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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알바트로스
제47차 정기합평회
(2022. 10. 20.)
순서 | 제목 | 작가 | 합평 담당 |
1 | 금조하조 | 서소희 | 이미경 |
2 | 등과 중 | 엄옥례 | 이미란 |
3 | 기억상실증-골 닳은 언니 | 변미순 | 이숙희 |
4 | 다행이다 | 옥경자 | 이시언 |
5 | 김호중 영화 | 김치주 | 채정순 |
6 | 사우디 공주 | 백금태 | 최선화 |
7 | 벼리 | 안연미 | 공도현 |
8 | 어쩌다 10년 | 김영희 | 김 경 |
9 |
금조하조今朝何朝 / 서소희
1. 이른 아침 집을 나섭니다. 수영강습을 위해서랍니다. 수영장까지는 자전거를 타고 가지요. 아파트를 막 벗어나면 자전거 도로가 있어요. 그것은 얼마가지 못해 갑자기 사라져요. 그 도로가 저 멀리 내가 가고자 하는 공단까지 이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2. 그래요, 수영장은 공단에 있답니다. 버스를 탄다면 정류장에 내려 한 정거장 정도 걸어가야 하지요. 그것이 번거로워 자전거를 이용해요. 요즘은 가을이라 자전거를 타기에 최적의 날씨랍니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날씨와 하루하루 변해가는 가로수의 나뭇잎을 바라보는 재미가 있답니다.
3. 달리다 보면 대학교문을 두 번 지납니다. 그 문들을 지나 대학교 담장을 벗어나면 아주 커다란 사거리가 나와요. 사거리를 건너면 자전거 도로가 또 나타나요. 뜬금없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반복하는 요상한 것이랍니다. 그때부터는 속도를 내며 막 달리지요.
4. 드디어 마지막 신호등을 만나요. 그렇다고 마지막 횡단보도는 아니랍니다. 또 한 번 신호등 없는 건널목이 있답니다. 얼마 전까지는 될 수 있으면 신호등을 만나면 내려서 파란불을 기다렸어요. 요즘은 간이 부었나 봐요. 신호들을 보고 용감하게 차들과 같이 달리기도 하니까요.
5. 수영장에 도착하면 십이 분이 조금 안됩니다. 전에는 십칠 분이나 걸리는 거리였죠. 오분을 줄였어요. 오분은 자전거를 타고 일킬로미터를 갈 수 있는 시간이랍니다. 이럴 때 조심해야 해요. 다시 신호등마다 멈추며 느리게 움직여야겠어요. 빨리 오는 것보다 조금 느리더라도 안전한 것을 택해야겠지요. 출근길이라 사람의 마음이 바쁠 수 있어요. 신호등이 바뀌려 하는 그 순간 사고가 일어나기도 하지요. 급하게 먼저 가려는 사람과 사람이 일을 내는 법이거든요. 나도 그런 적이 있답니다.
6. 좌회전 신호 앞에서 차가 뜸해 무단횡단을 할 작정이었답니다. 그 때 분명 좌회전하려는 차가 보이지 않았어요. 그런데 굉음을 내며 보이지 않던 자동차가 달려왔어요. 몇 초 남지 않은 신호를 받으려 했던 것이겠지요.
7. 가슴이 철렁하며 이래서 사고가 나는 구나 싶었지요. 우리는 짧은 거리를 두고 멈추었어요. 서로가 놀란 눈동자를 쳐다봤답니다. 운전자도 얼마나 놀랐는지 움직이지를 못하더군요. 물론 내가 잘못했어요. 그 후로는 무리해서 신호등을 건너지는 않는답니다.
8. 수영장에 도착해서 운동을 시작할 때 하기 싫다는 생각이 또 마음을 지배하죠. 물론 수영하는 내내 몸이 고통스러워요. 고통스런 운동을 왜 하는지 가끔 자문을 하고는 하지요. 하지만 나는 답을 알고 있답니다.
9. 강습이 끝나면 뭔가를 해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답니다. 고통 뒤에 아픔을 잊으려 호르몬인 도파민 혹은 아드레날린이 분비된다고 하지요. 그 때문일까요.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은 몸이 기분 좋은 평화를 찾아요. 하루의 출발부터 나와의 싸움에서지지 않았다는 생각과 몸의 개운함과 나른함이 나를 지배하지요. 그리고 기분 좋은 열이 나고 힘이 솟는답니다.
10. 수영을 끝내면 집을 향해 다시 자전거 페달을 밟습니다. 출근시간이 지나서 거리가 조용합니다. 네 번의 신호등과 두 번의 횡단보도를 지나며 왔던 길을 되돌아갑니다. 아, 마지막 신호등을 지나면 오르막길입니다. 그때부터는 서서 페달을 밟아야 해요.
11. 길은 점점 더 가팔라집니다. 온 몸에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려요. 그야말로 허벅지가 찢어질 것 같아요. 아, 너무 고통스러워요. 운전을 배우다 포기한 것이 새삼 후회되는 순간이랍니다.
12. 젊은 시절에 운전을 조금 했답니다. 그렇다고 능숙하게 한 것은 아니고 남편이 술을 마셨을 때 대리운전을 했지요. 지금도 남편만 옆에 태우면 운전을 할 수 있답니다. 이제는 그것도 하기 싫어요. 이상하게 운전을 하려 생각하면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온답니다. 이제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으니 운전이 더 무서워져 버렸어요. 사실 자전거도 탈 때마다 겁이 납니다. 힘도 들고요. 그래도 어쩝니까. 이거라도 타니 조금 먼 거리는 편하게 갈 수 있는 걸요.
