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2회 국민생활과학기술포럼 개최
지난 6월 광주광역시 동구 학동에서 재개발을 위해 해체 중인 건물이 붕괴하면서 버스정류장에 정차 중이던 버스를 덮쳐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해체가 필요한 노후 건물이 증가함에 따라 최근 몇 년 사이 건물 해체 과정에서 붕괴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해체 과정에서 발생하는 붕괴사고는 건설 근로자뿐 아니라 일반 시민의 안전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더욱 큰 안전의식이 요구되는 분야다.
이에 국민생활과학자문단(단장 정진호, 이하 자문단)은 지난달 26일 건축물 해체공사의 전반적인 절차와 안전관리의 발전방향에 대해 논의하면서 국민의 이해를 돕고 경각심을 갖고자 ‘건축물 철거사고로부터 국민안전 어떻게 지키나’라는 주제로 국민생활과학기술포럼을 개최했다. 자문단은 일반 국민이 일상생활에서 겪게 되는 안전 문제에 대해 보다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사실을 알리기 위해 2017년 발족했으며, 국민과의 소통을 위해 국민생활과학기술포럼을 42회째 개최해오고 있다.
김진근 자문단 교통건설안전분과위원장은 개회사를 통해 “지난봄 불행하게도 광주에서의 붕괴사고로 인해 수 명의 귀중한 생명이 희생되었다. 오늘 포럼이 문제 해결에 다소 도움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전했다.
이우일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은 축사에서 “지난 6월 광주 학동에서 해체 건축물 붕괴사고로 9명이 사망하는 안타까운 일이 있었다. 일반 굴착기로 비교적 쉽게 해체 가능한 저층 건물과 달리 5층 이상 고층 건물은 난이도가 높아서 사고 위험도 높다”면서 “국내에는 준공 30년 이상 된 노후 건축물이 267만 동에 이르는 등 전체 건물의 50% 이상이 잠재적 해체 대상 건물로 추정되고 있다. 앞으로 해체공사 수요가 확대될 것이기 때문에 안전사고가 반복되지 않도록 철저한 대비와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해체계획서’는 전문가 검토 아닌 전문가 작성으로 개선하고 ‘상주 감리’ 둬야
지난 6월의 광주 학동 사고 이후에도 해체 건축물 붕괴 사고는 계속 이어졌다. 8월에는 서울 방배동의 재건축 빌라 철거 현장에서 외벽이 무너져내렸고, 바로 다음날 서울 구의동에서는 청년주택 건설 현장에서 가림막 붕괴 사고가 발생했다. ‘건축물을 안전하게 해체하기 위한 고려사항’이라는 주제로 첫 번째 발제를 맡은 고창욱 건축구조기술사회 부회장은 “철거 공사는 신축 공사와 달리 공사 과정이 체계적이지 않고 주먹구구식으로 진행되는 것이 사실”이라며 “사고 때마다 규제를 강화한다고 발표하지만 해체 공사장의 붕괴사고는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건축물 해체 시, 종전에는 ‘건축법’에 따라 신고만 하도록 규정되어 있었으나 해체 공사 중 연이은 사고의 발생으로 안전관리를 강화할 필요성이 대두했다. 지난해 5월부터는 해체계획서 작성 및 해체허가제도 도입 등이 포함된 ‘건축물관리법’이 시행됐다. 고 부회장은 “이러한 해체 공사 제도를 마련했음에도 지난 6월 광주 붕괴사고가 발생하는 등 해체 공사 현장의 안전관리에 여전히 미흡한 부분이 존재한다”며 “이후 전국 해체 공사장의 안전 점검을 실시한 결과 총 210개 중 73개 현장에서 위반사항이 적발되었다”고 전했다.
고 부회장은 “(지난해 개정된) 국토교통부의 ‘건축물관리법’에 따르면 해체를 하기 위해서는 허가를 받아야 하고, 허가를 받기 위해서는 건축사, 건축구조기술사, 안전진단전문기관 등 3곳의 검토를 받은 해체계획서가 제출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감리에 대한 규정이 있기는 하지만 상주, 비상주 여부에 대한 규정은 없다”고도 덧붙였다. 이 법에 따르면 해체 대상 건축물 가운데 연면적 500㎡ 미만의 건축물, 높이 12m 미만의 건축물, 지상층과 지하층을 포함해 3개층 이하인 건축물은 신고만으로 해체를 할 수 있는 신고대상 건축물이지만, 그 외 모든 건물은 해체 공사 시 반드시 허가를 받아야 하는 허가대상 건축물로 분류되어 관련 규정을 지켜야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규정도 광주 붕괴 사고 이후로는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고 부회장은 “지난 8월 발표된 ‘해체 공사 안전강화 대책’에 따르면 해체계획서는 관리자가 작성하고 전문가가 검토하는 현행 방식에서 전문가가 직접 작성하는 방식으로 개선되고, 감리도 비상주 감리에서 상주 감리를 도입하는 방향으로 제안되었다”고 전했다.
