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TY ME NOT. 26
- Episode 6. Stalker -
“여기요. 국제 우편물.”
“고마워.”
제하가 내민 것은 골동품 카탈로그였다. 허영감은 얄밉게도 정기적으로 제하의 주소지로 이런 것들을 보내며 다희의 지갑을 털어가곤 했다. 오늘 다희는 네크라인이 러플로 장식된 화려한 블라우스를 입고 손가락에 사파이어 반지를 끼고 있었는데 아마 저 반지 또한 블레인 몰래 허영감에게서 구매했을 가능성이 크다. 카탈로그를 대충 뒤적이던 다희는 제하를 데리고 오랜만에 계단을 올라갔다. 한아도 얼결에 그녀의 뒤를 따랐다.
그들이 올라간 곳은 탑실이었다. 아주 오랜만에 탑실에 들어온 한아는 아직도 곳곳에 남아 있는 핏자국이며 난동의 흔적을 보며 부르르 몸을 떨었다. 지난여름에 이곳에서 한아는 판도라의 상자를 건드렸고, 그 안에서 튀어나온 것은 블레인이 몇 년에 걸쳐 잡아들였던 악명 높은 괴물들이었다. 괴물들은 들이닥친 블레인의 공격을 피하고자 하나로 결합해서 도망쳐 나갔다. 바로 이 장소에서 한아는 블레인과 다희가 뱀파이어라는 사실을 알고 살아남기 위해 인질로서 그들과 계약을 맺었다. 괴물이 도망친 이후 블레인은 제하에게서 의뢰를 받아 퇴마를 시작했다. 한아는 그가 단순히 돈 때문에 의뢰를 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 외에, 한아는 아직도 모르는 것이 많았다. 괴물이 도망치면서 깨부수고 간 창문 가장자리에는 아직 다 부스러지지 못한 유리 조각이 엉성하게 붙어 있었다. 제하는 잔뜩 어질러진 탑실을 둘러보며 다희에게 전해 들었던 그 날의 이야기가 상상된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고 한아가 물었다.
“여기서 뭐하게요?”
“점을 봐야지.”
“엥?”
다희는 커다란 창문가로 다가갔다. 달이 높이 뜬 깊은 밤이었다. 한아는 창틀에 손을 짚고 다희와 나란히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여느 때의 하늘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다희의 눈은 무엇이 보이기라도 한다는 것처럼 검은 눈동자를 왔다 갔다 하며 하늘의 끝과 끝을 오갔다.
“보이긴 해요? 요즘엔 공기가 많이 오염돼서 별이 사라졌던데.”
“내 눈이랑 네 눈이랑 같니?”
네네, 그 잘난 뱀파이어의 시력은 명왕성도 볼 수 있을 정도로 밝나 보군요. 한아는 빈정대고 싶은 것을 꾹 눌러 참으며 입술을 내밀었다.
“도심에서 별 보기가 왜 힘든 줄 알아? 별이 사라진 게 아니야. 빛에 가려서 안 보이는 거지. 도시는 밤에도 불을 그렇게 켜 두고 있으니... 보려고 해도 안 보이겠다.”
“그런가...”
“그래도 오늘은 하늘이 맑아서 느낌이 좋네.”
별 무리를 보며 감탄하던 한아는 새삼 다희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뱀파이어란 모두 이렇게 아름다운 존재인가? 별빛을 받아 신비롭게 빛나는 다희의 존재는 정말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 청아하고 처연하게 빛났다.
“흐음. 이번 달 물고기자리 운세가 최악이군.”
“네?!”
감상도 잠시, 한아가 왜 자기한테만 그러냐며 (한아는 물고기자리다.) 빽 성질을 내곤 중얼거렸다.
“... 이한결보다 더한 사이비...”
“... 지금 뭐라고 했지?”
열 받은 다희가 한아의 등짝을 내리쳤고 한아는 아프다면서도 물러서지 않고 왜 물고기자리 운세가 최악인지 설명해보라며 맞섰다. 그 모습을 제하가 웃으며 바라보았다. 그 순간,
“끼야악!”
갑자기 창문 앞으로 불쑥 무언가가 올라왔다. 거기에 한아는 놀라서 비명을 질렀다.
“... 마침 여기 계셨군요.”
“뭐야! 왜 이리로 올라오는데?”
“이게 편합니다.”
