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유다인 달변가 아폴로가 성경을 바탕으로 회당에서 담대하게 예수님에 관한
복음을 전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간다고 하시며, 당신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면 무엇이나 받을 것이고 아버지께서 너희를 사랑하신다고 하신다(복음).
<아폴로는 성경을 바탕으로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논증하였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18,23-28 바오로는 안티오키아에서 23 얼마 동안 지낸 뒤 다시 길을 떠나, 갈라티아 지방과 프리기아를 차례로 거쳐 가면서 모든 제자들의 힘을 북돋아 주었다. 24 한편 아폴로라는 어떤 유다인이 에페소에 도착하였는데, 그는 알렉산드리아 출신으로 달변가이며 성경에 정통한 사람이었다. 25 이미 주님의 길을 배워 알고 있던 그는 예수님에 관한 일들을 열정을 가지고 이야기하며 정확히 가르쳤다. 그러나 요한의 세례만 알고 있었다. 26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설교하기 시작하였는데, 프리스킬라와 아퀼라가 그의 말을 듣고 데리고 가서 그에게 하느님의 길을 더 정확히 설명해 주었다. 27 그 뒤에 아폴로가 아카이아로 건너가고 싶어 하자, 형제들이 그를 격려하며, 그곳의 제자들에게 그를 영접해 달라는 편지를 써 보냈다. 아폴로는 그곳에 이르러, 하느님의 은총으로 이미 신자가 된 이들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 28 그가 성경을 바탕으로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논증하면서, 공공연히 그리고 확고히 유다인들을 논박하였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아버지께서는 너희를 사랑하신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믿었기 때문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6,23ㄴ-2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3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24 지금까지 너희는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청하지 않았다. 청하여라. 받을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 기쁨이 충만해질 것이다. 25 나는 지금까지 너희에게 이런 것들을 비유로 이야기하였다. 그러나 더 이상 너희에게 비유로 이야기하지 않고 아버지에 관하여 드러내 놓고 너희에게 알려 줄 때가 온다. 26 그날에 너희는 내 이름으로 청할 것이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청하겠다는 말이 아니다.
27 바로 아버지께서 너희를 사랑하신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내가 하느님에게서 나왔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28 나는 아버지에게서 나와 세상에 왔다가,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 간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우리는 자주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하고 기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중개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하느님 아버지께로 가는 통로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십자가에 달리셨다가 부활하셨기에 우리는 하느님 아버지를 알고
사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아버지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는 기도에 대해 말하면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분과의 우정”을 이야기합니다.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친구를 만났을 때 우리의 마음에 기쁨이 넘치는 것처럼, 우리는 하느님께
기도하면서 그러한 친교의 기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먼저 예수님으로부터 선택받고
사랑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단순히 우리의 기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가 되며,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 아버지께 바치는 기도가 됩니다. 기도는 예수님에 대한 믿음과 그분으로부터 받은 사랑을
기억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내가 진실로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지금까지 너희는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청하지 않았다. 청하여라. 받을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 기쁨이 충만해질 것이다.”
<희망으로 가득 찬 청사진 한 장>
용두사미란 말이 있습니다. 출발은 거창하고 대단한데 끝마무리가 보잘 것 없고 형편없는 경우를 일컫습니다.
요즘 프로야구가 한창인데, 가끔 그런 팀이 있습니다. 시작 때 분위기는 너무 좋습니다. 선수들 기세가 등등합니다. 선두타자 안타에 이은 번트, 적시타로 즉시 선취점을 뽑아냅니다. 그러나 그게 다입니다. 회를 거듭할수록 뒷심이 딸립니다. 5회, 6회를 넘어가면서 역전을 허용하더니 7회, 8회 수비 실수에 이은, 투수 난조로 대량 득점을 허용합니다. 치욕적인 수모를 겪으면서 대역전패당합니다. 다들 기분이 참 ‘거시기’합니다.
그런가 하면 고진감래라 말이 있습니다. 혹독한 고통 끝에 알차고 행복한 결실을 거둠을 의미합니다. 시작은 부진하고 미약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체계가 잡히고 탄탄해지며 안정됩니다. 결국 기분 좋은 승리로 이어집니다.