이어 고 부회장은 건설 전문가가 직접 해체계획서를 작성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해체 공사 사고의 원인을 분석해보면 해체계획서 작성을 전문가가 아니라 공사를 맡은 철거회사가 대부분 작성을 했고, 시공순서를 준수하지 않았고 해체계획서의 내용대로 시공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사고의 주요 원인을 분석했다. 또 “잭서포트(지지대) 및 구조 보강제가 설치되지 않았거나 규정 이상의 철거 잔재물을 쌓아두거나 방치해 붕괴되는 사고로 이어진 경우도 많았다”고 밝혔다.
아울러 고 부회장은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장비 선택의 폭이 좁아짐으로써 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다”고 짚었다. 광주 사고에서도 해체계획서에 따르면 팔 길이가 30m에 달하는 ‘롱 붐 암(Long Boom Arm)’이라 불리는 굴착기를 사용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실제로는 팔 길이가 10m에 불과한 일반 굴착기가 투입되면서 문제를 일으켰다. ‘롱 붐 암’의 경우 하루 사용료가 500만 원으로 일반 굴착기의 하루 사용료인 100만 원 보다 5배 더 비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건설사고 방지를 위해서는 건축주를 책임의 전면에 등장시켜야
두 번째로는 안홍섭 한국건설안전학회 회장이 ‘건축물 해체공사 안전관리의 발전방향’이라는 주제로 발제했다. 안 회장은 ‘문제가 발생했던 당시의 사고방식으로는 중요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아인슈타인의 말을 인용하면서 “그동안 사고가 많이 났고 굉장히 많은 노력을 했는데도 이를 줄이지 못했다면 우리의 사고 방식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부터 인정해야 한다”며 서두를 떼었다. 그는 “건축물관리법(2019년 4월 제정, 2020년 5월 시행)이 시행되면서 중대사고는 근절될 것으로 생각했지만, 4월에는 서울 장위동에서, 6월에는 광주 학동에서 (인명피해) 사고가 발생했다”며 사고의 근본적인 원인을 다시 생각해볼 것을 주문했다.
그러면서 안 회장은 “(광주 학동에서 붕괴된) 학산빌딩에서 굴착기의 팔 길이가 짧았던 것만을 사고의 원인으로 생각하지만 이런 상황을 만들어낸 데에는 굉장히 많은 배후 요인들이 있다. 그런데 그런 요인들이 간과되거나 무시되고 있다”고 문제를 짚었다. 아울러 “계획과 기술이 전부가 아니라 현장의 기술자가 이러한 모든 능력을 몸에 체득하고 그 자리에 있을 때만이 기술이 생명을 갖는 것이고 그런 기술자가 없으면 그 기술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안 회장에 따르면 기존의 제도가 원칙을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주요한 문제다. 그는 “모든 의사결정을 건축주가 하고 있는데도 건축주에 대한 규정은 빠져있다. 불공정 하도급 및 재하도급을 통제하고 관리할 수 있는 사람도 돈을 지불하는 건축주밖에 없다”며 건축주의 책임부과를 강조하였다. ‘롱 붐 암’을 쓰면 500만 원이 들고 일반 굴착기를 쓰면 100만 원이 드는데, 500만 원의 비용을 건축주가 주지 않으면 시공단은 절대 쓸 수 없다는 것이다. 또 “먼저 공사에 맞는 수준의 기술자를 뽑고 거기에 맞는 감리를 뽑는 것”이라며 감리기능은 보조 대책이라는 점도 지적했다.