13. 아참,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두 가지랍니다. 하나는 끝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는 방법이 있고, 두 번째는 집 가까운 곳에 있는 대학교의 작은 축구장을 지나 숲길로 가는 방법이 있답니다 숲길이라고 해서 험하고 긴 길은 아니고 작은 언덕이지요. 요즘은 그 길을 애용한답니다.
14. 숲의 이름은 궁산이에요. 활 모양을 닮았다 해서 지어진 이름이지요. 도심 속에서 숲길을 걸을 수 있다니 얼마나 좋아요. 그 길을 걸을 때는 사는 게 또 새삼 행복하답니다. 오늘도 자전거를 끌고 숲길을 걸어봅니다. 궁산이 조금씩 단풍이 들어가고 있답니다. 연두색도 아니고 겨자색도 아닌 잎들이 영역을 넓히고 있네요. 수수수 나뭇잎 부딪치는 소리도 들려오네요.
15. 숲에 들어서자마자 쥐꼬리망초가 풀 속에서 빠꼼이 얼굴을 내밀고 있네요. 이질풀이 분홍꽃을 피웠어요. 보라색의 쑥부쟁이와 벌개미취와 하얀 구절초도 피었답니다. 여기저기 가을꽃들이 한창입니다.
16. 드디어 아파트 주차장에 도착합니다. 지금부터 자전거를 세우고 홀가분하게 걸어 갈 겁니다. 집에 가면 따뜻하고 쓴 커피를 먼저 마셔야겠어요. 아, 힘든 아침의 일상이 끝났어요. 매번 힘들다, 하지말까 하면서도 그만두지는 않네요.
17. 시작은 고통스럽지만 운동 후에 찾아오는 개운함으로 세상이 시원하게 느껴집니다. 또 거리에서 만나서는 산책 나온 강아지들, 계절 따라 색깔이 바뀌는 가로수와 풀꽃과 햇살이 번지는 하늘과 구름, 그 풍경과 풍경 사이를 흐르는 바람······. 이 모든 것이 나를 행복하게 합니다. 그래서 힘들다, 힘들다 하면서도 아침의 일상이 바뀌지 않는 것이겠지요.
18. 가을바람이 홍시같이 붉어진 뺨을 스치고 갑니다. 상쾌하네요. 불현듯 시경 한 구절이 떠오릅니다. ‘금석하석今夕何夕견차양인見此良人(이 얼마나 좋은 저녁인가 님을 만났네)’ 그 구절을 이렇게 바꾸고 싶어요. ‘금조하조今朝何朝견차양풍見此凉風(이 얼마나 좋은 아침인가 시원한 바람을 만났네)’ . 지금 이 순간 바람도 시원하고 마음도 시원하고, 이 얼마나 좋은 아침인가요.
등과 중 / 엄옥례
1.요즘 정치계에서는 한 음절의 단어로 인해 회오리바람이 불고 있다. 그 낱말은 바로 ‘등’과 ‘중’이다. 딱, 한 글자로 인해 ‘검수완박’이 ‘검수원복’으로 되돌아갈 판국이다.
2.일명 검수완박은 검찰의 수사권을 대폭 축소하기 위한 법이다. 6대 범죄에 해당하는 부패, 경제, 선거, 공직자, 방위산업, 대형 참사에 대한 범죄를 수사할 수 있었는데, 부패, 경제 범죄 즉, 2대 범죄만 수사할 수 있도록 하는 법이다.
3.입법 당시의 법안에서는 검찰은 부패, 경제 범죄 중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 범죄만 수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법안을 통과시키는 과정에서 검찰은 부패, 경제 범죄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 범죄를 수사할 수 있다고 중이 등으로 바뀌어서 의결된 것이다.
4.중과 등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중은 나열한 것 가운데서 선택된 것이라는 뜻이고, 등은 열거한 것 외에도 같은 종류의 것을 더 할 수 있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잘못 표기로 인해 상대방과 다툼이 벌어졌을 때, 취지는 그런 것이 아니라고 해봐야 소용이 없는 것이다.
5.검수완박이 검수원복이 될 사태를 목격하며 개인적으로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본업에 얼마나 철저해야 하는지를. 나라의 입법기관으로써 엄중한 법안의 자구 확인을 놓쳐서 벌어진 일이니 말이다.
6.문학단체에서 편집 일을 맡고 있다. 원고를 정리하다 보면 적절하지 않은 단어를 구사하거나 띄어쓰기의 오류로 인해 의미가 모호한 경우를 흔히 본다. 또한 길게 쓴 문장에서 오류가 발생하는 경우도 있고, 적절하게 단락을 짓지 않은 작품도 더러 발견한다.
7.그러고 보니 내 눈에 들보는 못 보고 남의 눈에 티끌만 지적했던 것 같다. 나도 가장 적당한 낱말 쓰기를 등한시할 때가 있었다. 내가 쓰고자 하는 단어가 괜스레 멋져 보여서, 혹은 지적으로 보이기 위해 더 적확한 말을 뒷전으로 밀어버릴 때가 있었다. 아리송한 느낌이 드는 낱말은 사전을 찾아서 확인해야 하는데 귀찮아서 그냥 적는 경우도 있다. 요즈음은 컴퓨터에서 글을 쓰니까 인터넷 사전에서 쉽게 확인해볼 수 있는데도 게으름을 피웠다.
8.문인이라면 금과옥조로 여겨야 할 일물일어설一物一語說이 있다. 하나의 사물을 나타내는 데는 단 하나의 단어밖에 적합한 게 없다는 말이다. 플로베르는 제자 모파상에게 온 세상에 완전히 똑같은 두 알의 모래나, 두 개의 손이나, 두 개의 코가 없다면서 뚜렷이 개별화하고 다른 모든 인물이나 사물이 구별될 수 있도록 표현하라고 했다. 모름지기 작가는 가장 적확한 단어를 찾기 위해 끝까지 자신을 몰아붙여야 한다는 의미다.