요즘 계속되는 복음의 어투는 철저하게도 미래형입니다. ‘∼할것이다’라는 식의 미래형인데, 그냥 미래형, 혹은 암울하고 두려운 미래형이 아니라 희망과 긍정으로 가득 찬 미래형입니다. 사실 우리 그리스도교 신앙, 현재에도 충실할 것, 현재에 큰 의미를 부여할 것을 강조하기도 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 미래형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희망으로 가득 찬 청사진 한 장을 우리 앞에 제시하고 계십니다. “청하여라. 받을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 기쁨이 충만해질 것이다.”
가끔씩 살짝 그릇된 가르침을 외치고 다니는 분들이 계십니다. 자신이 내세우는 교리를 따르면 현세 천국뿐만 아니라 내세 천국도 100% 보장된다, 자기들한테로 오면 끝도 없는 현세에서의 하느님 축복을 넘치도록 받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인간 네 삶이란 것이 어디 그렇습니까? 이랬다저랬다, 오르락내리락 마치 놀이공원의 바이킹 타는 것과 별반 다를 바가 없습니다. 지속적인 현세적 축복, 그것은 신기루와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세월이 흐르고 흘러 정해진 시간이 다가오면 그간 우리가 쌓아온 모든 것들 다 버려두고 떠나가야 할 우리들입니다. 이런 우리들에게 끝도 없는 성공과 축복은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늘 축복만 하시는 하느님이라면 저토록 혹독한 고통을 감내하고 있는 우리들의 이웃들에게 어떻게, 무엇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 모두 무슨 큰 죄를 지은 사람들이란 말입니까?
우리 그리스도교는 현실을 중요시여기지만 현실에 모든 것을 걸지 않습니다. 참 신앙인들은 이 지상에서의 삶에 최선을 다하지만, 지상 것에 목숨까지 걸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세상을 넘어섭니다. 현실을 초월합니다. 우리 인간이 지닌 어쩔 수 없는 한계, 무력함, 나약함을 간과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늘 겸손하게 하느님의 도움과 자비를 간구합니다. 폭풍우 속 같은 인생을 살아가면서도 절망하거나 의기소침하지 않습니다. 희망의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사랑과 자비에 의탁하며 하루하루 기쁘게 살아갑니다.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사랑과 기쁨
저는 한 때 가족을 버리고 당신을 따르라고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이 사적인 감정을 버리고 모든 사람을
똑 같이 사랑하라는 뜻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에 하느님도 편애를 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은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 사랑하는 만큼만 기쁨과 평화를 돌려주십니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을 더 사랑하고 더 잘해주게 되는 것이 편애가 아닌
정의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에스테르기를 읽으면 임금에게 사랑을 받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왕비 자신과 자신의 모든 민족을
구원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을 주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이 항상 좋은 일에만 쓰이는 것은 아닙니다.
헤로데의 아내 헤로디아는 자신의 딸이 헤로데의 생일잔치에서 춤을 아주 잘 추어 왕을 기쁘게 하자
바로 자신이 그렇게 꼴 보기 싫어하던 세례자 요한의 목을 청합니다. 헤로디아의 힘만으로는 세례자 요한의 목을 얻을 수 없었겠지만 왕을 기쁘게 한 딸의 어머니인 이유로 목적을 달성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지니고 있는 무엇을 얻어내는 방법은 그 무엇을 줄 수 있는 사람의 마음에 들도록 노력하는
것 뿐입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으로부터 많은 기적의 은총을 받아낸 사람들이 나옵니다. 특별히 하혈 병을 앓던 여인의 치유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일깨워줍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을 치유해 줄 아무런 원의도 없으셨지만
그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만 만져도 치유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은총을 하느님으로부터 빼앗아낸 것입니다. 믿음은 곧 사랑입니다. 사랑하면 은총을 빼앗아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옷자락을 만져서 저 정도인데 우리가 조금만 더 사랑하면 그 분의 몸을 영하는 우리들은 얼마나 더 큰 은총을 얻어낼 수 있겠습니까?
왜 나에게 은총을 주시지 않느냐고 불평할 것이 아닙니다. 은총은 그 여인처럼 빼앗아내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느님으로부터 은총을 얻고 기쁨에 넘치게 될까요?
우리는 이것을 신앙의 모범인 성모님을 보고 배워야 할 것입니다.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예수님은 첫 번째 기적을 원하시지도 않는데 어머니 때문에 행해야 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성모님이 청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아직 때가 이르지도 않았다고 말씀하시며 “그것이 당신과 나에게 무엇입니까?”고 어머니께 반문하십니다.
