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신짝
나에게는 버려진 기쁨만 있을 뿐이다 . 나는 오직 버려진 기쁨에 의해 버려져도 버려진 게 아니다. 당신도 버려진 나의 기쁨에 의해 나를 버려도 버린게 아니다
당신은 어느 날
다세대 주택 골목 쓰레기 통에 나를 버리고 단호히 돌아섰지만, 헌신짝이 된 나를 버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갔지만
당신은 내가 버려짐으로써 얻은 기쁨을 모른다, 당신은 내가 버려짐으로써 영원한 이별이 완성된 줄 알지만
나의 이별은 만남을 위한 기다림일 뿐이다
당신은 나를 버려도 나는 당신을 버리지 않는다 당신이 낡고 해지고 병든 헌신짝이 되어 나를 찾아오기를 기다린다.
헌신짝에도 고요한 기다림은 남아 있다. 버려짐으로써 얻은 기쁨을 이웃과 나누기 위해 오늘 밤에도 내가 버려진 골목에 달이 뜨기를 기다린다.
낡은 슬리펴 한 켤레
시만 쓰고도 먹고사는 것이 내 꿈이다. 시만 쓰고도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다할 수 있게 되는 일.그것이 내가 이루고 싶은 꿈이다,아직도 그런 꿈을 버리지 않고 있는 것이 기특해 때로는 나 자신을 칭찬해 주고 싶을 때도 있다.
내 나이 마흔하나가 되었을 때 나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오랫동안 다니던 조선일보사 출판국을 떠났다. 시사월간지 〈월간 조선〉 기자직을 차장대우라는 직급에서 그만둔 것이다. 어차피 글을 써서 먹고산다면 내가 쓰고 싶은 글만 쓰자는 생각을 하고 사표를 냈다, 좀약처럼 사라져간 내 꿈을 되찾기 위해서는 직장을 그만둘 필요가 있었다.
핑계일 수도 있겠지만 시사잡지 기자 생활은 시나 소설을 쓸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앗아갔다. 전두환이니 노태우니 '3김'이니 말만 들어도 마리가 지끈지끈했다.
돌아서면 편집회의요, 취재요,기사를 써야 하는 일의 연속이었다. 기사를 다 썼다고 일이 끝나는 것도 아니었다. 발행일에 늦지 않도록 인쇄소에 모든 원고를 넘길 때까지 사무실 안에서도 바삐 뛰어다니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렇다고 책이 나오면 며칠은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날 책이 나오지 않았는데도 곧바로 다음 달 편집회의에 들어갔다.
그런 상황이 매달 되풀이되었다. 그 반복을 어느 순간부터 감당하기 어려웠다. 무엇보다도 편집회의에서 내가 취재해야 할 일이 배당되면 그 순간부터 취재에 들어가 평균 100매 이상의 원고를 그달에 써야 했다. 그것은 결국 나 자신의 결정에 의한 삶이 아니라 남의 지시에 의한 삶이었다. 편집장의 지시가 한 달 한 달 쌓여 그것이 1년이 되었을 때 1년 내내 남의 지시만 받고 산 셈이었다.
해가 거듭될수록 나 자신에게 내가 지시하고 결정하는 삶을 살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목표를 세워야 했다. 그것은 내 집 마련을 위해 대출받은 몇천만 원의 은행 빚을 갚음으로써 가계에 빚이 없게 하고 회사에 사표를 낸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큰일에서든 작은 일에서든 철저히 절약하고 저축해나가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회사 사원식당에서 점심을 먹었고 가급적 술자리도 피했다. 회사 측에서는 점심과 저녁을 사원 복지 차원에서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었는데, 기자들은 무슨 까닭인지 그 밥을 잘 먹지 않으려 했다.
아마 사원식당에서 밥을 먹으면 후배들에게 짠돌이라고 눈치가 보이고 자존심이 상한다고 여기는 듯했다. 그런 나는 그런 데서 자존심을 찾지 않았다. 내 꿈을 이루는 것만이 내 자존심이었다. 그 뒤 사표를 낸 건 3년 만이었다. 아무도 사표를 제출하라고 하지 않았는데도 나 스스로 사표를 써서 냈다. 회사에서 사표를 수리해주지 않아 두 달이나 더 출근하면서 기어이 내 뜻을 관철 시켰다.
"나도 한때 실직 경험이 있어서 잘 알아, 해직 기자가 돼보니까 길 가는 순경이 다 부럽더라, 누구를 만나도 어디 내놓을 명함이 있어야지, 그래서 예전 명함을 그대로 썼는데,영 마음이 캥기더라고, 정 차장이 집이라도 하나 더 있으면 내가 말리진 않아 한창 일할 나이에 무작정 그만둬서 뭘 어쩌자는 거야? 시가 뭐 밥 먹여주나? 남자게 직장이란 참으로 주요한 거야. 이렇게 붙잡을 때 그만 못이기는 척하고 다시 주저 앉아. 고집부리지 말고....."
부장은 나를 설득하려 들었다. 그러나 나는 설득당하지 않았다. 다음 달 편집회의가 시작되었을 때 편집회의에 들어가지 않고 서랍 속에 들어 있는 낡은 볼펜 한 자루까지 정리해 버렸다. 그리고 혹시 미처 정리하지 못산 게 있나 하고 책상 밑 전화선이 있는 곳을 살펴 보았다. 그곳엔 미처 챙기지 못한 슬리퍼 한 켤레가 놓여 있었다. 조선일보사에 근무하는 8년 동안 신고 다닌 낡은 실내용 슬리퍼였다.