9.우리 속담에도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이 전해온다. 문인은 글로 말하는 사람들이며 글을 무서워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최근 논란의 불씨가 된 중과 등 같은 낱말을 적절하게 표현해야 할 뿐만 아니라 부호 하나까지도 세심히 살펴 가며 넣고 빼기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글자 하나의 효과를 뼛속 깊이 새겨봐야 할 사건이 눈앞에 있다.
기억상실증 - 골 닳은 언니 / 변미순
1) 올해는 내 나이 예순이다. 예순입문기가 거창하다.
2) 대명절 추석 연휴직전 코로나 확진을 받았다. 며칠 전 형제자매들끼리 부산 해운대로 1박 2일 여행길에 감염된 듯하고, 여행갔던 인원 반이 확진되어 각자의 방에서 명절을 보내야했다. 한달전 확진으로 앓았던 여동생이 나의 케어담당이 되어 수시로 밥과 과일을 날랐다.
3) 확진자가 누워있는 실내를 피해 명절이라고 모인 비감염자 아이들은 연휴내내 마당에서 가상 캠핑놀이중이었고, 그 소리가 끝없이 들려오니 그리 심심하지도 않았다. 제일 하기 싫어하는 다림질도 하고, 환절기니 옷장 정리도 하였다. 움직임이 없으니 소화불량, 체증으로 하루는 배가 너무 아팠고, 확진 후 내내 식은땀이 흘러 불편하였으나 크게 아프지도 않았다. 그렇게 그럭저럭 5일이 지났다.
4) 모 대학병원 격리병동에 누워서 새로운 정신이 들었다. 쉼없이 묻는다. 내가 왜 여기에 누워있고, 무슨 상황인지 이해될 때까지 묻고, 기억을 떠 올리며 또 묻고, MRI 검사 마치고 와서도 다시 묻고 물었다.
5) 정리하면 월요일 오후 5시경 격리기간 중 두 번째 산책을 짧게 다녀왔고, 그 이후 나는 화요일 새벽 3시까지 10시간의 기억이 하나도 없다. 그 시간동안 난 모든 가족들의 질문에 말도 안되는 답을 하여 집이 아수라장이 되었다는 것이다.
6) “이모, 코로나 격리중인데 왜 마스크도 안끼고 나오셔요”
“내가? 코로나? 무슨 소리하느냐? 코로나가 뭐야?”
7) 갑자기 전 식구가 모였고, 나에게 전혀 기억이 없는 일이 벌어졌다. 식구들을 알아보기는 하였으나 1년전 조카가 결혼했다는 것을 몰랐다. 외손녀 도경이를 알기는 하였으나 나이를 몰랐다. 취업해 서울서 근무하고 있는 조카를 대구에서 같이 산다고 했단다. 1년전 딸의 분가 사실을 알지 못한다고 했단다. 코로나 격리 5일째 한순간 초 비상상황이 발생하였다.
8) 친정 어머니의 치매 8년간을 지켜보았던 가족 모두는 나의 기억이 먼지처럼 사라져버린 답변들에 혼줄이 나버렸단다. 검색을 통해 코로나 후유증으로, 스트레스 등으로 단기기억상실일 수 있다로 정리하는 등 별별 갑론을박이 이어졌단다. 지인인 모 의사와의 상담에서 뇌경색 등이면 빠른 조치가 필요하므로 응급실 가는 것이 권해졌고, 늦은 9시, 대학병원 격리병동 응급실에 입원했다.
9) 코로나 확진자라 담당의사와는 cctv로 문진하였고, 피검사, CT촬영 등 각종 검사가 진행되었으나 나는 계속 여기가 어디며, 오늘 날찌와 왜 여기 와 있는가 등의 같은 질문만 수십번 하였단다.
10) 화요일 새벽 2시경, 기억잃은 지 9시간만에 부산 여행, 코로나로 자가격리중, 딸 분가, 반려견 중 최근 “누리”가 죽은 것, 등등 모른다 하였던 일들을 천천히 하나둘씩 기억해 내었다.
11) 새벽 MRI 촬영을 마치고 와서도 이곳에 오게된 과정, 내가 무엇을 기억하지 못하였는지, 어떻게 답을 하여 가족들을 놀라게 하였는지 딸아이에게 오만가지를 물었다. 또 기존의 내 기억들은 지금 맞는지 계속 일자별로 확인해 내며 잠도 자지 않고 기억 소환을 계속하였다.
12) 새벽 4시경, 격리병동 벽에 걸린 전화가 울렸다. 의사와 딸아이의 통화가 밖으로 흘러나왔다. 뇌혈관 깨끗, 뇌졸증 소견은 일단 없다는 말에 딸아이와 나는 서로 마주보며 미소를 지었다. 혈액검사 결과가 나오는 오전 11시경 퇴원이 가능하다는 말을 듣고 나와 딸아이는 잠시 눈을 붙였다.
13) 제정신으로 돌아온 나의 귀가는 과거에서 장원급제한 일보다 더 다행이라는 박수와 나의 존재가 대가족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알았다며 동생들은 눈물을 보였다. 가족 모두가 각자의 건강관리를 잘해야한다는 다짐의 일이 되었다.
14) 정밀검사를 위해 금식 후 피검사, 뇌파검사까지 다 해야한다며 예약해 두었고, 최종 검사 결과를 듣기위해 일주일 뒤 신경과 담당의사 앞에 마주 앉았다.