어쩌면 어머니는,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지만 그게 뭐라고 어머니께서 저에게 청하시는 것을 제가 물리칠 수 있겠습니까?”라고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두 말 없이 곧바로 시중드는 사람들에게 “이 사람이
시키는 대로 하여라.”하시며 잔치에 모인 사람들을 위해서 기적을 만들어내십니다.
어머니는 어떤 청을 하든 들어줄 수밖에 없을 만큼 아들에게 사랑받는 분이셨던 것입니다. 만약 포도주를 만드는 기적을 해 달라고 다른 사람이 청했다면 예수님께서 들어주셨을까요? 예수님은 그 때까지 한 번도 기적을 행하신 적이 없으므로 누구도 그런 기적을 청할 믿음도 없었을 뿐더러 성모님이 아니었으면
누구도 그 기적을 얻어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하느님은 당신을 사랑하는 만큼 우리에게 은총을 주십니다. 그 은총이 곧 성령님이고 성령님이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기쁨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성모님은 아들이 한 번도 기적을 행하는 것을 본 일이 없으십니다. 왜냐하면 가나의 기적이 첫 기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청하실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청하면 아들은 당연히 들어주어야 할 만큼
당신이 아들과 하느님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불가능한 것까지도 얻어내실 수 있으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서 일도 하고 공부도 하고 놀기도 합니다. 그러나 유일한 행복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인 예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시간을 투자하고 있을까요? 또 기복신앙이니 뭐니 하면서 우리가 합당히 청해야 하는 것까지도 청하지 못하고 주저하며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지금까지 너희는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청하지 않았다. 청하여라. 받을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 기쁨이
충만해질 것이다.”
부활 6주 토 요한 16,23ㄴ-28(16.5.7)
“아버지께서는 너희를 사랑하신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믿었기 때문이다.”(요한 16,27)
♣예수님과 더불어 청함으로써 얻는 기쁨♣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청하여라. 받을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 기쁨이 충만해질 것이다.”(16,23-24) 그분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의 이름으로 청하여 시련과 박해를 이겨나가도록 격려하십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수난하시고 죽으시기 전까지는 그분을 전인격적으로 받아들이지도 이해하지도 못했기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청하지 않았습니다(16,24).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이름으로, 곧 자신에게 속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당신과 일치하여 성부께 청하라고 하십니다.
사실 우리네 인생살이를 보면 우리 힘이 대단한 듯 여겨질 때에는 아무렇지 않게 자기 뜻대로 행동합니다. 고통스러울 때에도 그 무게에 짓눌리거나 조급한 마음에 다른 인간적인 방편에 기대려 하기 때문에 하느님께 아무 것도 청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살아가면서 어떻게 청해야 할까요?
무엇보다도 먼저 이제 예수님을 더 이상 육신의 눈으로 뵐 수 없지만 그분께 대한 확고한 믿음과 사랑으로 하느님께 청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지극히 사랑하시기에 아들의 청을 기꺼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16,27).
따라서 무언가를 청할 때는 예수님과 더불어, 그분의 마음과 생각과 몸짓으로 청해야 합니다. 청할 때 나 혼자, 또는 내 뜻만을 앞세워 청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지요. 기도든 행동이든 예수님과의 엘치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이제 우리도 아버지께 대한 믿음과 사랑으로 하느님께 직접 청해야겠습니다.
이렇게 청할 때 하느님께서는 내가 청하는 모든 것을 주실 것이며(16,23), 기쁨이 넘쳐 충만하도록 해주실 것입니다(16,24). 이 기쁨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선물로서 근원적인 힘입니다. 우리는 이 기쁨으로 고통과 온갖 시련을 이겨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청해야 할까요?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청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청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느님과 예수님에 대한 사랑을 위하여, 그리고 이웃 사랑과 사회 정의와 공동선을 위한 것이면 무엇이든 다 청할 수 있고, 청해야 합니다. 한마디로 하느님의 뜻, 곧 사랑을 위한 모든 것을 청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 삶이 팍팍하고 고달파도, 사회 부조리와 불의, 비인간화의 심화 등 답답하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주님께 대한 확고한 믿음과 사랑으로 용기를 내어 필요한 모든 것을 청하도록 합시다. 그분만이 이 모든 것을 기쁨으로 바꿔주시고 힘을 주시며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어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나 혼자만의 행복과 안위를 얻고 지키려 안달복달하지 않고, 모두가 주님께 대한 믿음 안에서 온갖 어려움과 불의를 이겨냄으로써 참 행복의 길로 가도록 청하며 노력하는 하루였으면 합니다.