나는 그 슬리퍼를 보는 순간 마치 나 자신을 보는 것 같아 업무용 누런 봉투 속에 담아 들고 나왔다. 내가 원해서 퇴사하는 것임에도 마음이 무거웠다 낡고 낡아서 더 이상 신고 다닐 수조차 없는 슬리펴 한 켤레를 달랑 들고 어디 취재라도 가듯 마지막으로 출판국 편집실을 빠져나오자 마음은 착잡했다. 갑자기 어디로 가야 할지 망연했다.
이제 〈월간 조선〉 내 자리로는 돌아갈 수 없다. 나는 한동안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가 광화문으로 가는 큰길로 빠져나가지 않고 느린 걸음으로 성공회 성당으로 가는 골목길로 내려갔다. 성공회 성당 앞마당엔 나이테가 드러난 그루터기 의자가 몇개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널찍한 의자에 털썩 앉아 성당 출입문 바로 위 벽에 걸려 있는 청회색 십자고상을 올려다보았다
십자고상에는 여전히 청년 예수가 고개를 툭 떨군 채 양팔을 벌리고 매달려 있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예수는 조금도 고통스러워하지 않는 것 같았다. 오히려 참 불쌍하다는 듯이 천천히 고개를 들고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 같았다. 오랜 직장 생활을 마감하는 자리에서 무슨 소중한 물건이라도 되는 듯 슬리퍼 한 켤레를 들고 나온 내가 너무나 우습다는 듯 그의 눈가엔 연미의 검은 그림자가 보였다.
나는 그 슬립퍼를 성공회 마당 뜨락에 있는 휴지통에 버렸다. 그리고 그다음 날부터 봉천동 서울대입구역에 집필실로 마련해놓은 오피스텔로 출근했다. 오랫동안 직장 생활에 길들여진 나는 직장을 그만두었다고 해서 가만히 집에 있을 수는 없었다. 아침이 되어 눈을 뜨면 어디론가 갈 곳이 있어야 했다.
첫날부터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했다. 직장이라는 거대한 조직으로부터 일탈돼 고립무원의 상태가 되었다는 불안감이 밀려왔다. 일을 해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아니,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것은 전혀 예기치 못한 일이었다. 그저 불안하고 두렵기만 했다. 나는 그런 두려움에서 벗어나기위해 우선 책 읽기를 시도했다. 그동안 읽고 싶었던 책들을 목록으로 만들어 한 권 한 권 독파했다. 물론 책을 읽으면서 시 쓰기를 위한 메모도 열심히 해나갔다.
오기 책 읽기만을 한 지 여섯 달쯤 지나자 조직에서 일탈되었다는 감정에서 오는 불안이나 두려움에서 차차 벗어날 수 있었다. 나만의 공간에서 나만의 자유를 나만의 평화와 함께 맛볼 수 있게 되었다. 10여 년 동안 제대로 쓰지 못했던 시가 쓰여졌다. 이제 내 꿈을 이룰 수 있는 첫 계기를 마련했다는 기쁨이 조금씩 느껴졌다.
기쁨은 매일 아침마다 찾아오는 햇살로부터 느껴졌다. 아침마다 어김없이 내 책상 위로 찾아온 햇살을 볼 때마다 '아, 행복하다는 것은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호승씨, 우리는 지금 아침 햇살하고 매달 받는 봉급하고 맞바꾼 거야. 아침에 따스한 햇살이 내 방으로 들어 오는 걸 보고, 내가 언제 아침 시간에 이런 햇살을 맛볼 수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어."
소설을 쓰기 위해 나보다 먼저 직장 생활을 청산한 소설가 유홍종[柳烘鐘] 선배의 말이 그제야 떠올랐다. 유 선배의 말은 맞는 말이었다. 나는 아침 햇살이 비칠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하며 행복해했다. 직장 생활을 할 때 내 책상 위에 따스한 아침 햇살이 어리면 마음속으로 그 얼마나 안타까웠던가. 머리가 맑고 햇살이 비치는 지금 이 시간에 오직 시만 생각하고 시를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아타까움....
이제 나의 그런 소망은 이루어졌다. 지금도 아침마다 내 방으로 기어들오와 꼼지락거리는 아침 햇살을 보면 행복하다. 그리고 그 행복을 바탕으로 꿈을 꾼다. 시가 돈이 되지 않는데도 시만 쓰고 먹고 살 수 있는 꿈을 꾼다. 결코 밥을 위하여 시를 쓰고 싶지는 않다. 오늘도 시를 쓸 수 있는 능력을 주신 절대자에게 감사한다. 세상에 태어나면서 절대자에게 많은 것을 부여받았지만 시적능력을 부여받은 일이 가장 기쁘다.
문학은 결사적이어야 한다. 외롭고 배고프다고 해서 모두 생활로 떠나고 견디지 못한다면 문학도 망하고 문인도 망할 수밖에 없다. 김수영[金洙映] 같은 시인이 우리 입가에 자주 오르내리는 이유를 알고 있다. 어느 문학평론가가 문예지 월평란에 쓴 글의 한 부분이다 나는 지금도 이 글을 내 책상 앞에 붙여놓고 하루를 맞는다.
- 정 호 승의
시가 있는 산문집 -
첫댓글 직장을 퇴사하고
좋아하는 시를 쓰고자 하는
정호승 님의 글이네요
누구든지 무언가를 해야 한다면
버릴것 또한 과감히 버리고
출발하면 좋은 결과를 볼 수 있지요
그러나 결코 쉬운 길은 아니겠지요 ~~
오늘도 고통 없는 사랑은 없다 되뇌여 봅니다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정호승님의 산문집은 부담 없이 읽을수 있어서 참 좋더라구요,
편안하고 보람 있는 시간 보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