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순째 이야기, 유월의 하늘 아래 울린 함성(3)
[정해랑 연재소설] 노동자 신돌석씨의 하루 (168)
[삽화-백소(白笑)]
6월 7일에는 온라인 만민공동회가 열렸다. 신돌석씨도 지역 사람들과 함께 이 행사에 참여했다. 전국비상시국회의 추진위가 주체가 되어서 전국의 지역 부문이 참여하는 온라인대회였다. 해외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참여한다고 하였다. 원불교가 운영하는 곳을 빌려 본부를 두고 천여 명을 동시에 줌회의에 참가하게 하는 대회였다. 줌회의를 소회의실을 두고 운영할 수 있다는 것은 이전에 말로는 들었지만 처음 해보는 것이었다.
신돌석씨 지역에서는 시민단체 회원이 운영하는 사무실을 오프라인 현장으로 잡았다. 거기에 여섯 명이 모였다. 공동호스트는 김민호가 하였다. 한번도 해보지 않았다고 사양하다가 할 사람이 없으니 그냥 하겠다고 하였다. 진행은 최미숙이 맡았다. 젊은 활동가 한 사람을 서기로 하였다. 모두 여섯 명이 모였고, 지역의 노동운동단체 시민운동단체 사람들이 모여서 이십여 명이 참여하였다. 지역 활동으로서는 어느 정도 성공이었다.
온라인으로 입장하자 본부 화면이 나왔다. 원불교 소태산 기념관이라고 하였다. 흑석동에 있다고 하던데 신돌석씨는 가본 적이 없지만 차로 지나면서 본 적이 있었다. 원음방송이 있는 곳이었다. 거기 온라인 회의를 하는 시설이 잘 되어 있다는 말은 이전에도 들었었다. 평화대회를 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거기에 이번 대회를 주관하는 전국비상시국회의의 원로들과 실무진들이 있었다. 일부 본부로 가서 오프라인으로 참여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원로 신부님의 호소문 형식의 여는 말씀이 있었다. 항상 그렇듯 신부님은 가슴을 울리는 말씀을 하셨다. 특히 해외동포들을 향한 말씀이 마음을 뜨겁게 하였다. 시차에도 불구하고 미국 유럽 일본 오스트레일리아 베트남 등에서 이 대회에 온라인으로 참여한 사람들이 꽤 많았다. 고국을 떠나 해외에 가서도 이런 대회에 참여하는 마음은 무엇일까? 고국을 떠나 봐야 애국자가 된다더니 그런 것일까? 그것과는 다를 텐데 신돌석씨는 실감이 되지 않았다.
이어서 공동운영위원장의 주제 발표가 있었다. 오늘 토론해야 할 내용에 대한 기조 발제인 셈이었다. 현재가 왜 비상시국인지,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왔다. 신돌석씨로서는 이미 알고 있는 내용도 많았지만 조금 독특한 느낌을 주는 이야기들도 있었다. 온라인 형식으로 간명하게 잘 정리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듯하였다. 이 기조발제를 바탕으로 소회의실로 흩어져서 말하자면 온라인 분임토의를 하였다.
소회의실은 20여 개가 만들어진 듯하였다. 지역이나 부문에 속하지 못한 사람들은 본부가 따로 소회의실을 만들어 주어서 들어가게 하였다. 지금까지 세상이 변한 추이로 보면 멀지 않은 시기에 온라인으로 대부분 소통을 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런 날을 생각해서도 이런 대회는 참 좋은 발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사람이 생각을 했는지 박수를 보내주고 싶었다. 추진하는 과정에 고생했을 실무자들에게도 칭찬의 말을 전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지역 소회의실에 들어온 사람들은 대부분 지역의 노동운동단체 시민운동단체 사람들로서 아는 사람들이었다. 모르는 사람들도 있기는 했다. 사람들끼리 인사하고 소개하느라 시간이 꽤 들었다. 온라인 대회를 한다면 모르는 사람들이 개별적으로 많이 들어와야 성공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역 소회의실은 많이 모았다는 점에서는 성공적이었지만 아직 일반 시민들이 격의 없이 들어오게는 못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할 듯하였다.
소회의실에서 주어진 주제에 대해 토론이 있었는데 아직 온라인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지 활발한 토론이 이루어지지는 못했다. 단체나 소모임 등에서 줌회의를 할 때 강연 위주이거나 미리 준비된 안건들을 처리할 때가 많았다. 아직은 온라인을 통해서 활발한 토론을 한다는 것은 어려운 점이 있었다. 하지만 이것도 많이 극복이 되어갈 것이다. 이 정도 변화가 된 것만 해도 앞으로의 변화는 지금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가 된다고 보아야 한다.
지금이 비상시국이라는 것에 대해선 이의를 다는 사람들이 없었다. 명백한 사실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이 대회에 참여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시국을 보는 데에서는 미묘한 차이가 느껴졌다. 지역의 진보정당들에서는 참여했지만 민주당에서 참여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민주당과 친화관계가 있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자연히 시각 차이가 나타나기도 하였다.
