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림사 계곡 야생화
이월 둘째 일요일은 음력으로 정월 초이틀이다. 나흘간 이어지는 설날 연휴에서 사흘째다. 그믐날 본 홍매화로 시조를 남겼다. “한 차례 기웃하던 동장군 고비 넘겨 / 사림동 안씨 고택 겨우내 햇살 받아 / 꽃눈이 망울 되려니 시나브로 벙글다 // 배경이 그럴듯한 담 너머 기와지붕 / 봄이 온 길목에서 입춘 방 붙여지니 / 꽃잎은 더 참지 못해 붉디붉게 펼친다” ‘퇴촌 홍매’ 전문.
글감은 사림동 창원의 집에 피는 홍매화였다. 아침나절 어디론가 산책을 나서려니 명절 연휴 외식 사정이 여의하지 않을 듯해서 집에서 이른 점심까지 먹고 현관을 나섰다. 아파트단지 이웃 동 꽃대감이 가꾸는 꽃밭으로 가봤다. 설 전부터 분홍 꽃망울을 보이던 히말라야 바위취는 꽃잎을 제법 펼쳐 보였다. 여러해살이 수선화는 뾰족한 싹이 돋아 연방 꽃망울을 달고 나올 듯했다.
꽃밭 남향으로 가서 화분에서 휴면기를 보내는 복수초를 살펴봤다. 작년에 친구가 야생에서 자라는 꽃을 꽃밭에서 가꿔보고 싶다 해서 여항산 미산령에서 몇 주 캐 왔던 복수초였다. 고산지에는 눈 속에서도 피어나 ‘얼음새꽃’으로도 불린다. 여름에 잎줄기가 사그라져 가을 이후 겨울은 흔적이 없더니만, 오늘 살펴보니 거뭇한 꽃대를 밀어 올려 꽃망울을 맺으려는 기미를 보였다.
꽃대감 친구의 꽃밭을 둘러보고 야생화 탐방 동선으로 산책을 나섰다. 집 근처 버스정류소에서 마산역 광장으로 나가 삼진 방면으로 가는 농어촌버스를 골라 탔다. 74번은 진북면 사무소에서 의림사를 거쳐 정곡 종점으로 가는 버스였다. 시내를 관통 밤밭고개를 넘어 동전터널을 지났다. 진동 환승장에 들렀다가 진북면 소재지 지산에서 예곡을 지나자 현대사랑요양병원이 나왔다.
요양병원을 거쳐 인곡에서 내려 전원마을을 지나니 길섶은 절집을 앞둔 석당간과 부도탑이 보였다. 일주문을 세워 단청 칠까지 마친 산문으로 드니 법회에 참석한 신도들이 타고 왔을 차량이 더러 보였다. 그 가운데 일부는 절집으로 향하지 않고 저수지 안쪽 계곡으로 야생화를 탐방하러 온 이도 있을 듯했다. 북향 응달의 인성산 비탈로 난 임도를 따라 의림사 계곡으로 들었다.
계곡으로 드니 커다란 카메라를 둘러맨 사내 둘은 바깥으로 나오고 있었다. 변산바람꽃을 만났는지를 여쭈니 빙그레 웃으면서 네 송이 피었다고 화답하면서 붉은대극은 움이 갓 트고 있다고 했다. 대구에서 왔다는데 두 사내는 새벽같이 일찍 길을 나선 듯했다. 그들은 봄이 오는 길목이면 야생화를 탐방하러 의림사 계곡을 비롯해 전국 여러 곳을 누비는 전문 사진작가인가 싶었다.
의림사 계곡에서 변산바람꽃 자생 장소는 나도 훤히 꿰차고 있다. 변산바람꽃이 피어난 현장으로 가니 시내에서 왔다는 탐방객을 셋 만났다. 변산바람꽃은 돌부리와 가랑잎을 비집고 꽃잎을 펼쳐 햇살을 받고 있었다. 그 곁 돌멩이 밑 부엽토에는 앞으로 피어날 여러 송이 꽃망울이 대기하고 있을 듯했다. 야생화를 찾아온 이들이 엊그제부터 다녀 주변은 길이 생겨 반질거렸다.
앙증맞게 피어난 변산바람꽃에 눈높이를 맞추고 계곡 건너편 붉은대극 움이 솟는 자리로 갔다. 참나무 숲 아래 돌너덜에 순이 돋는 붉은대극이다. 아직 때가 일러 무더기로 솟지 않고 꼬부랑 움이 한 개 보였는데 날이 따뜻해지면 그 주위 여럿 솟아날 테다. 붉은대극을 뒤로하고 다시 건너편으로 가 노루귀가 피었을까 싶어 두리번거려 봤는데 찾을 수가 없어 산문 근처로 갔다.
해우소 뒤 마삭줄과 잎이 엉켜 자라는 검불에서 노루귀가 피는지 살펴봤다. 야생화 탐방객들이 다녀가지 않아 가랑잎은 바스러지지 않은 채 온전했다. 어린 시절 소풍지에서 보물찾기하듯 한참 두리번거린 끝에 분홍색 노루귀를 한 송이 발견했다. 순백의 눈이 덮인 세상, 아무도 지나간 발자국 흔적이 없는 숫눈 앞에 선 기분이었다. 야생화 탐방도 중독된다면 기꺼이 감수하리다. 24.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