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영, 열정의 회화
<Music & Passion>으로 명명된 김혜영의 회화는 에너지가 넘친다. 추상회화에서 느껴지는 원색의 물결과 질펀한 물감의 터치가 이를 말해준다. 마치 거대한 폭포 앞에 서 있는 것같은 강력한 힘과 에너지, 박진감이 화면 전체를 덮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싶다. 이것은 작가 내면에 숨쉬는 생명의 외침을 화면에 표출하려는 데서 비롯된 현상이리라. “내 안에 깊이 박혀 숨죽이고 있던 표현에 대한 욕구… 내 안에서의 자유로움을 누리는 것이 우선이다.”는 말에서 보듯 그의 가슴에 오랫 동안 잠자고 있던 어떤 파토스를 바깥으로 배출하는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성악을 전공한 그이지만 어릴 적부터 꿈꿔오던 미술에 도전하게 된 것도 이런 배경에서이다. 그것은 단순히 ‘그리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이룬다는 뜻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보다 더 원천적인 것은 창작과정에서 오는 일종의 ‘해방감’에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흔히 그림을 보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고 말한다. 자아를 옥죄고 짓누르며 힘들게 하는 것으로부터 빠져나와 가상의 공간에서 일종의 해방감을 느끼는 것이다.
이것은 창작자의 편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내면에 꿈틀거리는 감성의 움직임을 색과 몸짓에 실어냄으로써 억압된 부분을 털어내고 해소하는 짜릿함을 맛보는 것이다. 고전적 해석에 의하면, 비극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비참한 운명에 의해서 관중의 마음에 ‘두려움’과 ‘연민’의 감정이 격렬하게 유발되고, 그 과정에서 이들 인간적 정념이 순화된다고 여겨왔다. 그런데 현대에 와서는 예술가 자신도 자신의 심리를 통렬하게 표출함으로써 이를 순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우리는 이런 예술의 기능중 하나를 김혜영의 그림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셈이다.
하지만 작가가 자신의 감정을 액면 그대로 투사하는 것은 분명 아니다. 그림을 보면 어떤 조형의 질서나 미의식보다는 제스처와 리듬감이 두드러진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바로 이러한 요인들은 감정의 편린들을 바깥으로 전환시킬 때 나타난 흔적들이 아닌가 싶다. 말하자면 큰 울림의 몸짓, 어쩌면 음악적인 리듬이라고 할 수도 있는 제스처를 통해 자신안에 은닉된 것들을 꺼집어내고 자아를 확인하는 것이다.
그의 회화는 강렬한 인상을 준다. 이런 표현을 위해 그가 도구로 사용하는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의 손이다. 붓 대신 손을 사용함으로써 보다 생생한 내면의 진술 또는 감정의 호소에 따라 자유자재로 물감들을 옆으로 밀거나 혹은 아래로 내리 그으면서 그만의 표정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뭉개지고 흩어지며 겹쳐지고 덧입혀진 물감의 궤적이 마치 빛이 지나간 뒤의 망막에 맺힌 것같은 느낌을 준다.
그는 화면이라는 경작지를 개척하기 위해 물감이 ‘종자’가 되고 손은 ‘괭이’가 되며, 화면은 ‘농경지’가 되어 고군분투한다. 해롤드 로젠버그가 캔버스는 이미지를 재현하는 장이 아니라 ‘행위가 이루어지는 무대’라는 말이 그에게 딱 들어맞는 것같다.
올오버 페인팅이 무의식적인 사고의 반영이라면, 그의 그림은 존재감의 표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살아있는 존재는 생물학적으로 유동하고 활동하며 반응하는 특성을 띠고 있다. 만일 움직임이 없다면 그것은 잠자고 있는 상태이거나 죽은 상태일 것이다. 흥미롭게도 김혜영의 그림에서 두드러진 박진감은 바로 그런 움직임과 직결되며, 이것은 곧 살아있음의 소중함을 어떤 식으로든 확인하려는 표시로 읽힌다.
그러나 존재하는 것이 모두 즐겁고 기쁜 일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의 작품을 보면 우리는 상처의 부분이랄까, 어떤 균열의 부분들도 얼마간 감지할 수 있다. 조화 대신 불협화를 선호하고 중심없이 산재된 구성을 즐겨 사용하며 파열음이 나는 것을 목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그런 조형적 특징을 보고 삶의 부분과 연결짓는 해석은 무리한 발상일 수도 있으나 현실과의 불화가 ‘조형적 불편함’으로 표출되는 경우를 고려해볼 때 이것은 심적 갈등 또는 고충의 토로로도 읽혀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전체적으로 그는 추상표현적 양식을 통해 화면 운용과 몸짓으로 호쾌함을 안겨준다. 직정적이며 거침없는 표현으로 일구어낸 화면표정은 그만의 독특한 조형세계이기도 하다. 긴장과 전율을 동반한 그림이며 그야말로 ‘미친 듯이 그려댄’ 패션(Passion)에 사로잡힌 회화가 아닐 수 없다. 클레어몬트 대학교의 M. 칙센트미하이(Mihaly Csikszentmihalyi)교수는 예술가들이 몰입의 정도가 깊을수록 더 큰 행복감을 느낀다고 분석했는데 바로 김혜영이 그런 경우가 아닌가 싶다. 전력을 다해 자신의 열정을 쏟아부어 흡사 ‘초원을 달리는 사슴의 행복감’을 공유하고자 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후속 작업이 기대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서성록(미술평론가
뉴욕_1 / 하드보드.아크릴릭 .80x110cm / 2014년작
뉴욕_2 / 하드보드.아크릴릭 .80x110cm / 2014년작
뉴욕_3 / 하드보드.아크릴릭 .80x110cm / 2014년작
작가노트
“내 안의 꿈틀거림은 다분히 음악적 감성임을 부인할 수 없다.
음악과 미술의 공통분모는 감동이 아닐까..”
“난 네가 느끼길 원해.. 차라리 눈을 감아봐..
시각적, 공간적, 조형적, 그 안에서의 움직임…
마음껏 그리고나면 기분좋은 하루가 마무리지어진다.
일상의 모든 생각들,
사소한 잡념들 까지도 시각적으로 표현하고파..
그래야만 제대로 숨을 쉴 수가 있거든..”
“뭘 그려야겠다는 생각도 할 틈이 없이..
음악을 틀어놓고 미친듯이 그려댔다.
눈뜨고 그리고, 잠자고 그리고,
미친듯이 그려댄 시간..
내가 표현하고싶은게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은 할 필요조차 없었다.
내안의 감성만이 나를지배하고있을뿐…”
“뭐지? 애매하고 모호한 잡히지 않는 생각들..
앞으로도 계속 그러할 것이다.
미치게 그리고 나서 깨달은 것은
내가 살기 위함 이라는 것..”
김혜영
이화여대 음악대학 성악전공
개인전
2014년 SNIAF _ 성남아트센터 미술관
2015년 Music & Passion _팔레드 서울
단체전
2015년_남송국제아트쇼 _성남아트센터 미술관
2013년 Hummingbird 展_NH 금융센터 갤러리
자세한 내용은 http://midahm.co.kr/?sd=1&sc=1_1_view&gnum=440
미담아트가이드 http://www.midah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