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世 府使公(諱;弘任)派
정인
항목 ID한자영어공식명칭이칭/별칭분야유형지역시대집필자
GC09000813 |
鄭𣲚 |
Jeong In |
도심(道心),석헌(石軒) |
역사/전통 시대 |
인물/문무 관인 |
충청남도 부여군 |
조선/조선 후기 |
이근호 |
[상세정보]
[정의]
조선 후기 부여 출신의 문신.
[가계]
정인(鄭𣲚)[1741~1794]의 본관은 동래(東萊)이며, 자는 도심(道心), 호는 석헌(石軒)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정진주(鄭震周)이고, 할아버지는 정창서(鄭昌瑞)이다. 아버지는 정언운(鄭彦運)이고, 어머니는 홍중량(洪重亮)의 딸 풍산 홍씨(豊山 洪氏)이다. 첫 번째 부인은 김응징(金應徵)의 딸 안동 김씨(安東 金氏)이고, 두 번째 부인은 권상흠(權尙欽)의 딸 안동 권씨(安東 權氏)이다.
[활동 사항]
정인은 1741년(영조 17) 부여에서 태어났다. 1774년 식년시 문과에 급제하였고, 장릉참봉을 거쳐 승정원의 사변가주서와 가주서를 지냈다. 1776년(정조 즉위년) 6월 황준(黃晙)·홍성(洪晟) 등과 연명하여 홍인한(洪麟漢)과 정후겸(鄭厚謙) 등의 처벌을 요청하는 상소를 제출하였다. 1782년에 영우원별검을 거쳐 성균관전적을 지냈으며, 영조(英祖)를 세실(世室)로 결정하고 원자(元子) 정호(定號)를 종묘에 고유할 때 관세위(盥洗位)로 참여한 공로로 가자되었다. 이어 예조좌랑과 경상도도사를 거쳐 사간원정언·병조정랑·사헌부지평 등을 역임하였다. 정인은 1794년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정인은 1796년 관찰사의 요청에 따라 효행으로 정려를 하사받았고, 1808년(순조 8)에는 승정원도승지에 추증되었다.
출처: 디지털부여문화대전
註: 본란 제254호와 관련됩니다.
첫댓글 군태님의 좋은정보글 잘공유하고 흔적 남겨봅니다
字가 평이 하면서도 의미가 깊어 보임니다
정인(鄭𣲚)[1741~1794] 선조에 관련한 내용 잘 봤습니다.
정인(鄭𣲚) 선조의 가계(家繼)와 예조좌랑과 경상도 도사를 지냈으며 사후에 승정원 도사를 하사받은 이력사항 잘 읽었씁니다.
문과급제 자료만 있었는데 용케도 찾아주셨네요. 귀중한 자료 옮겨갑니다. 감사합니다.
6세 필-춘노-숭-지형- 승원-해-귀령-사-난손-광세-충량-수후-인수-사경-홍임-유석-진주-창서-언운-25세/인(鄭𣲚) 으로 연결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