[삽화-백소(白笑)]
신돌석씨가 보기에 지금 정국은 커다란 변환이 이루어지던 시기와 비슷한 점이 많다. 교수 종교인 등의 정권 비판 시국선언이 줄을 잇고 있고, 이곳저곳에서 정권과 노동자 시민 학생 들의 충돌이 빚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 충돌에서 강경대응이 잇따르고 있다. 민심은 정권을 등지고 있는데도, 그 정권의 핵심들은 그것을 전혀 모르거나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신돌석씨가 경험했던 1987년 직전과 2016년이 그랬다.
1987년의 6월민주항쟁은 박종철고문치사와 이한열직격탄피격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박근혜 퇴진 촛불항쟁은 백남기 농민 물대포 직사가 도화선이 된 것 역시 그렇다. 박종철고문치사가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다. 수배자를 잡으라고 하는 정권의 요구와 1계급 특진 등의 미끼가 대공경찰을 미쳐 날뛰게 하였고, 그것이 그런 참사를 빚어내게 하였던 것이다. 이한열 열사와 백남기 농민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지금도 그런 일이 벌어지지 말란 법이 없다. 아니 이미 밭에 뛰어든 멧돼지처럼 날뛰고 있는 이 정권에서는 참사가 벌어지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할 정도가 되어 버렸다. 경찰이 그 동안 제어되었던 폭력성을 서서히 드러내기 시작했다. 건설노조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이 그 신호탄이라면 한국노총 금속노련 위원장과 사무처장에 대한 무지막지한 탄압이 본격적인 폭력 행사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똑같은 것은 아니다. 다른 점도 많다. 가장 중요한 점은 그들 사이의 분열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이다. 1987년은 언론 통제 등 때문에 그 분열이 일반인의 눈에 드러나지 않았지만, 상당히 그 내분이 심각했다는 것이 뒤에 알려졌다. 2016년은 눈에 띄게 분열이 나타났고, 그것 때문에 탄핵이 가능해질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내분을 다소 무식한 방법으로 잠재웠다. 언제 그것이 드러날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지금은 아니다.
물론 그 내분이라는 것이 위기의 심화 정도에 따라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에 내분이 없으므로 위기가 아니라는 생각은 안이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저들도 학습 효과가 있기 때문에 내분으로 생기는 결과가 어떠한지는 알고 있는 것이다. 그것 때문에 쉽게 분열되지 않는다면 그건 생각해 보아야 할 점이다. 내분이 없다면 절차에 따른 탄핵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더욱이 끝까지 버티어야 한다는 정권의 의지가 작용한다면 더욱이 그렇다.
지금 민주개혁진보진영이 이 정권에 대해 여러 구호로 대응하고 있다. 퇴진이라는 구호를 제일 먼저 내걸고 끈질기게 주장하는 곳이 촛불집회이다. 그밖에도 여러 지역, 부문에서 퇴진 구호를 외친다. 이에 대해 섣부르다고 거리를 두던 민주노총이 양회동 열사의 분신 이후 퇴진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전농은 벌써부터 퇴진을 외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민중운동진영의 일부와 시민사회운동진영의 대부분은 퇴진은 아직 이르다고 말하고 있다.
퇴진에 거리를 두고 나온 구호가 심판이다. 사실 신돌석씨는 심판이라는 구호를 민중운동진영 일부에서 말할 때 퇴진과 무엇이 다른지 의아했다. 퇴진보다 약한 구호인가? 전단계의 구호인가? 심판이라는 구호를 주장하는 사람들 중 일부는 내년에 있을 총선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았다. 현재 국민대중이 정권을 심판하는 길은 선거를 통하는 길이다. 내년에 있을 총선을 통해 정권을 심판하자는 것을 그리 에둘러 표현하는 것이었다.
현재 윤석열 정권에 대한 태도를 신돌석씨가 거칠게 나눠 보면 다음과 같이 나눌 수 있을 것 같았다. 우선 민주진영이 정권을 빼앗겼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독재가 되살아났다. 다시 민주주의를 찾는 길로 나아가야 한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물론이지만 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독재의 강화에 윤석열이라는 개인의 캐릭터가 연결된다. 대체로 무식하고 무능력하면서도 아집만 강한 스타일이라는 인식이다.