창문을 통해 ―분명히 말하지만, 탑 꼭대기다.― 올라온 것은 블레인이었다. 제하는 천연덕스레 블레인에게 인사를 했고 다희도 익숙하다는 듯 보던 점을 마저 보기 시작했다. 블레인으로서는 제하와 다희의 반응이 자연스러웠기에, 자기가 뭘 잘못했냐는 듯 멀뚱히 한아를 쳐다보았다. 한아가 놀란 심장을 진정시키며 블레인을 째려보았다.
“간 떨어질 뻔했잖아요!”
“저는 늘 이리로 다닙니다.”
“이상하네. 오늘따라 보이지 않아. 밤하늘이 이렇게나 맑은데 말이야.”
곁에서 둘이 아웅다웅하든 말든 다희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이 위치에서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별인데. 숨어버린 것처럼 흔적조차 없다니.”
“... 이걸 보시죠.”
다희가 하는 말을 듣곤 잠시 생각하던 블레인이 여태껏 손에 쥐고 있던 종이 뭉치를 건네주었다. 밖에서 가져온 오늘 자 신문이었다.
“어머, 내가 맞히고도 놀라운걸?”
신문 일 면에는 <사라진 STAR, 라리사의 행방은 어디에?>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라리사라면 혹시 라리사 스미르노바?’ 뒤에 있던 한아가 다희의 어깨너머로 고개를 쭉 빼고 기사를 읽었다. 라리사는 현재 가장 잘 나가는 록 밴드의 보컬이다. 기사에 따르면 그녀의 실종 이후 모든 일정은 취소되었으며, 경찰은 전국적으로 수사망을 확대하였으나 증발해버린 것처럼 라리사의 흔적을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고 했다. 또한, 인터넷상으로는 잠적설이나 해외 도피설이 들끓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극단적인 팬들은 그녀가 사망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실신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니 엄청난 사건임이 틀림없다.
“라리사가 실종됐다고!?”
“너랑 아는 사이니?”
“초 유명한 가수잖아요! 세상에! 말도 안 돼! 따라붙은 경호원도 다섯은 됐을 텐데!”
관심 없다는 듯 다희가 신문을 블레인에게로 도로 돌려주었으나, 다음으로 제하가 내미는 의뢰 파일을 보니 흥미가 붙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번 임무가 바로 저 사건에 관련된 거란 말이야?”
창틀에 기댄 블레인이 팔짱을 끼자 제하가 설명했다.
“매니저가 저한테 의뢰했어요. 인간과 비슷한 덩치의 검은 새가 순식간에 낚아채서 데려갔다고. 그리고 그걸 그대로 경찰한테 얘기해서, 애꿎은 매니저가 용의선상에 올랐고요.”
“커다란 검은 새라... 아. 그래, 어떤 놈인지 알겠다.”
“혹시... 까마귀?”
까마귀라는 단어에 다희의 눈이 오싹하게 빛났다.
“까마귀는 반짝이는 것을 좋아하지.”
“꼭 누구처럼요.”
“그리고 최고의 스타는 더할 나위 없이 반짝이니까 탐낼 만도 하군.”
다희는 손가락에 끼워진 사파이어 반지를 만지작거렸다. 벗겨진 벽지 안에 드러난 새까만 벽과 칠흑 같은 어둠, 버려진 탑실에서 보석이 푸른빛을 발했다. 다희가 그것을 만족스럽게 손가락 끝으로 쓰다듬으며 물었다.
“제하, 알아낸 사실이 더 있어?”
“4년 전에 괴생물 추적센터에서 놈의 거주지를 발견했다는 기록을 찾아왔어요. 아마 그곳에 있을 거고요.”
“어때, 블레인. 너도 이번 의뢰는 구미가 당기지 않아?”
그러자 블레인은 언제나처럼 무미건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바로 창틀에 올라섰다.
“어어? 가려고요? 지금?!”
지금 당장 사건 현장으로 달려가려는 블레인을 보고 한아가 뜯어말리려는 듯 물었다.
“까마귀 괴물은 식인도 합니다.”
무뚝뚝하게 뱉은 블레인의 말이 한아의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최고의 셀럽이 괴물에게 잡아먹힌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같이 가요! 지금 당장 일 층으로...?”
한아는 바로 계단을 내려가려고 뒤를 돌았다. 그런데 당황스럽게도, 그런 한아의 손목을 블레인이 잡아챘다. 한아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빠르게 눈꺼풀을 감았다 뜨는 사이, 블레인이 말했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네?”
