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구(虎丘) (中國 江蘇省 蘇州市)
上有天堂 下有蘇抗 하늘에는 천당이 있고 땅에는 소항(소주, 항주)이 있다 生在蘇州 住在抗州 吃在广州 死在柳州 미남미녀가 많은 소주에서 태어나고 산수경관이 좋은 항주에서 살고 음식이 맛있는 광주에서 먹고 좋은 목재가 많은 유주에서 죽는다 라는 말이 있어 이번 보름간의 여행에 일주일 이상을 소주 항주에서 구석 구석 집중적으로 둘러 봤습니다 사진은 지난 여름 가족들과 방문한 사진에 일부 보완해 올린다 호구는 소주시내에서 서남쪽으로 3km정도에 위치한 높이 40m 높이의 낮은 구릉으로 이루어진 호구(虎丘), 일명 하이융산(海湧山)이다. 이 정상에는 호구탑으로 더 유명한 운암사탑(云岩寺塔)이 자리하고 있다. 소주에서 가장 눈에 띄는 소주의 상징 운암사탑은 높이가 47.5m나 된다. 현재 8각 7층탑인 이 탑은 원래 높이가 이보다 더 높았었는데, 위의 목조 부분이 소실되어 현재의 높이가 되었다고 한다.
이 탑을 바로 밑에서 올려다보니 높이가 엄청나다. 송(宋)나라 때인 959년에 건립을 시작해서 961년에 완공된 이 탑은 현존하는 중국 최고의 벽돌탑이다. 지금이야 높은 빌딩들이 많지만, 이 탑이 지어질 당시인 천년 전에는 엄청난 규모의 탑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탑은 근접해서 보면 눈에 띄게 탑이 기울어져 있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중국의 피사의탑이라고 한다 이 탑은 지반 침하와 화재로 인하여 북서쪽으로 약 15도 정도 기울어져 있다. 지반 침하가 일어난 이유가 합려(闔閭)가 묻은 명검을 찾으려 많은 사람들이 호구 일대를 파헤치는 바람에 언덕의 탑이 기울었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혹은 탑 아래에 합려의 무덤이 있기 때문에 탑이 기울었다고도 한다. 그래서 이 탑에는 몇 차례의 보수공사가 시행되었고, 최근의 보수공사로 인하여 현재는 더 이상 기울지 않는다고 한다.
"이 높은 탑을 왜 만들었을가?"
이 탑 아래에는 오왕(吳王) 합려(闔閭)의 묘가 있다고 전해진다. 오왕 합려는 손자병법의 저자인 손무(孫武)를 중용하여 규율이 강한 군대를 양성하였고, 중국 강남의 실력자로 떠올랐던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결국 월왕 구천에게 패해 죽었고, 이 곳에 묻혔다. 합려의 아들 부차(夫差)가 아버지의 복수를 다짐하면서 지은 묘역이 바로 이 호구이다.
합려를 장사 지낸 지 3일 후 털이 하얀 호랑이가 이 묘 위에 웅크리고 앉아 묘를 지켰다고 하여 이 곳의 호구라는 이름도 생겨났다. 현재 이 묘는 발굴을 하지 못한다고 한다. 탑 밑에 묘가 자리하고 있어서 묘를 발굴하면 귀중한 문화유산인 탑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합려가 호구의 어느 곳에 묻혔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오왕 합려는 물산이 풍부한 곳으로 영토를 넓히려고 월나라를 공격하다가 월나라의 저항으로 전투에서 패주하다가 어디에선가 죽었다. 그의 아들 부차는 아버지의 주검을 온전히 보전하기 위해 호구 어딘가에 그를 묻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합려가 묻힌 장소가 정확히 전해지지 않고 합려의 무덤에 보검이 있다고 전해져서 여러 왕들이 호구 여기저기를 파헤치게 된 것이다.
호구 정상에서는 주변의 소주 시내가 훤하게 내려다보인다. 탑 주변은 꽤 넓고 한가하며 푸른 나무들이 가득 들어차 있다. 송나라 때에 불후의 명시를 많이 남겼던 소동파(蘇東坡)는 '도소주이불유호구(到蘇州而不遊虎邱) 내시감사(乃是憾事)' 라고 하였다. 소주에 와서 이 아름다운 호구를 구경하지 않은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라는 것이다.
호구의 언덕은 그리 크지 않으나 그 경치는 예상외로 아름답다. 왜 소동파가 그런 글을 썼는지 저절로 이해가 되는 곳이다. 유구한 역사와 끊기지 않는 수많은 전설, 그리고 절경을 품은 연못은 많은 여행자들을 이 호랑이의 언덕으로 끌어 들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