 나가더니만 빨랫비누 1장을 타왔던 적이 있다.
요즈음은 ‘단오부채 만들기’, ‘창포물에 머리 감기’ ‘수리취떡 만들기’ 등이 있고 난장(亂場)이 벌어진다.
한 가지 더 첨언(添言)한다면 축구를 빼놓을 수 없는데 예전부터 강릉은 축구의 고장이라 이를 만큼 축구를 사랑하는 고장이었다. 단오 때면 매년 강릉상고(현 제일고)와 강릉농고(현 중앙고)의 시합이 벌어졌는데 승부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싸움이 벌어지기 일쑤였고, 싸움이 없는 해면 어르신들은 ‘에이, 올해는 싱겁게 끝났네’ 하며 서운한 표정을 지으시던 기억도 난다.
40년대 초부터 시작되었다는 강릉농고(農高)와 강릉상고(商高)의 축구정기전인 『강릉 농상(農商) 축구정기전』은 우리나라 축구 발전사에 큰 획을 그은 것으로 알려졌으며 특히 큰 인기를 끌던 것이 재학생들의 카드섹션이었다. 카드섹션 응원이 너무나 유명했는데 나는 나중 서울에 살면서 고려대와 연세대의 정기전인 고연전(高延戰)을 보았더니 강릉 농상 축구정기전의 응원을 보는 것과 똑같았다.
농상(農商) 정기전은 해마다 단오에 열렸는데 승패를 두고 너무 다툼이 많아서 언젠가부터 중단되기도 했다. 나는 농고 안에 창설되었던 관동중학교에 1회로 입학했는데 매년 단오 때마다 우리도 농고 응원전에 참가해야만 했다. 방과 후, 운동장에 모여 응원훈련을 했는데 학생들이고, 선생님들이고 열심이었다.
중학교 3학년 때였던가, 내가 여장(女裝)을 하고 강릉 시내를 줄지어 행진하던 기억, 또 농상 축구정기전이 열리면 갓을 쓴 영감님들도, 심지어 머리 하얀 할머니들조차도 장바구니를 옆에 놓고 관중석을 차지하여 항상 관중석이 만원을 이루고는 했다.
지금은 주로 먹거리 난장(亂場) 터로 변한 느낌인데 강릉 각 마을마다 채알(遮日/천막)을 치고 마을 이름을 써 붙여 놓았는데 그 동네 사람들이 들어가면 음식을 꽁짜(무상)로 먹을 수 있었다.
우리나라 단오제(端午祭)는 전국 곳곳에서 조촐하게나마 열리는 행사인데 가장 성대하게 치러지는, 가장 역사가 오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단오제를 꼽으라면 단연 강릉단오제(江陵端午祭)일 것이다.
강릉단오제(端午祭)에 대한 여담(餘談)을 덧붙여 보면,
단오제가 열리는 장소는 남대천변에 우뚝 솟은 남산공원 아래 모래사장인데, 주변이 지금은 아파트단지로 변한 곳도 있지만, 예전에는 내가 살던 학산(鶴山)에서 내려오다 안땔골로 빠지지 말고 도깝재 쪽으로 더 내려오다가 현 경포중학교 옆을 지나 내려오게 된다. 이 언덕 위에 질긴 댕댕이풀이 무성하여 댕댕이꿈(꾸미)이라 부르던 오솔길이 있었는데 따라 내려오다 보면 갑자기 절벽이 되어 흙베리라고 했다. 그 밑에 작은 못(池/새발소)도 있었고, 이 주변까지 제법 넓은 개천가 모래밭인데 단오가 열리면 온통 사람들이 몰려들어 비켜설 수가 없을 정도로 북적거렸다.
속초(束草), 사천(沙川), 주문진(注文津), 안인(安仁), 옥계(玉溪) 등 주변 동해안의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은 물론, 대관령 넘어 진부(珍富), 속사(束沙), 봉평(蓬坪) 등지에서도 대관령을 걸어 넘어 구경꾼이 몰려들었다. 학산을 비롯한 주변의 마을들은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과 강아지들이 마을을 지키고 젊은이들은 몽땅 단오장(端午場)으로 몰리니 마을이 온통 텅텅 비었다.
항상 싸움질이 벌어졌던 농상(農商) 축구정기전은 언제인가, 강릉시장이 중단하여 주민들이 너무나 서운해하던 기억이 새로운데 몇 년 지난 후인가 주문진수산고(注文津水産高)를 합쳐 삼파전(三巴戰)으로 부활한다. 서커스(Circus/원형경기장) 공연도 비슷했는데 스토리(Story)가 가미(加味)된 신기한 공연으로, 해외(海外/외국) 서커스단이 와서 공연하던 기억도 있다. 너무나 유명한 민중예술 집단인 남사당(男寺黨)패도 참가했는데 ①풍물(風物), ②버나(막대기로 대접 돌리기), ③살판(땅재주), ④어름(줄타기), ⑤덧뵈기(탈놀이) ⑥덜미(꼭두각시놀이) 등을 공연했다.
그 밖에 창포(菖蒲)물에 머리 감기, 단오부채 만들기 등도 재미있었고, 가지가지 먹거리도 많았다.
먹거리 중 수리취떡(車輪餠)이 유명했는데 쑥의 일종인 구설초(狗舌草/일명 솜방망이)를 쌀가루와 섞어 쪄내서 둥그런 떡을 빚고 수레바퀴 모양의 문양을 찍은 떡(쑥떡)이다.
사람이 소곤거리면 쑥덕공론(空論)이라고 했는데...
쑥떡쑥떡~~ 쓸데없는 중얼거림? 맛있는 쑥떡 이야기?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