15) 뇌혈관, 뇌혈류, 뇌파, 간질, 갑상선, 피 검사 등등 모든 검사에서 정상 소견이었다. 일과성 고상 기억상실증이라는 병명을 내렸다. 50대 이후 여성들에게 많이 발생하고 평생 1회성이니 크게 걱정하지 말라고 하였다. 단기(8~24시간) 그 순간은 뇌의 기억장치인 해마가 정지된 상태이므로 다른 기억은 모두 회복하지만 그 순간 기억은 평생 회복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16) 아무리 그래도 내가 무슨 이유로 그렇게 되었는지 납득할만한 원인을 알고 싶었다. 내가 하려는 질문을 아시는지 의사의 명쾌한 설명이 먼저 있었다. 핸드폰의 성능이 아무리 향상되어도 한꺼번에 많은 앱을 사용하고, 작동을 빠르게 진행하다보면 한번씩 먹통이 된다. 먹통된 순간 입력한 몇가지는 날아가지만 재부팅하면 다시 멀쩡한 기계로 작동되는 것처럼 정상생활이 가능한 것이란다.
17) 순간 60년간 사용한 “나”라는 기계가 생애 처음 60년만에 먹통 증세가 온 것이 오히려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별 수 없는 원인을 굳이 나열하지 않아도 재부팅되어진 상태가 감사할 뿐이었다. 다른 질문을 더 이상 할 필요도 없었다.
18) 운전은 할 수 있을까 걱정되었고, 강의는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염려되었으나 멀쩡하게 그 전과 다름없는 일상이 이어지고 있다. 스스로 안다. 다른 이보다 3배나 많은 일을 하고 있으니 정신적, 육체적 무리중이었다. 코로나 확진으로 격리되어 갇힌 생활중 식은땀이 내내 흘렀고 그것이 나는 몹시 불편하였다.
19) 운동을 너무 많이하여 연골이 닳아 무릎이 아프다는 조카에게 뭐든 무리하면 그러니 조심해라 하면서 운동 중독증 있는 여동생에게 연골 검사 한번 해보라고 핀잔을 주었다.
“뭐래요? 언니는 골이 닳았잖아. 일 좀 줄이면 좋겠구만”
그 날 이후 난 “골 닳은 언니”가 되었다.
다행이다 / 옥 경 자
(1) 몇 년 전 사고로 경추를 다친 동생은 하지 장애 1급이다. 지체 장애 1급이라 함은 혼자서는 보행과 생활이 힘들다는 뜻이다. 다치기 전, 부모님에게는 다른 집 열 아들 부럽지 않은 듬직한 맏이였었다. 책임감 있고 긍정적이며 밝은 성품이었다.
(2) 재활병원에서 퇴원하는 날, 삶의 의욕도 웃음도 잃어버린 동생은 부모님 가슴에 커다란 대못을 박아놓았다며 펑펑 울었다. 맏아들에게 의지하던 부모님은 동생이 다치고 나서부터 친정에 무슨 일이 생기면 맏딸인 내게 제일 먼저 전화를 했다. 그것이 동생에게는 또 마음의 빚이었다. 그래도 누나가 있어서 다행이다. 이렇게 말하면서 웃을 때마다 그것이 비명인 줄 눈치채지 못했다. 이제는 장애를 받아들인 줄로만 알았다.
(3) 설상가상으로 올케의 건강검진에 이상이 생겼다. 대장암이라 당장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동생의 머릿속엔 삶에 대한 절망과 그래도 살아야 한다는 책임감이 줄다리기했을 것이다. 며칠을 굶고 잠도 자지 않더니 내가 죽일 놈이다. 경찰이 드디어 나를 잡으러 왔다고 하면서 헛소리를 해대기 시작했다.
(4) 정신신경과 병동, 병실에 들어서니 웅크리고 앉아 있는 동생이 눈에 들어왔다. 동생의 얼굴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표정이 일그러져 있었다. 환청이 들리는지 혼잣말로 묻고 대답하기를 반복했다.
(5) 조용히 침대 머리맡에 앉았다. 아침에 온 밥상이 그대로 놓여있었다. 동생이 갑자기 눈동자를 빠르게 움직이더니 침대 모서리를 무섭게 움켜쥐었다. 안간힘을 다하여 두 손으로 움켜잡고는 나를 올려다봤다.
“누부야 내가 이렇게 꽉 잡고 있으면 경찰이 못 잡아 가겠제?”
하며 동그랗게 몸을 말아 대롱대롱 매달린다. 그리고 불안한 눈빛으로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이렇게까지 무너진 동생을 보자니 내 마음도 천 길 낭떠러지에 서 있는 것만 같았다.
(6) 침대를 움켜잡은 동생의 손을 조심스럽게 풀었다. 비 맞은 풀잎처럼 심하게 떨고 있었다. 그 심정을 내가 모를까. 가슴이 송곳으로 찌르는 듯 아파왔다. 마른 입술을 달싹거려 작은 소리로 고맙다는 말을 몇 번이나 하더니 동생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까칠한 볼을 타고 쉴새 없이 흘러내렸다.
(7) 무겁다고 생각하면 한없이 무거운 것이 삶이고 내려놓기로 작정하면 한없이 가벼운 게 삶이기도 하다. 이것도 저것도 선택할 수 없다고 생각한 동생은 하루에도 몇 번씩 현실과 꿈속을 오가는 듯했다.
(8) 며칠을 씻지도 않고 먹지도 않던 동생이 씻어야겠다고 의욕을 보였다. 동생을 휠체어에 태워 샤워실로 데리고 갔다. 씻기에 필요한 최소한의 용품이 여기저기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동생의 빈 마음을 보는 듯하였다. 눈물이 나서 들키지 않으려고 샤워기를 틀어 먼저 내 얼굴부터 적셨다.
(9) 샤워를 마친 동생은 내 손을 잡고 나지막이 말했다.
“고맙다 누부야!! 누부야가 있어서 참 다행이다.”
