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 풍운아, 소진, 장의 열전...
전국시대 풍운아, 소진, 장의 열전...
'개천에서 용난다'라는 말은 우리나라 7~80년대에 유행했던 말이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시절, 누군가는 공부 하나로 도서관 서생에서 일약 지방 수령 및 판검사 등 영감이 되었고, 누군가는 경제계를 평정하였다. 시대가 인물을 만든 것이다.
중국 전국시대는 혼란과 힘의 대결 시대였다. 누구라도 능력이 있다면 중용되었고, 역사를 좌지우지하는 인물이 되었다. 하지만 능력이라는 것, 지극히 주관적이며 이기적인 것이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더라도 군주의 입맛에 맞아야 하고, 당시 시대적 요건과 운이 따라야 했다.
중국 전국(戰國) 시대에는 백화쟁명의 시대로 사상과 인물의 시대였다. 맹자, 장자, 묵자, 순자, 양자 등 수많은 철학자들이 활동했고, 정치적으로는 오자, 손빈, 방연, 상앙, 소진, 장의, 범저, 공손연, 맹상군, 평원군, 여불위, 한비자, 이사 등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하기 전까지 구름 같은 영웅들이 스쳐갔다.
그중에서 단연 사람들의 입속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것은 소진(蘇秦)과 장의( 張儀)가 그중의 하나다. 그 이유는 사마천이 지은 <사기>에 출세하기 전까지는 하루 먹고사는 것을 걱정해야 하는 일반 평민 출신이 공부를 하여 일약 출세하고 천하를 좌지우지하는 모습이 너무 생생하게 꾸며져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기>에 묘사된 소진과 장의 열전 고사는 실제 역사적 사실인가?
어릴 적에야 당연히 사실일 것으로 생각했다. 왜냐하면 소진과 장의보다 불과 200여 년 뒤의 인물 사마천이 지은 역사적 기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저런 역사적 고사를 보다 보니 <사기>에 언급된 소진, 장의 열전은 사실과 소설적 허구가 다수 섞여 있다고 한다.
우선 <사기>에 언급된 소진, 장의 열전에서는 소진이 먼저 출사하여 진나라에 대항하기 위해서 나머지 6개 국가(제, 초, 조, 위, 한, 연)에 합종책을 건의하였고 성공하여, 6개 국가의 재상이 되어 천하를 호령한다고 하였다.
도중에 귀곡자 문하의 동문인 장의가 출세한 소진을 찾아오고, 고의로 굴욕과 수모를 주고 뒤로는 적극 지원해서 진나라에서 등용되어 자신의 정책을 지지해달라는 것이다.
장의는 소진의 지원으로 진나라 군주에 유세하여 일약 승상이 되었고, 진나라에 대항하는 여섯 개 국가를 각개 격파하여, 진나라와 각각 연합하여 이웃 국가의 침략에 대비하자는 연횡책을 주창하는 것이다. 특히 장의가 연횡책을 활발히 펼치는 시점은 소진이 제나라에서 자객에게 살해당한 이후부터라고 하였다.
그런데, 실제 역사적 사실은 약간 다른가 보다. 우선 최근 중국 티브에서 방영한 진(秦) 제국의 발전 단계부터 천하 통일까지 그려낸 < 대진제국> 드라마에서는 상기 내용과 달랐다.
우선, 전국 시대 활동 시기가 장의가 먼저였으며, 소진은 다음이었으며, 장의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준 인물은 소진이 아니라 주나라 황실 출신의 소문군(昭文君)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무슨 상관이겠는가? 역사학도, 고전 전문가도 아닌 보통 사람으로서 약 < 사기>에 묘사된 소진과 장의 열전의 그 소설 같은 입지전적인 내용이 너무 좋다.
우선 소진, 장의는 당대 최고의 기인이었던 귀곡자의 제자라고 한다. 귀곡자의 제자는 소진, 장의 말고도 유명 인물이 많다. 손빈, 방연, 채택 등이 그의 제자라고 했다. 한마디로 전국시대 말기의 내노라고 하는 인물은 거의 그의 제자라고 자천타천으로 말하곤 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실존 여부가 불투명한 가장 신비한 인물이 귀곡자 선생이다.
중국 드라마 상 묘사된, 장의에 대한 인물평은 명예보다는 실리 위주의 철저한 현실주의 정치가로서 묘사하였다. 그는 가난한 시기를 극복하고 일약 진나라의 승상이 되고 나서도 육국을 종횡무진 다니면서 세치 혀로 상대국의 약점을 빌미로 어느 때는 협박하고, 어느 때는 상대를 이간질 시키며, 어느 때는 이익을 나눠주고, 어느 때는 약한 모습을 보이면서, 최종 진나라의 이익을 위해서 고군분투했다.
이것은 진나라 내부 유학파, 왕권파 등에게 질시를 받았고, 돈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행동하는 장사치 같은 소인이라고 폄훼당했다.
장의의 말로(末路)는 다른 유명 인사에 비해서 아주 비극적이지 않았다. 진나라의 실질적 중흥의 기수였던 상앙은 효공이 죽자 반역죄로 능지처참을 당했고, 오기는 초나라 왕이 죽자 반대파들에게 살해당했으며, 소진 역시 제나라에서 살해당했으나, 장의는 비록 진나라에서 추방 당하지만, 자신의 모국인 위나라에서 승상까지 하다 병사했다.
그 이유는 장의는 비교적 유연한 성격의 소유자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비록 나라의 이익을 위해서 상대와 싸우긴 하되, 사생결단까지 가지 않고 상황을 면밀히 파악하여 최소한의 여지를 남겨두는 처세가 철천지원수를 만들지 않은 것이라고 한다.
소진의 삶은 더욱 드라마틱 하다. 사마천은 소진의 삶을 통해서 당시 도덕군자만을 존중하는 권문세가들의 분위기에 " 평민 출신인 소진이 여섯 제후국을 연합하여 동맹국으로 묶었다니, 이런 능력은 그가 비범한 인물이었음을 보여준다"라고 일침을 가했다. 소진은 결코 도덕군자가 아니었지만, 천하의 대세를 좌지우지했다.
사마천은 소진을 한마디로, "그의 수단은 권모술수와 임기응변에 강했다"라고 평가했다.
후세 사람들은 임기응변이야 그렇다고 하더라도 권모술수에 대해서는 "소진은 이리저리 사기 치고 다니며 나라를 팔아먹는 놈"이라고 혹평했다.
소진은 출세욕이 강해서 젊어서부터 제나라에 유학하고 유명한 귀곡 선생의 문하생이 되는 등 부단한 노력을 하여, 결국 출세한 인물이다.
소진과 장의, 그들에 대해서 사마천은 " 요컨대 소진이든 장의든 정말 겁나는 인물들이다"라고 한마디로 요약했다.
누구라도 세상을 살면서 출세하여 가문의 명예를 드높이고, 개인의 영달을 바랄 것이지만, 그것이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머리가 좋으면 공부를 잘해서 일약 영감이 되기도 하지만, 결코 이후 더욱 발전할 수 있다는 보장은 못 한다.
성공은 결코 노력과 실력만으로 결정되지는 않는가 보다. 행운이 더불어서 깃들어야 한다고 한다. 물론 노력의 바탕이 있어야 행운도 빛을 발한다고 한다.
<사기>에서 가장 재밌고 흥미로운 열전 중의 하나는 역시, 소진, 장의 열전이다. '苦盡甘來'가 그들의 표상이다.
[출처] 중국 전국시대 풍운아, 소진, 장의 열전...
[출처] 전국시대 풍운아, 소진, 장의 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