1656년 2월 9일 이탈리아의 비테르보(Viterbo)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인 고프레도(Goffredo)는 안코나(Ancona)의 카스텔레오네 디 수아사(Castelleone di Suasa) 출신으로 로마(Roma)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은 후 비테르보의 대형 병원에서 의사 직무를 훌륭히 수행하고 있었다. 그는 비테르보의 오래된 가문 출신인 마르지아 잠피체티와 결혼하여 네 명의 자녀, 즉 도메니코(Domenico), 마리아 막달레나(Maria Maddalena), 로사 베네리니, 오라지오(Orazio)를 두었다.
로사 베네리니는 태어나면서부터 총명함과 비범한 감성을 갖고 있었다. 그녀는 가정교육을 통해 확고한 그리스도교적 원칙 안에서 형성된 많은 심리적인 재능을 개발할 수 있었다. 그녀의 첫 번째 전기 작가인 지롤라모 안드레우치(Girolamo Andreucci) 신부에 의하면 그녀는 7살 때 이미 자신의 삶을 봉헌하기 위한 서원을 했다고 한다. 청소년기 동안 그녀는 세상의 매력과 하느님께 드린 약속 사이에서 고민하며 지냈는데, 이 위기를 의심 없는 기도와 금욕으로써 이겨냈다. 20살 때 로사 베네리니는 자신의 미래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되었다. 그녀가 살던 시대에 여성들의 삶은 결혼 아니면 수도생활이라는 두 가지 방향의 선택만이 가능할 뿐이었다. 그녀는 이 두 가지 모두를 존중했지만, 하느님께서는 교회의 유익과 당시 사회를 위해 다른 계획을 깨닫도록 그녀를 부르셨다. 이러한 예언적인 내적 움직임에 의해 그녀는 완전히 혁신적인 해결책에 도달할 때까지 고통과 탐색의 시간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1676년 가을, 그녀는 아버지의 조언에 따라 자신의 서원을 완성하리라는 기대를 갖고 성녀 카타리나(Catharina)의 도미니코회 수녀원에 입회하였다. 그녀의 이모인 안나 체칠리아(Anna Cecilia) 옆에서 그녀는 침묵과 묵상 중에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방법을 배웠다.
하지만 그녀의 수도원 생활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갑작스런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고통 중에 있는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입회 몇 달 만에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음 해에는 가족에게 주어진 불행의 짐을 짊어지게 되었다. 그녀의 오빠인 도메니코가 27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죽고, 그로부터 몇 달 뒤에 어머니 또한 세상을 떠나 슬픔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러는 중에 언니 마리아 막달레나는 결혼을 했고, 집에는 이제 막내 오라지오와 24살이 된 로사 베네리니만이 남게 되었다.
하느님을 위해 뭔가 큰일을 하고 싶었던 그녀는 1684년 5월에 주변의 처녀와 부인들을 모아 저녁마다 묵주기도를 바치기 시작했다. 그들과 기도하는데 있어서 무엇보다도 기도 전후의 대화를 통해 당시의 슬픈 현실에 마음의 문을 열게 되었다. 당시 여성들은 문화적 · 교육적 · 영성적 가난의 노예와도 같았다. 로사 베네리니는 하느님께서 젊은 여성들의 교육과 그리스도교적 양성이라는 보다 높은 사명을 위해 자신을 부르고 계심을 이해했고, 산발적인 만남뿐만 아니라 학교에서 현실적이고 참된 감각을 갖고 투신해야 할 긴급한 필요성을 확인하였다.
