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의 봄 도서관에서
이월 초순 첫째 화요일이다. 입춘 전후 연일 포근하면서 흐리고 비가 잦은 편이다. 어제는 우중에 우산을 펼쳐 쓰고, 멀리 김해 상동 여차리와 구지봉 근처로 나가 고매가 피우는 매화를 완상하고 왔다. 거기는 닷새 전에도 세 문우와 탐매 여정을 다녀온 바 있다. 그제는 댓거리 일요 장터로 나가 초등 친구와 자리를 함께 하고 임항선 산책로를 걸으면서 능수매화 향기를 맡고 왔다.
화요일은 아침 식후 서둘러 산행이나 산책을 나서지 않고 며칠 전 함안보 트레킹에서 남긴 사진을 보면서 시조를 두 수 남겼다. “함안보 밀포나루 봄 오는 길목이면 / 어둠이 사라져도 안개가 짙게 끼어 / 사방은 분간 안 되어 날 샌 줄을 모른다 // 중천에 해가 솟아 햇살이 번져가자 / 하중도 밀포섬이 지척에 드러난 채 / 갯버들 수액이 올라 녹색 기운 번진다” ‘밀포나루’ 전문이다.
그날 칠서 강나루 생태공원으로 나가 둔치에 경작하는 보리밭을 둘러보고 광려천이 흘러온 소랑교를 건너 밀포나루로 향했더랬다. “광려천 중리에서 칠원을 거쳐 흘러 / 낙동강 합류하는 덕촌에 이르러니 / 물길은 휘어져 돌며 숨을 골라 멈췄다 // 저만치 함안보가 강심에 가로지른 / 샛강을 건너다본 소랑교 둔치 풍경 / 갯버들 외로이 서서 사계절을 지켰다” ‘소랑교 풍경’ 전문이다.
지기들에게 아침 인사를 겸하는 작품으로 준비한 시조다. 아침 식후 느긋하게 산책 차림으로 길을 나섰다. 집 근처 정류소에서 소계동으로 가는 215번 버스를 탔다. 지귀상가에서 명서동 주택지를 둘렀는데 오래전 산기슭 여학교에 근무하며 낡고 낮은 아파트에 살았던 시절이 떠올랐다. 버스가 향토사단이 이전해 간 자리 들어선 고층 아파트단지를 지난 고향의 봄 도서관에서 내렸다.
창원 시내 여러 군데 흩어진 도서관 가운데 고향의 봄 도서관은 몇 차례 들린 적이 있었다. 반지하 격인 1층은 이원수 문학관으로 꾸며졌고, 그 위 유아들과 일반인의 열람실을 갖춘 창원시청에서 운영하는 도서관이다. 3층의 일반 자료실로 들어 서가를 살피면서 ‘밀양문학사’라는 서책을 찾아냈다. 수년 전 밀양문학회에서 엮어낸 향토 문학의 역사를 통시적으로 꿰뚫은 자료였다.
밀양은 내가 청년기부터 결혼 후 두 아들의 유년기까지 보낸 곳이다. 초등 교단에서 출발해 중등 전직 후도 밀양에 한동안 머물다 창원으로 와 정착했다. 그 시절 교류하던 문우들은 희미한 기억 저편이지만 문학회 살림도 열심히 봐주었다. 오래전 작고한 이재금 시인의 올곧음을 존경하고 구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정정한 김춘복 작가님을 비롯해 몇몇 지기들의 인품이 그립다.
밀양문학사에는 동서대 하강진 교수가 쓴 ‘밀양고전문학사의 전개’로 시작했다. 밀양에서 문학과 역사는 조선 개국 초 변 씨 삼현 변계량 부자를 뺄 수가 없다. 그분들이 태어난 수산에서 부곡으로 가는 초동면 국도변엔 세 분을 기리는 비각이 세워져 있다. 이후 사림에 우뚝한 김종직이 나왔고 일제 강점기는 열혈 독립운동가와 해방 후 고전학자 이운성도 기억에 남은 분들이었다.
서가에 기대어 밀양문학사 대강을 훑어 지난날 인물과 작품들을 떠올려보고 도서관을 나와 남산공원으로 올랐다. 남산은 서울을 비롯해 어디나 흔한 지명인데, 거기는 예전 창원 도호부가 있던 소답동에서 남향의 야트막한 동산이라 남산으로 불리는데 정상부에는 선사 유적 발굴지를 보존해 놓았다. 공원 숲길에는 나이 지긋한 사람이 맨발로 걷거나 운동기구에 매달려 몸을 단련했다.
향토사단이 떠난 자리 상가 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했다. 점심 식후는 도서관으로 다시 들지 않고 도계동으로 내려섰다. 평소 버스를 타고 지나다 차창 밖으로 보이던 낮은 구릉의 잔디밭이 궁금해 올라가 봤다. 택지를 조성하려다 발견된 고분군을 그대로 보존해둔 사적지였다. 선사시대와 가야시대 선인들이 살았던 흔적과 고분이 발굴된 현장을 향토 문화유산으로 보존한 현장이었다. 24.0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