그러곤 한아를 냅다 들어서는 공주님 안기 자세로 안은 채로 창문을 향해 두두두 달려갔다. 잠깐의 설렘도 잠시, 죽을상이 되어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한아가 블레인의 목덜미를 꽉 끌어안으며 비명을 질렀다. 창밖으로 한아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져가고, 제하는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입을 떡 벌렸고, 다희는 둥글게 말아 쥔 손을 입가에 대고 킥킥 웃었다.
“이거 놔아아아아아!!!!!!!!!!”
쿵!!
굉음이 바닥을 울렸다. 죽을 뻔했다 싶은 생각과는 반대로 심장은 잘 살아있다는 것을 표현이라도 하려는지 쿵덕쿵덕 뛰고 있었다. 한아는 반쯤 감았던 눈을 똑바로 뜨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탑실 외벽이 보였다.
“... 살았다.”
“괜찮으십니까.”
블레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것도 바로 귓가에서. 화들짝 놀란 한아가 고개를 들었다. 꽉 끌어안은 목덜미에서 손을 떼자 블레인도 잡고 있던 한아의 허리와 다리를 풀어주었다. 이런 외계 짐승을 보았나! 저 높이에서 뛰어내렸는데도 이렇게 멀쩡하다니!
“어떻게 날 저기서 들고 뛸 생각을 해요!”
“그래서 실례한다고 말씀드렸...”
“하여간 매너가 없어요!”
블레인 딴에는 매너를 챙긴 것이었는데. 한아는 짜증을 팍팍 내며 앞서 걸어갔다. 쿵쾅대는 심장은 방금 한 번지점프 때문인지, 블레인과의 접촉 때문인지 모를 일이다. 그가 언제부터 저런 몸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오랫동안 일반인과의 접촉을 안 한 것이 분명하다. 뒤도 안 돌아보고 걸어가던 한아는 금방 다리가 풀려 자리에 주저앉았다.
“한아님!”
“아, 갑자기 다리에 힘이 풀려서...”
블레인이 놀라서 다가왔다. 평생 해보지 않은 번지점프 비슷한 것에 다리가 놀란 게 분명하다. 빨리 라리사를 구하러 가야 하는데…. 제 다리를 주무르던 한아가 미안한 표정을 짓는 블레인에게 말했다.
“업을 수 있겠어요?”
“네?”
“......”
“......”
묘한 정적이 흘렀다. 아까 공주님 안기를 할 때는 언제고, 갑자기 어색해진 분위기에 한아가 ‘아니면 조금만 쉬었다가 가자’고 하려던 사이, 천천히 다가온 블레인이 한아의 앞에서 등을 보이고 쭈그려 앉는다.
“어...”
아까부터 들리던 깊은 숲속에서 윙윙 울리는 소리가 꼭 키득거리는 웃음소리처럼 들렸다. 어째야 하나 눈치만 보던 한아가 그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서 냅다 업혔다. 이거 어째 이상하잖아? 업고 걸어가느니 차라리 집에 놓고 가겠다 싶으면서도 한아는 군말 없이 블레인에게 업혔다. 그의 등판에 몸을 기대는 순간 묘한 느낌을 받았다. 더 기묘한 감정을 갖게 한 것은 무관심하기 짝이 없던 블레인이 친히 업히라고 등을 내보여 준 것이었다. 그런데 묘하다니, 그게 무슨 뜻이지? 이 사내가 보여주는 예측 불허의 행동들이. 블레인의 등에 매미처럼 찰싹 달라붙은 한아가 귀를 쫑긋 세우고 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소리에 청각을 집중했다.
“근데 혹시 안 들려요? 숲속에서 누가 막 웃는 것처럼….”
“작은 악마 하나를 놓친 적이 있는데 그놈이 숨어있을지도 모르겠군요.”
목을 꽉 안고 있던 한아는 팔뚝에 블레인이 말할 때마다 목젖이 오르내리는 것이 느껴지자 좀 전에 느꼈던 묘한 느낌이라는 것이 되살아나서 손을 느슨하게 풀었다. 줄곧 심장이 뛰고 있었다. 그리고 순간, 블레인의 피가 들끓을 때 자신의 피도 끓던 것이 기억이 났다. 지금 이 울림을 블레인이 알고 있는 건 아니겠지. 만약 그렇다면... 한아의 얼굴이 화악 달아올랐다.
한편, 밑으로 뛰어내린 두 사람을 팔짱을 끼고 내려다보던 다희는 손을 풀어 턱을 괴었다.