“나도 네가 있어 참 다행이야!”
병실에는 힘겹게 날갯짓을 하는 파랑새가 한 마리 날아들고 있었다.
김호중 영화 / 김치주
1 )인생은 뷰티풀 영화를 보러 갔다. 김호중이는 스무 살 때 이탈리아 유학으로 떠났다. 그 배경으로 하여 영화를 상영했다.
2) 어릴 적에 갔을 때 음악에 목말라 유명한 테너 이응광씨 에게 선배님 뵙고 싶습니다. 라며 부탁했더니, 흔쾌히 스위스로 오라는 말을 듣고, 기차를 타고 스위스로 갔다. 비가 오는데 우산을 들고 반갑게 맞아줬다.
3 )한식으로 식사를 하고 외출하자는 말을 듣고 따라간 곳이 버스정류장이다. 이응광씨의 포스터가 붙어있었다. 부러웠다고 했다. 거리에 클레식 기타리스트가 연주하고 있었다. 연주에 맞추어 선배님과 파바로티 네순도르마 등 몇 곡을 불렀다. 이제는 호중이가 배우는 사람이 아니라 세계의 모디션과 함께 거리공연을 하는데 이태리에서 박수 갈채를 받는 모습을 보며 만감에 교차했다.
4)지금 서른두 살의 나이에 작사와 작곡가를 대동하고 이탈리아에 왔지만, 아무것도 변한 것은 없었다. 이탈리아 음악 본고장에 오니 감외가 새롭다고 했다.
5 )스크린X 관에서 가을과 어울리는 감미로운 클레식 공연 무대는 마치 콘서트장에 있는 듯한 현장감으로 감상할 수 있었다.
6 ) 이번 영화는 아름다운 이탈리아의 풍광 속에서 원태현님 이주호님과 호중이 세사람이 작사 작곡으로 이탈리아 음악 여행을 담은 ‘인생은 뷰티풀’ 비타돌채 OST 앨범에 그의 인생을 함축한듯 음악이다. 밝고 경쾌한 리듬으로 입가에 흥얼거리게 된다.
7 )‘슬픈 등은’ 사랑과 이별에 대해 털어놓은 생각에 멜로디와 가사를 입힌 토크발라드 곡이었다.
8 ) 세계 3대 테너 중 한 사람인 루치아노 파바로티께서는 고인이 되었지만, 파바로티 재단에서 호중이는 연락을 받고 갔다. 홍보대사로 위촉장을 받았다. 파바로티 관계자께서 거장의 뜻을 받아 아시아에서 홍보를 해줄 것으로 부탁했다.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굳은 결심을 하고 사명감을 가졌다.
9 )어릴 적 김범수 가수 CD를 사러 갔다가 루치아노 파바로티 음악을 듣고 깜짝 놀라 성악공부를 어렵게 시작하여 테너가 되었다고 했다. 루치아노 파바로티님의 음악은 땔려야 뗄 수 없다. 파바로티 박물관에도 안내를 받고 둘러보았다. 호중이에게는 최고의 우상인 파바로티 네순도르마 음악은 이 생명 다할 때까지 잊지 않고 노래할 것이라 관계자분께 말씀드렸다.
10 )그리고 시각장애를 가진 안드레아 보첼리야 팝페라 가수 선생님 집에 인사차 갔다. 후각은 예민하여 말소리만 듣고 준비되었느냐고 하는 말에 “네”라고 아무 생각 없이 대답하는 호중이였다.
11 )그런데 선생님께선 피아노 건반을 치는 소리를 듣고 ‘별은 빛나것만’ 아리아를 부르고, 두 번째 네순 도르마 노래를 불렀다. 선생님께서 벌떡 일어서더니 젊은 음성이라 힘이 있고 잘 부른다고 극찬을 하시며 안드레아 보첼리 선생님과 협연을 하자고 하시며 위촉장을 주셨다. 호중이는 너무 기뻐했다.
12 )어릴 적 열한 살 되던 나이에 아버지 어머니께서 이혼하고 할머니 손에 자랐지만 겨우 고등학교 들어가자 할머니마저 대장암으로 저세상으로 보내고, 막노동하고 끼니를 이어가지 못해, 라면 하나를 사서 반을 잘라 물을 많이 붓고 두 끼를 이어갔다고 했다.
13 )그러나 살아가는 것이 너무 힘이 들어 고민하고 있었다. 조폭 부두목이 먹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해준다는 말을 믿고 조폭의 술렁이에 빠져있는 것을 고등학교 선생님의 설득으로 음악을 할 수 있었다.
14 )그런 역경을 이겨내고 성악의 길로 나아갈 수 있어 이제는 대가 들게 인정을 받는 음악가의 길로 성장하고 있다. 김호중이의 아름다운 인생을 담은 영화는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스크린X 정통으로 개봉했다.
15 )오케스트라 웅장한 리듬과 호중이의 힘이 있는 웅장한 음성으로 클레식 연주에 맞추어 노래하는 모습은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었다. 인생은 아름다웠다.
사우디 공주 / 백금태
1) “사우디 공주, 안녕.”
사람들이 나를 보면 그렇게 부른다. 사우디는 사우디아라비아를 줄인 말이다. 모르는 사람들은 나를 왜 그렇게 부르는지 의아해한다. 나도 사우디 공주라 불릴 때마다 마음이 편치 않다.
2) 늦게 배운 도둑 날 새는 줄 모른다고 했다. 내가 그 짝이다. 파크골프에 푹 빠져 지낸다. 시작한 지 몇 년 세월이 흐르다 보니 골프 치는 실력은 처음이나 지금이나 제자리걸음이지만 같이 즐기는 사람들과의 팀워크는 국가 수준급이다. 안 보면 보고 싶고, 못 만나면 궁금해 미칠 지경이다. 구장에 결석이라도 하는 날이면 전화통에 불이 난다. 안 나가고는 못 배길 지경이 된다.
