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아픔 속 태백산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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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맥이라는 이름에 끌려 읽기 시작한 이 책은 읽는 내내 여태껏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즐거움을 선사해주었다. 전라도 사투리가 물씬 풍기는 향토적인 말투도 물론 흥미로웠지만, 그 보다 더한 즐거움은 내가 알지 못했던 역사의 한 부분을 조금씩 알아가는 것이었다. 소설 속에서 좌익과 우익의 사상 문제를 접한다는 것은 너무 즐겁고도 새로운 일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울고 싶을 때가 잦았다. 남편이 좌익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아내는 물론이고 온 가족이 고통받는 모습, 좌익 활동을 한 남편의 시체를 붙잡고 오열하는 아낙들을 생각하면 역시나 가슴이 먹먹해졌다. 아버지를 목청껏 불러보지도 못하고 아무도 없는 곳에서조차 조심스러워하며 아버지를 부르는 모습 때문에 울지 않을 수가 없었다. 태백산맥에는 다양한 계층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가난하지만 어떻게든 살아가려는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농민들과 포악하고 몰인정한 지주들. 그리고 자신의 이익밖에 모르는 파렴치한 국회의원들까지 그중에서도 가장 죽어나는 것은 역시나 농민들이다. 그들은 아무런 힘도 갖지 못한 그야말로 사회적 약자였다. 책 속에 등장하는 농민들은 대부분 소작인이었는데 그들은 나무껍질, 진달래, 쑥 등으로 겨우겨우 생명을 연장해나가는 그야말로 비참 그 자체였다. 읽으면서도 그 당시에 그렇게 살았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안쓰러운 모습들뿐이었다. 그렇지만, 영원히 약자일 것만 같았던 그들이 단체로 지주들에게 항의하던 부분은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는 것을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다. 그 때문에 지주들의 횡포가 더 심해져 소작인들은 더 궁핍해졌지만 한 번의 항의가 다음번을 만든 것으로 생각하니 발전하고 있는 소작인들에게 더욱 힘내라고 응원을 보내고 싶었다. 태백산맥은 읽는 구절구절마다 기억에 남지 않은 부분이 없었다. 주위의 아름다운 풍경을 묘사하는 글은 마치 시 같아서 특히나 인상 깊었다. 하지만, 내가 주목했던 부분은 풍경묘사가 아니라 좌익 활동을 하는 사람들의 가족애였다. 전쟁을 치르는 가운데에서도 가족애는 빛을 발했다. 자신의 아내가 못 볼꼴을 당한다는 소식에 죽을 각오로 집에 찾아가기도 하고 복수를 하려다 결국 자신이 죽임을 당할 처지에 놓이기도 하는 그 모습에서 가족의 참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고통을 감수하면서도 오로지 자신의 가족이 살아있기만을 바라는 가족의 무한한 사랑에 이런 것이 가족이라는 것을 느꼈다. 말로 행동으로 표현은 못 해도 항상 가족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에 커다란 감동을 받았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며 가장 궁금했던 것은 이 책의 저자인 조정래가 무슨 생각으로 이 책을 출판했을까 하는 것이다. 내가 읽은 태백산맥은 좌익 활동에 대해 더 정당성을 부여한 것처럼 보였다. 우익 활동을 하는 자들은 대부분 자신의 출세를 위해 무슨 일이든지 다하는 이기적인 자들뿐이었기 때문이다. 민족주의를 주장한 김범우도 좌익에서 등을 돌렸던 손승호도 결국은 모두 좌익 쪽으로 돌아선다. 책을 출판할 당시라면 정부의 감시가 없지 않았을 텐데 조정래는 태백산맥으로 무엇을 말하고자 한 것일까? 사회에 대한 반항을 나타내고자 한 것일까? 아니면 좌익과 우익은 그저 사상의 차이일 뿐이었으니 평등하게 봐 달라는 것일까? 같은 민족끼리 총을 들이대고 전투하는 모습. 이 부분은 숨 쉬는 것조차 잊을 만큼 긴장하면서도 집중해 읽었다. 물론 재미있는 부분이었기 때문이었지만 생각해 보니 그것처럼 비극적인 일이 있을까 싶었다. 좌익과 우익이 대립, 민족의 현실을 되돌아보는 좋은 계기였다. 읽는 동안 내가 가지고 있던 사회주의에 대한 낡은 편견은 물론이고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를 다시 한번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민족주의자였던 학교 선생님 김범우, 결국은 다시 사회주의자인 손승호, 군인의 신분이면서도 자신의 일에 회의를 느꼈던 심재모, 깡패 두목에서 염 사장으로 거듭난 염상구, 허약한 몸이지만 눈빛만은 강렬했던 안창민, 열렬한 사회주의자 이지숙, 이 외에도 소화, 들몰댁, 하대치, 외서댁, 강동식, 강동기, 배송오, 정하섭 등등 등장인물은 셀 수 없이 많았지만 각자의 개성만큼은 뚜렷하게 잘 나타났던 그 사람들을 지금 이 순간도 잊을 수가 없다. 아마 한동안은 태백산맥 후유증으로 고생 좀 할 것 같다. 읽고 난 지금에서야 느끼는 거지만 이 책이 왜 필독 도서인지 왜 작문 선생님께서 추천하셨는지 알 것 같다. ※ 상기 독후감은 제5회 나주시 독서왕 선발대회 ‘독서왕’수상작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