이러한 생각은 크게 나누어 보면 문재인 정부가 잘했는데 정권을 빼앗겨서 나라가 엉망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 있고, 문재인 정권의 무능과 나약함 때문에 정권을 빼앗겼고 윤석열 같은 인간이 권력을 잡게 됐다는 생각이 있다. 물론 이런 생각들은 섞여 있고 오락가락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이런 생각의 공통점은 현재로서는 민주당 이외의 대안은 없다는 것이다. 그것으로 만족하느냐 미래에는 다른 정치세력이 등장해야 하느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삽화-백소(白笑)]
반면에 이들과 함께 정권 퇴진을 위해 싸우지만 민주당의 한계에 대해서 명확하게 선을 긋는 이들도 있다. 그리하여 새로운 진보정당을 추진하기도 하고, 민주당과 함께 넓은 공동전선을 구상하기도 한다. 이들을 비판하는 주장은 결국 이들이 민주당에 대한 비판적 지지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러한 비판은 경험에 의한 것일 뿐 명확한 근거는 없다. 여전히 민주당을 넘어설 수 있는 정치세력은 진보진영에는 아직 없다. 불편한 진실이다.
다음으로는 죽 쒀서 개 주었다는 생각이다. 때로는 줄 죽도 개도 없다고 냉소적으로 말하는 이들도 있다. 어쨌든 이들에게 민주당은 개와 같은 존재이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비유적인 표현이다. 민주당을 개같은 정당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그렇게 말한다면 국힘당 이준석 전대표가 자신의 대선 때 행보를 양두구육이라고 하면서 양 머리를 쓰고 개고기를 판 셈이라고 했더니 자기네의 대선 활동을 개고기 판 것이라고 했다고 펄펄 뛰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와 같은 생각을 가진 이들은 민주당이 대안일 수도 없고, 대안이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여기서도 당장에는 민주당과 거리를 두어야 하지만 연대와 연합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고, 민주당은 본질적으로 타도 내지는 배제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러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문재인 정권을 거치면서 많이 생겼다. 촛불항쟁의 결과가 이렇게 되니 그 실망감에서 나온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신돌석씨는 이 모든 생각과 주장을 들어보았고, 토론도 해보았지만 다들 그 나름대로 일리가 있으면서도 어느 것 하나 완전히 동의가 되지는 않았다. 이러한 생각들의 대립이 몇 년 지속되면서 정서적 차이로도 나타났다. 조국 전 장관의 문제만 보더라도 검찰의 무지막지한 탄압에 흥분하면서 그 이외에는 생각도 하지 않는 이도 있는가 하면, 그를 비판하는 논점이 조선일보와 크게 다르지 않은 진보적 인사도 적지 않게 보았다.
현재 정국과 이전에 급변하던 시기의 정국이 다른 점을 외부적 요인에서 찾는 사람들도 있다. 1987년에는 미국이 이 정권이 강경하게 나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2016년도 그렇다고 보아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미국이 그 패권을 잃어가면서 그것을 되찾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시기이고, 일본이 동북아 진출의 야욕을 드러내는 때인데, 그들의 요구에 딱 들어맞는 이 정부의 강경한 대응을 막아설 리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결국 외세의 지지와 지원을 받는 현 정권이 무지막지한 독재를 강화해 나갈 것이라는 예상이다. 그렇다면 낙관적으로만 볼 수 없는 정세라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시각도 있다. 결국 그것은 내인을 통해서 변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찌 보면 지금은 자주화를 위한 대중투쟁이 본격화될 수 있는 시기가 되었다고 보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신돌석씨는 그 점에 대해 반드시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새겨들을 만하다고 생각했다.
기다리던 6월 10일이 왔다. 신돌석씨는 36년 전의 함성을 떠올렸다. 그 동안 무엇이 변했고, 무엇이 변하지 않은 것일까? 신돌석씨는 아무리 생각해도 변한 것 하나 없다거나 죽 쒀서 개 준 꼴이라는 주장은 동의하기 어려웠다. 시위하다 경찰에 무지막지하게 두들겨 맞던 시절, 날아오는 최루탄에 언제 실명을 할지 죽을지 모르던 시절, 끌려가서 물고문 전기고문 당하고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수도 있는 시절이 있었다.
그런 시절에서 지금과 같은 상황이 온 것은 많은 사람들의 투쟁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은 강고하고, 그것을 무너뜨리지는 못하였다. 민중이 해방되는 세상은 못 만들었다고 해도 최소한의 민주적 원칙이 지켜지는 사회가 되어야 하는데 그도 안 이루어지고 있고, 쟁취한 것조차 다시 빼앗길 지경인 것은 맞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 동안 이룬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투쟁 할 수 있는 무기이다. 이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정치적 허무주의를 넘어서서 변혁에 대한 허무주의를 극복해야 한다고 신돌석씨는 생각했다. 괜히 남 탓하면서 떠들어대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지금이라도 정신을 차리고 가슴은 뜨겁게 머리는 냉철하게 하면서 6월 하늘 아래 울려 퍼지던 ‘호헌 철폐 독재 타도’의 함성을 생각해 보자. 지금 6월에는 ‘검찰독재타도, 자주평화수호’의 구호가 외쳐져야 하지 않을까? 신돌석씨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출처 : 통일뉴스(http://www.tongil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