3) 푹푹 찌는 삼복더위였다. 밤새 열대야의 심술로 눈이 퀭한 채 차를 끌고 골프장으로 향했다. 덥다는 핑계로 빼먹을 수도 없었다. 팀원들의 성화를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아침부터 에어컨을 최상으로 올린 채 구장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미리 온 언니뻘 되는 팀원이 두 팔은 휘두르며 나를 격하게 반겨주었다. 나도 차 문을 닫는 둥 마는 둥 그녀에게 달려가 끌어안았다. 둘은 한참 만에 만난 것처럼 한 몸이 되어 폴짝폴짝 뛰었다. 누가 보면 이산가족 상봉이라도 하는 줄 착각할 지경이었다. 매일 만나다시피 하는데 무엇이 그리 반가운지! 아침마다 펼쳐지는 광경이었다.
4) 구장에 들어섰다. 팀원들이 서너 명씩 짝을 이루어 라운딩을 시작했다. 나도 한 팀에 끼었다. 샷을 날려 그린에 공을 멋지게 올려놓은 이에게 박수를 보냈다. 욕심이 들어간 공이 오비를 내면 아쉬움에 ‘아!’ 탄성이 터졌다. 재수 좋은 날이면 제멋대로 굴러가던 공이 자석에 끌리듯 홀 구멍으로 빨려 들어간다. 홀인원이다. 그런 날은 거나하게 밥을 사거나 아니면 얻어먹는다. 홀인원도, 오비도, 버디도 별로 문제 될 것이 없다. 그저 즐겁다. 구장에서는 언니가 되고, 오라버니가 되고, 아우가 되어 하하 호호 어울리다 보면 하루해가 짧다.
5) 팀원들과의 라운딩으로 한창 재미에 빠져 있을 때 구장 관리사무소에서 방송이 나왔다. 주차장에 시동이 걸려있는 차가 있다고 했다. 차 번호도 말하는 듯했지만 떠드느라 미처 듣지 못했다.
“엄청 정신없는 사람이네. 어째 시동도 끄지 않고 나올 수가 있지!” 내 말에 옆에 있던 팀원들도 한마디씩 거들었다.
“맞아. 얼마나 구장에 빨리 오고 싶었으면 그랬을까?”
구장에 있는 다른 사람들도 수군거렸다. 그 차 주인을 정신없는 사람, 성질 급한 사람으로 낙인찍은 후 우리는 다시 라운딩을 즐겼다.
6) 그러고도 한 시간도 훨씬 더 지났을까. 관리소에서 또 방송이 흘러나왔다.
“주차장에 시동이 걸린 차가 있습니다. 차주께서는 빨리 가셔서 시동을 꺼 주시기 바랍니다. 차 번호는 15보 0000입니다.”
아니! 내 차 번호가 아닌가. 먼저 방송할 때 차 번호를 알아듣지 못했는데 그 차가 바로 내 차였다.
“차주더러 정신없다는 둥 타박은 혼자 다 해놓고 그 차가 자기 것이라고?” 팀원들이 같잖다며 빨리 가보라고 등을 밀었다. 내가 생각해도 같잖았다. 정신없고 성질 급한 인간이 바로 나였다. 거기다 남 욕까지 했으니! 팀원들뿐만 아니라 구장의 다른 사람들 보기가 민망했다. 방송을 두 번이나 했으니 이삼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다 들었을 게 뻔했다. 정신없는 여자라고 한마디씩 하겠지. 뒤통수가 간질거렸다.
7) 차가 뙤약볕 아래서 왱왱 소리를 내고 있었다. 내팽개치고 간 주인이 못마땅했는지 키를 눌러도 차가 말을 듣지 않았다. 여러 번 누르자 차 문이 열렸다. 삼복더위에 차 안은 냉동고를 연상할 만큼 시원했다. 두 시간 넘게 에어컨이 켜져 있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8) “사우디 공주, 어서 오세요.” 구장에 돌아오니 팀원들이 손뼉 치며 환영했다. 사우디 공주라니! 기름이 펑펑 쏟아지는 사우디아라비아의 공주라니! 기름값이 이천 원을 넘어서며 최고조로 치달아 자동차 몰기가 부담스러울 때였다. 사우디 공주만이 기름값 걱정 없이 에어컨을 두 시간씩 켜 놓을 수 있다는 놀림 반, 장난 반으로 붙여준 이름이었다.
9) 한참이 지났건만 아직도 구장에서의 내 이름은 사우디 공주다. 기름 걱정 없을 것 같은 사우디아라비아 공주를 떠 올리게 하는 이름. 들을 때마다 민망하고 부끄럽지만 그래도 정신없는 여자를 타박하지 않고 예쁜 이름을 붙여준 팀원들이 고맙다.
벼리 / 안연미
1. 그물에는 벼리라는 것이 있다. 그물의 위쪽 코를 꿰어놓은 줄이다. 씨줄과 날줄의 지지대 역할을 하는 그물코의 줄을 당기면 그물이 오므렸다 폈다 하면서 벼리의 제 기능을 하게 된다. 그물에서 벼리가 없다면 아마도 대책 없이 터질 것이다. 천 개의 그물코보다 한 개의 벼리가 더 낫다는 말이 그래서 생겼나 보다.
2. 크고 작은 모임마다 벼리와 같은 역할을 하는 이가 있다. 모임을 총괄하고 규제하면서 전체를 이끌어 가는 회장이다. 회원이 저마다의 역할을 잘할 수 있게 벼리를 잘 잡아야 그물이 오므리고 펴는 기능이 잘될 것이다. 하지만 그물코가 벼리를 끊어내는 일도 생기니 별일이다.