“이래서 인간들이 사랑 점에 목숨을 거는군?”
“그러게 말이에요.”
옆에서 웃으며 동조하던 제하는 어느새 미소를 지우곤 사라지는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
쩔그럭. 움직일 때마다 나는 구속구의 소리가 아찔하다. 침대에 반쯤 눕혀진 채 두 손을 위로 결박당한 라리사는 어떻게 하면 이 엿 같은 상황을 빠져나갈 수 있을까 궁리하는 중이었다. 어둠에 익숙해져 보이는 이 방은 의외로 평범한 원룸이었고, 자신을 납치해 온 사람은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어린 학생이었다.
“너…. 지금 무슨 짓이야? 이건 범죄야.”
“나도 알아요.”
“... 큰일 날 짓 하지 말고 일단 이것 좀 풀어. 그리고 원하는 걸 말해.”
라리사는 납치범과 협상하기 위해 좋은 말로 구슬렸다. 그러나 상대는 꿈쩍도 하지 않았고, 어둠에 가려진 얼굴이 이따금 웃는 것이 어렴풋이 보일 때마다 몸서리를 쳤다. 어린 학생인 건 분명하지만 정신은 보통 돌아버린 게 아닌 게 틀림없어. 자신을 따라다니는 팬 중 일부는 굉장히 폭력적이고 위험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혈서로 쓰인 편지도 받아 보았고, 규칙적으로 배달해 오는 꽃다발이라던가, 최근 들어 감시당하는 느낌…. 아. 이런.
“설마…. 너…. 그 스토커?”
바쁜 일정 탓에 집요하게 자신을 괴롭히는 무언가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없었던 라리사는 비로소 자신을 납치한 사람이 석 달 가까이 주변을 맴돌던 스토커란 것을 깨달았다. 소녀가 어둠 속에 몸을 숨긴 채 중얼거렸다.
“월요일에 고정 스케줄. 화요일은 회사에서 연습하는 날. 매주 수요일마다 빨간 장미. 목요일에 사진 찍기. 금요일은 우편함 확인하는 날...”
“그만해!”
“장미는 꼭 마흔네 송이씩 사기. 그리고 사진은 당신이 잘 보이는 창가 쪽에서….”
“아아악!!”
언제 어디를 가든, 무엇인가 자신을 따라붙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러나 뒤를 돌아보면 아무것도 없었고, 꼬박꼬박 퀵서비스로 오는 장미 역시 열성 팬의 응원일 거라는 짐작만 했을 뿐이었다. 종종 각종 고지서와 청구서가 뜯어진 채 와 있어도 매니저가 대신 확인했겠지 하고 넘겨버렸다. 그리고 어디선가 들리는 플래시 터지는 소리…. 이렇게 위험한 상황에 부닥칠 때까지 여태껏 그걸 몰랐다니! 라리사는 드디어 상대가 만만치 않음을 깨달았다. 차오르는 분노와 짜증을 애써 삼켰다.
“너 이름이 뭐야? 뭘 원하는데?”
성질을 죽이고 애써 말을 걸기가 무색하게, 돌아오는 대답은 하나였다.
“내가 원하는 건 당신과 평생 함께하는 것뿐이에요.”
“미쳤어…. 이런 미친…!”
“좀 춥지 않아요? 기다려 봐요. 커피를 가져올 테니. 달마이어 커피 좋아하죠? 프로도모를 내려올게요.”
“야!! 야!!!”
커피 취향까지 꿰고 있는 그녀는 이미 통제 불능 상태였다. 커피머신에 머그잔을 내려놓은 여고생이 콧노래를 불렀다. 기분 좋은 커피 향이 코끝을 맴돌았다. 언제나 멀리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라리사에게 직접 커피를 먹여줄 생각을 하니 상상만 해도 달콤한 감흥이 밀려들어 왔다.
“난 이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것을 손에 넣었어.”
어두컴컴한 집, 여고생의 형상은 검은 날개를 가지고 있었다. 까마귀 괴물은 선량한 여고생을 살해해 그 가죽을 뒤집어썼다. 그는 집 곳곳에 걸린 커다란 액자를 둘러보며 음침하게 중얼거렸다.
“저대로 박제한다면…. 최고의 컬렉션이 될 거야.”
벽에 걸린 사진은 모두 라리사의 얼굴이었다.
“오래 기다렸죠? 커피 가져왔...”