계속해서 안 회장은 “영국에서 오랫동안 연구한 사례를 보면 건설산업계의 부정적인 행태는 발주자(건축주)의 부정적인 행태의 거울이라고 한다. 건축주를 바로 세우지 않는 한 건설사고의 효과적인 저감은 힘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영국에서 1994년에 시행해서 큰 효과를 보고 있는 CDM(건설안전법)에는 건축주의 책무가 11가지나 있다. 안 회장은 “적기에 안전에 대한 역량이 있는 적절한 수급자(감리자, 설계자, 시공자 등)를 지명하는 것이 건축주의 책임이어서 만약 공사를 잘못해서 사고가 났다면 책임은 역량 없는 수급자를 선정한 건축주에게 돌아간다”고 소개했다. 또 “건축주는 건설사업을 관리하기 위한 적절한 방안을 마련하고 유지 및 재검토하여 공사가 안전하게 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적절한 공사 기간을 보장하는 것은 물론 공사를 직접 신고하도록 되어 있다”며 “그러나 우리는 건축사를 통해 시공자가 신고해서 건축주를 항상 책임의 전면에서 배제시키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안 회장은 “건축자가 관리자를 선임하면 책임에서 다 벗어나게 되어 있는데, 건축주가 관리주체를 정해서 역할을 위임할 수는 있지만 책임까지는 전가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영국에서는 공사를 신고할 때 반드시 건축주와 안전전문가가 함께 서명하도록 되어 있는데 우리는 이 장치가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안전전문가가 발주자를 확실히 보좌해서 책임을 알게 하고 그 책임을 제대로 이행할 수 있게 코칭해줄 수 있는 것이 바람직한 안전관리 체계”라고 역설했다.
건축주 규제 필요…국민의 감시와 신고도 도움될 것
이어진 패널토론에서는 이영욱 군산대학교 교수를 좌장으로 석인호 국토안전관리원 건축물관리센터장, 윤종빈 ㈜토담기술공사 대표, 이근영 한겨레 선임기자, 홍건호 호서대학교 교수가 패널로 참여하였다.
석인호 국토안전관리원 건축물관리센터장은 “앞으로는 전문가가 직접 해체계획서를 작성하도록 건축물관리법 개선안이 발의됐고, 상주 감리를 의무적으로 배치하는 법안은 현재 시행되고 있다”며 “감리자의 교육을 의무화해서 기존 16시간에서 35시간을 받도록 발의되어 현재 국회에서 논의 중”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국민들이 해체 공사 현장의 위험사항에 대해 신고할 수 있도록 국민안전신문고 앱이 개선됐다. 주변에서 불안한 요소가 발견될 때 앱을 통해 신고하면 지자체와 담당자에게 연락이 가서 신속한 조치를 받을 수 있다”며 국민의 관심을 촉구했다.
윤종빈 ㈜토담기술공사 대표는 “해체 감리자는 일정 자격을 갖춘 건설기술자가 교육을 이수하고 관할 지자체에 신청을 하면 관할 지자체가 추첨제나 순번제에 따라 감리자를 지정하고 있는데, 단순히 건설기술자라고 해서 실력과 경력에 관계없이 추첨제로 선정하면 어렵다”면서 해체 감리자 자격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 대표는 “해체 감리자는 건물주와 직접적으로 용역 계약을 하기 때문에 감리를 하는 도중에도 건물주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고, 어려운 부분이 있어서 공사 중지를 요청할 때도 그 업무를 포기할 정도의 각오를 해야 한다”며 “건물주의 입김이 크게 작용함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는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홍건호 호서대학교 교수는 “사고 이후 임시방편적 제도 보완은 또 다른 재난을 유발할 수 있으므로 거시적인 관점에서의 제도 보완이 이루어져야 하고, 제도가 실제 현장에서 제대로 이행되는지 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건설 공사에는 건축사, 시공기술사, 건축구조기술사, 설비기술사 등 다양한 전문가들이 있으므로 이들을 적절히 활용해야 한다. 다만 아직 각 분야의 전문가들의 인원이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므로 분야 간 교차 업무 시 해당 분야에 대한 전문교육을 철저히 받아서 몰라서 못 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자”고 강조했다.
이근영 한겨레 선임기자는 “건축물 철거 사고에 시민들이 관심을 갖게 된 대목은 현장 밖 사고 때문이다. 서울 잠원동 사고나 광주 학동 사고는 철거 현장 밖에까지 치명적인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라며 “철거 현장 사고에 대해서 많은 원인 분석과 대책이 나왔지만 부지불식간에 사고를 당하는 시민들을 보호하기 위한 안전대책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이어 “상주 감리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하는데 감리가 상주를 하면 정말 작업자들이 (내진설계에 따라) 가로철근을 구부리는 것이 잘 감시될 수 있는 것인지, 안전사고의 상당 부분이 해결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질문했다.
이에 안 회장은 “공공발주자들이 책임을 지기 싫어서 모든 건설 관련 법령에 발주자 책임이 빠져있고 관리 주체에게 위임하면 책임이 넘어가게 만들고 지금까지 고치지 않은 것으로 추정한다”며 “이처럼 책임 주체가 빠진 상태에서 감리에게 온갖 책임을 다 전가하면서도 권한과 돈은 주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해체계획서는 계획이행의무자가 작성해야 하고 의무자가 역량이 부족하면 전문가의 코치를 받아 작성해야 계획의 이행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