3. 친목을 다지던 부인들끼리 소외계층의 아이들에게 봉사를 하자며 꾸려진 모임이 깨지고 말았다. 회원 손에 새로 뽑힌 회장이건만, 한 해를 넘기지 못하고 손을 놓은 모양이었다. 게다가 회원 탈퇴까지 선언한 터였다. 공석을 메꿀 회장직 추천을 놓고 총무는 여러 날 손전화기를 달구었지만, 부재중인 자리를 메꾸겠다고 나선 이는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모임이 해산되었다는 통보까지 받았다.
4. 누구라도 회장을 맡아서 이어가겠지 했는데 해산 통보에 회원의 한 사람으로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회장이 물러난 이유도 나중에서야 들었다. 누군가 회장이 추진하려는 일마다 꼬투리를 잡았다는 것이다. 회장이 하는 일마다 가로막았다 하니 모르긴 해도 그가 속앓이를 꽤 했을 성싶었다. 회장 곁에서 일을 돕던 이에게 까닭을 물었더니 회장의 찬조비가 모든 사건의 발단이라는 것이다.
5. 회장의 의견은 이랬다. 회칙대로 임원 회비를 내면 되는 것이고, 그 이상의 찬조비는 얼마를 내든 자율이라고 주장했다. 누군가의 의견은 달랐다. 임원 자격으로 회비를 낸 것은 당연하고 회장 명분으로 적정선 이상의 찬조금을 행사때마다 별도로 내는 것이 옳다며 맞섰다. 그런 이야기를 듣다 보니 문득 회장에게는 적정선의 금액이 모호했거나 부담스러웠을지도 모른다.
6. 회장이든 회원이든 찬조금은 마음으로 내는 것이다. 특히나 친목을 다지는 모임에서 왈가왈부할 일은 아닌 듯했다. 소규모의 친목 모임이라지만 그동안 그런 안타까운 속사정을 눈치채지 못한 것도 미안하고 자리를 내려놓고 떠난 이가 있으니 더욱 아쉬워할 무렵, 마침 연장자 한 분이 헤어질 값이라도 차 한잔하자고 회원들을 불러 모았다.
7. 다 같이 저녁밥을 먹고 자리를 옮겨 찻집으로 이동했다. 둘씩 셋씩 이야기를 나누는데 황당했다. 문제는 회원마다 생각이 제각각이라는데 놀라웠다. 회장과 그 누군가라는 둘만의 문제가 아닌 터였다. 결국 그물의 벼리를 끊어낸 장본인은 스스로 뒤엉킨 그물코들인 셈이었다. 모임이 깨진 연유가 찬조금 문제만은 아닌 듯하여 안타깝던 마음은 되레 씁쓸하기까지 했다.
8. 찬 한 잔으로도 결론이 나지 않는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이대로 일어서나보다 싶어 허망한데 자리를 만든 연장자가 일어서더니 의견을 한데 모아보자고 했다. 그의 이야기는 설득력이 있었다. 어떤 이는 앉은 의자를 돌려 그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누구에게나 돈은 소중한 것이지만, 친목이 우선이다. 그러니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무엇보다 노년기에 회장이라고 특별 찬조금을 내는 것은 누구라도 부담스러운 일이니 금액을 두고 시비를 가를 일이 아니라는 말이 관건이었다. 그렇다. 밥은 회원들이 돌아가며 살 수도 있고 간식 또한 회비로 충당하면 될 일이다. 모두 알면서도 실천하지 않았을 뿐이다.
9. 그날 박수 받은 연장자는 밥값, 찻값 모두 지불하고도 누구나 어려워 하는 감투 하나를 쓰게 되었다. 회장이 선출되었으니 자진해서 총무 하겠다는 이가 찻값은 회비에서 내자고 제안했다. 일이 순조롭게 풀리기 시작하자 여기저기에서 가방을 열었다. 십시일반 찬조금을 거두는 모습에 회장은 ‘참나’를 거푸 쏟아내고 총무 맡은 이는 첫날부터 바빴다.
10. 그 연장자의 설득력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어떤 것도 훈련 없이 쌓이는 법은 없다. 어쩌면 연륜이 쌓인 만큼 자신만의 탄탄한 기강을 키운 능력자가 아닐까. 게다가 그는 회원 모두가 마음을 뭉치도록 설득하고 끊어진 끈을 잇지 않았는가.
11. 변하는 것은 생각이요, 허공의 바람이라더니. 누구나 직접 겪어야 남의 깊은 뜻도 헤아릴 수 있나 보다. 정으로 다져진 모임이 위기를 맞아 다시 모임이 이어지니 다행스럽다. 사람마다 생각이 달라 서로의 의견이 엇갈리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하지만 갈등의 원인을 조율해서 회원들을 한 울타리 안으로 끌어들이는 수고를 감내하는 것도 지도자요, 회장의 몫인가 보다.
12. 요즘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모임에 임원으로 추천받기를 꺼리는 추세다. 일을 맡아야 하는 부담감이나 금전적인 문제를 껴안는 것이 불편해서인가도 싶다. 게다가 정년퇴직한 노년기라면 누구나 감투 값으로 어깨를 누르는 회비와 찬조금은 버겁기 마련이다. 하지만 앞장 선 이의 적당한 조율과 회원들의 배려가 있다면 탄탄한 그물이 만들어질 것이다.
13. 오늘도 끊어진 벼리를 내려놓고 간 이가 되돌아오도록 그물코들이 인정의 끈을 잇느라 분주하다.