까마귀 괴물은 축 늘어진 라리사를 보자마자 쟁반을 떨어뜨렸다. 의자에 묶인 채로 고개가 옆으로 떨어져 있었다. 비명을 지르며 달려가 그녀를 흔들자 푹 꺾인 고개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왜 이래? 정신 차려!!”
“으음...”
라리사는 가물가물한 의식으로 신음을 냈다. 만져본 뺨이 싸늘했다. 아무리 골방에 가두어두었기로서니 이렇게 힘들어하다니. 괴물은 갑작스레 라리사가 이상 증상을 보이자 당황해서 여고생 연기도 잊곤 어찌할 줄을 몰랐다.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
“약…. 약이 필요해.”
“무슨 약, 감기약? 해열제? 왜 이렇게 땀을 흘리는 건데!”
“매니저…. 혈당 체크해야 하는데...”
괴물은 눈앞이 캄캄해졌다.
“인슐린을…. 맞지 않으면 안 돼….”
라리사는 자꾸만 흐려지는 의식 속에서 혼잣말했다. 그녀를 어떻게든 정신 차리게 해보려고 괴물이 어깨를 흔들었다.
“잠시만. 혹시 사탕이나 초콜릿 먹으면 좀 나아져요? 네?”
“인슐린….”
“그딴 건 여기 없단 말이야!!!”
괴물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라리사를 묶어 두었던 밧줄을 풀었다. 그러자 라리사는 몸을 가누지 못하고 바닥으로 엎어졌다. 놀란 괴물이 소리를 질렀다. 탈수 현상에 라리사가 저혈당 쇼크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아아, 안 돼! 내 컬렉션이…!! 정신 차려!!!”
바닥에 널브러진 라리사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손을 부르르 떨더니 뒤로 넘어갔다. 괴물은 마치 자신이 아픈 것처럼 어지럼증을 느꼈다. 그 사이 라리사는 숨을 거세게 몰아쉬더니, 그대로 움직임을 정지했다.
“안 돼….”
끌어안아 일으킨 라리사의 가슴에 손을 얹자 더는 맥박이 뛰지 않음이 느껴졌다. 괴물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그녀를 흔들어 보았지만 이미 숨이 끊어진 후였다. 공황 상태에 빠져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까마귀가 여고생의 모습을 벗어버리고 완전한 까마귀로 탈피했다. 까마귀는 차갑게 식어가는 라리사를 보며 절망했다.
“아아…. 좀 더 감상할 생각이었는데…. 제기랄…. 힘들게 손에 넣은 보석이….”
하지만 절망도 잠시, 무서운 표정을 한 까마귀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말했다.
“... 어쩔 수 없지. 바로 박제하는 수밖에.”
까마귀는 라리사의 시체를 가지고 밖으로 날아가 버렸다.
―
“여기가 까마귀 괴물이 사는 곳이라고요?”
괴물이 산다는 폐가에 도착한 한아가 속닥였다. 흉가일 줄 알았더니 사람 사는 곳처럼 멋들어지게 꾸며져 있다.
“놈은 화려한 걸 좋아하니까요.”
“이야…. 인테리어에 제대로 소질이 있네.”
나무 뒤에 숨어있던 둘은 밖으로 나왔다.
“어떻게 할 건데요?”
“그 가수를 먼저 찾아야 합니다.”
한아가 블레인의 뒤로 잽싸게 따라붙었다. 그들은 최대한 조용히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기도 전에, 블레인이 탁 멈추더니 말했다.
“여기엔 아무도 없군요.”
“그걸 어떻게 알아요?”
“맥박 뛰는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일 층에 남아 있던 한아가 감탄하며 방문을 열고 안을 확인하며 말했다.
“와, 뱀파이어는 그런 소리도 들린단 말이에요? 근데…. 들리지 않는다는 건...”
“벌써 죽었거나, 여기에 없거나….”
그 뒤로 블레인이 뭐라고 말하는데, 한아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한아는 우뚝 멈춰서서 파랗게 질린 얼굴로 얼어 있었다. 개미 한 마리 움직이는 소리도 들리지 않자 이상한 낌새를 느낀 블레인이 한아를 불렀다.
“왜 그러시죠?”
“어... 그, 그게.”
한아가 굉장히 큰 충격을 받은 듯 말을 잇지 못하자 블레인이 훌쩍 다가왔다. 한아의 시선을 따라 아무리 살펴보았지만, 블레인의 눈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한아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 여기 없거나... 죽었거나…. 라고 했죠?”
“네. 아마 거처를 옮긴 것 같습니다.”