1685년 8월 30일 아버지의 집을 떠난 로사 베네리니는 비테르보의 주교인 우르바노 사케티(Urbano Sacchetti) 추기경의 승인을 받고, 두 명의 친구이자 협력자인 제롤라마 콜루첼리(G. Coluzzelli)와 포르지아 바키(P. Bacci)와 함께 혁신적인 계획을 따라 기도 안에서 성숙하며 하느님의 뜻을 찾을 수 있는 첫 번째 여학교를 시작하였다. 설립자로서 로사 베네리니의 첫 번째 목적은 소녀들을 그리스도교적 정신으로 양성하고 사회생활을 준비하도록 도와주는 것이었다. 거창한 주장은 없었지만 그녀는 이탈리아에서 처음으로 소녀들을 위한 공립학교를 개교한 것이었다. 비록 시작은 대단하지 않았지만 그 의미만큼은 예언적이라 할만 했다. 여성들의 인간적 증진과 영성적 향상이 현실화되었고, 교회와 시 당국으로부터 승인을 받기까지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물론 첫 시작이 쉽지는 않았다. 자신의 직무로서 교리교육을 담당하는 성직자들의 저항에 직면하기도 했고, 무지한 소녀들의 교육을 마음으로 받아들인 비테르보의 중상류 계층 여성들의 대담함에 충격을 느낀 순응주의자들로부터 호된 의혹을 사기도 했다. 로사 베네리니는 하느님의 사랑을 위해 이 모든 것을 극복하며 자신이 하느님의 계획을 올바로 따르고 있다는 사실이 확실해질 때까지 주어진 길을 계속 걸어갔다. 그리고 그녀가 옳았다는 것은 교육사업의 결과로써 입증되었다. 같은 일에 종사하는 사목자들로부터 그녀의 교육방법이 가져온 교육적 개선을 평가받았기 때문이다. 그녀가 창시한 혁신적 교육방법의 타당성이 인정받으면서 그녀의 명성은 교구의 한계를 뛰어넘었다.
비테르보 프로젝트의 특징을 잘 이해한 몬테피아스코네(Montefiascone) 교구의 마르코 안토니오 바르바리고(Marco Antonio Barbarigo) 추기경은 로사 베네리니를 자신의 교구로 초대했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항상 자신을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던 그녀는 이 초대에 기꺼이 응답하였다. 그래서 1692년부터 1694년까지 몬테피아스코네와 볼세나(Bolsena) 호수 주변 마을에 열 개의 학교를 개교하였는데, 바르바리고 추기경은 적극적인 물질적 후원을 제공하였다. 한편 교사들의 훈련과 학교들을 조직할 기구의 필요성을 느낀 로사 베네리니는 추기경의 도움으로 교사 훈련원을 세웠고, 이곳에서 비슷한 사명을 수행하던 성녀 루치아 필립피니(Lucia Filippini, 3월 25일)를 만나 그녀와 함께 ‘자비로운 교사회’를 공동으로 설립하였는데, 오늘날 베네리니의 자매회로 불린다.
비테르보와 몬테피아스코네에 여학교를 개교한 로사 베네리니는 로마를 중심으로 하는 이탈리아 서부 라치오(Lazio) 지방에서 또 다른 학교들을 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1706년에 로마로 진출했으나 한 동안은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다. 시 당국의 신뢰를 얻기까지 6년의 긴 시간을 기다린 끝에 1713년 12월 8일 베네리니 가족의 위대한 친구인 아바테 데글리 아티(A. Degli Atti)의 도움으로 로마의 중심지인 캄피도글리오(Campidoglio) 바로 아래에 학교를 개교할 수 있었다. 1716년 10월 24일 교황 클레멘스 11세(Clemens XI)는 8명의 추기경을 동반하고 그녀가 설립한 학교를 시찰하기 위해 방문하여 “당신은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에 행복을 가져다 줄 이 학교에 대해 너무도 고맙습니다.”라며 치하하였다. 이를 계기로 여러 지역의 당국자와 추기경들로부터 자신들의 지역에 학교를 세워달라는 요청이 쇄도하였다. 그녀는 힘겨운 여행을 계속하며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하고 학교를 설립하기 위해 기쁨과 희생이 뒤섞인 고된 작업을 이어갔다. 그녀가 새로운 학교를 시작하는 곳 어디서든 짧은 기간 안에 젊은이들 안에서 높은 교육적 증진의 효과를 가져왔다. 로사 베네리니는 1728년 5월 7일 오후 로마의 성 마르코 공동체에서 성인다운 죽음을 맞이하였다. 그녀는 일생 동안 40개 이상의 학교를 개교하였다. 그녀의 유해는 평소 그녀가 사랑했던 제수(Gesu)의 성당 근처에 안장되었고, 시복식을 즈음하여 로마에 있는 관구 본부의 경당으로 이장하였다. 그녀는 1952년 5월 4일 교황 비오 12세(Pius XII)에 의해 시복되었고, 2006년 10월 15일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교황 베네딕투스 16세(Benedictus XVI)에 의해 시성되었다.
* 자료집에서 발췌
의사의 딸로 태어나 주변 여성들의 열악한 환경을 애타하여 부녀자들을 모아 저녁마다 로사리오 기도를 드리던 님.
교구의 지원을 받아 40개 이상의 학교를 세워 그리스도교적인 여성 교육의 빛이 되었던 성녀 로사 베네리나 님이시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