어쩌다 10년 / 김영희
1. 10여 년 전 어느 날부터 허리에 무지근한 통증이 느껴졌다. 병원에 다녀도 그때뿐 별 효과가 없는 나에게 친구는 요가를 권했다. 굳어진 몸을 스트레칭으로 풀어주면 요통에 좋다는 것이었다. 요가를 하니 몸이 이완되는가 했는데 허리에서 ‘뚝’하는 소리가 들렸다.
2. MRA 판독 결과 허리디스크 중기라는 판정을 받았다. 의사는 좀 더 심해지면 수술해야 한다는 경고를 했다. 병원에서 물리치료를 받았지만 칼로 도려내는 듯한 허리 통증은 여전했다. 통증이 시작되면 가만히 서 있어도 다리가 저리고 당겨오는 고통은 견디기 힘들었다. 젊은 나이에 허리디스크로 행동에 제약이 따르니 세상 우울하고 사는 낙이 없었다.
3. 주변에서 헬스를 권했다. 허리에 근력이 생기면 아픔이 사라지고 움직임도 자유로워진다고 했다. 평소 운동은 숨쉬기면 된다는 고정 관념을 버리기는 쉽지 않았다. 수십 번을 망설이다 헬스장과 목욕탕을 같이 운영하는 곳에 등록했다.
4. 헬스장의 운동 기구는 낯설었다. 기구 사용법을 몰라 일주일 내내 실내 자전거만 탔다. 주변이 차츰 눈에 들어오고 다른 사람은 어떻게 이용하는지 눈여겨보며 적응했다. 하지만 맨땅에 헤딩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운동을 했지만 통증은 그대로였다. 내 몸에 맞는 맞춤 운동을 해야 했다. 피트니스를 받으며 허리 근력 키우기에 돈과 시간을 할애했다. 허리는 운동에 비례해 개선될 여지를 보였다.
5.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중노동에 가까운 운동을 하고 목욕탕으로 갔다. 운동을 하지 않아도 몸매와 건강을 챙긴 여인들은 온탕, 냉탕, 열탕과 사우나를 번갈아 오갔다. 여인들은 친한 사람과 정담을 주고받으며 친밀감의 표시로 음료수를 건네며 서로를 챙기는 일에 세심하게 신경을 썼다.
6. 내성적인 성격 탓에 목욕탕 문화에 적응하기 힘들었다. 아프기 전에는 집에서 샤워하고 목욕탕 출입은 일주일에 한 번 갔지만 들어가기 바쁘게 나왔다. 몇 시간씩 탕에서 시간을 보내는 여인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사우나실은 답답하고 숨이 가빠와 밀폐된 공간에서 잠시도 있고 싶지 않았다. 오직 아픈 허리가 정상으로 돌아와 이방인처럼 느껴지는 이 공간을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7. 운동은 꾀부리지 않고 한 결과 허리는 차츰 좋아졌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지옥 훈련과 다름없는 운동과 매일 출근하는 목욕탕을 벗어날 수 있는 것만 같았다. 군인이 제대하는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심정으로 속심지를 세우며 결기를 다졌다.
8. 그런 날이 왔다. 운동을 몇 달 열심히 했더니 신기하게 허리는 언제 아팠느냐는 듯 멀쩡해졌다. 수증기 서린 목욕탕과 헬스장에서 벗어나 일상생활만을 영위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지금까지 흐려 보이던 하늘은 모처럼 화창한 햇살이 번지듯 기분까지 상쾌했다.
9.허리가 회복돼 헬스장에 미련이 없다는 나에게 여인들은 의미심장한 웃음을 흘렸다. 운동은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했다. 매일 숨 쉬고 밥 먹듯 운동도 꾸준히 해야 한다는 말을 귓전에 흘렸다. 운동은 노후 보험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거라며 속으로 콧방귀를 꼈다.
10.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아픈 것이 해결되었으니 일상은 평정을 되찾는 듯했다. 운동에만 매달려 있었던 시간을 보상받기 위해 가고 싶은 곳을 찾아다니며 기쁨을 만끽했다. 사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러나 행복이 오래가지 않았다. 운동을 한 달쯤 쉬었더니 허리는 살아있다는 신호를 보냈다. 근력이 빠진 허리는 예전의 상태로 원상 복귀되었다.
11. 아픈 데에는 장사가 없었다. 다시는 발 들이지 않을 거라며 큰소리쳤던 헬스장을 울며 겨자 먹기로 다시 등록해야 했다. 보기 좋게 백기를 든 것이다. 여인들은 다시 올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 ‘내 뭐라카더노’를 외쳤다. 얼굴은 죽상이 되었지만 헬스장의 기구와 친해지기 위해 심기일전하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달랬다.
12. 그 이후 아침이면 헬스장으로 출근한다. 매일 먹는 밥이 물리듯 주기적으로 권태기가 찾아왔다. 운동을 몇 차례 멀리했더니 매번 통증 앞에서 무너지고 말았다. 처음 부리던 객기를 다 내려놓고 몸과 타협하기로 다짐했다. 때로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심정일 때는 잠시 쉬었다 등록하기를 반복하며 지금까지 헬스장과 목욕탕을 10여 년째 출입하고 있다.
13. 오랜 세월 출근했지만 주인장은 쓴 커피 한 잔 없다. 묵은디 여인들은 자축하는 시간을 가졌다. 짧지 않은 세월을 출입한 것이다. 처음처럼 운동을 하지 않은 탓일까. 몸매는 개선되지 않았지만 아프지 않고 병원을 자주 가지 않는 것으로 위안으로 삼는다.
14. 세상살이가 내 마음 같지 않듯 처음에는 곧 떠난다고 해놓고 어쩌다 10여 년을 출입하고 있다. 10년 전의 아팠던 기억을 떠올리며 앞으로의 10년을 생각해야 한다. 첫 마음과 달리 내 몸이 의지를 굳건하게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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