“블레인, 저 사람 안 보여요?”
그 말에 블레인이 다시 방안을 들여다보았다. 텅 비어 있었다.
“무슨….”
“라리사 씨…!”
한아의 눈앞에는 패닉 상태에 빠져 방안을 어지럽게 돌아다니는 라리사가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한아를 보고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외쳤다.
‘내가 보여?! 여긴 어디지? 너도 스토커야!?’
“아니... 저기...”
한아가 당황하는 사이 블레인이 방을 구석구석 둘러보았다. 달려온 라리사가 한아를 잡으려고 손을 뻗었지만, 그녀의 손은 한아의 몸을 통과해 나갈 뿐이었다.
‘아악!! 어떻게 된 거야?!’
벙찐 한아가 블레인과 라리사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만약... 내가 지금 라리사 씨가 보인다면... 이 라리사 씨는 귀신인가요?”
라리사 스미르노바
Larisa V. Smirnova
최근 가장 잘 나가는 록 밴드의 보컬.
별다른 기교 없이 음색만으로도 노래를 장악하는 허스키한 음색을 가지고 있다.
저음역대가 특기라 그녀의 라이브를 들으면 블랙홀로 빨려들어가는 것 같다고.
첫댓글 “내 눈이랑 네 눈이랑 같니?”
존나웃곀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네네, 그 잘난 뱀파이어의 시력은 명왕성도 볼 수 있을 정도로 밝나 보군요. 한아는 빈정대고 싶은 것을 꾹 눌러 참으며 입술을 내밀었다.
빈정대줘요
티격태격하는 거 보고 싶다고용
1타 참고 2타 씨게 날림ㅋㅋㅋㅋㅋㅋ '이한결보다 더한 사이비'
별 무리를 보며 감탄하던 한아는 새삼 다희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뱀파이어란 모두 이렇게 아름다운 존재인가? 별빛을 받아 신비롭게 빛나는 다희의 존재는 정말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 청아하고 처연하게 빛났다.
미친... 꼭 오마주합니다... 진짜 머리속에서 자동으로 영상 재생 중
넘나 아름다운 것 입니다... 세계관 공식 미인 강다희... 근데 나 무슨 작품이든 쓸때마다 느끼는게 강다희 진짜 좋아하는 듯ㅋㅋㅋㅋ 언제나 쓸 때 즐거웤ㅋㅋㅋㅋ
블레인 닌자냐고 ㅋㅋㅋㅋㅋㅋㅋㅋ
극단적인 팬들은 그녀가 사망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실신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니 엄청난 사건임이 틀림없다.
그 극단적인 팬에 드포다희가 있습니다
그 극단적인 팬에 저도 있습니다
“너랑 아는 사이니?” 이지랄ㅋㅋㅋㅋㅋ강다희 존나 웃겨 ㅠㅋㅋㅋㅋ
세상 가끔 이렇게 강다희가 뭐랄까 순수? 낭창?하게 말할 때 겁나 웃기고 매력터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러곤 한아를 냅다 들어서는 공주님 안기 자세로 안은 채로 창문을 향해 두두두 달려갔다.
블레인ㅡ ㅡ 공주님 안기 전에 고백 먼저 하세요!!!
이런 외계 짐승을 보았나!
외계 짐승말고 밤짐승은 어떠신지? 아니면 침대 위 짐승?
아 ㅅㅂ업는거뭔데
밤짐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침대위짐승 ㅁㅊ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 상상해보니 참 좋네요... 그 짐승...^^
목을 꽉 안고 있던 한아는 팔뚝에 블레인이 말할 때마다 목젖이 오르내리는 것이 느껴지자 좀 전에 느꼈던 묘한 느낌이라는 것이 되살아나서 손을 느슨하게 풀었다.
오한아 변태 ㅎ ㅋㅋㅋ 진짜 ~ 한아 응?? 묘한 느낌이 뭔데~~
옆에서 웃으며 동조하던 제하는 어느새 미소를 지우곤 사라지는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박제하 너 이새끼.. ㅋㅋㅋㅋ 너부터 사랑점 봐야할듯
박제하 너 이새끼랰ㅋㅋㅋㅋㅋㅋㅋ 인정... 박제하 사랑점 좀 봐주세요... 오한아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뭐야 라리사 죽음/?? 아니 유체이탈인가?
To Be Contined... (얄밉)
라리사 스토커 나 할래
존나 입에서 입으로 아이스아메리카노 먹여버린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할 것 같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